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자의 죽음 히9:16-28 인터넷설교 스크랩
▲<감정적 접근>과 아울러, 십자가의 의미에 대한 <지식적 접근>이 있어야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분명한 것으로 예언되었고 성취되었으며
지금 우리는 그 십자가의 사역에 초청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칫 감정에 쌓여 십자가의 의미를 상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감정적으로 느끼려고 하는 접근 방법이 있습니다.
울거나 슬픈 감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길에
여자의 큰 무리가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23:28
(아무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감정적으로 슬퍼서 울지 말라는 뜻)
예수님은 우리에게 눈물을 흘리고 슬프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알게 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1. 모형들
이 십자가의 사건이 그 의미를 상실할까봐 하나님께서는 성경 요소 요소에
「십자가의 모형들」을 제시해 놓고 계십니다.
구약에도 여러 모양으로 이 십자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알고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한 연결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십자가의 처형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십자가의 모형을 자세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가죽옷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한 개인이 구원 받기 전에 그는 먼저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아담은 이 놀라운 교훈을 배워야만 했었습니다.
그는 죄를 짓고 난 후에, 자기의 죄를 무화과나무 잎으로 손수 만든 앞치마로
해결할 수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물을 잡아 죽여서 피를 흘려서 그 가죽을 취하시고
그 대속적인 가죽으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옷을 해 입혔습니다.
죄지은 인간 때문에 죄와 상관없는 한 짐승이 죽어서 피를 흘렸습니다.
이것은 「창세기」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모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유월절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출12:22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의 명령대로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피를 뿌린 사람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 갔다고 해서 유월절이라고 하는 절기가 생겼습니다.
성도님들.. 메모지를 준비하셔서 그 곳에 대문을 하나 그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문의 상하 인방에다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려 주시기 바랍니다.
상인방, 하인방에 하나씩 그렸으면
이제 대문의 좌우 문설주에 동그라미를 하나씩 그려 주십시오.
그리고는 상인방과 하인방을 잇고 좌, 우 설주를 이어 보십시오.
어떤 모양이 나옵니까? 「십자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유월절의 혜택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무의미하게 혜택을 준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그을 수 있는 4군데에 피를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출12:22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 3곳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하인방에 바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양의 피를 우슬초에 �셔서 상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거나 뿌릴 때,
그 피가 아래로 떨어져서, 하인방에도 자연적으로 묻게 되겠습니다.)
만약 애굽 사람이 자기 집에 양피를 발랐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도 구원 받았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만약 문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고도
안에서 의심하고 두려워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물론 그도 구원 받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의 경우가 좋은 예입니다.
내 감정에 관계없이 의심해도, 두려워해도 구속을 받습니다.
양의 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인방과 문설주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자에게는
그 사람이 두려워하든 평안을 누리든 관계없이 구속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손해 보는 것입니까? 두려워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베드로’는 뻔뻔스럽게 평안을 누렸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뭐 저럴 수 있냐?” 하겠지만
사실 축제의 삶을 살고 있는 저의 경험도 역시 뻔뻔스러움입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뭐 그러냐?고 빈정거립니다.
그러나 저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래, 예수 믿으니까 그렇다..”
반대로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아주 양심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살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럴 것입니다. “사람이 저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대답합니까? "제 갈 길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축제의 삶을 살 것입니다.
이 유월절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또렷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의미를 가지고 골고다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3. 놋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21:8~9
요3:14절 이하를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고는
요3:16절의 그 유명한 ‘대 복음’이 선포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직접 구약에서 인용하여서 설명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 가는 길과 물과 음식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을 하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하나님께 나가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 끝에 세워서 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민21:9절에 보면 “쳐다본즉 살더라”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 쳐다보고 죽기도 했단 말입니다.
그 때 그걸 안 쳐다보고 죽다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사실상 예수님의 십자가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런데 안 믿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메모지에 여백이 남아 있다면 장대를 하나 그려봐 주십시오.
그리고 뱀을 올려놓을 수 있는 받침 나무를 가로질러 그려주십시오.
어떤 그림이 나옵니까? 「십자가」가 생기고 그 위에 뱀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십자가에 누가 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이 모형 속에서 십자가의 의미를 깨끗이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4. 성막
「현대인의 성경」은 레위기를 「예배 규정」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성막」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성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시하신대로 지어진 장막입니다. 히8:5
출25:40에 보면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성막은 하늘에 이미 존재했던 것에 대하여
다시 이 세상에서 그대로 완전히 재현한 것>이라고 M. R. DeHaan (디한)은
그의 책『성막』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실물에 대한 모형이며 그림자였습니다.
이 성막에 들어가려면 먼저 동쪽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10:9
죄인이 그 문을 통해서 성막 뜰 안에 들어가게 되면
맨 처음 맞게 되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이「번제단」은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 속죄하신 십자가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죄인이 대하게 되는 것은 모든 죄를 씻어 없애버리는
「물두멍」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 사람은 성소인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에는 북쪽으로「진설병 상」이 있으며 12개의 떡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남쪽에는 「금촛대」가 있으면 그 중간에는 「향단」이 있습니다.
다음에는 휘장으로 가리어져 있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증거궤」와 「속죄소」가 중앙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정확하게 모두 일곱 개의 기구들이 놓여 있으며,
그 일곱 개의 기구들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구들은 아주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동쪽 끝에 있는 제단에서부터 성소에 있는 향단의 중간을 가로질러서
언약궤까지 선을 하나 긋고
또 북쪽에 있는 진설병에서 남쪽에 있는 등대까지 선을 하나 긋게 되면
우리는 정확하고 완전한 십자가의 모형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십자가의 사역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져 내렸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지성소에 까지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속죄소가 있고 언약궤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우리는 담대히 뛰어 들어가 속죄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는 것입니다.
▲5. 어린양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4~7
‘그’는 예수님으로 ‘우리’는 자기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 밖에도 구약에는 허다한 증거와 모형들이 있습니다.)
◑2. 유언자의 죽음
이제 예수님께서 직접 역사 가운데 뛰어드셨습니다.
그리고 구약의 모형과 그림자들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는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는 그 시간에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오셔서 그 동안 하신 모든 유언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죄를 「시간적으로는 영원히」, 「양적으로는 모든 죄」를 용서하신 것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9장 16,17절을 보십시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 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히9:16~17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지상의 성막에는 양을 잡아서 대제사장이 매년 지성소에 들어가 <서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자신이 직접 희생 제물」이 되고 또한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어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히10:11~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은 <서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미완성을 의미합니다. 불완전한 제사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것이 올 때, 폐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단번에(once for all) 드리심으로써
한 번의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앉아 있다>는 것은 완성을 의미하며 온전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에 계시면서 틈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 용서함을 선포하셨고,
돌아와서 감사하는 문둥병자에게도 죄 용서함을 선포하셨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게도,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38년 된 병자에게도,
귀신들린 자, 병든 자, 하다못해 죽었던 자까지도
예수님의 용서의 선포를 들었습니다.
삭개오, 바디메오, 니고데모, 마태, 사마리아 여인 등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자들에게 주님의 용서의 사역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 많은 유언을 남기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유언자의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께서는 예언된 대로 십자가상에서
하나님 앞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므로 예언을 성취하셨으며
자신이 한 유언들을 성취하셨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 놓으신 유언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를 위하여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는다.
이 사실을 믿고, 나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달라.”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이 유언을 견고케 하려고 돌아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사실을 유념하십시오..
<08.08.17. 인터넷설교 스크랩 [주제별 분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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