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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수용하는 은혜

LNCK 2008. 8. 30. 16:39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수용하는 은혜   고후 12:7-10 인터넷설교 정리



▲자기 한계를 믿음으로 극복할 때도 있다.

‘적극적 사고방식’에서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세 구절을 살펴봅시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시81:10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9:2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좋으신 하나님은 야구투수처럼 축복의 공을 계속 던지시는 분으로 여깁니다.

따라서 야구포수가 공받기 위해 장갑을 쫙 벌리는 것처럼

믿음의 입을 크게 벌릴 때, 그 축복의 공을 모두 받아가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적극적으로 믿음의 입을 벌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아내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하나님 능력을 믿기만 하면.. 불가능한 일 없다는 희망 갖도록 격려합니다.

열심히만 믿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모든 일이 술술 풀린다고 가르칩니다.

저도 이런 제목으로 기도하고 설교하면 신이 납니다.

분명히 성도님들께서 큰 소리로 “아멘, 아멘!” 하실 거니까요.


그런데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은 좀 다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틀렸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죽을병도 고침 받고,

믿음으로 망한 사업에서 재기하는 경우도.. 간혹 분명히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부분적으로만 옳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확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해도

<결코 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완전한 진리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죽음의 한계를 신앙으로 수용한 성도


미국유학을 마친 2001년 여름, 저는 싱가포르 한인교회로부터

선교 분야에서 협력해달라는 동역 제의를 받았습니다.

현지에 도착하니, 안타까운 사역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간암말기 판정을 받은 40대 초반의 한인 성도님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분은 다소 늦게 결혼해서 아내와 어린 두 딸을 두고 있었습니다.

얼굴색은 참 까맣게 변해있었고, 배는 복수로 가득 찼습니다.

옛날 사진을 쳐다보니, 현재 몸이 너무 수척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숨 쉬는 것도 힘들어했고, 거동도 무척 불편해했습니다.

저를 만나자마자 그 성도님은.. 앞으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믿겠고,

다 나으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성도님은, 한 재벌기업의 해외영업 사원 출신이었습니다.

술자리, 회식자리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그 기업의 회장님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개인 사업을 시작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은행 이자로도 충분히 먹고 살 정도라니, 성공한 사업가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간암말기입니다.


그동안 어떤 사역자는, 그 성도님께서 금식하면서 서원기도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합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기초한 적극적인 믿음과 적극적인 기도라고나 할까요?

현대 의학도 이미 손을 뗀 상태인지라, 제가 그 분을 만날 때

어떤 말씀을 전해야할까?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얼마든지 고쳐주십니다.

죽은 사람마저 살려내신 하나님께 믿음을 보이십시오.

금식도 하시면서, 고쳐주실 것 의심하지 않고 믿으시면.. 분명히 고쳐주십니다’

라고 말씀 전하며 치유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그러다가 낫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영생과 죽음을 대비할 수 있는 시기도 놓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살고 싶어 하는 이 초신자에게

‘성도님은 이제 죽습니다. 죽음 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회개할 것이 있으면 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아내와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십시오.

재산 관련 모든 서류들도 정리하십시오.’

라고 권면해야 과연 옳은 것인가요? 이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요?

더 나아가 혹시 고쳐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주님께 매달려야 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한 어린 양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육신이 살고 죽는 문제가.. 나를 향한 믿음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면서 빌립보서 1장 20절과 21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1:20-21


▶저는 그 성도님에게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성도님께서 기적적으로 고침 받으실지, 돌아가시게 될지 알아맞히는 능력은

제게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외 없이 언젠가는 다 죽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살아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죽어도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성도님을 고쳐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살려두시면 지금 각오처럼 주님께 열심히 헌신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과 함께 할 것을 생각하며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뒤에 남게 될 가족을 위해 준비할 것은 다 준비하셔야 합니다.”


조금 후 제가 전한 빌1:20-21절 말씀이

그 분께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그분은 참 많이 우셨습니다.

어쩌면 육신으로 영원히 헤어져야할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시는지,

아니면 자기 일생에 대한 후회와 회개의 눈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둘 다 이었겠지요.


▶며칠에 걸쳐 여러 은행의 구좌 명의를 하나씩 아내에게 다 넘기셨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그 분의 마지막 희생이요, 헌신이었지요.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분은 하나님 품에 편히 안기셨습니다.

부활을 분명히 믿으며 <죽음의 한계를 기꺼이 수용>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마지막 임종을 병상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임종예배를 시작으로 장례의 모든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분과 동행했던 약 한달 간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숭고한 사역 중 하나로 기억됩니다.



◑‘육체의 가시’를 수용한 바울


오늘 본문을 보니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간절히 3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고쳐주실 것을 분명히 믿으며 적극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답변하셨습니다.

“내 은혜는 너에게 이미 족하다. 네가 약할 때 내 능력은 온전하여진다.”


<네 육체의 한계를 그냥 수용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의 가시를 고쳐주지 않으시는 쪽으로 응답하신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도리어 기뻐하며 자랑합니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1. 가시가 겸손하게 만든다.

바울은 하나님 능력의 강물은 ‘겸손한 그릇’에 담긴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고후12:7절에,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그 가시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난, 시험.. 이런 것들을 무조건 없애 달라고 처음에는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지나다 보면,

하나님의 깊은 섭리로,

고난, 시험을 우리에게 일부러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자기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자기 한계’에 부딪혀

자기의 연약함을 절감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냥 알아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가시와 한계상황’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너무 신세 한탄할 필요도 없고,

그런 가시를 가진 이웃 형제자매를 너무 가련하게 쳐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가시’가 무조건 없는 것이 복이 아니라,

‘가시’를 가지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큰 은총이 되기 때문입니다.


▲2. 가시를 통해, 타인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통로가 되게 하신다.

또한 바울은, 자기가 ‘가시’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자기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알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1:4


헨리 나우웬의 남긴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상처 입은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볼 수 있으며,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고, 그리고 다가가서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교회 주보에 중보기도 면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리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지면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이나 가족이 중병에 걸려 한번 고통당해 보십시오.

이 지면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깊이 공감하며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표현을 수긍하게 됩니다.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각종 연약함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온전하게 역사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숱한 한계와 좌절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그 한계와 좌절은, 당신을 귀한 사역자로 준비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은 시험, 가시,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끝으로 바울은, 하나님이 ‘가시’를 통해 자신을 약하게 하셔서,

그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그래서 약해지는 자신을

오히려 더욱 기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약할수록.. 주님의 능력으로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믿음의 기도로, 주께서 내 연약함, 가시를 없애 해주시면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내 연약함 자체가 하나님 능력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없애 달라고만 기도하지 마시고,

그것을 인해 감사드리는 기도를 드려 보십시오.


이렇게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수용할 줄 아는 은혜>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에 더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8.07.20. 인터넷설교 스크랩, 정리    *원 제목 :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상처입은 치유자」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원래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

 

 

어떤 랍비 하나가 우연히 예언자 엘리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랍비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묻습니다. 메시야은 언제 오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뜻밖에도 엉뚱한 대답을 하는 거예요.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 메시야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아니 어디 계신데요?”


“아마 저기 성 바깥에 지금 사람들을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

“아 ~그래요. 내가 어떻게 메시아를 알아 볼 수가 있습니까?”


이 때 엘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도 상처를 입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처를 풀었다, 감았다, 자기 상처를 풀었다, 감았다 하면서

그러나 그는 자기의 상처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두리번 거리며 도울자를 찾고 있는 분이

바로 그 분이 아마도 메시야일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하게 성경이 그리고, 그려지고 있는 메시아 상이

어떤 분인가를 보여주고 있어요.


그 분에게도 상처가 있었어요. 십자가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그는 배신이, 단절이, 고독이, 소외가 얼마나 아픈 상처인가를 이해하시는 분이예요.

십자가의 절정에서 그가 뱉어 놓으신 말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어찌해서 나를 버리십니까?


이 단절과 고독과 배신과 상처를 이해하시는 바로 그 분.

허나 그러기에 여러분과 저를 이해할 수 있는 그 분.

그리고 우리를 정말 치료 할 수 있는 분. 그 분이 바로 상처입은 치유자 이십니다.(펀글)

 

[주제별 분류] 크리스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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