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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앞서 예배자 되기

LNCK 2008. 5. 23. 21:09

 

◈예배에 앞서 예배자 되기       창4:1~16           2008.04.27.

 

 

◑가인의 제사가 열납 되지 못한 이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신 이유

가인은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고,

아벨은 양을 잡아 피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성경엔 피없는 제사인 ‘소제’도 있다. 곡식만 바치는 제사도 엄연히 있다.

 

여러분, 제물이 뭐냐에 따라 하나님이 받으시고/거부하시고... 하지 않으신다.

과부의 두 렙돈 (오늘날로 치면 2백 원 정도)도 예수님이 칭찬하지 않으셨는가!

 

구약시대에도 형편이 되는 사람은 양으로,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비둘기로,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은 남들이 제사드릴 때 끼어서 곡물 조금 얹어 드려도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으셨다.

그래서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진짜 이유는?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후, 분노하는 가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창4:7

 

그러니까 가인은 <선을 행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가인은 죄 가운데서, 죄를 행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제사 때가 되니까, 그 죄악된 삶 그대로 나와서 제사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다.

 

제물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

정리하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는... 제물의 내용이 뭐냐?

제물이 많으냐, 적으냐?, 비싼 것이냐, 싼 것이냐?... 이런 것을 따지지 않으신다.

그것에 의해 제사가 받아들여지거나/거부되거나... 결정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주의 깊게 보시는 것은

<그 예배자가 누구냐? 제사 드리는 그가 어떤 사람이냐?> ... 하는 것이다.

그 <사람>에 따라 제사가 받아들여지거나/거부된다.

 

사울 왕이 급한 김에 자기가 주재해서 제사를 드려버렸다.

하나님은 그런 사울을 책망하셨다.

“내가 소 기름에 질렸다. 기름 태우는 냄새에 질렸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순종)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셨다.  삼상15:22

즉 <제물>이 중요치 않고, <순종하는 제사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악인, 죄인이 제사 드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신다.

버젓이 죄짓고 살다가, 태연하게 제사에 나와서 경건한 척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런 구절이 성경에 너무 많지만, 두 개만 아래서 예로 들어보았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1:15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래 소리(찬양)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암5:21~24

 

그렇다. 가인의 제사가 열납 되지 않은 이유는, <제물> 문제가 아니라,

<제사자>의 문제였다. 그 후로도 성경 전체가 마찬가지 원리다.

<제사자>가 엉망이면... 하나님은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오늘 나의 제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오늘 식으로 말하면 ‘예배’이다.

창세기 때부터,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제사가 있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아벨의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가인의 예배’가 있다.

 

▲일주일 동안 예배자로서 준비하며 살아야!

여러분, 우리가 지난 일주일동안 제 멋대로 살다가

주일에 나와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예배를 드린다면

- 가인의 제사이다. 하나님이 기뻐 받지 <않으신다.>

 

내 주일 예배가, 아벨의 제사로 하나님께 열납(기쁠 열, 받으실 납)되려면

일주일동안 나는 <참된 예배자로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지식이 부족해서,

일주일동안 자기 편한 대로 살다가,

주일 아침 되면 예배에 잠시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그것이 자기 마음에 스스로 안위함(위로)을 줄지는 모르나,

과연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실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설교하는 저도 마찬가지다.

그냥 설교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옷만 퍼뜩 갈아입고 와서 이 자리에 섰다면,

나의 예배와 설교는 ‘가인의 것’처럼 될 것이다.

받으시기는커녕, 외식자로서 큰 책망과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내가 이 예배시간에 합당한 예배자와 설교자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

나는 지난주일 내내 준비하는 삶을 살다가... 이 자리에 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준비된 예배’를 원하신다.

다시 말해서 ‘진정한 예배자’가 드리는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

 

▲예배에 앞서 예배자가 되어야!

여러분,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예배자>로서 우리가 주중에 평소에 사는 것이 중요하다.

 

가인의 삶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이 평소에 되지 못했다.

그는 평소에 선을 행하지 못했다. 악을 행하며 살았다.

그 사건 뒤에 봐도, 그가 얼마나 포악했는지... 동생을 쳐서 죽인다.

 

그렇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려면,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한 시간>이 예배가 아니라,

<내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예배가 되어야 한다.

 

주일 예배는, 지난 일주일간 내내 계속 되었던 삶의 예배의 최종 ‘클라이맥스’다.

 

 

여러분, 오늘날 주일에 교회 한 번 가는 것으로

크리스천 삶을 때우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소위 ‘선데이 크리스천’

그 분들이 명심할 것이 이것이다.

만약 선데이에만 나오더라도, 평소에 ‘예배자’로서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그 주일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될 것이다. (그래야 천국 간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삶이 있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이 설교)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으로서의 예배’를 평소에 늘 강조해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냥 주일날 한 시간 예배만 어떻게 빠지지 말고 드리라>가 아니며,

<주일날 자세 흐트러지지 않고 드리는 예배가 전부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흩어져서 생활 속에서 ‘삶으로서의 예배’를 지난 6일 동안 드린다.

그러다가 주일날 다 함께 모여서 ‘아벨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린다.

그 때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예배시간에 경험하게 된다.

 

또한 '토요봉사대' 등 우리교회가 펼치는 지역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시라.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예배'이다.

소극적으로 '뭘 안 한다' 뿐만아니라, 적극적으로 '뭘 해야' 그것이 참된 경건이다.

그런 경건의 삶은 거의 없이,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만 정중하게 잘 드린다고

무슨 큰 복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은 미신이지, 참된 기독교는 아니다.

 

<08.04.27.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원제목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