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구원’으로 바뀌어야 요18:19
▲산상수훈, 팔복은, 성화된 삶의 예를 잘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친히 집중적으로 가르치신 산상수훈이야말로
완성된 율법이요, 완성된 복음이다.
팔복 성품은 칭의구원을 받은 거듭난 신자가 아니면 꿈도 꿀 수 없는,
성령이 충만한 신자만이 가꾸어 갈 수 있는 성품이다.
여기에 거듭남 교리의 진수가 있다.
많은 한국교회 강단은 이제까지 산상수훈은
율법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을 일깨우는 교훈 정도로 가르쳐 왔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직접 가르치신 성경적 구원교리를 (팔복, 산상수훈, 성화의 삶)
온전하게 배워 믿음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개혁되고 삶이 변화될 때,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그러할 때 신자 개개인 구원이 완성돼 갈 것이다.
▲와전된 칼빈주의 구원론
칼빈의 <구원보장론>이나 이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은
‘값싼 은혜론’, 또는 ‘믿음지상주의’와 다르게
신자는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칼빈은 “우리를 부르심은 순결한 삶을 요구하며, 그 이하 것을 요청하지 않는다:
우리는 순결한 삶을 위해 속죄함을 받았다”고 선언한다.(기독교강요, 제3권, 16장)
한동안 칼빈주의를 잘못 이해한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 말씀이 왜곡된 결과,
“한 번 구원, 항상 구원론”과 같은 논리가
성도로 하여금 성령 사역인 성화에 진력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구원 완성’을 훼손하는 오류를 범했다.
또 ‘의롭다 칭함을 받은 자’들도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영적으로 죽어 구원에서 탈락될 수 있다는 성경 말씀은
오히려 무색하게 되었다.
▲성화가 있어야 참 신자가 된다.
은혜가 충만한 기독교인 중에는,
성화聖化sanctification가 영생으로 가는 필수적 과정임을 모르면서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크리스천이 있을 수 있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을 입어 ‘성화에 애쓰는 삶’을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알고 믿는 A신자가,
오히려 「칭의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구원을 끝까지 보장하시니,
나는 반드시 천국에 간다고 믿는 B신자보다
훨씬 더 말씀대로 사는 데 열심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성화를 뺀 칭의는 위험하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셨다.
이 말씀은 「칭의구원」을 받았던 제자에게 선포하신 말씀이다. 불신자가 아니었다.
“오른쪽 눈이 실족케 하거든 오른쪽 눈을 빼어버리고,
오른 손이 실족케 하거든 오른 손을 찍어 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하시며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게 성화, 곧 거룩한 삶을 권장하셨다.
우리는 “복종해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은혜구원론 원조인 사도 바울 말씀을 늘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스도 구원 사역의 목표 중 하나 - 성화
성경은 신자의 거룩해짐이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목표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목적임을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주님께서 땀을 피처럼 흘리시던 기도를 묵상해 보라.
“또 저희를 위해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8:19).
주님이 땀을 피같이 흘리시며 원하신 것은 우리의 거룩함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개혁운동 - 성화 강조
종교개혁 이후 근 100년 동안 개혁교회 주류가
「값싼 은혜론」과 「구원보장론」이었기에,
거룩한 삶을 강조 못했던 역사가 있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일어난 것이 「청교도주의」와 「경건주의」이다.
그들은 <하나의 은혜와 인간의 책임의 균형>,
<칭의와 성화 간의 균형>을 말하며 성화의 삶을 강조하였으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잘 반영한다.
(이후에 18세기 영국의 웨슬리
18세기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즈
19세기 중엽 미국의 찰스 피니 역시
그 메시지의 초점은 ‘값싼 은혜’를 질타하며
‘진정한 회심’과 ‘성화의 강조’에 있었다.)
▲성화가 무시되어왔던 한국교회의 과거 역사, 이제는 균형을 되찾아야할 시점
한국 교회는 1960년대 이후로 “잘 살아 보세”라는 경제개발 구호가 대변하는,
물질만능주의 물결에 휩쓸려, 값싼 하나님 은혜와 물질풍요에만 매달린 결과,
거룩한 삶을 설교하기보다 ‘값싼 은혜론’과 ‘구원보장론’ 설교가
교회 양적 성장수단으로 사용돼 왔다.
(처음에는 율법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복음으로 회귀하자며 선한 뜻으로 출발했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역시 한쪽 극단으로 치우치고 말았다고 본다.)
교회 헌법에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음으로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 함이다”라고
성화가 영생으로 가는 필수적 과정임을 가르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자기 교회 신앙으로 고백으로 규정하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교회가 「믿음지상주의」, 「값싼 은혜론」, 「한번 구원 항상 구원론」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제 교회와 목회자는 정신을 바로 차려 속히
「은혜 일변도」, 「지적인 믿음 일변도의 구원론」에서
“하나님 은혜와 인간 책임”, “믿음과 사랑”, “칭의와 성화”를 균형 있게 가르치고,
성령 충만을 간구해 매일같이 거룩한 삶을 사는 데에 진력하는 신자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성경적 구원 교리를 충실하게 가르쳐야 한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신앙개혁이 모여서 마침내 교회를 개혁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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