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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1296 약속을 따라 난 자녀

LNCK 2008. 5. 29. 17:46
 

◈약속을 따라 난 자녀         창세기 29:11-20 



◑제 개인적으로 일생에 가장 기쁜 일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아 지극히 개인적이고

제 자신의 간증의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이점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나이가 좀 있고 보니, 후배 젊은 목사님들이

세미나를 하든지, 모임을 가질 때마다 제게 질문을 많이 합니다.


그 질문 중에 가장 심각하고 또 많이 하는 질문 중에 한 가지가,

‘일평생 목회하실 때 가장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때가 언제였고,

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제 그 대답을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첫째, 제 아들이 목사가 된 날입니다.

목사는 자기가 목사일 뿐만 아니라 가능하면 자기 자녀들 중에

이 거룩한 성업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는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닙니다.


제 아들이 목사로 안수 받는 날 전 얼마나 감격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제일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있습니다. 더 큰 기쁨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제가 프린스턴 신학교를 나왔는데요. 제가 프린스턴을 나오고 해서 바라건대

제 아들도 프린스턴 신학교를 나왔으면 했는데, 고맙게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조직신학을 공부하면서 프린스턴을 나왔는데

제 아들도 조직신학을 공부하면서 프린스턴을 나왔어요.

이 자체가 또한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저로서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또 프린스턴 신학교의 자랑이라고 그럽니다.

아버지가 나오고, 그 아들이 또 가서 공부하고... 이렇게 된 겁니다.


언제가 한번 학교를 방문했을 때, 총장님하고 같이 단둘이서 점심을 하게 됐습니다.

딱 둘이 앉은 자리에서 총장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제일 존경합니다. 당신이 부럽습니다.”


이렇게 말해 본 일이, 자기 기억에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 자기가 말하는데

‘나는 당신을 최고로 존경하고 당신이 부럽다’고,

프린스턴 총장이 날더러 말했습니다.


그런 과찬을 들으니, 제가 몸 둘 바를 몰라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총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 아들이 이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저랑 단둘이서 식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제가 당신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네가 프린스턴에서 공부하면서, 여기서 많은 훌륭한 교수님들도 만나고

또 책을 통해서도 훌륭한 교수님들, 훌륭한 학자들도 만나고,

훌륭한 목사님들도 만나게 되는데

<당신 일생을 통해서 제일 존경하는 신학자가 누구냐?>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제 아들이 대답하기를 “우리 아버지!” 그러더랍니다.

그만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팍 쏟아지고

도대체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왜요? 자기 아들놈은 교회도 안 나가는데,

어떻게 당신 아들은 신학공부를 하는 것도 장한데..,

더 나아가 '우리 아버지가 최고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느냐는 거죠.


그야말로 이런 말을 자기만 한번만 듣고 죽어도 한이 없겠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존경하게 되었다고,

아들로부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이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고.

그래서 나는 당신을 존경한다. 또 부러워한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 말을 듣는 시간이, 아니 그 날이, 내게서 행복의 극치였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이대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효도는 구제가 아니라 공경honor


여러분, 깊이 생각해 보세요. 효도라는 게 뭡니까?

효도를 우리가 잘못 생각할 때가 있어요. 효도를 구제 사업으로 압니다.

부모들을 뭐 불쌍히 여기고, 용돈이나 드리고……. 그게 아니에요.


성경은 말합니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그랬어요.

공경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Honor.

공경이라는 말은 높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쌍히 여기는 게 아니에요. 이것은 구제 봉사가 아니에요.

이것은 최고의 존경과 신뢰와 자랑을 가지는 겁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거예요.

그게 공경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부모를 무슨 구제하는 줄 알아요.

아닙니다. 공경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부모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복을 받으리라.

후손이 복을 받으리라. 장수하리라. 분명히 약속해 주었어요.

공경, 그걸 꼭 잊지 마세요. 순종이 아니에요. 그냥 효도가 아니에요. 공경하라!



◑아버지를 공경한 아브라함 링컨


저는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이 이야기를 참 좋아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면서

상원․하원 의원을 방문해서 취임연설을 합니다.


어느 날, 상원의원 중의 하나가, 귀족이요, 돈도 많고, 학자인 교만한 사람이

링컨이 연설하는 도중에 딱 멈추고 말합니다.

"당신 같이 초등학교 몇 달 다니다만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는 거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 아버지가 구두 수선하는 사람인데

구두장이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니……, 이런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내가 신고 있는 구두도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 준 거요."

아, 이런 모욕을 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그대로 선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상원의원, 참으로 고맙습니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바빠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기억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구두 수선하던 사람입니다.

나도 등 너머로 구두 수선을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했고 행복했습니다.

구두 만들고 수선하는 것을 큰 사명으로 여겨서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살았습니다.


저도 어깨 너머로 배운 바가 있으니, 귀하의 구두가 망가지거든 가져오세요.

제가 수리해 드리겠습니다. 전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신앙과 성실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으로 최고의 존경을 받는 어른으로

그렇게 우리의 기억에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는 효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자랑했습니다. 아버지를 높였습니다.

아버지를 공경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아들, 약속을 따라 난 아들


여러분, 갈라디아 4:22절 이하에 보면 중요한 신학적 이론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육체를 따라 난 아들이요, 그는 이스마엘이요.

하나는 약속으로부터 난 아들이 있는데, 그가 바로 이삭입니다.


아들이라고 아들이 아닙니다.

호적상 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진정한 아들은 아닙니다. (육체로 난 아들)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앙과, 정신과, 가치관과, 존경과, 신덕이 유산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아들이요 딸이 되는 것입니다. (약속으로 난 아들)


▲‘약속의 자녀’ 이삭

여러분,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묵상 중에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사흘 길을 갑니다.

이제 아들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겠는데 그 아들이 약 27살이에요.

어떨 것 같아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네가 제물이다.' 이게 들어 먹겠습니까?


보통 자식은 아마 이랬을 거예요.

'이 아버지가 백세가 넘더니 노망 들었구먼.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리 없지.'

그러나 이삭은 순종합니다.

아버지의 믿음이 자녀 대에 승계된 것입니다.

이삭이 육체를 따라 난 자손이 아니요, 약속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지?" "압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걸 알지?" "압니다."

"얼마나 사랑하냐?" "아버지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다."

"그래, 그렇다.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제단에 올라가라."


이 아버지와 아들의 그 신뢰와 그 사랑과 그 깊은 관계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도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깊은 의미가 거기에 있어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약속의 자녀 야곱

(에서는 약속을 따라 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신앙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런가하면 야곱이라는 사람 보세요.

①비록 동생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아버지의 축복권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복을 빌어야 되는 거예요.

아버지가 나를 위해서 복을 빌면 나는 복을 받는다.

그래서 아버지의 축복권을 믿고 애타게 구하더니

그는 동생으로 장자의 복을 받습니다.


비록 과정은 말이 많지만,

‘축복을 간절히 구한 것’ 만큼은 믿음의 사람이란 증거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효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믿음을 잘 계승하는 것 - 그것이 신앙 안에서 ‘효도’입니다.


②그가 젊었을 때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라헬은 아리따운 여자였습니다.

연애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봐도 이건 정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7년을 수일같이 지내니라."


얼마나 사랑했으면 그래 7년 동안 목자생활을 하는데 수일처럼 보내더라.

그런데 일이 잘못돼 가지고 한 번 더 또 7년. 장가 어렵게 갔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생애를 쭉 훑어보면 야곱은 이 여자 때문에 불행해 졌습니다.

이 여자 때문에 야곱이 많이 망가집니다.

창세기 49장에 가서 보면 기가 막힌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이 죽을 때 '내 시체를 레아 곁에 묻으라.' 그럽니다.


자기가 지극히 사랑했던 여자는 라헬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법적 조강지처는 레아입니다.

야곱은 자기 신앙의 지조를 굳게 지킵니다. 레아를 버리지 않습니다.

(야곱의 이런 결단이 신앙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③그리고 성경을 읽으면서 참 마음 아픈 부분이 있답니다.

야곱이 가장 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가 고향에 돌아오면서 얍복강을 건너려고 할 때에

'다 건너보내고 홀로 남아서 밤새 기도하더라.' 그렇게 나와 있어요.


아들이 열둘이나 있는데

거기에 아들 단 한 명이라도 좀 같이 있었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느 아들 하나도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홀로 남아서 밤새 기도하더라. 그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그는 외로웠어요.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나는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12아들을 모두,

12지파 이스라엘의 족장으로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믿음은 유다와 요셉을 필두로 해서, 자녀 세대에 계승됩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유다(혹은 요셉)으로

믿음의 유산은 계속 상속되어져 내려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에도 쉽지 않습니다.

부모의 믿음이 자녀에게 상속? 말이 쉽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체험해서 아시지 않습니까?)


▲마치는 말

여러분, 신앙 없는 자식, 신앙을 잃어버린 가정,

경건을 잃어버리고, 공경을 잃어버린 세대.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참 행복은 신앙적 가정에 있고, 경건한 유산에 있고, 신앙적 유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이

'육체를 따라 난 자녀'가 아니라

'약속을 따라 난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더 하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은 그런 거룩하고 복된 가정의 신덕을 대대로 세워갈 수 있게 하시며

자자손손 복의 근원이 되는 은혜로운 가정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08.05.11.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정리 *원제목 : 행복할 수 없었던 행복 


[주제별 분류] 행복한 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