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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 요셉의 비밀 무기

LNCK 2008. 10. 10. 22:49
 

◈(남들이 몰랐던) 요셉의 비밀 무기         창37:18~28           큐티 자료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주위에서 자기를 해코지 하는 못된 사람들이 많아서

늘 괴롭다는 사람은... 아래 설교문을 한 번 읽어봅시다.



◑고참병의 괴롭힘 때문에 천식을 치료받다


“목사님, 요즘 감동받을 일이 별로 없어요. 사는 게 따분해요!”

혹시 그러시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유정옥 사모님이 쓰신「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입니다. 


유정옥 사모님은, 예수 믿는 할머니를 핍박하는 할아버지를 전도하려고

그 집 파출부로 들어간 적도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지요?

아래는 그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졸지에 두 아이를 떠안다.

남편 목사님이 종로 5가에서 목회를 하실 때

어느 남자 분이 초등학생 아이 둘을 데리고 교회를 다니시더래요.

어디 사시는지, 어떤 형편인지 전혀 말씀을 안 하시는데,

남자 분이 병색이 너무 깊어 보이는 환자 분이시더랍니다.

그런데 아이 둘을 데리고 손을 꽉 잡고 오셔서, 예배를 드리고 가곤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그 아이 중의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사모님, 아빠가 이상해요, 아빠가 숨을 안 쉬어요!” 하더랍니다.

너무나 놀라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성남이라고 그러더래요.


그래서 사모님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면서, 일단 그 집을 찾아갔는데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이 둘만 남은 것입니다.

장례를 치러주는데 친척도 오지 않았습니다.

먼 친척이 있기는 한데, 찾아오지도 않더래요.

아마 두 아이를 떠맡아야 되는 부담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례는 치렀지만, 두 아이를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먼데 떨어진 성남에서, 종로 5가까지

왜 그 분이 두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예배드리러 왔을까?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서

굳이 이 교회까지 먼 길을 오게 하신 것은 아닐까?

하나님이 두 아이를 떠맡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이 번쩍 들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모님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착하게 보셨는가?’ 감사가 나오더래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서 두 아이들을 입양했답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이 둘과 합해서 전부 넷이 됐대요.


▲고참병의 죄성을 사용해서도 일하신다.

그 때 (입양한) 큰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남자 아이였는데

정말 잘 커서 청년이 되어 군 복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외국어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후에 군대 갔는데,

사모님이 첫 면회를 갔대요.


그런데 아들이 힘든 이야기를 꺼내더랍니다.

고참(선임병)이 자기를 너무 괴롭힌다는 거예요.

정말 한번 무슨 일을 내고 싶다고...


자기를 너무 안 좋게 보고

그리고는 식사하기 전에 꼭 연병장을 한 바퀴 돈 후에

자기에게 신고하고 밥을 먹으라고 했대요,


자기는 천식이 있는데,

운동장을 뛰다 보면 숨이 막히는 고통이 오기도 하거니와,

어떤 때는 늦어서 밥을 못 먹을 때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고 사모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더래요.

그러나 아들에게 마음을 가다듬고 당부했다는 것입니다.


“그 고참이 아무래도 자기가 졸병일 때에 비해, 네가 편해보여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까 연병장을 돌게 하더라도 더 잘 돌아라.

괴로워하며 억지로 돌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라.

다 돌거든 그 고참에게 고맙다고 해라.

어쨌든 많은 사람 중에 너에게 특별히 관심을 가져 준 게 아니냐?


너는 무엇보다도 주님을 굳게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 너 정말 믿어야 한다.”


그렇게 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밥 먹기 전에 운동장 돌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까, 가슴이 메어지더래요.


그래서 이 사모님도 새벽기도 마치고 난 다음에

아들이 연병장 뛰는 시간인 줄 알고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을 같이 뛰면서 기도했대요.

‘하나님, 우리 아들 지켜달라고... 붙들어 달라고...’


한달 쯤 지나서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사모님은 아들의 편지를 읽으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 저는 오늘에서야 하나님의 복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연병장을 뛰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 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막혀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참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 고참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제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 드립니다.

어머니, 제 목소리 들으시면 기뻐해 주십시오!”


그 후에 사모님도, 이 아들도,

인생 사는 동안에 어떤 시련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는 거예요.

시련이라는 가면을 벗겨내면 그 속에 복이라는 실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이에요.

 

▲이 책 속에 <대진표 바꾸기>라는 글을 또 하나 소개합니다.      

“나는 요즈음 내 삶의 모든 경기에 임하면서 두려움이 없어졌다.

그것은 경기에 임하는 선수의 이름 대진표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다윗도 그 경기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다.

소년 다윗과 장군 골리앗이 싸우면.. 누가 보아도 다윗이 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골리앗이 싸우면.. 누가 보아도 골리앗이 진다.


모세도 그 경기의 대진표의 이름을 바꿀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담대할 수 있었다.

양치기 모세와 애굽의 바로 왕이 싸우면.. 누가 보아도 모세가 진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로 왕이 싸우면.. 누가 보아도 바로 왕이 진다.


나는 요즈음 내 삶의 대진표를 다시 짜고 있다.

내 이름을 빼내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면 유정옥과 말기암이 싸우면.. 누가 봐도 유정옥이 진다.

(사모님은 말기암 환자)

그러나 하나님과 말기암이 싸우면.. 누가 봐도 말기암이 진다.


나는 하루 종일 내 삶을 힘들게 하는 모든 문제들과

나 혼자 끙끙대면서 맞섰던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함께 놓는, 대진표 이름 바꾸기 작업을 한다.


그러면 나에게 맹수처럼 달려오던 그 많은 두려움들이 사라지고

꼭 이기고 말겠다는 안달도 없어지고

오히려 적수가 안 되는 상대방 선수에게

‘차’나 ‘포‘를 떼어주는 여유와, 넉넉한 인심과, 사랑을 베풀게 된다.

그 후에 오는 것은 당연히 부전승임을 확실히 믿고 있기 때문이다.

 

노숙자들에게 밥 퍼주는 유정옥 사모


 

◑형들의 죄성을 사용하신 하나님


오늘 본문 창세기 37:18~28에는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물론 죽이지는 않고, 애굽에 종으로 팔아버립니다만,

어쩌면 죽인 것보다 더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창세기 요셉 사건의 핵심은

형들이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끔찍한 사건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놀랍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거예요.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은 물론 아니지요)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 데려와서 400년 동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려는

계획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셔야 했습니다.


물론 비참한 종의 신세로 애굽에 팔려가서,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지만,

하여튼 요셉이 애굽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가 막히게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놀라우신 분이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이 애굽 종살이 하면서, 도리어 즐겁게 살았던 비밀

여러분, 만약 요셉이 형들에 의해 팔렸다는 섭섭함과 분함 때문에,

낙심에 빠지고, 좌절에 빠지고, 슬픔에 빠지고,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면

보디발의 집에서 가정총무가 될 수 있었을까요?

감옥에서 총무(전옥)가 되어서, 다른 수감자들을 섬길 수 있었을까요?


요셉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애굽에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느냐 말입니다.

주인 눈에 들어서 모든 종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지위를 얻을 만큼

뭐가 그렇게 열심히 일할 동기부여가 있었겠으며,

요셉에게 무슨 열정적인 삶의 의욕이 있었겠느냐... 말입니다.


그 비밀은, 요셉이 비록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자신과 동행하심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 창39:2

보디발이 보기에도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면, 39:3

요셉 자신은 얼마나 그 임재와 동행을 강력하게 느꼈겠습니까! 

 

요셉이 그 보다 더 어려운 환경인 감옥에 갔을 때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 하셨습니다. 39:23

(창39장에 2, 3, 21. 23절 등 총 4회에 걸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가 나옵니다.)

 

이 비밀을 스데반은 깨달았습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하사”  행7:9


요셉처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는 사람은

남들에게 괴롭힘을 받아도 오히려 덤덤합니다.

그 괴롭힘 때문에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욱 강력히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대진표를 바꿔 짜는' 능력이 있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도.. 어렴풋이나마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지 않는 사람은

남들에게 괴롭힘을 받으면

원망, 대적, 맞서서 싸웁니다. 악착같이!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해 있습니까? <06.04.30. 인터넷설교 스크랩, 축약

 

[주제별 분류] 그리스도의 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