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8

1266 용 기

LNCK 2008. 5. 12. 09:09
 

◈용 기                             행4:13-22 

 

 

◑불신 남편 전도 이야기


어느 교회에 신앙이 좋은 여 집사님이 계셨는데

그 여 집사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남편을 예수 믿게 하는 겁니다.

자녀들도 그런대로 잘 자라고 있고, 또 생활 형편도 괜찮아서 그런대로 살만한데

오직 한 가지 불만족이... 남편이 예수를 안 믿는 거예요.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권면도 해보고, 온갖 부탁을 다 들어주었는데도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끝내 20년 동안 남편이 자기랑 교회를 같이 나가주지 않는 겁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주일날 아침 식사를 하는데 느닷없이 “여보” “왜요?”

“나 오늘 교회 갈래.” 아, 이런 고마울 때가 어디 있나. 이건 기적이에요.

교회에 같이 가겠다고 하는 바람에 너무 감동을 받아서

부지런히 화장도 하고, 남편의 일도 다 치다꺼리를 한 후에

남편을 모시고 교회로 갑니다.


그런데 교회 가는 길에 여 집사님의 마음속에 걱정이 생겼습니다.

‘이 결정적인 운명의 시간에 오늘 설교는 은혜로운 설교를 해줘야하는데,

한 방에 날리는 그런 멋진 설교가 있어야 되는데…….’ 걱정을 합니다.


염려가 또 있습니다. ‘어떤 본문으로 말씀을 하실까? 어느 성경을 보려나.

남편의 마음을 한 번에 확 잡을 수 있는 귀한 본문, 또 귀한 설교 제목,

아 이런 것이 있어서 화끈하게 결정적으로 뭔가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고 갔어요.


교회 들어가서 주보를 받아 떡 펼쳐 봤어요.

그런데 본문이 창세기 5장 1절 이하.

그래서 얼른 성경을 찾아 봤더니 5장 1절은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아담은 930세에, 그 누구는 몇 살에, 누구는 몇 살에 죽으니라... 이게 본문이에요.

‘아, 이걸 어떡하면 좋은가? 이 결정적인 시간에!

이거 20년을 기다려서 남편이 교회에 나왔는데, 왜 설교 본문이 하필 이거냐?’


속이 상했어요. 하나님 앞에 기도했어요.

마음속에 여호수아 1장이 생각이 났어요. "강하고 담대하라."

그래서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간절하게 '어쨌든 제 남편이 감동되게 해 주세요.'

그렇게 설교시간 내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설교를 들어 보아도 자기도 그 날은 은혜 못 받았어요. 뭐 별로에요.

왜 여러분 잘 알잖아요? 교회에 늘 나오지만 공치는 날도 있잖아요. (웃음)

아주 공쳤어요. 너무 섭섭했어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데 내가 20년을 기도해 왔는데 어쩌다 이런다 말인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남편하고 나오는데, 남편이 등록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교회에 등록을 하는 거예요. ‘아, 이건 또 웬일인가?’

아무 말도 당장은 할 수 없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한마디 했어요.


“여보, 오늘 말씀에 무슨 은혜를 받았어요?”

그랬더니 남편은 “뭐, 별 것도 아니더구만. 누구도, 누구도 다 죽었구만 그렇더군.

아, 9백세를 살면 어떻고, 8백세를 살면 어떤가, 누구, 누구 다 죽었더라.

생각하니, ‘맞아. 나도 결국 죽게 되겠지.’

그래서 나도 교회에 다니기로 했어!”

이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여러분,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미안하지만 교회 나오는 사람의 진짜 관심은 둘 밖에 없어요.

하나는 ‘죽음’이고, 그리고 하나는 ‘죄’예요.

이 두 가지 문제 때문에 교회 나오고,

이 두 가지 문제가 확실하게 해결되는 것은 ‘십자가’ 밖에 없으니까

교회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해결하고 ‘용기’를 갖게 되니까 교회 나와서 신앙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용기의 근거가 ‘아닌’ 것들


지식이 용기를 주는 것 같지만... 아니다.

참된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해 볼 때,

지식이 용기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요. 알면 쉽고 모르면 어려워요.

모르면 두렵고, 알면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용기가 생기는 거죠.


마치 시험공부를 많이 한 아이는 시험장에 나갈 때 두려움이 없고,

시험공부 준비가 시원치 않은 학생은 시험장에 들어갈 때마다

도살장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두렵고 떨리고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생각하기를 '다행히 내가 아는 것이 하나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 생각밖에 없는 거예요. 지식이 사람에게 용기를 줍니다만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어요. 지식이란 하나를 얻으면 두 가지 의심이 생겨요.

거 이상합니다. 갈수록 의심이 많아져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대체로 보면 용기가 없어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잘해야 비서실장 한번 합니다.

사장 한번 하는 사람이 없어요. 왜요? 용기가 없으니까요.

이 생각하고 저 생각하고 하다 보니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요.

그저 남이 하라는 얘기를 따라서 하는 수밖에요. 의지가 약해집니다.


이 용기를 주는 것 같지만, 아니다.

또 하나는 돈이 용기를 준다는 생각입니다. 소유, 글쎄올시다.

‘장사도 무일푼이면 무안색’이란 말이 있어요.

역시 돈이 있어야 용기가 있어요.


자, 우리가 길거리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더라도 만나자마자 내 주머니 생각을 해요.

이 친구하고 점심을 먹을 때, 내가 점심값을 낼 수 있으면 용기가 있어요.

“오랜만이구만.” 반갑게 인사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점심값이 없어요.

그러면 “나 바빠.” 그리고 가죠. 비겁해지는 거예요.

이게 돈이 주는 용기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거 대단합니다.


그러나 돈이 어디 항상 내손에 있습니까? 이게 돌고 돌아서 ‘돈’이거든요.

그러니 문제죠. 어떤 사람은 스위스 은행까지 갖다 넣어놨지만 그것도 못 찾더라고요.

돈, 그거 믿을 거 못되죠.


소유가 정말 우리에게 용기를 주나? 아니에요.

소유가 많을수록 용기가 없어요.

그래서 '비자금'이니, '차명'이니 하는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걱정 많이 하는 사람들의 나약해진 인생의 표현입니다.


건강, 명예, 업적이 용기를 주는 것 같지만... 아니다.

또 하나는 건강이 용기를 준다고 생각하지만 건강은 옷 같이 낡아지는 겁니다.

어떤 사람의 건강이든 누가 보장합니까? 점점 쇠약해지죠.


명예라는 것, 그것도 부질없는 것입니다. 정말 부질없는 것이 명예입니다.

이것은 용기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업적입니다. 뭔가 만들어 놨다. 실적이 있다.

이거 다 낡은 건물처럼 거추장스러운 겁니다.


저는 서울 안에 있는 교회 건물을 볼 때,

어떤 교회 건물을 보면 빨리 헐어버렸으면 하는 것이 많아요.

대충 지었다가 헐지, 그걸 왜 돌로 지어가지고 골치 아픈가? 정말이에요.


지금이라도 헐어 버려서 다시 지었으면 좋겠는데

과거에 너무 잘 지어놨기 때문에 헐지를 못해요.


우리 인간의 업적이라는 것이 그 정도라는 줄만 알고 계세요.

어느 때 가서는 거추장스러워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 그렇다면 참 용기의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참된 용기의 근거 - 긍정적 시각


▲내가 어둡게 보면... 다 꽝이다.

요즘 서점의 경제, 경영 분야에 52개월 동안 연속 매출 1위인

김성환 씨가 쓴「절대긍정」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김성환 사장은, 자기의 어려울 때부터 시작해서 오늘까지

그가 살아온 생애의 성공과정과 인생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나를 부정하면 누가 나를 긍정할 것이냐?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가 나를 믿어 줄 것이냐?

내가 세상을 어둡게 보는데, 누가 나를 밝게 볼 것이냐?”


그렇습니다. 절대 긍정, 자기 자신에 대하여 긍정할 것이고

자기 과거에 대해서 긍정해요.


여러분, 과거를 어둡게 보지 마세요. 그날이 있어서 오늘이 있는 거예요.

안 그렇습니까? 그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 어두운 과거, 실패했던 과거가 있어서 오늘이 있는 겁니다.

그거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고로 오늘을 얻는 자에게는 잃어버린 과거는 없어요.


여러분,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총리대신이 됐겠어요?

성경에 있는 모든 인물이 다 그래요.

그 어려운 과거와 그 어려운 고난이 없었다면 그 사람 될 수 없었어요.

그런고로 ‘아 그것 불행했다, 나는 왜 이랬던가!’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 자신에게 지난날의 어두운 과거, 그날이 있음으로 오늘이 있다!>

이렇게 긍정적 해석을 내려야 돼요.


▲남편이 죽어도 절대긍정!

어떤 분이 남편 때문에 고생하다가, 어쩌고저쩌고 하다가

그만 남편이 세상을 떠났어요. 그 남편이 사실 아내 속을 많이 썩였어요.

그 다음에 이 아내가 하는 말이 재밌어요.

‘살았을 때는 죽었으면 했는데... 죽고 나니까 아쉽대요!

아, 그 속 썩이는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이 말 저 말 하다가 마지막에 그랬습니다.

"세상에 그저 결혼 못해보고 산 사람도 많은데 한번 해 봤으면 됐지 뭐 그러십니까?

그건 잃어버린 과거가 아닙니다.

그날이 있음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겠습니까?"


아주 밝은 얼굴로 돌아가는 걸 봤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환경을 절대 부정적으로 보지 마세요. 절대 긍정!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에 전개되는 것 즉각적으로 당장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절대 긍정, 밝게 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고서야 밝은 미래가 오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골프를 잘 치는 비결, 세상일을 잘 해 내는 비결 - 용기 

언젠가 한번 골프 책을 보니까

골프 선수들이 골프를 하는데, 골프를 잘 치는 원리가 나와 있습디다.

요점은 간단해요. 3C라고 돼 있어요.


①첫째가 뭐냐 하면 Confidence. 마음이 편안해야 된다.

아, 그거야 물론 그렇죠. 불안하면 안 되는 겁니다.

뭐 우승에 연연해서도 안 됩니다.

오늘 아침에 부부싸움 한 것도 잊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야 됩니다.


역시 심리적 문제에요. 모든 문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심리적인 것입니다.

요새 세계 경제도 심리학적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까?

경제가 꼭 나쁜 게 아니에요. 마음씨가 못돼서 그래요. 심리학적 문제예요.

그런고로 Confidence가 첫째다.


②두 번째는 Concentration. 집중해야 한다.

그렇죠. 골프채를 쥔 사람이 딴 생각해서는 안 되겠죠.

그런데 골프채를 쥐고 딴 생각을 많이 한대요. 옆에 있는 캐디를 본대요.

예쁜 아가씨가 자기를 쳐다보면서 '저렇게도 못 하면서 뭣 하러 돈 없애고 왔나.'

꼭 그러는 거 같대요. 그 아가씨 생각하는 동안 이건 빗나가는 거예요.


그 순간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집중해야 합니다.

공부라는 게 별겁니까? 머리 좋다는 게 별것 아니에요.

집중하면 머리가 좋은 거고,

생각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어지면 머리가 나빠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일에서 집중하고

지금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생각지 않는 그런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③이 마지막 말을 제가 하고 싶습니다. Courage. 용기입니다.

그저 우리가 항간에서 쓰는 말로 말합시다. 배짱입니다. 용기가 있어야 됩니다.

용기가 빠지면 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심을 기울이는 용기, 운명을 다 걸어버리는 올인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귀중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의 근거


현대인은 흔히 지식이나 돈이나 혹은 환경적 여유로 인해서

용기가 오는 줄 알고 있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석해 봅니다. 아무리, 아무리 보아도 용기가 없어요.

현대인의 결정적인 약점은 용기가 없다는 겁니다.


옛날보다 그만하면 잘 살아요. 아무리 봐도 그만하면 넉넉해요.

그러나 용기는 아니란 말입니다. 옛날엔 그렇게 어려우면서도 용기가 있었는데

오늘날은 어쩌다가 용기, 담력이 다 사라졌어요.


여러분, 기독교인이라는 게 뭡니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저는 4가지로 요약된다고 봅니다.


①첫째가 예수로부터 배우는 사람이에요.

부지런히 예수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이다.


②둘째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예수를 따라가는 Discipleship, 제자도를 가리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본받으며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며 깨달아 가는 거예요.


③셋째는 중생한 사람입니다.

중생이라는 말은 내가 예수를 얻는 게 아니라

예수가 내 안에 계셔서 내가 예수께로 가는 거예요. 내가 예수처럼 변하는 거예요. 창조적 신기원을 말하는 것이에요. 내 경험이나 내 지식과 관계없어요.

전혀 다른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함으로써 얻어지는 중생.

새롭게 태어나는 생을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께로 변화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에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성경을 알고 많은 성경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없다면 그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진리의 핵심입니다.


④넷째, 충만한 사람입니다. 즉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충만하여 넘칩니다. 그래서 그의 진리, 그의 영, 그의 생명력이 나를 지배할 때

내 지식도, 내 감정도, 내 의지도, 다 그에게 사로잡혀 있습니다.

지난날의 생각 이거 소용없어요. 지난날엔 내 의지로 살았지만

이젠 주님이 내게 주시는 생명력으로 살게 되는 충만함,

여기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기는 거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비결은... 용기!

그래서 사도행전 4장 8절에 보면 베드로가 '충만했다' 그랬어요.

베드로가 지금 공회 앞에서 성령이 충만한데 그 충만한 모습을 한번 보십시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고관들이 볼 때에는 베드로와 요한 이 갈릴리에서 온 촌사람들은

불학무식한 문맹이에요. 문맹. 글도 모르는 이런 사람으로 취급을 했어요.


그러나 어떻습니까? 기탄없이 말해요. 무식한데 말은 잘해요.

아, 배운 지식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용기가 대단해요.

그 누구와 비할 수 없는 엄청난 용기, 생명력, 카리스마가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이 감동을 하고 두려워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용기의 근거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고 물으면 오늘 성경은 몇 가지로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에요.


①첫째가 '하나님 앞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지금 재판을 받는 순간인데도 큰소리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의 말을 들어야 옳으냐?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옳으냐?"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에 보름스 회의에서 재판받을 때에도 그랬다고 합니다.

"Oh, God! here I stand." 하나님이여, 나 여기에 서 있습니다.

루터가 서있던 자리를 가톨릭의 권한이니까 다 없앴지만

그래도 우리 신교인들을 위해서 요만큼 표시를 해 놨더라고요.

가서 한번 서보니까 감개무량했습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렸습니다. 그래도 그는 말합니다.

"주여, 나 여기 서 있습니다." 여러분,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의식입니다.

사람이 아니에요. 하나님! 사람의 시선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선!

사람의 평가가 아니고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 거기에서 용기의 근본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②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표적

또 좀 더 나아가서 오늘 성경 말씀을 잘 살피면 표적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표적이 있었어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를 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요, 걸어본 적이 없어요.


그 사람이 베드로에게 자기 병과 몸을 고쳐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지도 않았고, 부탁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은 구걸하기 위해서 돈 좀 달라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러나 베드로는 옛날의 베드로가 아니에요. 돈 달라고 손 내민 앉은뱅이를 향해서

“일어나라!” 명하니, 그가 벌떡 일어납니다.


그 일어나는 순간 어땠을 것 같습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해요.

베드로가 기절 안한 것이 용해요. 어떻게 기절 안 했을까?

아,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딱 한마디에 벌떡 일어나요.


이제 베드로는 생각합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나와 함께 계시다.

부활하신 예수가 여기 계시다. 부활하신 예수의 생명력이 나와 함께 계시다.'

이제 무서울 게 없어요. 담력입니다. 용기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한평생을 살면서 표적을 경험하십니까?

자녀를 키울 때 표적을 보십니까? 사업할 때 표적을 느끼십니까?

순간순간 하나님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끼십니까?


③더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입장에서 ‘의인으로 인정받음Justification’이 있었어요.

베드로는 바로 몇 일전에 예수를 모른다고 한 사람이에요.

비겁하게 도망갔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어두운 과거, 그 부끄러웠던 일, 다 덮어 놓고

이 한 사건 속에서 다 이해하고 마는 거예요.

나 같은 죄인, 나 같이 비겁한, 나 같은 부족한 사람, 주는 오늘도 쓰신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나를 통해 역사하신다. 어떻습니까?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므로 용기가 생긴다.

저는 가끔 생각을 합니다. 제가 77년에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갈 때가 없었습니다. 갈 때가 없어서 어느 대학의 학장 일을 좀 보게 됐습니다.

뭐 4년 동안만 좀 임시로 봐 달라고 해서 학장 일을 보는데

사실은 그건 제가 할 일이 아니죠.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학장 일을 봤기 때문에 그래서 주일날은 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세웁니다. 그저 남의 집 안방에서 시작하고 응접실에서 시작했는데

소망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그 소망교회를 볼 때마다

또 여기 예수소망교회를 봐도 이건 사람이 하는 일 아니에요.

누가 이런 자리를 잡겠어요? 누가 이걸 생각이나 하겠어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나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모든 허물은 상관없다. 덮어 주셨다.

이러할 때 용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보세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부활하신 예수가 함께 하시는데 죽음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마치는 말

성도 여러분, 이제 용기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침체되고 우울해지고 소심해지고 민감해졌습니까?

여러분, 내가 왜 이러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용기가 없음을 인정하십시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세요.

그리고 나의 앞에 있는 현실이 표적임을 알고 절대 긍정적 해석을 내리세요.

그런 순간 영원한 세계가 눈앞에 전개됨을 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들을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 베드로와 요한처럼 불학무식하지만 기탄없이 말할 수 있었던 그런 용기,

그러한 담력이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08.04.13.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 인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