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긴박한 순간에 요18:33~40 인터넷설교 스크랩
우리는 두 가지 갈래길에 놓입니다...
◑빌라도, 반면교사
▲빌라도를 위한 변명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함께 등장하는 빌라도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판결을 한 사람입니다.
실제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냐?
거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게 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빌라도는 재판 중에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고
나름대로 예수님을 살려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입니다.
빌라도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보낸『빌라도의 보고서』라는 문서가 있습니다.
그 보고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습니다.
"십자가 옆에서 십자가 처형 현장을 지휘하였던 백부장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저는 진실로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만나고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고,
예수를 어떻게 하든지 살려보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썼습니다.
유대 명절이 되면, 로마 총독의 권한으로
죄수 한 사람을 살려줄 수 있는 전례가 있는데,
예수를 살리는 일에 이용하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살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차라리 바라바라는 흉악범을 살려달라고 소리침으로써
빌라도의 제안은 무산되었습니다. 빌라도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입니다.
요19:12절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빌라도의 정치적 야망
그러면 빌라도는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까?
이유는 하나입니다. 빌라도의 <정치적 야망>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유대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더 큰 정치적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했을 때, 무리들이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요19:12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라고 소리쳤을 때,
이 말은 그 어떤 말보다 빌라도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금 자신은 어떻게 하든지 황제 가이사에게
‘충성스러운 신하’라는 인정을 받아야 할 형편인데,
자신이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일에 동참을 했다고 하는 말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포기하면서까지 예수님을 살려줄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러기엔 자신이 부담해야할 리스크가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합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그러고는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역사에는 가정(만약)이 없지만,
빌라도는 과연 잘한 것일까요?
그는 자기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서, 또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도록 내어 드렸습니다. 진리를 외면했습니다.
이것이 잘한 일일까요?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빌라도는 불과 몇 년 후 로마 황제로부터 파면 당한 뒤
갈리굴라 황제 때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못 박으면서까지 고수하려한 자리였지만,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더 고통스러운 것은 빌라도라는 이름은 저주받은 이름이 된 것입니다.
빌라도는 지옥에서 지금까지도 성도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하사...”라는 신앙 고백 소리를 들으며
“그만! 그만!” 하며 울부짖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빌라도가 그들의 불의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풀어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반역자를 살려주었다는 모함 때문에
파면을 당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역사에 남은 영원한 의인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빌라도의 형편을 생각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빌라도 인생의 가장 급박했던 순간
본문에서 빌라도는 자신은 몰랐지만
그 인생의 가장 긴급했던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려고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빌라도가 예수님 앞에서 재판을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 생애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바로 이 날 이 순간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 하는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는데
자기가 그 때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생명의 주님이면서 동시에 심판주이신 예수님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빌라도는 세상 욕심 때문에
진리에 대하여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고후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빌라도는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진리가 무엇이냐?” 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를 증거하러 왔다”고 말씀하실 때 불쑥 던진 질문입니다.
그 순간이 빌라도에게는 정말 너무 너무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대단히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는 때였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에 대하여 물었지만
진리에 대해 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질문을 던지고는 유대인들을 만나러 나가 버렸습니다.
그의 마음 안에 진리에 대한 갈망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그 까닭에 진리와 영생이신 예수님과의 만남이 그에게
무서운 저주의 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진리를 그저 호기심 정도로만 여겼습니다.
◑내 인생의 긴박한 순간을 통해.. 예수님을 만난다.
▲빌라도의 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안에 진짜 진리에 대한 열망, 영생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진리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고,
영생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 되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기를
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들로부터 성공하였다고, 출세했다고 축하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한 채,
존귀한 자리에 앉는 것은, 빌라도처럼,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빌라도가 차라리 총독이 아니었다면,
빌라도가 차라리 사형 언도를 내릴 수 있는 재판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아마 빌라도는 이런 저주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적으로 준비된 사람입니까?
여러분, 빌라도만 아니라 우리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긴급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그러한 순간이 영원히 무너지는 순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이신 예수님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손양원 목사님 생애의 긴박했던 순간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기독교인 중에 '손양원'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에게 유명한 일화가 많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일은 1948년 10월 27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동인과 동신, 두 아들을 공산주의자 청년에게 동시에 잃었을 때,
그 슬픔을 딛고 십자가의 용서로 자기 두 아들을 죽인 그 청년을
순교한 자기 아들 대신 양자로 삼은 일입니다.
그리고 두 아들의 장례식 때, 목사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열 가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일은 남북통일을 위하여 기독교 복음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예표가 되는 사건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가 평소에 늘 진리이신 주님을 사모하며 사셨기 때문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지은 복음성가 중에 '주님 고대가'라는 복음 성가가 있습니다.
♪ 1.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2.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3.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머리 들고 멀리멀리 바라보는 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4. 내 주님 자비한 손을 붙잡고 면류관 벗어들고 찬송 부르면
주님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5. 신부되는 교회가 흰옷을 입고 기름 준비 다해 놓고 기다리오니
도적같이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6.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고난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손양원 목사님은 항상 진리이신 주님을 갈망하셨기 때문에
그의 인생의 가장 긴박한 상황에서 십자가의 주님을 따름으로
한국 교회를 살렸고, 이 민족을 살렸습니다.
▲인생의 긴박한 순간에...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긴급 상황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기의 순간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 인생의 최대 사건입니다.
가장 긴박한 순간입니다.
방황하던 청소년 때, 집회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도 있습니다.
스탠리 죤스 선교사입니다.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던 괴로운 시절에 평범한 기도회 참석했는데,
어느 평신도 사역자가 로마서 서문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에
거기에 참석했던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그 때 예수님을 깊이 만납니다.
사역을 하던 중에 아직 성령을 못 받고, 힘들게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을 가다가 예수님의 영이 강하게 임할 수도 있습니다.
무디 목사님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보낸 편지 한 통으로 예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존 하이드 선교사입니다.
병으로 쓰러졌을 때, 읽었던 성경 구절 하나를 기억하면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도 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입니다.
여러분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언제 어떻게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실지 모릅니다.
▲평소에 <주님을 향한 갈망>을 갖고 있어야... 결정적인 때를 안 놓친다.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은
평소에 ‘진리가 무엇인지’ 갈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만약 빌라도에게 영원에 대한 갈망,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를 구원하지 않으실 수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그를 그냥 지나쳐 가실 수 있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빌라도에겐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에
그 마음에 세상 욕망, 출세욕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생명의 주님을 만난 순간이.. 도리어 심판의 순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어느 순간에 여러분 앞에 오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신부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예수님이 돈, 성공, 명예와 저울질하게 되는 대상입니까?
주님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나의 주님, 나의 신랑이라고 고백함으로 나아가십시오.
우리가 정말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십니다.
너무나 평범하게 지나갈 것 같은 모든 순간들이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순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는 말
역사상 많은 훌륭한 신앙의 위인들은
인생의 위기와 긴박한 순간을 통해
예수님을 깊이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나는
즉 회심과 성령체험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대로 빌라도와 같이
인생의 위기와 긴박한 순간에서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버림받은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주님을 내 앞에 모시고 살 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서, 위험한 순간에서
신앙적,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고,
결국 그것은 훗날 큰 영광을 얻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빌라도처럼,
야망과 욕망과 인기를 따라 선택하면,
결국 그것은 훗날 큰 어려움을 당하는 원인이 됩니다.
<2008.08.03. 인터넷설교 스크랩, 정리 *원제목 : 인생의 긴급상황에 대비하라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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