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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 헛된 희망, 참된 희망

LNCK 2008. 8. 12. 12:32
 

◈헛된 희망, 참된 희망                                              독후감



사람들은 욕망, 희망이 없으면 못 삽니다.

그게 없으면 정신병자, 식물인간입니다.


기독교는 희망을 줍니다.

그러나 <헛된 희망>을 주면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헛된 희망의 예


이 세상에 많은 ‘헛된 희망’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죽을 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가져가지 못합니다.

인생의 모든 영화는 시드는 풀과 같고, 떨어지는 꽃잎 같다고 했는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사력을 다합니다... ‘헛된 희망’인데 말입니다.


인간은 뭔가 ‘목표’를 걸고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허무주의자가 되고, 심하면 우울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헛된 희망, 헛된 목표(좋은 것이긴 하나, 최고의 것은 아님)들이 무엇인지

한 번 나열해 봅시다.


▲1. 성취

자기가 경쟁을 뚫고 성취하고,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비참한 패배자로 만드는 것은

(세상적) 성공이되, 진정한 성공은 아니며, 성경이 가르치는 성공도 아닙니다.


또한 성공, 성취했다하나... 풀의 시듦과 같습니다.

2008년 북경 올림픽 때, 한국의 최민호 선수가 유도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장면을 해설하던 이원희 해설자(04년 유도금메달)에게 아나운서가 물었습니다.

“지금 최민호 선수가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이원희 씨, 4년 전 아테네에서 금메달을 자기 목에 걸 때 느낌이 어땠나요?”

 

“허무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나오자, 아나운서는 서둘러 화제를 다른 것에 돌렸습니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누군가 내게, ‘정상에 올라가봐야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2. 인간관계

인생의 진정한 만족은,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을 때 나온다고 합니다.

배우자에게서 자기 인생의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은... 평생 불행합니다.

자녀에게서 그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평생 만족 못 합니다.

친구에게서 그것을 얻으려는 사람은... 평생 친구를 바꿔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채워줄 수 있는 어떤 빈 공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영spirit이 있기 때문입니다.


▲3. 잘못된 영적 추구

그래서 참된 하나님을 버리고, 불교, 뉴에이지, 명상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유사, 짝퉁입니다. 비슷하게 보이나... 아닙니다.


▲4. 예술

좀 더 고상한 사람은, 자기 인생의 사는 목적을 ‘예술’에다 쏟습니다.

예술적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면서... 인생의 공허함을 메꾸어 보려 합니다.

고상해질지는 모르나... 참 만족은 거기에 없습니다.


▲5. 이상주의, 세계평화

1차대전이 일어날 때, 아마 유럽의 정부들이 그렇게 방송했나 봅니다.

사람들은 ‘1차대전은 세상의 모든 전쟁을 종식시켜 줄 전쟁’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1차대전만 끝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세계평화가 도래할 줄 알았는데,

웬걸 더 무서운 2차대전이 왔습니다.


1960년대는, 인류가 사람을 달에 보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무슨 행복한 신세계가 도래할 것처럼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빈곤, 질병, 전쟁은 여전히 인류의 커다란 문제로 남아있습니다.


1960년대에 서구의 많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되었던 것도,

그것이 가진 ‘이상주의’ 매력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어보자는 이상이었는데, 도리어 가난과 전쟁만 일어났습니다.


1989년 동서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연이어 소련이 해체되었을 때

드디어 냉전이 종식되고, 모두가 일극체제 ‘팍스 아메리카나’를 찬미했습니다.

보십시오, 영원할 것 같던 ‘팍스 아메리카나’가 고작 약 10년만 지속되었습니다. 

911사태가 터지면서, 지금 세계는 과거 냉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6. 오늘날의 헛된 희망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세상을 더 평화롭게 한다고 했는데,

그 결과를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만,

세상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을 낳았습니다.


*컴퓨터 IT세상이 약속하는 미래도, 편리하긴 하지만,

이제 모든 사람들은 ‘빅 브라더’의 감시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BT(바이오 테크날러지)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100세 시대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체세포 복제 기술이 인간 건강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기술발달이 너무 미약해서, 그 허구 역시

아직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몇 가지 다른 반응

사람은 그 무엇이든지 끊임없이 갈망하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갈망의 클수록, 실망도 큽니다.


①망상주의자

인간의 끊임없는 갈망과 욕구들을, 사실 다 채우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상상, 공상으로만 즐기는 것입니다.

영화나 소설에 깊이 빠져서 대리만족으로 채웁니다.


②허무주의자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일찍 포기해 버립니다.


③현실주의자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끝까지 도전합니다. 죽을 때까지 도전합니다.


④신앙주의자

인간의 갈망, 욕구, 희망... 이것은 현실입니다.

인간인 이상 그것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허를, 그 갈망을... 하나님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약속의 땅, 천국’을 바라보며... 그 희망을 지켜 나갑니다.



◑참된 희망 을 전하려는 노력


▲성경과 천국 영생의 복음은 <참된 희망>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려던 것은 <참된 희망>입니다.

바울 사도가 주시려던 것도 <참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천국은 ‘따 놓은 당상’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자꾸 <헛된 희망>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천국을 ‘따 놓은 당상’ 정도로 쉽게 여기다가,

천국에 못 들어가는 교인들이 많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넓은 길로 인도해서.. 결국 천국에 못 들어가게 하려는,

마귀의 속임수에 빨려들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참 만족입니다.

값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 비유,

값진 진주를 만난 상인이, 자기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산 비유에서 보듯

예수 그리스도 자체에게서 참 만족을 누리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 분을 알고 발견하는 지식은 너무 크고 광대해서... 평생 이뤄야 할 숙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축복)으로

<헛된 욕망>을 채우겠다는 생각은... 참된 기독교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관련글 : 내 기쁨의 우선순위

 

▲관념인가, 인격인가?

어떤 <관념>을 아는 것과, <인격>을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주의, 사상, 관념>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식이 아니라 <교제>이며, <동행>입니다.


‘이신득의, 요3:16절’이 <관념>이 되면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관념> 차원에서 그칩니다.


▲C. S.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

판타지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던 이 소설을 쓴 루이스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천국을 대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희망이 없으면 죽는데, 희망 없이는 못 사는데,

이 세상이 참된 희망이 아니며, 천국에 참된 희망을 걸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천로역정」도 마찬가지 주제의 소설입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우리 집이 아니며, 우리 호적은 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소설에 유니콘이 이렇게 말합니다.

“마침내 저는 집에 돌아왔습니다. 여기는 저의 진정한 나라입니다.

저는 여기에 속합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까지 저 자신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제가 일생 동안 찾아왔던 나라가 바로 이 땅입니다.”


▲앤소니 드 멜로의 글

어떤 수도사가 여행 중에, 우연히 빛나는 보석을 하나 발견해서는 지니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여행자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수도사가 음식을 나누기 위해 자기 등짐을 풀자, 거기에 빛나는 보석이 보였습니다.


그 동행한 여행자는, 보석을 보고는,

그 보석을 자기에게 달라고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수도사는 기꺼이 선뜻 그 보석을 내 주었습니다.

서로 헤어져 각자 자기 길을 갔습니다.


그 여행자는 뛸듯이 기뻤습니다.

자기 평생 부와 안락을 보장해 줄 값비싼 보석을 얻은 행운에 기뻐 뛰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그는 수소문 끝에, 보석을 들고 이 수도사를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는 수도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에게

이 보석보다 더 귀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길래,

이런 것을 나에게 선뜻 내어줄 수 있었습니까?

나는 당신으로부터, 이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얻고자 다시 찾아왔습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목마른 내 영혼」The Unknown God 읽고서, 편집자.



▲후기

①요즘 노환으로 임종과 내세를 가까이 두신 분들께

설교를 들려 드리려고 하면, 적절한 주제의 설교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대부분이 너무 <현실적인> 주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금 다 죽어 가는데,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현실은, 자기가 당장 죽어가면서도, 자기 자식들 현세에서 출세할 것 걱정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식의 믿음 걱정' 이런 것 안 합니다. 평생 그렇게 현세적으로 살아왔으니까요!

 

대부분 사람들은 내세적인 메시지를 듣기 꺼려합니다. 두려워서 생각하기 조차 기피합니다.

그렇지만 누가 ‘호스피스 라디오 방송국’을 따로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한 통계 조사는 아니지만,

제 주변에서 천주교 교인들이 소천할 때, 아주 쉽고, 편안하게 가시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아마 평생 천국 영생에 관한 메시지를 들으면서, 평소에 자기 마음과 영혼을 준비해 왔으니까

쉽게 가시는 게 아닌가... 추측할 따름입니다.


②위 글은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희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 미래 희망을 무시하면 안 되고,

그 둘 중 우선순위는.. 항상 ‘현실’보다는, ‘미래’에 있다는 것입니다. <편집자


*관련 글 : 충만한 존재로 살기                                   [주제별 분류]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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