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1436 웃사의 비극

LNCK 2008. 8. 18. 23:44

◈웃사의 비극             삼하6:1-15                  -인터넷설교 스크랩-



▲웃사가 무슨 잘못?

웃사가 무슨 잘못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누군들 하나님의 궤가 떨어져 부서지거나

그 속에 든 하나님의 성물들이 쏟아질 것 같으면

궤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뻗어 붙잡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 일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해야 할 만큼 크게 잘못한 일입니까?


그러나 본문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셨다

했습니다. 웃사가 분명히 잘못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웃사의 행동에 있어서 잘못된 점이 무엇입니까?


첫째, 궤를 옮기는 일은 레위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들이 할 일이었습니다.  민4:4

(웃사는 아효와 더불어 궤가 보관되어 있던 아미나답 집의 아들. 삼하6:2)

둘째, 하나님의 궤를 옮길 때에는 채를 꿰고 메어 옮기라는 것입니다. 민4:6

셋째, 절대로 만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민4:15



◑웃사의 비극의 교훈


▲1. 많은 군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삼하6:1을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무리 3만 명을 뽑아 모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는 데에 군사 3만 명이 필요가 없었습니다.

적당한 수의 고핫 자손들이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군사를 3만 명이나 동원한 것입니까?

좋게 말하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을

위엄을 갖춰서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쁘게 보면, 나라 안팎으로 <다윗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2. 새 수레가 필요 없었습니다.

율법은 법궤를 옮길 때에는, 채를 꿰고 메어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실어 옮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좋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궤이기 때문에 잘 모시려고 한 것이고

그래서 수레도 새것으로 준비하여 정성을 다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숫자의 힘이나, 멋진 수레로

다윗이 자기의 강력함을 <자랑, 과시>하고 싶었던 마음은, 혹시 없었을까요?

나아가, 그런 세속적 과시욕 때문에, 율법의 규례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3. 반대자나 만류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 자신은 물론이고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을 이렇게 계획하고 진행시키는 데에

반대하거나 만류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민수기 4장을 거론하며, 법궤를 옮기는 방식에 대해 아무도 진언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추측컨대,

군대가 3만 명이나 동원되는데, 얼마나 장관이었겠습니까?

또한 아마도 당시 최고급의 비싸고 근사한 수레에 법궤를 실어서 옮기는데,

누가 뭐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외형적 화려함과 숫자의 중다함에 압도되어

누가 말을 꺼내고 싶어도, 찍 소리도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누가 말을 꺼내었더라면,

3만 명의 군대와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소위 ‘맞아 죽을 각오’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면... 재앙이 일어납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기는 목적은, 겉으로는 선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이면적으로

(추측이지만) 자기 믿음을, 법궤 이전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마음이

만약 추호라도 있었더라면... 하나님 앞에 가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절대 싫어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주의 이름으로 모이는 거룩한 대회나 행사에,

은근히 자기 이름을 드러내려는 사람에게는, 똑같은 재앙이 일어날 것입니다.) 

 

과거에도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전세가 기울자, 전세를 돌이켜 볼 셈으로

하나님의 궤를 전장에 가져왔다가

이스라엘은 오히려 대패하고 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으면서 법궤를 전리품으로 차지하고 자랑했던 블레셋은

그 궤 때문에 큰 재앙을 당해야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를 향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상징물은 이 땅에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수가 아무리 많고 기독교인수가 아무리 많아져도

잘못 믿으면 사회와 나라에 복이 되지 않습니다.

세상적 목적으로 하나님과 교회와 믿음을 이용하려는 생각은

화를 자초할 뿐입니다.

 

그러나 웃사에게는 무시무시한 살해도구였던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가서는, 복을 주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가 큰 복이 됩니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삼하6:11


 

다윗은 뒤늦게 자기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잘못을 고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에는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따랐습니다. 역대상 15:2-3을 봅니다:


다윗이 이르되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 수 없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택하사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영원히 그를 섬기게 하셨음이라 하고

다윗이 이스라엘 온 무리를 예루살렘으로 모으고

여호와의 궤를 그 마련한 곳으로 메어 올리고자 했다고 합니다. 


또 역대상15:12-15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 하여

몸을 성결하게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자손이

채에 하나님의 궤를 꿰어 어깨에 메니라

 

 

▲마치는 말

①교회가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을 무조건 많이 동원한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기기 위해 군사 삼만을 동원했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습니다.


②교회가 무슨 일을 할 때 예산을 많이 들인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법궤를 옮길 새 수레를 만들기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③교회가 무슨 일을 할 때 사람들이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자기 생각대로 법궤를 옮기는 일을 실행할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인간적인 사고, 판단, 계산, 방법을 좇으면

웃사의 비극은 오늘 우리에게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006년 설교, 인터넷에서 스크랩, 축약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라  (0) 2008.10.05
1500 축복의 물줄기가 터진 사람  (0) 2008.09.25
1388 마음을 넓히라  (0) 2008.07.21
고난 과 말씀 / 번연, 루터  (0) 2008.04.22
가톨릭 글 모음  (0) 2008.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