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믿음의 용량 늘이기 눅9:23~24 인터넷설교녹취
▲당신의 용량은?
인생을 퓨즈에 비유해서 말할 때,
어떤 사람은 용량이 넉넉해, 웬만한 고난과 도전이 닥쳐도 퓨즈가 끊어지지 않는데,
어떤 사람은 용량이 실퓨즈라서, 약간의 고난과 도전이 닥쳐도..금방 끊어져 버린다.
사업이 조금 어려우면.. 술 먹고 자포자기하고,
애인이 변심하면.. 강물에 뛰어내리려 하고,
성적이 조금 떨어져도..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의 인격과 믿음의 <용량이 너무 작은> 것이다.
모두가 어렵다는 지금, 나는 어떻게 하면 용량이 커서
온갖 어려움과 저항에도 능히 버텨낼 수 있는 ‘통퓨즈’가 될 수 있을까?
◑1. 십자가 지는 사람이.. 용량이 큰 사람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견딜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를
더 이상 지고 가다가는 내 인생 끝장날 것 같아서,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싶을 때,
그래도 주님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며 꿋꿋이 지고 나가는 사람은...
점점 용량이 큰 ‘통퓨즈’가 된다.
내팽개치고 싶은 가정과 직장의 엄청난 무게의 십자가를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과 고통의 십자가를,
오기가 아니라, 믿음으로 계속 지고 나아갈 때,
‘용량이 큰 사람’이 된다.
◑일본 최고 문학가의 탄생 비결
일본의 최고 문학가 소설가를 ‘오에 겐자부로’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이의가 없다.
그의 작품이 얼마나 탁월한지, 평론가들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다른 작가 지망생들이 자기 붓을 꺾어야 할 정도였다.”
그는 20대 중반에 벌써 일본 문학계의 최고상인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했고,
일본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걸출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1963년, 그에게 아들 한 명이 태어났다.
그는 너무 기쁨에 겨워 그 아들을 받아 들었는데,
보니까 그 신생아의 뇌의 일부가 두개골을 뚫고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즉각적으로 생명을 잃게 되고,
설령 수술을 한다 해도, 휴유증으로 언어 및 발달 장애, 자폐증
거기에다 심각한 간질현상이 있을 것이라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출생신고서와 사망신고서를 동시에 써야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양손에 그 두 신고서를 모두 다 쥐고 갈등하고 있었다.
결국 아기는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에 그 아기는 의사의 예견대로
정신 지체, 발달 장애, 자폐증, 간질 현상이 모두 심각하게 뒤따랐다.
아이큐는 겨우 65였고, 부모와 대화도 거의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장애아를 정성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이 문학가 아버지는, 장애아들의 이름을 ‘히카리’라고 지었다.
히카리는 ‘빛’이란 뜻이다.
그 아들에게 ‘내가 빛이 되어줘야지!’ 라는 소원으로
아빠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인생의 이 엄청난 숙제를 끝까지 잘 해내고 싶다.’
그렇게 숙제하는 마음으로, 그는 그 엄청난 장애 아이 양육을 성실히 해나갔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5년이 지나도,
아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런 자극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 장애아를 매일 매일 기르는 일이 얼마나 큰 고통의 연속이었겠는가!
▶그런데 히카리가 6살이 되던 해였다.
히카리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줬는데, 아이가 신기하게도 반응을 일으켰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었다.
그 뒤로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 ‘소리’만 계속 들려주었다.
일본의 토종 새소리를 모두 녹음해서, 계속 그의 귀에 들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이를 데리고 산에 산책을 나갔다.
숲 속에서 새 소리가 나자 아이는 더듬거리는 말로
“아빠, 저 새는 OO새!”
그런 진전이 확인된 후에, 아빠는 아이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로 결정했다.
그 때로부터 음악만 집중적으로 들려주었다.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히카리’가 청년이 되어가면서
음악의 한 소절만 들어도, 그 곡이 무슨 곡인지 금방 알아 맞출 만큼 되었다.
그 장애아에게서 음악의 탁월한 재능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점점 자라 성인이 된 ‘오에姓 히카리’는 일본의 탁월한 작곡가가 되었다.
그가 작곡한 곡만 모은 음반은,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가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내 아이를 ‘히카리’를 잘 기르겠다고,
어떤 고통과 아픔이 오더라도 참고 키우겠다고 결정을 한 후에
내게 한 가지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내가 장애를 가진 우리 <아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인생은 ‘감당해야할 숙제가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은 ‘축제’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아들 히카리가 없었더라면,
제 노벨문학상도 당연히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이 아이의 빛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오히려 이 아이가 내 인생의 구석구석을 비춰주는
빛이 되어주었습니다.”
그가 엄청난 장애인 아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남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깊이를 볼 수 있었고,
남들이 모두지 깨닫지 못하는 생의 신비한 섭리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장애 자녀 때문에, 그는 노벨문학상 까지 받게 되었다고 했다.
▶여러분, 여러분 각자에게도, ‘오에 겐자부로’처럼,
평생을 따라다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억지로라도 지고가기 시작하면
내 인격의 용량, 내 믿음의 용량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다.
내 인생의 ‘숙제’가 ‘축제’로 바뀌고, ‘어둠’이 ‘빛’으로 점점 변화될 것이다.
그러면서 작은 고난에도 끊어지지 않는,
‘실퓨즈’가 아닌, ‘통퓨즈’가 되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지는 십자가’였지만,
차츰 그것은 ‘자원해서 지는 십자가, 감사의 십자가’로 바뀌게 될 것이다.
▶여러분, 지금 벗어던져 버리고 싶은 십자가가 있으신가?
이것 지고 가다가는, 내 인생 끝장일 것 같아 보이는, 십자가가 있으신가?
그 십자가를 순종해서 지고 나갈 때,
‘소형 용량의 인생’이 비로소 ‘대형 용량의 인생’으로 바뀌는 것이다.
◑2. <십가자를 진다>는 무슨 뜻인가
▲1.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눅9:23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아가 죽는 것이다.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펄펄 살아있다는 것이다.
내 자아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나를 슬쩍 건드리기만 하면, 참을 수가 없고,
내 자존심을 누가 건드렸다 하면, 절대 못 참는다.
이렇게 자기가 쌩쌩하게 살아있는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도 괜찮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 자아, 내 자존심’이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2. 목숨을 거는 일이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9:24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지면, 목숨을 걸고 직업에 매달린다.
이런 사람이 무슨 사역을 하면, 목숨을 걸고 그 사역에 집중한다.
예수 믿는 사람, 십자가 지는 사람은... 평소에 죽음을 각오하며 산다.
겨우 자기 목숨 부지하려고 아등바등 하지 않는다.
자기 목숨 지탱하려고 돈 벌기 위해... 핏대 올리지 않는다.
아예 죽음을 각오하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
여러분,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누가 당하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달려드는데, 누가 그를 제어하랴!
내가 죽음을 각오하면, 뛰어넘지 못할 장애물이 없다.
목숨을 걸고 덤벼드는 사람을 넘어뜨릴 사람은... 세상에 없다.
목숨은 붙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 목숨 내놓고 살아라, 그러면 그 목숨 건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을 담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덤비는 사람이야말로, 그 용량이 엄청 큰 사람이다.
▲누구를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인가?
우리는 자꾸 <자기를 위해> 목숨 걸고 십자가 지려고 하는데,
나 좀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데,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나 좀 더 유명해지려 하고,
나 좀 돈 더 벌어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주님 말씀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구원하리라!’ 하신다.
당신이 오늘 목숨 거시는 일,
혹시 자기를 위해서 거시는 것은 아닌가?
<08.07.13. 인터넷 설교 녹취, 축약 [주제별 분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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