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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 악에 관한 최후의 말씀 / 계시록6, 7장

LNCK 2008. 6. 17. 16:20
 

◈악에 관한 최후의 말씀       계시록 6, 7장



유진 피터슨「묵시: 현실을 새롭게 하는 영성」Reversed Thunder pp.113~129. 요약


저자의 해석에 의하면, 계시록 6, 7장은 <세상의 악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데,

악의 현실을 절대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라고 사도 요한은 가르칩니다.

 

저자는 계시록을 <미래에 되어질 사건들의 예언>으로도 보겠지만,

그보다는 <초대교회 당면한 현실적 문제를, 묵시문학적> 토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편집자)가 책 내용을 이해한 만큼, 자기 수준에서 풀어 썼기 때문에,

원 저자의 내용과 혹시 다를 수도 있습니다.



▲당면한 현실적 질문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 당해 있을 당시

많은 성도들은, 악(로마 제국 핍박)이 득세하는 현실을 보고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미 다시 살아나셨건만,

세상은 나아지기는커녕, 도리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어째서 세상에 로마 군인들이 이처럼 활개치는 것일까?

복음은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했는데,

네로 황제 등 로마 정권은 성도를 감옥에 가두고 십자가에 매달았다...



◑사도 요한의 답변


▲7개의 인 (촛물로 봉인할 때의 '인')

사도요한은 계4~5장에서 <7개의 인>을 통해

세상에 만연된 악의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인을 뗄 때-흰말(문맥상 안 좋은 것임, 해석상 이견 있음)

둘째 인-붉은 말(전쟁)

셋째 인-검은말(기근)

넷째 인-청황색말(질병) 등등이다.

다섯째인-종교적 핍박  계6:9~11

여섯째인-자연 재난 계6:12~17


▲‘악’은 역사의 일부 구성요소이지, 전체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치통이 오면, 온 몸이 다 아픈 것처럼 낙심하고 고통 받는다.

몸의 다른 부위들이 다 건강하다는 것을 좀처럼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 사도 요한은 충동적으로 ‘악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는 먼저 계1장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보여주고, (긍정)

계4~5장에서 승리에 찬 예배의 환상을 보여주고, (긍정)

비로소 6장에서 ‘세상의 악의 문제’를 거론한다. (부정)

또 7장에는 다시 주님이 다스리시는 세계를 보여준다. (긍정)

 
우리는 계시록 전체를 ‘고난/멸망/종말적 파괴당하는 세상’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관점이다.


왜냐하면 ‘역사의 초점’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 생애 > 죽음 > 부활 > 복음전파 > 재림이다.

아무리 세상에 악이 만연하고 횡횡해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전혀 건드리지 못한다.


물론 ‘악의 역사役事’도, 역사의 한 모자이크(일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관 안에 있으며,

때로는 하나님은 악을 사용하셔서도,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기도 하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을 사용하신 것처럼 말이다.


▲유진 피터슨 박사는, 이 책에서 <계2, 3장의 7교회>를 설명할 때도 같은 입장을 취한다.

그 7교회의 부정적인 면만 주목해서 보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7교회(정확하게 5교회)의 부정적인 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는, 7교회의 전체 그림은,

그런 부정적 요소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7교회를 칭찬하시는 부분들을 그는 더 부각시키면서

전체적으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교회(하나님 나라)’를 강조한다.


저자는, 전체 그림을 보라는 것이다. 계시록 전체 그림은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맞다. 예수님이 승리하셨다. 예수님이 지금도 승리하시고 계시고, 최후도 승리하실 것이다.

계시록 마지막(모든 책의 주제 부분)도 승리로 끝맺고 있다. 

 

그래서 계시록, 현실의 역사, 미래의 역사까지도,

우리는 전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입장이다.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 때를 기다리라!

성도들은 핍박과 악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호소한다.

6:10, 다섯째 인


그렇게 성도들은 핍박받지만, 동시에 그들은 주님의 눈동자 같은 보호아래 있다.

마18:10~14참조

그래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대답해 주신다. 6:11


그 하나님의 때가 계6장 마지막 절에 나온다. 6:16~17

그 구절은 “(그 마지막 심판 때)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수사적 기법을 썼다. 6:17

절대 그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계6~7장의 주제는 <악에 관하여>인데,

사도 요한은 “누가 능히 서리요(견디리요)?” 말한다.

현실은 악이 득세하는 것 같지만,

심판의 때가 차면, 아무도 그것을 결코 견딜 수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든든한 하나님의 나라

계6장은 ‘악의 현실로 고통 받는 성도/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계7장은 그것에 대한 해답이다.

 

계6장에서 ‘일곱 인’을 통해, 악이 횡횡한 세상,

성도가 핍박 받고, 순교 당하는 세상을 설명하지만,

 

*이어지는 계7장에서 즉시로 <네 천사가 든든히 서 있는 모습>을 설명한다.

그들은 세상에 악이 제 마음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역할을 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이마에 도장(보호, 고후1:21~22)을 다 찍기 까지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말라고하셨다. 계7:1~3


*<모든 천사, 장로, 하나님이 든든히 존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7:11


*그리고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서 있다. 계7:9

이렇게 7장에서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장과 절의 구분은, 나중에 후대에 이루어진 것이고,

사도 요한은 장과 절의 구분 없이 기록했다. 원래는 6장과 7장의 엄격한 구분이 없었다) 


사도요한은, 비참하고, 부정적인 현실인 6장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든든히 서 있다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바알과 아세라에 무릎 꿇지 아니한 7천명이 생각난다. 왕상19:18

'나만 남았나이다'며 비관적인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아니다, 7천명이 남아있다고 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보는 눈

사람들은, 현실을 살기 때문에, 항상 현실 세계만 보는 눈을 가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본질적으로 영적 세계이므로, 육신의 눈으로 잘 안 보인다.


믿음의 사람은, 현실의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계7:1, 9, 11절 외에도, 여전히 세상은 하나님이 든든히 다스리시는 세상이다.

그리고 최후 승리가 보장되어 있다. 계시록의 후반을 보시라! 

세상 역사의 전체 그림을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인을 떼시는 이는 ‘어린양’

여러분, 세상에 재앙을 가져오는 일곱 인, 

그 인을 떼시는 이는 마귀, 사탄이 아니라, 어린양 예수님이다.

즉, 세상은 악이 횡횡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이 “인을 떼신다!”

악과 재난까지라도, 그 허용과 허락까지 주님이 다스리시고 섭리하신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의 죄악에 대한 책임도 일부 포함되어 있지만 말이다.)

 

상징적인 네 마리의 말을 불러내는 이도 '천사'이다.

천사가 "오라!"고 명령하니까, 재앙을 가져오는 말들이 각기 달려 나왔다.

재앙을 의미하는 '말'들도, 모두 주님의 섭리 안에서 활동한다는 뜻이다. 


▲세상의 악의 존재는 기정사실

계시록에서 사도요한은

‘왜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가?’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악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듯이’ 하나의 현실로, 기정사실로 본다.

그런 원천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두셨는가? 등)


대신에 사도 요한은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요일4:4 면서,

악을 이기고 나갈 것을 주문하신다.


◑적용 : 세상을 부정적으로만 보면 신경쇠약 걸린다.


내(유진 피터슨 박사)가 성경 위 부분을 토대로 성경공부를 인도할 때였다.

그 때 참석했던 한 분이, 몇 해 전에 자기가 신경쇠약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기 삶을 살펴보니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악과 죄책감과 불행에 완전히 압도되어 살았다.


(자기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본 것이다. 세상적 눈으로 자기 현실을 본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다스리고 계심을 보지 못했다.)


그는 상담가를 통해,

자기 인생의 긍정적인 부분들을 한 가지씩 발견해 나가기 시작했다.

‘마음을 흐뭇하게 했던 인간관계, 감동적이었던 음악, 심장을 멈추게 했던 경치’ 등

또한 자기 몸이 여전히 쌩쌩하고 건강하다는 사실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오직 자기 인생의 어두운 부분만 부각해서 묵상하고 있다가

신경쇠약에 걸렸던 것이고,

자기 인생의 밝은 부분을 하나씩 인식하고 발견해 가면서, 거기서 놓임을 받았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 7~8장을 통해 가르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세상은 악의 세력(로마 제국)이 횡횡하고 득세하는 것 같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주눅 들지 말고, 신경쇠약 걸리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그리스도가 중보하시며, 천사들이 그 명령을 수행하며,

십사만 사천과 셀 수 없는 성도들의 큰 무리가 있으며, 하나님 나라는 승리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오늘도 완성을 향하여 순항중이다.

 

[주제별 분류] 계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