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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LNCK 2008. 8. 26. 13:47

www.youtube.com/watch?v=P_Vrz_t63Kg

◈성령 안에서 기도하기               엡6:18~20                인터넷설교 녹취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6:18

 

 

◑1. 긴 시간의 기도가 필요하다.            (◑1은 도입이고 ◑2 ~ ◑5 가 본론)

 

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길어진다.

적어도 최소 20~30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즉, 하루에 20~30분도 기도 못하는 사람은... ‘성령의 기도’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보다 더 길게 기도하고,

나아가 쉬지 말고 기도한다.

 

▲기도를 위한 기도

영적인 세계는 거대하고 울창한 숲과 같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울창한 밀림에 가이드 없이 들어가면 조난당한다.

우리는 성령의 가이드를 받으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님께, 자기 기도를 인도해 달라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시편 기자도 ‘기도를 위한 기도’를 드렸음을 볼 수 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19:14

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겠다.

 

▲우리의 영혼은, 처음부터 맑은 물이 안 흐른다.

①기도할 때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기도하는 사람이.. 우리 중에 있다.

‘안 되면 모두 다 안 되어야지, 저는 안 되는데, 왜 쟤는 되는 겁니까?’

 

②기도를 하는데, 다른 사람에 대한 저주를 집중적으로 퍼붓는 사람도 있다.

(그 저주가 합당치 않으면, 자기에게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위에서 거론한 ①, ②식의 기도도... 기도라고 할 수 있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성령으로 기도’가 쫙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즉 인간적으로 기도의 운을 떼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기도가 성령에 사로잡히면.., 영적인 기도로 변화된다.

 

우물을 파면, 처음에 흙탕물이 나오고 난 다음에, 맑은 물이 샘솟듯이

우리의 기도도, 처음에는 옛사람의 흙탕물이 먼저 올라온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계속 기도하면,

그제야 영혼 깊은 곳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온다.

 

그러므로 기도의 걸음마를 어떻게 해서든지 먼저 떼 놓으시기 바란다.

기도를 잘 하는 길은, 책을 읽어서도 크게 도움 안 되고,

무조건 기도를 시작하는 길이다. 하다보면 깊어지고, 하다보면 늘게 된다.

 

▲성령께서 기도를 교정해 주신다.

10여 년 전 이야기다.

어떤 집사님이, 아들의 수능시험을 위해 교회에 나와 기도했는데,

처음에는 “주여 부쳐 주시옵소서. 찹쌀떡처럼 찰싹 부쳐 주시옵소서!” 기도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둘러보니,

자기 주변에서 다른 엄마들도 수험생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보니까 불쌍하게 보였다.

“주님, 덤으로 제 곁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자식도 한꺼번에 다 부쳐 주시옵소서!”

 

그렇게 막 기도하다가, 시험 1주일 전 즈음이 되니까

“떨어져도 감사합니다.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라는 기도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자기중심적으로> 기도하다가,

조금 지나서 <이웃을 품게 되고>

좀 더 지나서 <모든 결과를 아버지께 맡기는> 기도로 성숙된 것이다.

 

이렇게 기도가 변화된 것은, 그 집사님의 실력이 아니다.

성령님께서, 기도하는 사람 옆에 딱 붙어서, 그의 기도를 교정해 주신 것이다.

 

▲갑자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말들이 튀어나온다.

기도하다 보면 갑자기

“주여, 십일조 성실히 드리겠습니다.”

“주여, 선교지에 가서 봉사하겠습니다!”

이런 의도하지 않았던 말들이 막 내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몇 시간 지나면 후회된다.

‘내가 그 때 무슨 정신으로 그런 기도를 드렸지?’

 

눈을 감고 ‘성령으로 기도’하다 보면

내 옛사람으로 도저히 할 수 없는 결심과 결단을 내리도록

성령이 나를 인도하신다.

 

 

◑2. ‘성령으로 기도’할 때, 나의 내면세계가 고쳐진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지만,

동시에 내 안에 내면세계(평소에 감춰졌던)를 들여다보게 된다.

 

우리가 겉으로는, 양복/양장 입고 모두 우아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면세계가 쓰레기장일수도 있다.

마음속에 온갖 탐욕, 시기, 질투, 혈기, 정욕 등이 처리되지 못하여

몇 년 간, 아니 몇 십 년간 방치되어 쌓여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화려한 쓰레기통(외면)을 가졌기 때문에,

남들도 그 내면을 못 보고, 자기 자신마저도 그 속을 못 보고 지낼 수 있다.

대신에 남들이 자기를 볼 때/자기가 자기를 볼 때도

‘그는/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이렇게 착각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기도에 몰입하면, ‘영 분별’이 생긴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내 안에 있는 추하고 추악한 내 자아’이다.

말씀에 어긋하고,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들이

내 속마음에 많이 담겨 있음을 인식하며... 깜짝 놀라게 된다.

 

우리는 속고 있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 가운데도

자기 내면의 문제를 적당히 가리고, 숨긴 채로

외적인 사역에만 미쳐 있다.

 

자기는 주님께 헌신적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예수를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것은 기초가 부실한데, 높이 올린 건물과 같다.

높이 올릴수록 더 위태롭다.

 

하지만, 성령으로 기도할 때, 내 영혼과 마음의 부실공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전도하고, 성가대 봉사하고, 신나게 교회 봉사할 때는... 거의 안 보인다.

교회가 막 부흥하면서 열심히 일에 빠져 있을 때... 더더욱 안 보인다.

그러나 ‘성령으로 깊이 기도할 때’... 비로소 보인다.

 

기도생활에 헌신된 사람은... 반드시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게 되어 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성령의 교정하심을 받아

뜨겁고 절절한 회개가 자기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너무 추해서 주님을 뵐 면목이 없을 때도 있다.

동시에 예수의 보배 피가 나를 눈보다 더 희게 씻어주는 감격을 누린다.

영적인 샤워를 하게 되고, 내 영혼에 독기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여러분 영혼에 독이 빠지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3. 기도의 변화산을 체험하기

 

주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가, 환하게 변화되는 체험을 하셨다.

더 이상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태양 빛보다 더 환하게 변화되셨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얼굴 표정이 변화된다.

<주님의 영광의 광채>가 자기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변화산 체험을 하는 것이다. 밝고 환한 표정을 갖게 된다.

젊으나 늙으나 영광스럽게 변화된다.

 

화장해서, 다이어트해서 미남, 미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기도하면, 그 얼굴이 모두 천사의 얼굴처럼 변화한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의 표정은, 무겁고 굳어있다.

그런데 기도 마치고 나가시는 분들의 표정은, 꼭 성형수술 한 것 같다.

시온의 영광이 그 얼굴에 빛나고 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고난이 많아도, 항상 얼굴에 영광이 깃들어 있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삶이 평탄해도, 얼굴이 보통 찡그려져 있다.

 

 

성령으로 기도하면

◑4. 중보기도 할 수 있는 감동을 주신다.

 

어떤 공직자는, 자기가 하루에 250명을 위해서 중보기도 한다고 한다.

직장의 부서의 모든 사람, 교회 식구, 특별히 아픈 주위 사람들 등

그 바쁜 와중에도, 중보기도의 삶을 살고 계신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로, 점점 기도의 범위가 넓어진다.

성령께서, 누구를 위해 중보기도 하라는 마음의 감동을 주신다.

그런 감동의 범위가 점점 더 늘어나야 한다.

 

▶특별히 자기 원수들,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보기도 할 수 있는 마음의 감동을 주신다.

욥이 원수 같았던 친구들을 위해 중보기도 했을 때, 하나님은 귀히 보셨다.

 

욥이 그 친구들을 위해 기도를 마치자, 여호와께서는 욥의 상황을 돌이키셨고

전에 있었던 것보다 두 배로 더 주셨습니다. 욥42:10

 

▶내가 그를 위해 중보기도 하다보면, 그의 영과 함께 불타오르는 느낌을 종종 느낀다.

내가 A를 위해 중보기도하면, A가 나를 위해서도 중보기도하고 (그가 깨어있는 경우)

그러면 종종 내 중보기도가 뜨거워지게 된다.

 

서로 떨어져 있으나 같이 기도하고,

서로 떨어져 지내도, 기도의 끈이 서로 연결되어 있게 된다.

물론 나도, 남이 나를 위해 중보기도 해 주시는 것을 종종 느낀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를 위해 중보기도 하다보면 어떤 ‘막힌 벽’을 느낀다.

그 때는, 그를 위해 더욱 기도해야 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특별히 설교자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야 한다.

 

또 나를 위해 기도하기를 내게 말씀을 주셔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하게 알리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내가 복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히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엡6:19~20

 

설교를 능력 있게 하면, 영적인 저항도 그만큼 비례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 삶이 쉽지 않았다.

어쩌면, 복음전하지 않고, 말씀 전하지 않았으면.. 그는 편히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초를 수도 없이 겪었다.

 

바울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 설교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부탁한 것이다.

설교자도 사람이라서, 자칫 지치고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성도들의 기도가 설교자를 살리는 것이다.

 

▶18세기 말에 영국에 엄청난 부흥을 일으켰던 요한 웨슬리가 그랬다.

그가 가는 곳마다 그를 테러하려는 불량배들이 따라다녔고,

또 육체에 너무나 큰 병이 있어서,

설교하기 직전까지 몸이 휘청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설교를 못할 지경이었는데,

이를 악물고 강단에 서면, 그 때부터 불을 뿜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웨슬리를 위해 중보기도한 수많은 중보기도자들의 힘이었다.

 

설교는 교회의 심장과 같다.

설교는, 심장처럼, 온 교회 각 기관, 각 지체에 신선한 피를 돌린다.

그래서 개인과 기관이 모두 다 살아난다. 신기하게 전부가 활력이 넘친다.

그 설교가 우리의 중보기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요즘 주석책도 많고, 좋은 책도 많지만

사람의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 설교는... 그렇게 책상에서 준비되지 않는다.

먼저 설교자의 삶에, 깊이 도달하는 영적전쟁, 고난, 은혜의 체험이 있어야 하고,

중보기도자들의 수많은 중보기도의 기름이 부어져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 설교자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설교를, 그를 통해 대언하게 하신다.

이 시대에는, 똑똑한 설교가 아니라, 은혜와 능력의 설교,

특히 대언해서 하는 설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5. 기도의 마지막 경지 : 십자가를 감당하기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십자가를 치워주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예수님의 기도를 도와주셨다.

 

우리도 기도할 때,

처음에는 “할 수 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하지만

나중에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로 마친다.

 

우리가 주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도록

성령님 또는 천사를 기도의 헬퍼(도우미)로 보내주신다.

 

때때로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지만,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중압감에 눌릴 때가 있다.

그러나 기도 가운데

그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고 지고 가기로 결단하고,

그 잔을 포기하지 않고 마시게 되는

인내, 담대함, 결단이 생기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처음에는 ‘억지로 지는 십자가’였는데,

나중에는 ‘감사와 감격의 십자가’가 되어 있다.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08.07.27. 인터넷설교 부분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