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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영국 영적대각성운동의 3흐름

LNCK 2008. 5. 10. 17:17

https://www.youtube.com/watch?v=8oHFSQ-gWtA&t=6s 

◈18세기 영국 영적대각성운동의 3흐름


 

◑하나님의 모자이크

 

아래 글은, 18세기 영국의 영적대각성 운동에 3흐름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성령체험조직력을 강조하는 웨슬리식 부흥과,

칼빈주의적 바른 신학의 대중화를 시도한 휫필드식 부흥과

③영국 국교회 내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복음주의자들, 대표적으로 윌리엄 윌버포스

의 부흥의 3부류가 있었다고 합니다.

 

연대적으로 보면, 웨슬리와 휫필드, 윌버포스는 동시대인입니다.

존 웨슬리 1703-1791

조지 휫필드 1714~1770

윌버포스  1759~1833

결국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다양하게 모자이크로 조합해서 쓰신다는 뜻입니다.

 

2세기 전에, 16세기 종교개혁 때에도

루터의 대중운동 식 개혁운동은... 웨슬리가 루터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고

칼빈은 바울, 어거스틴의 신학을 계승했는데... 휫필드가 칼빈주의를 계승했습니다.

16세기 때도 가톨릭에 그대로 남아서 개혁운동을 펼친 사람들이 있었는데,

18세기 때도 영국 국교회에 그대로 남아서 개혁운동을 펼친 윌버포스가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칼라가 달랐고,

사복음서의 칼라도 조금씩 다릅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을 불러서, 다양하게 쓰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체험이지만,

<나는 모자이크의 일부분> 이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적어도 과거 역사에

구교와 신교가 서로 싸운 것처럼,

알미니안과 칼빈주의자들이 서로 싸운 것처럼,

오늘날 그렇게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만 통해서, 우리 교회만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증거는

어느 시대에도 그런 경우는 없었다고 봅니다. 절대 오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 경로로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 모자이크에 내가 감당해야 될 부분만 성실하게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모자이크에 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얼마나 보기 싫겠습니까!   <편집자

 

 

 

◑18세기 영국의 영적대각성 운동...

 

 

 

아래는 월간목회 06년 9월호, 피영민 목사님의 글 中 발췌 [출처보기]

 

(매우 전문적이므로, 전공자들만 읽으세요) 

 

 

▲1. 웨슬리와 감리교도의 부흥

 

존 웨슬리(1703~1791)의 부흥운동은 가히 전설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생애에 나타난 부흥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①가정적인 영적분위기가 큰 영향을 끼쳤다.

영국 국교회 사제인 아버지 사무엘 웨슬리와 어머니 수산나 사이에서 태어난

19남매 중 15번째였으므로, 가정 자체가 큰 교회였고, 가정교육이 곧 신앙교육이었다.

 

②좋은 신앙서적의 영향이 컸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재학 중 기독교신비주의자들의 저서를 탐독했을 뿐만 아니라,

이신론에 반대하는 윌리암 로우(William Law)교수의 영향을 크게 받고

경건, 실천, 체험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그 자신이 그러한 체험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었다.

 

③모라비안 신자들의 ‘구원의 확신’에 관한 도전이 큰 영향을 주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 신자들과 몇 번에 걸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는 미국의 새 식민지 조오지아 주에 목회하러 갔다가 Spangenbery라는

모라비안 지도자에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당혹하게 되었다.

 

선교의 실패를 체험하고 귀국하여 738년 런던 올더스게이트 가의 모라비안 교도

모임에 참석했다가 루터의「로마서강해서문」을 듣는 중 구원의 확신을 체험케 되고,

모라비안 지도자 피터 뵐러(Peter Bohler)와 교제하며 신본주의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 후 1738년 여름 모라비안 파의 지도자 진젠돌프를 방문하였으나

교회운영 방식에 차이를 보임으로 웨슬리는 독자노선을 걷게 되었다.

 

④기도 중에 임하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담대한 설교자로서 능력을 구비케 하였다.

이성으로만 말하는 이신론자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런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1738년 밤에 철야기도를 하던 웨슬리는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하고

이후로 성령에 이끌린 설교자가 되었다.

 

⑤강력한 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전도방법조직력을 창안했다는 점이다.

1739년 4월부터 조지 휫필드의 제안으로 옥외설교를 시작하여

52년간 4만 번에 해당하는 설교를 한 웨슬리는

-회원12명으로 구성된 속회 제도,

-평신도 설교자 제도,

-전국을 순회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관리사(Superintendent) 제도 등을 통해

결국은 국교회로부터 독립하며 사역자를 직접 안수할 수 있는

대교단으로 성장케 된 것이다.

 

웨슬리의 신학은 감리교 내에서도 휫필드와 갈등을 일으켰고,

그의 구원론이나 완전론은 신학적인 검토가 필요하나

그는 신학자라기보다는 목회자요, 부흥사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2. 휫필드와 칼빈주의 (감리교도)의 부흥

 

칼빈주의 감리교도의 부흥은 웨슬리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의 신성클럽 소속이던 조지 휫필드가 주도하였다.

 

그는 웨슬리보다 조직력은 떨어졌으나

쉽고 대중적인 언어로 회중들에게 접근했으며,

칼빈주의 신학을 열정적으로 마음에 호소한 인물이었다.

 

휫필드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미국 뉴잉글랜드와 남부 식민지를 두루 다니며

순회설교자로 사역함으로써 조나단 에드워드와 함께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의 공동주역이 되었다.

 

휫필드는 매튜헨리의 주석을 즐겨 읽었고

자기의 설교준비는 매튜헨리가 다 해 놓았다고 말했다.

 

그의 사후 ‘칼빈주의적 감리교도’들은 셋으로 분리되어 계속 발전하였다.

하나는 헌팅돈(Huntingdon) 백작부인이 주도하는 그룹,

둘째는 장막문도(Tafernacle Connection),

셋째는 웨일즈의 칼빈주의 감리교도(Welsh Calvinistic Methodists)들이다.

 

헌팅돈 백작부인인 셀리나 셜리(Selina Shirley)는 1739년부터 감리교 운동에

가담하여 휫필드와 관련을 맺고 칼빈주의 감리교 운동을 주도 하였다.

 

영국전역에 감리교 군목을 파송하고, 남웨일즈에 감리교 신학교를 운영하였다.

웨일즈의 칼빈주의 감리교도 강력한 부흥운동을 지향하는 칼빈주의 교회를 세워

현재도 1,500개 이상의 교회가 존속하고 있다.

 

 

▲3. 영국 국교회 內의 복음주의자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로마 가톨릭적인 요소를 회귀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옥스포드 운동’이라고 하면 ‘고(高)교회운동’으로서

구교적 요소를 회복하려는 운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캠브리지 대학은 청교도의 산실로서

영국 국교회내의 ‘귀(歸)교회운동’ 즉 복음주의 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이들은 신학적으로 칼빈주의를 취하면서, 청교도윤리를 강조하였다.

이들은 성령운동가라기 보다는 교육 운동, 선교 운동, 노예폐지 운동,

성경유포 운동을 핵심으로 하면서 하나님의 부흥을 체험하였다.

 

사이몬은 성삼위일체교회에서 50년간 사역하면서

‘교회 선교사협회’(Church Missionary Society)와

‘영국과 해외 성서공회’(British and Foreign Bible Society)를 강력하게 후원하였다.

 

특히 19세기 초 노예 폐지 운동을 했던 클라팜 당(Clapham Sect)은

선교에 앞장서는 헨리 벤(Henry Venn), 존 벤(John Venn)과 같은 인물을 배출했고,

노예폐지의 주도자였던 윌리암 윌버포스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

주일학교(Sunday School)를 창시하여 가난한 근로자들의 자녀 교육을 강조했던

한나 모어(Hannah More)도 클라팜 당과 관련 있는 인물이다.

 

▲결론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각성운동은

①성령체험과 조직력을 강조하는 웨슬리식 부흥과,

②바른 신학의 대중화를 시도한 휫필드식 부흥과

③교육, 선교, 사회정화를 강조한 복음주의자들의 부흥의 세 부류가 있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웨슬리식 성령체험과 조직력을 강조하여 부흥을 이루어 왔다.

(성령운동이 너무 한쪽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므로 조지 휫필드 식의 바른 신학에 근거한 성령체험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웨슬리와 휫필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휫필드의 신학과 열정, 대중화한 복음에

웨슬리식의 참된 성령체험 성결을 지향하는 성령체험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국국교회의 윌버포스 같은 복음주의자들이 강조한)

즉 선교교육, 사회교화, 성경교육 등이

우리 시대에 균형 있게 강조 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후략)

 

 

▶관련 글 : 휫필드와 웨슬리 (강추) 

 

[주제별 분류] 부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