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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질투심? / 론 솔로몬

LNCK 2008. 4. 2. 13:00

www.youtube.com/watch?v=RCTzY4ctKpE&feature=youtu.be

 

◈여호수아의 질투심?        민11:11~30     2008.03.30.Whose Glory Are You After?

 

론 솔로몬

 

▲성경이 역사책과 달리 성경인 점

이집트, 앗수르, 페르시아 등 고대 근동의 역사책이나 고고학적 자료를 보면,

하나같이 지도자의 좋은 점, 업적, 전쟁의 승전 소식만 기록해 놓았다.

전쟁에서 패배한 기록은 없다. 이긴 것만 기록해 놓았다.

 

반면에 성경은, 위대한 지도자들의 성공한 소식과 아울러

실패한 소식도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성경은, 고대 근동 역사책과 대조적으로, 지도자의 약점도 기록하고 있다.

다른 역사책이 지도자를 영웅시하고, 나아가 '신격화'하는 것과 대조된다.

만약 인간이 성경을 기록했다면, 역사책처럼 좋은 점만 기록했을 터인데 말이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마음으로 준비시키는데 있다.

 

모세나 다윗 같은 어떤 위인의 영웅성을 본받자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전기傳記식으로 읽거나 가르치면 안 된다)

그래서 민수기에는 여호수아의 부족한 점도 기록되어 있는데...

 

 

◑여호수아 : 충성심인가, 질투심인가?

 

▲모세의 호소

앞서 출애굽 백성들이 만나만 먹는다고 불평하자 (민11:1~10)

모세가 자기의 고충을 하나님 앞에 가서 토로한다.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민11:10

모세는 얼마나 괴로운지,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호소한다. 11:15

 

▲하나님이 처방

주님은 장로 70인을 모아서 모세와 함께 회막 앞에 서게 하신다.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도와서)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11:17

 

그러자 모세에게 임한 성신이, 70장로들에게도 같이 임했다. 11:25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엘닷, 메닷이라는 사람이

지도자로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회막에 가지 않고, 진에 머물러 있었는데,

성신이 그들에게도 임하자, 그들도 70장로처럼 예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11:26

 

 그 때 모세의 보좌관이었던 젊은 여호수아가 나서서 말했다.

“주 모세여, 저들을 말리소서, 못하게 하소서!” 11:28  

 

모세가 대답했다.

“네가 나를 위해 질투하는 것이냐? 나는 오히려 여호와의 백성이 다 예언을 했으면 좋겠다.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모두에게 내리셨으면 좋겠다.” 11:29

 

즉, 여호수아에게 충고하기를

‘내 명예, 내 지위, 내 영광을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혹시 여호수아가 자기 지위, 자기 영광을 염려한 것은 아닐까?

사실 모세는 탄탄한 1인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장로 70인이 예언한들, 엘닷과 메닷이 자기 진camp에서 예언한들

그들이 모세의 자리를 넘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다르다.

자기는 지금 2인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뛰어난 사람이 치고 올라오면, 자기 자리는 얼마든지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여호수아는 젊어서 그런지,

모세의 지도력과 책임을 분산해서 나누어 감당할 70장로 그룹에 끼지도 못했으니

어쩌면 상당한 위기감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세를 위하는 척 하는 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영광을 위해서,

엘닷과 메닷에 대한 질투심의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자기 힘으로 70장로까지 건드릴 수는 없지만,

엘닷과 메닷 두 사람 정도는

확실히 눌러 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여호수아가 자기 영광을 염려한 것이 아니고,

(백 번 양보해서) 모세의 영광에 누수가 될까봐 진심으로 염려했다 하더라도

그런 언행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의 언행이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꾸짖는다.

“네가 나를 위해 질투하느냐? 주님이 성령을 모든 사람에게 주셔서

모든 사람이 나처럼 예언했으면 좋겠다!" 11:29

 

“여호수아야, 모든 (더 많은)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면 좋지 않으냐?

그러므로 저들이 진에서 예언하는 것을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나를 위해서든지 (너를 위해서든지) 질투하지 말아라!

내 영광, 네 영광,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여라!”

 

 

◑적용

 

오늘날 미국은 거대한 자기 띄우기 self promotion 와

자기 영광 드러내기 self glory의 사회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TV에 나오는 설교자들도

은근히 자꾸 자기를 자랑하며 높인다. 그래야 전도에 도움이 되는 모양이다.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문제는 비단 그런 명사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같은 크리스천 각 개인도 모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이 영적 질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상 3가지

 

▲1.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좋은 신용, 좋은 평가credit를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언행에 가식적이 되기 쉽고, 자기 장점과 업적을 은근히 자주 드러낸다.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그 곳에, 자기가 있기를 원한다.

대단하고 별스런 일이라고 자랑하면서도, 말로는 “별 것 아닙니다만...” 한다.  

(아예 self-glory를 남에게 흘리지 말라는 뜻)

 

그래서 사람들이 해 주는 인정, 칭찬, 존영 이런 것들을 받고는 씨익 웃는다.

속으로 자기도취에 푸~욱 빠진다. ‘역시 나는 대단한 인재야!’

 

신약에 나오는 자기 자랑, 자기 영광의 대표적 인물이 디오드레베이다. 요삼:9

반면에 세례요한은 얼마나 자기부인을 잘 했는지...

‘그는 점점 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점점 더 쇠하여야 하겠는지라!’ 요3:30

 

▲2. 위치, 서열rank에 대해서 과도하게 민감하다.

밥 먹을 때 누가 먼저 먹는가?, 사진 찍을 때 누가 중앙에 서는가?

누가 상석에 앉는가? 밤낮 이런 것들이 자기 눈에 쏙쏙 들어오는 사람이다.

 

내 직책이 어느 정도인가?

부하, 후배, 동생이 감히 나를 상사, 선배, 윗분으로 대접 안 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 교회에서 섬기는 목사님 한 분이 어느 세미나에 갔는데,

거기에 참석한 다른 어떤 목사가, 우리 교회가 꽤 이름이 나 있는 것을 아니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그 교회에서 부목사 입니까? 협동 목사 입니까?”

(목사는 목사지만, 그의 교회 내에서 그의 서열을 묻는 말이다)

 

부목사면 어떻고, 협동 목사면 어떤가? 우리는 그런 구분 안 쓴다.

여러분, 목사를 ‘주의 종slave’이라고 하는데,

돕는 종 assistant slave 이면 어떻고, 협력 종 associate slave 이면 어떤가?

다 똑같은 종slave 아닌가!

 

위치 rank 에 대해 내가 과도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면,

나는 ‘자기 영광self glory’을 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돌이켜야 한다. 

 

▲3.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잘 난 사람의... 꼴을 못 본다는 사람

뭣이라도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앞서는 면이 있으면.. 질투심에 불타 이글거린다.

그래서 그를 헐뜯고 맹비난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자기 속으로 그를 향해 이를 간다.

 

사실은 자기가 그 보다 뛰어난 점이 더 많다.

그래도 자기 근처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단 한 가지라도 앞서는 점이 있으면,

심기가 불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관련글: 시기심을 극복하면 성자 된다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 또한 그를 쓰시면, 하나님 나라에 더 좋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사람은 오직 자기 영광만 구하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역사도 ‘반드시 나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네가 사역을 하더라도, 언제나 ‘내 그늘 아래서’ 일하라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영광 병’을 치료할 것인가?

 

▲1. 내게 ‘자기 영광 병’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은혜로, 그것을 깨닫고 직시해야 한다. 

 

자기에게 그런 문제가 있는데도 자꾸 회피하고 도피하면

진정한 회개가 안 되고, 그러면 문제(죄)가 계속 자기 삶에 반복된다.

 

▲2. 하나님의 초자연적 치료를 믿어야 한다.

크리스천은, 성령의 역사로, 자기 마음에 초자연적인 치료가 일어나게 된다.

무슨 알약을 먹어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충만 해야 한다. 아니면 자기 영광을 추구하게 되니까!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하며 늘 붙잡고 기도한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겔11:19

이렇게 돌처럼 굳은 마음이 사라지고, 내 마음이 부드럽고 늘 새로워지도록 기도한다.

 

▲3. 고난의 연단을 기꺼이 받으시라

모세, 다윗, 바울... 이런 분들이 어떻게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겸손하게 주님의 영광만 구하며 살았는가?

→‘고난을 통해서’ 겸손하게 되었다. ‘환란’을 통해 그 문제가 치료된 것이다.

 

아무도 ‘성공을 통해서’ 이런 것을 결코 배울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그 문제self glory를 더 크게 확대한다.

모세는 40년간 애굽 궁궐에서 자기가 somebody(남다른 사람)으로 지냈다.

 

그런데 40년간 광야에서는 nobody(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지냈다.

somebody에서 nobody로 깨닫는데 무려 40년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

 

그러나 그런 nobody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일에 새롭게 쓰임받을 때,

진정한 의미의 somebody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예수 믿고 선교회에서 화장실 변기를 닦을 때,

나는 그런 낮은 내 처지를 주님께 불평했었다.

그 때는 아직 내가 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내 자녀를 통해 내게 엄청난 고난을 주셨다.

내 자녀가 장애가 생겨서, 지금 16살인데도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있다.

나는 광야의 모세처럼 깨어지기 시작했고, nobody인 내 자신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의 은혜로, nobody인 저를 주 안에서 somebody로 만들어 주셨다.

지금은 기꺼이 화장실을 치운다.(내 자녀의 기저귀도 처리하며...)

 

▲마치는 말, 그러나 변화된 여호수아

이런 신앙적, 정신적 미성숙한 여호수아도

39년간 연단을 거친 후에

가나안 입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다.

 

‘자기 영광 병’은 다 사라지고, 모세 수준의 영적 지도자가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다.

나도 여호수아처럼,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성숙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꺼이 ‘고난의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절대 자기 영광을 다른 자(우상,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지 않으신다. 사42:8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내 본능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가지려고 했다가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차라리 사역을 안 하고, 집에서 쉬는 것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