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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5 영혼이 살아야 '산다!'

LNCK 2008. 7. 2. 16:19
 

◈영혼이 살아야 ‘산다!’                      눅8:52~56



참된 신앙은, 쓰러진 그 현장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다.

인생의 좌절과 쓰라린 고통으로 쓰러진 그 자리에서, 나를 다시 자리를 딛고 일어나게 한다.

예수님이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면, 죽었던 내 영혼이 벌떡 일어난다. 야이로의 딸처럼!



▲영이 되돌아와야 일어난다.

야이로의 딸이 일어날 때, 먼저 그 영혼이 그에게 되돌아왔다.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눅8:55


나도 마찬가지다. 내 영혼만 되살아나면... 어떤 절망 가운데서도 ‘일어선다.’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자기 영혼만 살아 있으면, 육신의 환경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회복 불가능해 보여도,

다시 재기하고, 새출발 할 수 있는 용기, 힘, 능력, 소망을 갖게 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란,

내 영혼이 늘 싱싱하게 살아있도록 하기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다.

세속에 의해 늘 낙심하기 쉬운 내 영혼을

벌떡 벌떡 일어나게 하려고, 오늘도 우리는 주님을 초청하는 것이다. 야이로처럼!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나오는 실제 인물 ‘쟝 도미니크 보비’는

온 몸이 마비되었고, 오직 눈동자 하나만 깜박거리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전신마비 장애인도... 자기 영혼이 살아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육신의 건강, 물질의 풍부함... (이런 것들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내 '영혼'이 일어나야 한다. 싱싱하게 살아 있어야 한다.

내 영혼만 살아나면, 내 인생은 반드시 제 발을 딛고 꿋꿋이 일어서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영혼 말고, 다른 것들이 회복되면... 일어설 것이라고 믿지만,

돈이 많아지고, 권세를 얻어야 회복된다고 믿지만,

아니다. 여러분, <내 영혼>이 살아야 진짜 <내 인생>이 일어난다.


▶몇 해 전에, 어떤 집사님 부부는, 재판을 앞두고 열심히 새벽기도를 드렸다.

만약 패소하면, 남편 연금이 절반이나 삭감되는 조치가 취해진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재판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놀라운 것은, 집사님 부부는 패소한 후에, 3백만 원 ‘감사헌금’을 드렸다.

나는 거기서 <그분들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저 집사님 부부의 영혼이 살아있으므로, 다시 일어서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느꼈다.



◑내 영혼이 되살아나게 하려면 어떻게?

- 말씀의 능력을 비웃지 말아야 한다!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눅8:5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해 절대 비웃지 말아야 한다.

조소, 조롱,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의 야이로 집에 모인 사람들은 왜 비웃었는가?  ‘아는 고로’라고 했다.

그렇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이, 배웠다는 사람들이... 주님의 역사를 비웃는다.

내가 좀 안다는 사람들이... 성경말씀과 하나님을 무시한다.


자기가 좀 괜찮은 직장에 다닌다는 사람,

자기가 좀 알아주는 학교를 나왔다는 사람,

자기가 좀 오래 믿어서 신앙적 지식과 경험이 많다는 사람...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쉽게 잘 비웃는다.


그러나 참 신앙인은, 자기 ‘지식/경험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하나님의 간섭, 손길, 섭리, 초자연적 역사를 기꺼이 인정한다.

그런 사람에게, 야이로의 딸처럼 <영혼이 되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다.


▶미국에, 버섯을 따 먹으면서 연구하는 한 버섯 전문가가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버섯 등을 연구하는 ‘균류학회’ 회장까지 했다.

버섯은 사실 죽은 식물에 기생해서 자라나는 ‘균’이다. 버섯은 ‘균류식물’이다.

그래서 버섯재배농가에 가 보면, 통나무를 잘라서 죽은 나무에다 버섯을 키운다.


그 버섯전문가가 버섯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버섯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것을 식별하는 자신감이 흐려진다.

왜냐하면 버섯은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버섯전문가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버섯은 언제나 인간의 지식을 배반하고, 비웃는다.”


어떤 버섯은 식용이라서 따 먹었는데 괜찮다가,

다음번에는 똑같은 버섯 따 먹고, 독이 자기 몸에 퍼져서 무척 고생한다.

그래서 버섯을 알면 알수록, 그것이 식용인지/아닌지... 불안해진다고 한다.


또 어떤 버섯은, 갑에게는 식용이 되지만, 을에게는 독버섯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버섯을 연구하면 할수록, 도저히 그 실체를 알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여기서 ‘버섯’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분야도 사실 마찬가지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배우고, 알고, 지식과 경험이 있어도,

사실 <알면 알수록 인간은 겸손하게 된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인간이다.


그 알량한 자기 지식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그야말로 진짜 무식한 자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신앙인은 절대 자기 지식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번에 중국 쓰촨성 지진 때도 보면,

거기에 직경이 1백 미터, 수심 10미터 되는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지진 발생 15일 전에, 호수 물이 다 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이 맨 바닥에서 물고기 잡느라고 난리 법석이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1미터나 되는 큰물고기를 팔에 안고, 좋다고 사진도 찍었다.

곧 지진 날 것도 모르고, 그렇게 다들 흥겨워했던 것이다.

지각 변동으로 균열이 생겨서, 그 틈사이로 저수지 물이 다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런데도 갑자기 물고기 잡게 되었다고, 좋아서 들뜨는 것이 ‘인간의 지식’이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보름 후에 지진이 났다고 한다.


 

▲마치는 말

주님께서 ‘죽은 게 아니라 잔다’ 하시면, 우리는 그런 줄 믿어야 한다.

저희가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하면 안 된다.  눅8:53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내 지식으로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안 믿는 사람들은 종종 “웃기는 소리 하지 마!” 하며 비웃는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늘 “웃기는 소리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

왜?

인간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가 훨씬 더 크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을 너무 믿는 사람은 ‘울고 통곡한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눅8:5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말씀을 믿으므로... 생명을 갖게 되고,

그래서 이런 사람은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는 자리'에서 다시 '벌떡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야이로의 딸처럼 말이다.


 

◑인간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을 비교할 수 있는 또 다른 예


▶자동차가 시속 1백 키로 이상으로 달리면, 엔진이 과열되어 타 버린다.

그래서 엔진에는 냉각장치가 있다. 

과열된 엔진을 물로 식히고, 그래서 뜨거워진 물은 라지에타와 팬으로 식혀서

미지근해 진 물을 다시 엔진에 주입한다.


그런데 타조는 1백 키로 속도로 달리는데도, 익어서 통닭이 되지 않는다.

수냉식, 공랭식 냉각장치도 없는데도... 신기하게 타지 않는다.


▶신간센 열차는 시속 490 키로 속도를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4백 키로 정도로 달리는 이유는, 다름 아닌 소음 때문이다.

더 빨리 달리면, 너무 시끄러워서 승객들이 불편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엉이는, 밤에 먹이를 낚아채려 급속도로 날아서 내려갈 때,

전혀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밤에는 고요해서, 조금만 부스럭 거려도, 너무 잘 들리는데도 말이다.

소리 나면 먹이가 도망가니까, 부엉이는 소리 없이도 쏜살같이 날아온다.


그래서 신간센 열차 만드는 사람들이, 부엉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부엉이의 머리 앞쪽에 날카로운 깃털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급강하 할 때 생기는, 공기의 소음을 줄여준다고 한다.

그 다음에 신간센 열차는, 비슷한 장치를 개발해서

소음을 확연히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기술이 매우 뛰어나도, 부엉이가 가진 신비를 다 따라잡을 수 없고,

이런 예는 셀 수 없이 많이 들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지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위의 예 출처, 이어령「젊음의 탄생」  <08.06.08. 인터넷 설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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