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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7 다윗의 마음이 확정되다

LNCK 2008. 3. 14. 15:36
 

◈다윗의 마음이 확정되다       시57:1~11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동굴엔 환란 당한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4백명 가량이 모여 있었습니다. 삼상22:2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 별 볼일 없는 사람들 같이 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 백성에 대해 무엇이라고 표현합니까?

가시떨기, 싯딤나무, 보리떡 같은 존재,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지렁이 같은 야곱, 화석류나무라 합니다.


김진홍 목사의「새벽을 깨우리로다」에 보면

청개천에서 활빈교회를 개척했는데

거기에는 ‘개성파, 지성파’ 교인들이 다 모였더라는 것입니다.

성격이 ‘개 같은 사람인 개성파, 성격이 지랄 같은 사람인 지성파’

이 사람들이 제직회 하다가도, 밖에 나가서 한 판 붙고 들어오더랍니다.



◑1. 아둘람 동굴 사람들이 존귀한 이유   시57:1~2


사회의 낙오자들 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러나 이들은 나중에 모두 존귀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윗왕국의 일등공신들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 주님께 피하였기 때문입니다.  57:1

비록 삶에 쫓겨,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굴 속에 모인 것 같지만

주님께 피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여 주의 날개 그늘 아래

이 재앙이 지나가기 까지 피하리이다.  시57:1


성경 고고학자들은, 아둘람 굴이 4백 명이 겨우 들어 갈만한 굴이라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피신하는 굴이 아니라, 다윗은 주의 날개 그늘 이라 합니다.

다윗과 4백 명의 사람들은, 아둘람 굴을 주의 날개 그늘 아래인 줄 알고

피난처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피난처로 삼고 주게 피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주께 피하는 자를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아래 감추신다. 시17:7~8


만약 이 사람들 모여서 신세타령, 불평, 자신들의 살 궁리만 했더라면

정말 별 볼일 없는 사람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조건 가운데 쫓기는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때,

하나님은 당장 하늘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는 않지만,

자기가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삶의 희망과 용기'를 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나라는 복 됩니다.

요즘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지혜와 경험을 의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되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해야 하겠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33:12


교회는 이런 면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 어떤 공동체보다 귀한 곳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왜 아둘람 굴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사람들입니까? 두 번째로)


▲2. 하나님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57:2


내가 지극히 놓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로다.  시57:2


다윗과 4백 명은 자신의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에 눈이 뜨여지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교인은,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자녀입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딛고 일어섭니다. 아둘람 굴 사람처럼 말입니다. 



◑2. 아둘람 굴에서 체험한 은혜: 거룩의 추구    시57:3~6


▲거룩에 눈을 뜬 다윗

다윗은 사울의 칼을 피해 광야로 쫓겨 다니는 신세입니다.

다윗은 광야생활 속에서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깊은 진리를 체험하게 됩니다.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졌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거룩의 역사입니다.                              


지금 광야에서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광야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다윗은 아둘람 굴에 들어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하리이다 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럴 때 다윗에게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싹이 텄던 것입니다.


▲원수를 대적하지 않는 ‘거룩’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졌다는 사실은

3-5절 까지 말씀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얼마나 절박한 상황아래 놓여 있는지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사자들 가운데, 야수들 가운데 누워있어 보니

그들의 이빨은 창끝과 같고, 화살촉과 같고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과 같습니다.  시57:4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경겁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도움을) 보내시어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구해주실 줄 믿습니다.  시57:3


그리고 5절에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시57:5 라고 찬송합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이러한 신뢰의 고백이 나오고, 찬송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까?

원망, 탄식, 증오, 복수의 칼 갈기... 보통 이런 것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진다는 사실입니다.


광야 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둘람 굴 사람들이 거기 모여서

현 정권에 불평만 하고 자신들 신세타령만 했더라면

이 사람들 결국 반정부 인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던지

아니면 산도적 떼가 되었을 텐데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져

대적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위엄을 찬송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극심한 고난을 만나거든

사람을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고 (이것도 죄 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의 거룩을 체험하는 영성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유진 피터슨: 광야에서 거룩을 배운다.

다윗이 광야 동굴에서 거룩에 대해 눈이 뜨여졌다는 증거는

신학자 <유진 피터슨>이 쓴 「다윗 - 현실에 뿌리 밖은 영성」에 보면,

 

다윗이 동굴 안에 피해 있을 때

다윗을 쫓던 사울 왕이 동굴 안에 들어와 용변을 보게 됩니다.

그때 다윗이 가만히 사울이 겉옷자락을 벱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이 찔려 하는 말이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삼상24:6 라고 하고는

부하들에게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합니다. 


여기에 대해 유진 피터슨은, 용변을 보는 사울을 볼 때, 

‘당신도 별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면서

원수 갚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왕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말이

“우리가 광야에서 배울 수 있는 깊은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눈이 뜨여진다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다윗은 광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 졌기 때문에

원수 갚을 궁리를 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의지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3. 거룩에 눈을 뜨면, 마음을 확정한다 시57:7~8


우리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께 피하면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지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에게 새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그때 나타나는 우리의 반응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로다  시57:7


다윗과 아둘람 굴 사람들은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 뜻대로 살것이니’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우왕좌왕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생애는, 오직 하나님의 뜻인 거룩한 삶을 살기로

마음에 굳게 결심, 마음에 확정했습니다.

 

 

▲1. 거룩하게 살기로 확정함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오늘 다윗은 비록 최악의 환경에 처해 있지만

그러한 곤경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에 눈이 뜨여져

마음에 뜻을 확실히 정했던 것입니다.


거룩의 꿈은 이렇게 역경 속에서 피어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마음속에 확정한 것이 있습니까?

혹 확정한 마음이 식어졌다면 오늘 다시 불이 붙기를 축원합니다.



의향이 없는 것이 진짜 문제

기독교 고전 가운데

윌리암 로우의「경건한 삶을 위하여」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이고 제일 되는 원리는

모든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이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식해서나 연약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삶을 살려는 의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도 전혀 모르고,

설령 그것을 깨닫는다 해도 

그대로 살려는 진정한 의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1840년 런던 옷가게 일하던 <조지 윌리엄> 청년이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고전15:2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예수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나도 쓰임을 받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이 청년은 이때부터 동료 몇 명을 데리고

주말마다 모임을 갖기 시작 했는데, 이것이 YMCA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뜻을 정한 청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새벽을 깨우기로 확정함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8

새벽을 깨우기로 마음에 확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먼저

‘영광아 깰지어다!’ 라고 말합니까?


성경학자들은 문맥상으로 보아 ‘내 영광아 깰지어다’ 라는 말은

‘내 영혼아 깰지어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합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는 ‘내 영혼아 잠을 깨어라. 비파야, 거문고야 잠을 깨어라. 

(내가) 잠든 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윗이 새벽을 깨우기 전에

<내 영혼아 깰찌어다!> 라고 노래합니까?


그것은 내 영혼이 잠에서 먼저 깨어나지 아니하고는

새벽을 깨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뜻을 정하고 마음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하고

자신의 무능한 삶을 깨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냥두면 인생의 낙오자 밖에 될 수없는 아둘람굴 사람들              

환난당한 자, 빚진 자, 마음에 원통한 자들이

만약 저들이 깨어나지 아니한다면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다가

결국은 산 도적떼나 되고, 아니면 잡혀서 노예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마음을 확정했습니다.

내가 먼저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되겠다.

그래서 새벽을 깨우는 자가 되어야 겠다.

결국 나중에 이들이 다윗왕국에서 제사장 되고, 장관되고, 장군 되었습니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시119:147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46:5


 

▲수년 전에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세계를 순회하면서 캐나다에 간 일이 있다. 

아침에 숲속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다. 

나는 캐나다가 자연의 아름다운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일본에 갔다. 

공장이 요란한 엔진소리와 출근을 알리는 싸이렌 소리에 아침을 깨었다. 

일본은 산업의 나라요 경제의 나라임을 알았다. 


나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갔다.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차임벨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 한국은 주님이 지키시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3. 영혼이 깨어나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습니다.  57:8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영광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57:8

 

다윗의 눈에 ‘만민, 즉 모든 민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만민 중에, 모든 민족’에게 전하겠다는 비전을 품습니다.

또한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빛과 소금의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데요...


 

▲사회적 책임, 사명감에 눈을 뜬 다윗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는 결심은

단순히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겠다는 말만이 아닙니다.


사울의 폭정으로 어두워진 나라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결심의 말입니다.

병든 사회를, 병든 나라를 새롭게 고쳐보겠다는 결심의 뜻도 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뜻을 정하고 마음을 확정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비전을 가지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하며 유다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교회

교회가 천 명이 모이고, 만 명이 모이더라도

영혼을 구원해야겠다는 선교적 책임과

병든 사회를 바로 잡아 보겠다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교회로서의 기능과 사명을 다 하는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열 명이 모이고, 백 명이 모이더라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과,

병든 사회를 고치는 빛과 소명의 사명을 가진

이 시대를 향해 꿈이 있고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던 말든

대구가 우상의 도시로 전락하던 말든

교회 내에 청소년들이 다 떠나가도

자신의 안일에 빠져 신앙의 잠만 자고 있다면

진정한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한국을 깨우기 이전에

내가 살고 있는 대구를 먼저 깨우겠다는 비전을 가진 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08.01.20.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원 제목 : 아둘람 굴 사람들


[주제별 분류] 성 결 http://blog.daum.net/bible3/14042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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