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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장애와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 데이빗 링

LNCK 2008. 6. 12. 13:03

 

◈장애와 핸디캡을 극복한 사람, 데이빗 링 

 

 

뇌성마비로 태어나, 14살 때 자기를 돌보던 엄마마저 병으로 죽고 난 후

사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절망에 사로잡혀 살다가, 벼랑 끝에서 예수를 만난 후

뇌성마비도 그에게 도리어 복음을 전하는 도구요,

어머니를 상실한 것도, 그가 주님을 얻게 된 계기로 이해하게 된

한 크리스천의 전도자 데이빗 링을 소개합니다.

장애와 핸디캡을 극복하고 멋지게 승화시킨 그의 삶이 놀랍습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분을 소개하는 어떤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 <하루 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러고보니, 주변에 <하루 하루를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군요...

 

   

 

 

▶데이빗 링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죽어있었다. 1953.10.28. in Jonesboro, Arkansas

그래서 생후 18분 동안 그의 뇌는 산소를 공급받지 못했다.(애가 숨을 안 쉬니까)

데이빗은 18분 후에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의 뇌는 이미 산소 부족으로 손상되었고, 그 결과 그는 뇌성마비를 갖게 되었다.

그는 비록 살았지만, 뇌성마비의 행동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그가 그래도 14살까지는 비록 뇌성마비였지만, 그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탁해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는 항상 데이빗을 격려해주었고, 기분을 밝게 해 주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14살 되던 해에, 그의 어머니마저 암으로 소천 했다.

자기를 지극정성으로 돌봐 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싱글 마더 인 듯)

데이빗은 다른 가족들의 가정을 이집, 저집 전전하면서 돌봄을 받아야 했다.

 

여러분이 만약 뇌성마비 소년 데이빗이라고 한 번 가정해 보시라!

그에게 전적이며 절대적으로 의지할 대상이요, 도움의 원천인 어머니가 죽었다.

이제 진짜 그를 반겨주고 기쁘게 맞이해 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사춘기 소년이... 죽고 싶지 않겠는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으며, 삶의 소망이란 깡그리 다 사라지고,

그렇게 철저한 절망과 괴로움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야 했었다.

적어도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처절한 절망 가운데 데이빗 링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의 삶은 놀랍게 바뀌었다. 절망, 한숨, 탄식, 괴로움은 다 사라지고

이제 데이빗 링은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전파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도리어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간증을 통해, 큰 도전과 은혜를 나눠주고 있다.

 

그는 Just As I Am (바로 나처럼) 이란 자기 간증 책을 써서 출간했는데,

이 책은 장애우 뿐만 아니라, 많은 비장애우 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앞에 가로막힌 너무나 극복하기 어려운 큰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우조차 이루기 어려운 일들을 하나씩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긍휼로 자기를 변화 시키신 것처럼,

당신도 ‘바로 나처럼’ 변화될 수 있다고... 우리에게 도전을 던진다.

 

▶사람들은 깨어진 물건, 못 쓰는 것들을 죄다 내다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들도 다 고쳐서 사용하신다.

 

“왜입니까?”라고 묻지 마시라,

“왜 Why”를 묻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그런 ‘불행’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에 “지금 제가 무엇을/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으시라!

 

 

▶데이빗 링은 20세 즈음인 1973년부터 간증집회를 시작했는데,

그는 교회, 대회, 학교, 회사 등을 방문해서 매년 약 10만 명에게 간증을 나눈다.

또한 기독교 TV나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해서, 자기가 겪은 엄청난 고난과

예수님을 만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희망을 되찾게 된 사연을 간증하고 있다.

 

그가 간증하는 주된 요지는,

예수님을 통해 여러분의 개인적 핸디캡과

(여러분에게 핸디캡을 가져다 준) 인생에 대한 증오심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뇌-성-마-비 였습-니다. (뇌성마비는 언어장애가 있다)

당-신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데이빗은 카렌과 결혼해서 테네시 주의 프랭클린에 살고 있다.

그들은 4자녀를 두고 있다. April, Ashley, Nathan and Amy Joy.

 

 

◑데이빗 링의 간증을 들은 어느 여 성도의 간증          [대충 번역, 출처보기]

 

 

▶나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기독교 방송WRBS에 채널을 맞췄다.

‘데이빗 링’이란 분의 간증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기의 엄청난 고난을 말했는데, 그의 말이 어눌하고 해서

처음에는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심하게 들었던 것이다.

자기가 모태에서 죽어서 태어났고, 맥박도 뛰지 않았고, 뇌성마비였고...

등등의 얘기였다.

 

그런데 그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 간증할 즈음

나는 ‘하나님이 혹시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실 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의 간증을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저는 태어난 지 18분 동안 죽어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가만히 놓여져 있었지요.

그런데 누가 저를 툭 칠 때, 비로소 저는 호흡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의사는 엄마에게 제가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뇌성마비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저를 지극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마보이로 자라났습니다..”

 

그가 자랄 때, 자기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나 어눌한 말씨 때문에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도 당하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엄마가 있었다.

그는 “엄마, 빨리 집에 가자” 하면서, 집에서 엄마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가정에서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그에게 아무 문제없는 천국이었다.

(엄마는 그에게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은 우상을 잘 데려가신다.)

 

그런데 그가 14살일 때, 엄마가 암에 걸린 것이 밝혀졌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너무도 애절하게 기적을 호소했다.

 

▶이 즈음, 라디오를 듣던 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데이빗 링의 간증을 카 라디오로 듣는 여자성도) 어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자랄 때, 어머니는 내 곁에 안 계셨다.

그녀는 나의 양육을 포기했었고, 나는 커서 어머니를 수소문 끝에 찾아서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그래서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되었지만, 어째서인지 정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고

꼭 친구사이처럼 서먹서먹하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어머니를 돌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렸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알콜중독에, 진통제(아스피린, 타이레놀) 중독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꿈꿔오던 그런 어머니는 아니었다. '남들 같은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엄마 없이 자란 나는, 어른이 되었어도 무엇보다 엄마를 가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왜 내가 어릴 때 나에 대한 양육을 포기했는지... 일절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2년에, 어머니는 뇌암 진단을 받았고,

내 삶은 또다시 마구 흔들거리고 다 깨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자녀들은, 알콜중독에다 약물남용에다, 거기에다 나를 버렸던 엄마에 대해,

내가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충격 받고 흔들거리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분은 내 친엄마였다. 내 살과 내 피를 물려주신 분이다.

그래도 나는 엄마가 더 오래 사셨으면... 하고 바랬다.

나는 어릴 적에 내게서 엄마를 빼앗아 가신 하나님이

또다시 내게서 엄마를 빼앗아 가신다는 원망이 생겼다.

그러면서 엄마를 빼앗긴 데이빗 링의 간증이 더욱 생생하게 내게 다가왔다.

 

나도 우리 어머니를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했었다.

나는 어머니랑 더 가까워지기 원했다.

엄마가 약물을 끊고 좀 더 나이스한 엄마가 되어주기 원했지만,

그러나 내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다. 엄마는 진단 후 9달 만에 죽었다.

 

나는 텅 빈 것처럼 공허해졌다...

나는, 하나님이 왜 엄마를 내게서 데려가시고,

왜 나를 또 어릴 적처럼 -엄마 없이- 공허하게 만드시는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데이빗 링의 간증을 계속 들으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런 ‘숨은 아픔’은 모든 사람이 가지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그 아픔을 알고 계신다고 말했다.

 

비록 내가 데이빗 링처럼 <육체적으로> 뇌성마비는 아니지만,

나도 <정서적으로> 절뚝거리고 마비된 뇌성마비 장애인과 다름없었다.

내 인생은, 늘 정신적으로 공허함과 낙심과 씁쓸함을 느끼며 매일 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엄마가 없어서 괴로웠고,

나중에 엄마를 되찾자, 내가 원하던 엄마가 아니어서 괴로웠고,

이제 엄마가 죽자, 다시 엄마가 없어서 괴로운 것이다.

 

나는 모든 게 자기 중심이었다. 엄마도 ‘내가 원하는 엄마’가 되어주셔야 했다.

어쨌든 ‘엄마’ 때문에, 내 인생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마비’된 인생이었다.

(중략)

 

▶나는 그의 간증 중에, 특히 이 말이 내 뇌리에 깊이 꽂혔다.

전에 한 번 들었던 말이지만, 이번에는 정말 무게 있게 내 귀에 들렸다.  

“나는 뇌성마비를 가졌지만, 뇌성마비가 나를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I have Cerebral Palsey, but Cerebral Palsey doesn't have me.

 

나는 즉시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게도 ‘엄마로 인한’ 정신적 장애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장애가 나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나를 무가치한 자unworthy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신장애로 인해, 스스로 나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보고 있었다.

하나님은 나를 가치있는 존재worthy로 보고 계시는데도 말이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피해자victim로 보고 있지 않으신데,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피해자victim로 보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정상적으로 보고 계신다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도,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데이빗 링의 간증이 끝나자, 내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찾아왔다.

‘그래, 내게 대학졸업장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아!

내게 남들 같은 나이스한 엄마가 없어도 괜찮아!

사람들이 나를 좀 무시해도 괜찮아!

하나님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계셔!

하나님이 내 완전한 아버지고, 어머니가 되셔!

내가 비록 내가 보기에도 완전하진 않지만, 하나님이 나를 용납하시고 받으셨어!

나도 이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방식으로, 나 자신을 바라볼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