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부르시고 세우신 이유 막3:13~19 인터넷설교 스크랩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시고 거기에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막3:14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1. ‘선택’의 중요한 목적이 <친교적 목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친교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와 같이 있고 싶어 하십니다.
여러분, 이 감동적인 장면을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생각해보세요.
주님이 저와 여러분과 같이 있고 싶어 하세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역사의 주님. 이 놀라우신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같이 있고 싶어 하십니다.
감동이 되지 않으세요?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을 그 분은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인격적 교제의 대상. 사귐의 대상. 같이 있고 싶어해서 부르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부르신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막3:14
나 같은 사람. 이 허물 많은 사람. 이 약점 많은 사람.
그런데 주님이 나와 더불어 친교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를 불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고전1:9
‘미쁘시도다’란 뜻은 ‘성실하시다’입니다.
나 같이 불성실한 인간을 불러 교제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 하나님은
얼마나 신실하신 분, 얼마나 놀라운 분인가요! 이게 바울의 고백입니다.
▲2. 훈련의 목적
그러나 친교의 목적을 넘어선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같이 있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같이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고 싶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있는 기회, 자연스럽게 함께 지내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전달하시고, 주님의 삶을 보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가기를 주님은 기대하셨습니다.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요?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있어요?
같이 있지 않고는 그분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가 있어요?
같이 있게 하신 목적은.. <제자훈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3:14
친교하시고, 훈련시켜서 마지막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게 하시려고 - 이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전도하면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이어서 15절의 말씀입니다.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전도하고자 하는 이에게 전도하는 능력, 전도할 수 환경,
전도할 수 있는 권능도 주님이 주십니다.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전도’ 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부탁이 무엇입니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 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복음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자들에게 프라이드(자존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의 자존심, 전도하는 사람들의 자존심,
이것 때문에 우리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전도만이 인간을 바꿀 수 있다.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 프라이드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전도하는 것이지요.
전도만이 이 세상을 바꾸고, 온 세계 역사를 바꿀 수가 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대로 우리는 땅 끝까지 전도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은
<그 교회 안에 전도하는 교인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전도하기를 원하는 데 도무지 전도할 줄을 모른다> 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런 얘기입니다. ‘군대 안에 군인은 많은데, 총 쏠 줄은 모른다,
군인들이 많은데, 전쟁할 줄을 모른다.’ 이 얼마나 커다란 비극입니까?
▲(1998년) 월드컵의 비극, 한국축구의 비극이 뭐예요?
우리 모두 흥분하면서 16강에 들기를 원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까 기본적인 기술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차범근 감독을 때려죽이자고 소리치지만
감독의 전술이 나쁘다고 소리치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어디 있었습니까?
여러분 가만히 보세요. 열심히 뛰어다니고, 피가 터지도록 싸웠습니다.
우린 그걸 칭찬합니다.
저는 지난 번 벨기에와 싸울 때 이기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이겼으면 우리가 아마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투지만 가지면 모든 것이 된다!>
아니에요. 기본기가 부족했어요. 골 넣는 실력이 없었어요.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력 있는 내일의 축구 꿈나무들을 길러야 합니다.
사회는 실력 있는 한국인의 자원을 키워놓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도 실력 있는 제자, 즉 <전도할 줄 아는 제자>를 키워놓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천국 가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 - 전도
▲천국 문 앞에서 받게 될 당황스런 질문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을 꼽으라면..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그가 결국 천국에 갔다면,
그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지..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천국에 가지 못했다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던지..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더라도.. 기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간 성도가 당황할 일이 있습니다.
천국 문 입구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이 주어진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 두 질문은 매우 당황스러운 것이라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그 답을 준비하고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혼자 오셨습니까?"입니다.
이 질문에 “아니오. 제가 전도한 사람 많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받을 것도 없이 천국에 들어가지만
“예, 혼자왔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받는답니다.
"어떻게 당신은 혼자 올 수 있었습니까?"
자기가 혼자만 천국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하나님 아버지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고 수긍하실 수 있는 대답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답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그 아무 아무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질문을 받을 사람이 주위에 없습니까?
만약에 혼자만 천국에 갔다면, 왜 혼자만 왔는지
아버지 마음에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하고 수긍하실 수 있는 대답이
준비되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에 “네가 어찌 너만 전도 받아 구원받으면 다라고 생각했느냐?
다른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잖느냐?” 하신다면
어찌 천국에 찬송하며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갈지라도, 힘써 전도하다가 천국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전설>은 다분히 성경적입니다.
에스겔서 3장과 33장의 '파숫꾼의 사명'을 말씀하실 때,
하나님은, 주위 사람들의 핏값을, 전도하지 않고 경고하지 않은 파숫꾼에게
물으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부담감이라도 있어야 참 구원받은 성도
여러분, 전도를 열심히 하지 못할지라도, 전도에 대한 부담감이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전도를 하든 안하든, 전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짜 믿는다면, 전도를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안타깝고,
전도해야 된다는 부담은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전도에 대한 부감감이 있어도, 실제로 전도할 만큼 간절하지 않은 사람은
‘그 자신이 아직 복음의 영광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 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복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 영광의 복음을 잘 모르니까
복음을 꺼내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예수님이 전도자로 쓰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알면.. 전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되어야!
예레미야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조롱받고 멸시받고 미움을 당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렘20:9
그런데 그렇게 결심하면 더 괴롭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마음속에서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전도는 이렇게 해서 되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 말씀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사도 바울은 다 버렸습니다.
출신, 학식, 신분을 다 버렸습니다. 버려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습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그에게 있는 것을 다 버렸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알아주는 영웅도 위대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그들보다 더 큰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복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생명의 복음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평생 여러분 혼자서 품고 살다가 죽어서 그 복음으로 천국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모시고 삽니다.
평생 생명 주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만 모시고 살다가 천국에 갈 것입니까?
예수님은 여러분 안에서 누구에게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전도는 전도자 자신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도 전환점이 됩니다.
박보영 목사님은 의사였다가 늦게 목회자의 부르심을 깨닫고,
신학교에 입학하시고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식도암으로 너무나 고생을 하였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한 교단 시험이 있던 날,
시험 보러 갔다가 목이 너무 아파서 시험도 못 치루고,
겨우 교회까지 와서 교회 안에 있는 방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죽더라도 기도하다가 죽자’ 생각하고,
강단으로 나가서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기도하다가 ‘죽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깨달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하다 죽자’ 하고 교회가 있는 2층에서 아래층으로
기어서 내려가다시피 하여 내려가는데,
마침 어떤 사람이 지나가길래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했답니다.
그 사람은 누가 길에 누워 힘이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 같아
“뭐라고요?” 하며 귀를 기울이더랍니다.
그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전하고는
그 사람을 붙잡고 있는 힘을 다해 간절히 기도해주었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나자 다리에 힘이 생기고, 먹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었는데, 잘 먹을 수 있었답니다. (식도암 환자였음)
그 후 참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전도만 하면 몸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깡패들이 회개하고 교인이 되고,
건물 주인이 3층에 사는데, 교회에 세를 주고도 자기는 불교를 믿으니
찬송도 크게 하지 말고, 울면서 기도도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 지역 불량한 학생들이 변화하는 것을 보고
자기 아들도 좀 돌봐달라고 하면서, 부탁해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박보영 목사님이 지금은 잠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가장 놀라운 길
여러분, 예수님 안 믿는 이들을 향한 부담감, 전도의 감동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을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영혼, 마음에 품게 하신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이들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가장 놀라운 길이 전도입니다.
전도하라는 마음의 부담감에 순종하면 예수님이 쓰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주여 순종하겠습니다!” <이상 인터넷 설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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