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인정받은 경건 행10:1~4
경건은 단순히 각종 종교행사나 활동에 부지런히 참석하는 것 이상의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사는 삶 자체라는 주제의 설교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종교행사에 부지런히 참석하는 것이 '경건'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경건'이 입증되는 곳은, 예배당 속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 속'입니다.
◑당시에 세간에서 경건하다는 사람들
경건이란, 온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김을 뜻한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경건한 자들’로 인정받던 부류였다.
그들 자신 스스로도, 자신들의 경건함에 대해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경건하다고 인정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다.
도리어 그들의 경건이 외식이라고 심하게 질타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23:27~28
제사장들이 휘황찬란하고 거룩한 예복을 입고 성전에서 제사를 집례할 때는
정말 장엄하고 엄숙하고 거룩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단 한마디의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경건은 완벽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도 자기들의 경건에 걸맞는 복장을 하고 다녔다. 마23:5
그리고 시장에서 문안 받기를 좋아하고, 어디를 가든지 상석에 앉기를 원했고,
남들 눈에 띄는 장소에서 길게 기도하곤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들을 경건하다고 평가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자기의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강도의 굴혈’이라고 혹평하셨다.
◑주님이 인정하신 경건
반면에 예수님이 경건하다고 인정하신 고넬료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행10:2절에 ‘경건하다’고 성경에 기록한 것은, 예수님의 인정이라고 본다)
그의 겉으로 드러난 겉모습만 보고는, 로마 군대 백부장의 이미지로는
‘경건하다’는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정말 어렵다.
점령군이었던 로마군인은 아무리 잘 해도,
‘악당’으로 평가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에 그가 ‘경건하다’고 성경에 인정한 것은...
정말 파격적인 주님의 인정이었다.
그가 경건했던 이유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기 때문이었다. 행10:2
그렇다. 야고보도 경건에 대해 똑같이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
▲상반된 판정
성경은 이렇게 <경건에 대해> 전혀 상반된 판정을 내리고 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만, 주님께 인정 못 받는 경건이 있고,
사람에게 인정을 못 받아도, 주님께 인정받는 경건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에게 인정받는 경건은 별로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것은 종종 정확한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건한 신앙은
▲1. 주님의 임재(현존), 주님과 동행하는 신앙
경건하다는 것은, 늘 주님과 동행하고, 늘 주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감을 뜻한다.
평소의 삶과 생활에서, 주님을 전심으로 섬기는 삶을 뜻한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경건’을 쉽게 잃어버리는 이유는,
또한 예루살렘 종교지도자들이 ‘경건’을 쉽게 잃어버린 이유는,
성전에 가서 제사 드리고, 각종 종교 행사에 참석하고..,
그런 외적 종교적 행위들을 ‘경건’으로 여긴데 있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참석하는 각종 종교적 모임들이
우리를 스스로 경건하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종교적 모임에 참석해서 더욱 경건해지면 다행이지만,
그러고도 얼마든지 경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교적 행사나 활동에 열심히 쫓아다닌 것만으로,
스스로 꽤 경건하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점이다.
▲2.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3:1~5
위 성경은, 말세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외적 행동과 모양은 경건하게 보이지만,
신앙의 본질인 내적 신앙과, 하나님과의 임재와 동행은... 부인한다는 것이다.
▲3. 경건에는 훈련이 필요함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7, 딤후2:16
자기 스스로 개인기도, 성경읽기, 묵상, 악을 피함, 구제와 선행, 하나님과 동행 등
이런 경건한 삶을 연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신앙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외식으로 빠지게 된다.
자기 신앙 연륜에 걸맞는 외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빠지면서
자기도 모르게 외식적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4. 경건한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10:4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베드로를 자기 집에 모셔오면서,
복음이 유대인의 장벽을 넘어, 이방인에게로 퍼져나가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된다.
▲5. 경건한 고넬료가, 자기 집안 사람을 경건하게 변화시켰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행10:7
위 성경은, 고넬료 뿐만 아니라, 고넬료의 종 역시 ‘경건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고넬료의 경건이,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파급효과를 미쳐서
그의 집안 하인들과 그의 주변사람들 경건한 사람들이 되었다.
반면에 자타가 공공하던 경건한 사람인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자기처럼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다. 마23:15
<근묵자흑, 근주자적>인 것이다.
▲마치는 말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실제로 경건치 못하면서도, 스스로 경건하다고 착각했던 것은
그들이 늘 성전제사 등 종교행위를 거의 매일같이 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세간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는 것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렇게 종교적 행위로 봐서는 경건하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자기 삶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현존)를 체험하며, 실제적인 경건의 삶을 살았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엇갈린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많은 종교적 행위, 종교적 행사에 분주하게 참여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경건하다고 위로 받을 수 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를 수 있다.
우리의 외적 종교 행사는, 사실 우리의 내적/본질적 신앙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
외적 종교적 행사가 필요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예수님이 한 번도 예루살렘 성전 제사를 부정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런 종교 행사에 참석하면서 더 경건한 사람으로 성장하면... 더욱 좋겠다.
그러나 비록 예루살렘 성전과는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더라도
고넬료와 같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경건한 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한국 기독교의 풀뿌리, 근간, 저력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대개의 경우, 이런 <이면 역사>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관련글 : 하나님 나라의 이면역사를 볼 줄 알아야 <08.05.25. 인터넷 설교, 편집
'분류 없음 >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44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0) | 2008.06.26 |
---|---|
모세가 가졌던 목자의 심정 / 론 솔로몬 (0) | 2008.06.25 |
1341 내가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들으리니 / 스펄전 (0) | 2008.06.24 |
1340 믿는 사람들끼리만 교제하면 안 돼! (0) | 2008.06.24 |
1339 하박국서의 ‘믿음’ 살펴보기 (0) | 2008.0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