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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8 고통 위에 세워진 십자가 #3

LNCK 2008. 10. 6. 14:45
 

◈고통 위에 세워진 십자가              마16:24            설교 녹취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한경직 목사님의 템플턴 상 수상 소감을 듣고서, 충격 받다.

저(밥 퍼 목사님)는 신학생 때, 한경직 목사님을 그렇게 존경하지는 않았다.

제가 영락교회 성도도 아니었고, 거기서 사역자로 섬긴 적도 없어서

사실 멀찍이 알고 지냈었다.


때로는, 군사정권 때, 한 목사님이 당당히 맞서지 못했다고

그 분에 대해 함부로 말했던 적도 있었던

젊은 시절에 저는, 아주 못난 놈이었다.

 

그런데 한 목사님께 대한 제 인식이 확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그 분이 템플턴 상을 수상하셨을 때, 그 수상 소감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

그 분은 너무 뜻밖에도 “아닙네다!” 하시면서 자신을 부인하셨다.


‘아닙네다. 저는 템플턴 상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했던,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을, 기독교계의 지도자라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하고, 이렇게 상을 줄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어디 신사참배뿐이겠습니까?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허물과 과실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나를 이렇게 높여 줄 때마다... 저는 그게 제일 걱정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다 보면

정작 하늘나라에 가서는 상이 없을까봐, 그게 가장 두렵습니다!’


그 신사참배 얘기를, 50년이 지난 후, 굳이 또 밝힐 필요는 뭔가?

더욱이 그런 얘기를 할 장소와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저는, 그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는 자리에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때부터, 그분을 바라보던 제 시각도 완전히 변했다.

 

▲한경직 목사님이 제게 주신 금언 : 아닙니다. 당연하지!

그 때 저는, 한 목사님이 저를 부르시지도 않았지만,

염치를 무릅쓰고 남한산성(은퇴 후 한 목사님의 거처)에 찾아갔다.


그 때 저는, 갓 목사안수를 받은 아주 애송이, 병아리 목사였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먼저 용서를 구했다.

‘저는 신학생 시절에, 목사님이 군부독재에 대해 묵인하셨던 이유로

늘 못 마땅하게 여기면서, 목사님을 함부로 평가했던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한 목사님은

“아닙니다!” 그러셨다.

(어린 손자뻘 목사인 저를, 깍듯하게 대해 주시는데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저는 몸 둘 바를 몰라서,

“목사님, 말씀을 낮추셔요. 그래야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또 “아닙니다!” 그러셨다.


나중에야 저는 깨달았다.

“아닙니다!”는 목사님이 일생 겸손하게 사셨기 때문에, <몸에 배이신 겸손>이었다.

<자기 부인>이 철저히 몸에 습관으로 배인 가운데서 나오는 소리임을!


그러시면서 제게

일생일대에 잊을 수 없는

<섬김에 관한 지침>을 그 날 제게 가르쳐 주셨다.

아래는 제가 똑똑히 듣고서 기억하는, 한 목사님의 말씀이다.


“최 목사님, 남들이 잘 하지 않는 빈민선교를 하신다고,

참 귀한 일 한다고 여기저기서 인정해 주고, 높여 주는 사람들을 만나실 겝니다.


그 때마다 <아닙니다!> 하시기 바랍니다.

‘해야 될 일을 했을 뿐,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한 참 섬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최 목사님처럼 귀한 사역하시는 분들을 바라보고,

격려해주고, 성원은 못할망정

훼방하고, 심지어 핍박하고,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꼭 만날 겝니다.

당연하디요, 그럴 때마다 <당연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그런 때마다 자기 가슴에 오른손을 얹고

‘당연하디요’를 혼자말로 해보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일 당할 때, 그 억울한 일 갚아달라고 하지 말고,

당연하게 여기십시오.


우리 주님도, 또 주의 길을 걸어갔던 모든 제자들도

그렇게 환란 핍박 받았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걸어가신 그 섬김의 길을

우리 최목사님도 주님과 함께 걸을 줄로 믿습니다.”

 

그 때 제가 “아멘, 아멘” 했다.

그 말씀이 유언처럼, 지금까지 제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남아있다.


그래서 때때로 한경직 목사님 소천하신 후에,

가끔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목사님의 이 말씀이 유언처럼 제게 생각날 때는,

대광고등학교 교정(다일교회가 11년 동안 이곳에서 모였다)에 있는

목사님 동상 앞에 가서, 제가 엉엉 울었던 적도 있었다.


▲‘하나님 앞에서’ 섬김

여러분, 참된 섬김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인줄 믿는다.

그래서 항상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를 잊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칭찬 받아도 우쭐거리지 않고,

사람들이 비난해도 기죽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사람이다.



◑청량리에 자리 잡게 된 계기


저는 초창기에 처음 다일공동체 삶의 자리가

청량리 588번지, 사창가 한복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럴 의지가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하셨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제가 처음에 고작 하는 일이란, 빗자루 들고 골목골목을 다니며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 쓸고 나면, 오전 10시쯤 되는데,

그때부터 등산용 버너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무의탁 노인 노숙자들을 만나면, 길에서 즉석으로 라면을 끓여 드렸다.

물은 근처 가게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경동시장 약재 상가들이 문 닫고 가면,

그 상가 처마 밑에서 스티로폼 깔고 자는 노숙자들이 있었는데,

그분들께도 라면을 끓여드리고, 저도 가끔 거기서 함께 잤다.

그러다가 일어나면 새벽기도 드리고, 다시 빗자루 들고 골목을 쓸고 다녔다.

이런 일을 계속 되풀이 하던 어느 날이었다.


제가 청량리 굴다리 근처 후미진 곳에서

무의탁 노인들에게 라면을 끓여드린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장로회 신학교 교수님 몇 분이 찾아오셔서,

라면을 한 두 박스씩 전해주시던 고마운 분들이 계셨다.


“여기 최일도 전도사님이 있는 방이 어딥니까?”

그러자 청량리 오팔팔 업자들이 되물었다.

“그 새끼가 전도삽니까?”

 

그런 연유로, 제가 신학교에 다니는 전도사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평소에 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그 동네 몇몇 사람들이

저를 내쫓기로 결심했다.


처음에 19살짜리 깡패를 제게 보냈다.

그가 와서 육군대검을 뽑아들더니, 제 목에다 딱 겨누었다.

“여기가 어딘데,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설쳐, 죽을래?”

“아니, 살래!”

“살고 싶으면 당장 꺼져!”

그렇게 겁을 주고 갔다.


주님이 나가라고 그러시면 몰라도,

내가 왜 그 친구가 나가라고 한다고, 가겠는가?

당연히 안 나갔다.


그러자 다음날 8명의 ‘어깨’가 저희 공동체 나눔의 집으로 찾아왔다.

8명이 들어오니까 집이 좁아보였다.

대뜸 제 멱살을 잡더니 다짜고짜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주먹으로 제 얼굴을 때렸다.

한 방에 제 쌍코피가 터졌다.


그 때 저는 웃었다.

“허허, 감정 있으면 말로 하시지, 왜 때리세요?”

저는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말했다.

“짜식, 비웃는 거 봐?”

저는 비웃지 않았는데, 그들 생각에는 비웃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발로 걷어찼고, 나는 절뚝거리며 주저앉았다.

 

그 때 제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말씀이 스치고 지나갔다.

‘욕을 욕으로 되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나도 그들에 맞서서 주먹질, 발길질로 응수할 수 있었지만,

이 곳에서 복음전파사역을 계속하려면,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저는 주저 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면서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 위해서 기도한 죄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누가 널더러, 우리 위해 기도하라고 그랬어?”

그러면서 이제는 제 배를 때렸다.


맞는 순간, 저는 창자가 터지는 줄 알았다.

순간 숨을 못 쉬었다.

‘이렇게 숨 못 쉬면 죽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하나님 제 영혼을 부탁하, 윽!’

순간 뒤에서 각목을 들고 있던 친구가, 그걸로 저를 내리쳤다.

제가 기절해버린 것이다.


그 후 상황은 기억이 안 나서 모른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8명 모두가 기절해서 쓰러진 저를 계속 발로 짓밟았다고 한다.

물론 저는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몰랐다.

나중에 깨서 보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멍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기절한 저를,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더미 위에 던져놓고 가 버렸다. (병원에나 좀 데려가지..)

그 날 제가 안 죽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본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제가 청량리 야채시장 쓰레기더미 위에 누워있는 것이다.

그날부터 약 20일 동안 꼼짝달싹 못하고

저는 방에서 피똥만 싸고 누워 지냈다.


그 때 청량리 경찰서 형사가, 제 억울함을 갚아주겠다고, 저를 찾아왔다.

“내가 다 듣고 왔습니다!”

벌써 내막은 다 파악했고, 조서에 제 확인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제가 말했다. “아닙니다!, 동네사람들이 때려서 그런 게 아니라,

경동시장 지하도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데굴데굴 굴렀거든요”

 

“아니, 내가 형사생활 몇 년에, 맞은 거랑, 구른 거랑 구분 못할까 봐요?

나, 당신 억울함 갚아주려고 찾아온 사람이요, 다 얘기 하시라구!”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별 일 아닙니다.

어찌 보면, 자기들 생계 방해했다고, 그들이 저를 그렇게 대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들이 그런 짓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더 이상 말이 안 통하자, 형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기 지갑에서 얼마를 꺼내놓고 가면서 말했다.

“나 이거 잘못하면 예수 믿게 생겼네, 아이 씨!

당신이 고통 받은 만큼, 사랑이 전달될 겁니다!” 


그때 나는, 안 믿는 형사의 입에서, 마치 주님의 음성을 듣는 듯했다.

‘고통 받는 만큼 사랑이 전달된다!’ 


그 후 그 형사는 월급을 타면, 꼭 저를 찾아와서,

얼마를 꺼내 놓고, ‘나 이러다가 예수 믿게 생겼어!’ 하고 되돌아갔다.

이제 보니, 그가 우리 다일공동체의 최초의 정기후원자가 된 셈이다.

나는 그의 고마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결국 그들과의 영적전쟁에서 밀리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주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고난을 겪고 승리한 나는,

그 후 청량리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십자가 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마시라

여러분, 고통 없이 어찌 기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고통 없이 영광 없다.

십자가 없이 부활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말할 수 없는 고통 때문에

그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깊이 전달되었다.


오늘 여러분, 착각하지 마시라!

<고통 없이 사랑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고통당하시는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기시기 바란다.

그리고 만약 ‘고통’ 없이 뭐가 다 잘 된다면... 그건 다 가짜 열매다.

십자가의 열매는 아니다.


그런데 왜 오늘 21세기의 한국 신자들은, 이 고통을 자꾸 외면하려 드는가?

여러분, 고통은 반드시, ‘반드시’이다.

<고통>은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는데 반드시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삶의 고통도, 인생을 성숙시킨다.

되돌아 보건데, 약 20년 전, 제가 신학생시절에

그 처절한 고통이 없었더라면

그렇게 밑바닥에서 처절하게 울어보는 아픔이 없었더라면

‘지금 제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 쉽게 세속화되었을 것이다.)


일찍이 저는 1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때부터 소년가장 생활을 시작했다.

자전거로 안 해본 배달이 없었다.

두부배달, 달걀배달, 자장면 배달, 신문배달, 우유배달, 5가지 배달을 다 해 봤다.

그 중에서 달걀배달을 제일 오래 했는데...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마쳤다.

저는 배달하다가, 인생을 터득한 사람이다. 


그래서 제가, 우리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1학년 때부터 채근했다.

“얘야, 배달해라, 배달!”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늘 말린다.

“여보, 당신이 했으면 됐지, 왜 애까지 배달시키려고 그러세요?

정 아들 배달시키고 싶으면, 두 사람이 같이 하세요! 그러면 제가 동의할게요”

 

그런데 제가 워낙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없어서

아직 아들과 함께 배달을 못 해보고 있어서 유감이다...  (후략, 다음호에 계속)

 

[주제별 분류] 사회적 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