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문안 딤후4:16~22 인터넷설교 스크랩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딤후4:16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깊은 곳에 바울이 어떤 자세로 한평생을 살았는가?
혹은 전도인의 자세로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가 하는 것을 잘 말씀해 주고 있다.
▶1. 먼저, 자기를 버린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우리가 환영을 받으며 살기도 하지만,
혹은 배반당하며 배신당하며 그렇게 살 때가 많다.
우리가 착하게 살고 바로 살기만 하면 모든 사람에게 성원을 받고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고 존경을 받으리라고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건 착각이다.
바로 그렇게 기대하는 데서 문제가 된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들으려고 하는데, 그거 사실은 불신앙이더라.
그저 들으면 들은 대로 가만히 계셔요.
그걸 자꾸 수습해 가지고 뭘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은 말을 하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으려 하는데,
여러분, 평생 그거 해 보셨는가? 제 경험으로는 한 번도 못해 봤어요.
그래서 안 한다. 안 할 생각이다.
그저 좋은 사람 좋게 만들 수 있지, 나쁜 사람 좋게 만들 수가 없어요.
그건 하나님밖에는 못해요.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은 그 잘 대하려 하면 점점 더 나빠져요.
제 노력, 제 수고로서는 안 되요. 꼭 하나님이 손을 봐야 되요.
그리고 변화는, 꼭 말씀의 변화에서만 이루어진다고 저는 믿는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혹은 그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서
혹은 설교를 들으면서 거기서 은혜를 받든지, 아니면 큰 사건에 부딪치든지
그건 하나님이 손보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성령으로 감동하시고 말씀으로 함께 하시고,
그리고 사건을 통해서 그를 꽉 붙들어 가지고 인도하시든지, 회개케 하시든지,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손을 볼 때만 사람이 바뀔 수가 있지요.
제가 인간적으로 만나고 상담을 하고 이야기하고 권면한다고 해서는
되는 일이 한 번도 없다.
그건 제가 한 번도 못해 봤다. 저는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관계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내가 잘 하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뭐 좀 더 친절하게 하면,
어떤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를 않아요. 그건 절대로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친절하게 하면 점점 더 멀어져요. 점점 더 못되져요.
사람을 바꾼다는 것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고로 문제는 이런 때에, 이 일로 인해서, 자, 이제 배신자도 생기고
나와 관계가 잘못된 사람이 있을 때
이 일로 인해서 그 사건 자체도 중요하고 그 분을 구원해야 될 문제도 있지만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 일로 인해서 내 신앙이 흔들리든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하든가,
나약해지든가,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점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열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만나는 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나빠요.
이 아홉 사람은 좋아요. 그런데 이 한 사람 때문에 거기에 신경을 다 쓰느라고
아홉 사람에 대해서 아무 일도 못하게 되요.
결국 아홉 사람에게도 나쁘게 대해야 되요. 내가 할 일을 못하게 된단 말이다.
그러면 이건 완전히 악마의 승리다. 악마가 그걸 원하는 것이거든요.
그런고로 우리가 어떤 좋지 않은 인간관계가 중간에 생긴다 하더라도
이 일로 인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못 한다든가, 내가 약해진다든가,
혹은 이 일로 인해서 실의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신앙적 인간관계다.
하나님께 맡겨야 되요.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고 그 다음에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런고로 깨끗이 맡기고 나는 여전히 내 할 일을 해야 된다.
만약 양을 들어 말한다면, 99마리 양이 있고, 한 마리 양이 있다.
이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 마리 찾아가는 것 좋아요.
그러나 그것은 99마리가 무사할 때 이야기다.
99마리를 위험에 버려두고, 한 마리 찾아가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한테 맡겨 놓아야지요. 이건 무사해야지요.
99마리가 무사하면서 한 마리를 찾아가는 것이지,
99마리를 다 죽여 버리면서 한 마리 찾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있지 만은
그러나 내가 해야 될 일을 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 또 어떤 때는 이런 경우에는 저 잘못된 일이 하나 있을 때
예수님으로 말하면 가룟 유다에요. 또 일곱 집사로 말하면 니골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일이 있을 때 거기만 자꾸 신경을 쓰면 무슨 일을 하겠어요.
또 그 다음에는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요.
‘저건 내 책임이요 내가 잘못해서 그래요. 내가 부족해서 그래요.’
이렇게 되기 시작하면 이건 끝도 안 된다. 이건 아무 일도 못하고 만다.
이건 좌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건 자멸하게 된다.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내가 할 부분만 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그 모든 책임을 다 내가 지겠다고 그러고 나까지 죽어 버려요.
내게 주신 은사까지 다 소멸해 버려요. 아무 일도 못해 버리고 만다고요. 이건 잘못이다.
조금 너무 심각한 이야기지만, 이런 일이 너무 많기에 말씀을 드린다.
어떤 분은 결혼을 했어요. 남편이 예수를 안 믿어요.
또 남편이 잘못된 길로 자꾸 가요. 여기에 신경을 쓰느라고 아무 일도 못해요.
혹 어떤 때 집사의 일을 맡아 수고해 주세요 하면
‘아이고, 제가 어떻게 집사 합니까? 남편이 예수를 안 믿는데.’
또 이런 일에 봉사 좀 합시다 그러면
‘내가 지금 남편 때문에....’
일평생 남편 하나 때문에 몽땅 버렸어요.
남편 내가 할 일 친절하게 하고, 사랑을 베풀고,
밥 해주고, 빨래 해주고 하는 일 있잖아요. 그거 다 하고는 전도하세요.
언제 돌아오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그건 나와 관계가 없어요.
평생 한 남자 섬기고 그를 위해 온 생애를 다 바쳤다고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 아니다. 내버려두세요.
그건 하나님께 일단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해야지요.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해야지요.
혹 누가 묻기를 '제 남편도 인도 못 하면서!' 뭐 그런 사람 있겠지. 그러면 어때요?
예수님도 가룟 유다 못 했는데요. 그건 나대로 할 일이다.
이걸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거 하나에 그만 잘못된 실수나 여기에 그만 몽땅 다 몰입되어 버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그걸 꼭 잊지 말아야 되요.
공부하는 아이들도 보면 이 여러 과목이 있다.
여러 과목을 공부하되 잘 되는 것도 있고 못 하는 것도 있다.
그 문제가 잘 안 풀리는 것을 놓고 그걸 풀겠다고 이거대로 시간 다 보내면
언제 시험 보나. 공부는 언제 할 것인가?
잘 안 되는 것 있거든 내 버려 둬. 언젠가 하면 되겠지.
다른 것, 잘 하는 것만 열심히 해 나가야지.
그래서 시험 칠 때 아는 것부터 먼저 쓰라 그러잖아요.
아는 것부터 먼저 쓰고 모르는 것은 뒤에 있다가 하다 하다 못하면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마는 거지.(허허허!) 그렇잖아요.
그거 어떻게 할 꺼요. 여기서 운명이 좌우된다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건 하나님께 맡기라.
그런데 이거 안 풀리는 문제를 놓고 ‘자존심이 있지 그럴 수가 없어.’ 하면서
이것을 풀겠다고 온 정력을 다 기울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나머지 풀 수 있는 문제,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를 안 한 것이 되고 만다.
그건 못한 것이 아니다. 안 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거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가?
이건 실제적이다.
그런고로 누구에게나 그래요.
베드로에게도 있었고 바울에게도 있었고 아무리 훌륭한, 뭐 더 말 할 것이 있는가?
예수님께도 그건(가룟 유다) 있었다.
어디에나. 아무리 선한 일에도. 이런 배신자도 있고 섭섭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바울도 이것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어요.
그래서 어제 아침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라.
너도 저를 주의하라." 딤후4:14~15a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끈질기게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지만 버려두는 것입니다.)
또 그만이 아닌 오늘 본문 딤후4:16절에 보니까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 처음 복음을 전할 때,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보세요.
처음부터 함께 해서 일 하던 사람 가운데 하나도 없이 다 가 버렸다.
다 나를 버렸다고 했다. 이런 아픔이 있어요.
‘그러면 그들이 나를 버렸으니 나는 자격 없다, 나는 무능하다, 나는 못한다..’
사도바울이 만약 이렇게 했으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자기를 버린 건 버린 거고,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잊어버릴 수는 없어요. 또 이런 좋지 않았던 관계를 생각하고 있어요.
▶3.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딤후4:16b
①그는 임종 가까운 마지막 시간에 말한다.
이 허물을 저희에게 돌리지 않기를 원한다. 저 사람들만 나쁘다고 하지 말라.
바울의 심정은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이 한 마디 속에서.
그러나 우리가 짐작할 것은 있다. 그러면 이 허물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이건 우리가 알아야 한다.
스데반이 죽는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순교할 때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는가?
‘하나님이여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과는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랬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여기의 스데반의 기도는 그렇지 않다.
‘이 허물을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큰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이 죄가 얼마나 큰가?
그러나 하나님이여 저들이 이 죄를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마, 이 위대한 기도가 응답되어, 사도바울이 탄생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 위대한 기도가 없었더라면, 사도바울은 저주 속에 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저 사람들이 저렇게 된 것, 뭐 이제 찾아가서 돌아오게끔 할 그렇게까지는 없어요.
그런 능력은 없어요. 그건 또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러나 나 할 일은 다하겠지만,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늘 무슨 마음이 있는고 하니,
‘허물을 저에게 돌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마 이 기도는 디모데에게 하는 말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일 것이기도 했어요.
'다 나를 버렸으나 허물을 저희에게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스데반의 기도와 똑같다.
(아마 사도바울이 스데반의 기도를 듣고 크게 감동 받은 모양이다.)
②현실적으로 우리가 위의 기도를 본받아서 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
‘이 허물을 저희에게 돌리지 않게 해주세요.’
이 잘못이 전적으로 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도 어느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 때문이다.
아주 20년 동안이나 남편과 사이가 나빴는데, 밤낮 밖으로만 돌았어요.
이제 딸들이 결혼할 날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딸 둘이 있는데, 이런 가정이 있었는데
그렇게 이 부인이 항상 남편을 나쁘다고 그랬다. 아이들도 그렇게 알아요.
또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도 또 역시 아버지가 나쁘다고 그래요.
그래서 빨리 헤어지면 우리는 어머니하고 살겠다. 헤어지라고.
뭐 그런 이야기까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부인이 은혜를 받았어요. 그때 그는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보기에는 아버지가 전적으로 나쁘고 나는 좋은 사람 같이 보이지.
그러나 그게 아니란다. 두 남녀 간의 일은 너희들은 모른다.
아버지가 저렇게 된데 대한 책임은 내게 있는 것이란다.’ 그렇게 얘기했어요.
아이들이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는 참 잘하셨는데.'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내가 비판하고 있거든.
한 번도 인정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니 너희 아버지가 나를 좋아하겠니.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내가 요새 은혜를 받고 보니까
너희 아버지가 밖으로 도는 것은 나 때문이고,
사실 나 때문에 너희 아버지는 피해자다.' 이렇게 얘기하고 이렇게 회개할 때
이 말을 아버지가 전해 듣고 그 아버지도 회개했어요.
그런고로 허물을 돌리지 않을뿐더러 비판하지를 않는다.
나쁘다, 좋다,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하나님께 맡긴 일이다. 나는 내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그런 말씀이다.
▶4.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딤후4:17
①그러니까 상황변화라고 하는 것은 그건 아무 상관이 없어요.
상황이 잘못되어서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불러서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역에는 절대로 지장도 없고 실패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매를 맞든 환난을 당하든 감옥에서 순교를 하든
하나님의 그 큰 역사를 이루어감에는 조금도 잘못될 수 없다고 믿었어요.
하나님의 사역에, 하나님의 영광에 완전성을 그는 믿고 있다.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②‘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이것은 사도행전 18:9절에 있는 말씀이다.
그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신 바가 있다.
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할 자가 없으리라.
이는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때때로 이렇게 위로해 주셨어요.
‘네가 할 일이 있고 이 백성들 중에 구원받을 자가 많다.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위로해 주셨어요.
▶5.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딤후4:18
그러나 그는 매를 많이 맞았어요. 오늘 본문에 보는 바와 같이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4:17b 사자 굴에도 들어갔어요. 갖은 고생을 다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복음 사업에 지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그걸 가능케 하기 위해서
이 사건들이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바울의 심정은 이렇다. 환난도 있고 매도 맞고 고생도 하고 뭐 다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다 성공적인 것이다. 이건 다 효과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온전케 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핍박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는 경우는 절대로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가 순교하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사업의 실패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성공이다. 성공적 작품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단 말이다.
그래서 자, 이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신다.
복음이 전파되고 환난, 핍박, 고통 당하지만
이 모든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계속 이루어 가시다가
끝에 가서 여기 보니까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랬다.
그러니까 환난에서도 구원하시고 무엇에도 구원하시고
마지막에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신다. 확실하게 그렇게 믿고 있다.
생명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 천국에 들어가도록 되는 그 시간까지의 되어지는 모든 과정까지도,
그 코스도 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게 있는 질병, 그리고 나를 배신하는 일들, 이런 사건들까지도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으로 그렇게 확실하게 믿고 있었단 말이다.
▶6.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딤후4:21
그리고 그 다음에 여기 보니까 "겨울 전에 속히 오라" 그런다.
겨울이 되면 못 오니까요. 배가 다닐 수 없게 되거든요.
그래서 겨울 전에 속히 오라.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니다. 기회가 있어요.
바울에게도 기회가 있고 디모데에게도 기회가 있다. 선한 일이란 언제나 기회가 있다.
인생의 겨울, 이제 우리가 아무 일도 못할 때가 온다.
자, 그래서 돋보기 끼기 전에 책 많이 보아야 된다.
돋보기 끼기 시작하면 하나 보면 하나 잊어버려요.
눈만 나쁘지는 게 아니라 영력도 나빠지니까요.
그래서 젊었을 때에 책도 많이 봐야 되고 일도 많이 해야 되고 그렇지 않는가?
아무래도 나이 많으면 자꾸 일이 좁아진다. 하던 일을 자꾸 줄어야 되요.
겨울 전에, 인생의 겨울 전에, 동토가 되기 전에 속히.
가능할 때 가능한 것을 속히 해야 된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 이렇게 부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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