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는 자/ 아닌 자 삼하19:24~20:26 설교스크랩
#1590
◑말썽꾸러기 아들을 다루는 놀라운 엄마 이야기
▲남자 아이 하나가 밖에서 놀다가 저녁에 집에 들어왔습니다.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가 옷이 엉망입니다.
얼마나 개구지게 놀았는지, 얼굴이며 전신이 흙투성이입니다.
이럴 때 아이를 보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보통 2가지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대부분 부모들이 선택하는 방식은 “너 왜 그 모양이야!”하며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다루는 다른 방식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애가 그 꼴을 하고 들어와도 무작정 ‘너 잘 했다’ 하라는 것입니까?
▲이렇게 한 번 말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야, 너 오늘 굉장히 재미있게 놀다가 왔구나, 뭐 했냐?”
아이가 뭐라고 대답을 하면
“너 오늘 정말 신났겠구나! 나중엔 아빠하고도 그렇게 한번 놀아볼까?”
▲꽤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입니다.
그 화가가 어릴 때, 하루는 집에서 놀다가 우유를 쏟았는데,
화가는 그 쏟은 우유로 방바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며
놀이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노는데,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왔습니다.
그 엄마는 부엌, 거실이 우유가 범벅이 된 것을 보고는,
“야, 오늘 너 재미있게 놀았구나!”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엄마하고 같이 그림 한 번 그려볼까?” 하고는
둘이서, 엎질러진 우유로, 방바닥에 토끼도 한 마리 그리고,
나무도 하나 그리고 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참 같이 놀고 나서야, “이제 됐지?”하면서 같이 청소를 했답니다.
그 화가는 자기 엄마와의 그 추억이
자기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가 커서 화가가 된 것도, 아마 어릴 때,
엄마의 그런 교육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아이의 잘못을 보면서, 무조건 야단치기 보다는,
그렇게 아이와 놀면서 친밀한 관계를 더욱 깊이 쌓아 가면서
아이 마음속에 자존감을 세워주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엄마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편에 섰던 세바, 요압
본문 삼하19:24~20장 끝까지,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다윗을 비롯해서 므비보셋, 바르실래, 아마사, 아비새
그리고 악명 높은 세바, 그리고 요압 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사람들은 모두 옷차림이 엉망인 채 집에 들어온
아이(이를테면 다윗)를 본 부모처럼,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선택을 잘한 사람도 있고, 선택을 잘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자기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아가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원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운동의 핵심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고 구원하신 목적입니다.
본문의 등장인물들과, 우리는 마찬가지로
그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사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사는 사람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한 번 투사해서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세바
“다윗을 통해 우리가 얻을 몫이 없다. 돈 한 푼 나올 것 같지 않다.
한 자리 얻어 찰 것이 없다.” 세바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 몫을 마련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다윗 역시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셨고,
그는 돌이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바는 하나님께서 맡긴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 했습니다.
▲내 소원과 다르게 일이 진행될 때
여러분, 하나님께서 맡긴 일과 내가 원하는 일이 일치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때로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내 마음은 썩 그렇게 달갑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일에 대한 소원을 품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빌2:1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원이 내게도 소원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인 것은 아닙니다.
설교를 하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찬양대에 앉아 있으니까 하나님 일을 한다? 아닐 수 있습니다.
제가 설교하는 목적이, 교인들의 인기나 다른 어떤 제 유익을 위해서라면,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고상한 찬양으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고 해도,
하나님 영광보다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찬양이라면,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세바를 보십시오.
이 사람은 영적인 민감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대신 돈에 대한 민감함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내 몫이 없다. 다윗 덕에 내가 한 자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푼 유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이 세바를 움직이는 기준이었다고 오늘 본문이 증거합니다.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삼하20:1
여러분, 세바는 불신자가 아닙니다. 유대인입니다.
말하자면 유아세례 교인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모든 사람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2. 요압
요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압은 사실 세바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입니다. 또한 다윗의 망명생활을 함께 했던 동지입니다.
측근 중 측근으로 개국공신이자 전쟁이 있을 때면 승리를 안겨 준 장군입니다.
그런데 이 요압이 다윗에게 늘 근심거리였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나중에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하면서
시므이와 함께 그를 처단하라고 합니다.
요압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 다윗이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오랜 세월을 두고 본 결과, 요압은 하나님나라 운동에 방해가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도저히 그를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까지 솔로몬에게 그 처리를 부탁한 것입니다.
여러분, 시므이를 처단하라고 한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는 악한이었고, 다윗을 대적한 자였습니다. 그에 반해 요압은 다윗의 조카요,
국가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공을 세웠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다윗은 요압을 제거하려 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보면, 요압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 아마사를 죽인 사건입니다.
아마사는 압살롬 반란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죽고 반란이 진압되자, 다윗은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어렵고 힘든 결정을 내립니다.
고심 끝에 아마사를 새 이스라엘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입니다.
자기 목숨뿐 아니라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함이 마땅했던 아마사는
이 일을 계기로 다윗에 대한 충성을 결심하고
나라를 새롭게 세워 나가는데 기꺼이 협조하려 합니다.
그런 그에게 다윗이 임무를 줘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뒤따라가서 그를 자기 마음대로 죽여 버렸습니다.
아마사는 압살롬 반란군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를, 자기를 놔두고,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요압이 거기에 반발한 것입니다.
요압은, 자기가 통일 이스라엘(다윗 왕국)의 군대장관(총사령관)이 되어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용맹한 장수였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바와 같은 자였습니다.
세바는 다윗 진영 바깥에서 자기 몫을 주장했던 사람이고,
요압은 다윗 진영 안에서 자기 몫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큰 그림을 보면서 아마사까지 품어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는데,
요압은 아마사를 제거하고 자기 것을 자기가 먹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런 요압 때문에 다윗이 종종 곤경에 처하고 힘들어 한 것이
성경 곳곳에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역시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예배에 나오고, 열심히 교회 일도 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 하나님은 결국 자기 야망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윗 역시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할 때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요압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잘못된 자리에 섰다가도 하나님의 경고나 질책을 받으면
곧 그 길에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성경 기록을 보면,
평생 동안 권력욕 속에서 출세 일념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뜻을 이루어 권력을 틀어쥡니다.
또 그 쥔 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자신의 일을 주의 일이라고 고집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세바와 같은 부류였습니다.
◑하나님 편에 섰던 바르실래
▲4. 바르실래
그는 나이가 많은 지방의 유력인사였는데,
압살롬이 다윗에게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역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압살롬을 지원할 것인가? 다윗을 지원할 것인가?
여러분, 잘못하면 온 가족이 몰살당할 수가 있습니다.
당시는 지금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반란 세력으로 분류되면, 온 가족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르실래는 영적인 민감함으로 분별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쪽으로 기운 그 때에 말입니다.
사실 그도 그럴 만했던 것이, 다윗은 정말 치명적인 실수를 많이 저질렀습니다.
경박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런 엉터리 같은 인간 다윗보다는 새로운 인물,
잘 생기고 언변도 좋은 압살롬이 대안이야!
그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
이런 판단 하에 많은 사람들이 다윗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아히도벨 같은 지도자들조차도 다윗의 실수를 탓하면서 등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달랐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판세 돌아가는 것이 어느 쪽으로 강한가?.. 를 보십니까?
그래서 세상은 강한 쪽으로 가담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강한 쪽이 어느 쪽인가를 볼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비록 그가 약자인 것 같아도,
거기 붙어 가지고는 얻어먹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나도 그 편에 서리라!’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런 마음을 품고 그대로 행동한 자가 바르실래 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영적인 민감함을 요구하십니다.
이런 민감함이 없이 제멋대로 길을 가다가 맞게 될 결과에 대해서
성경은 세바와 요압의 최후를 통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세바가 여인의 손에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치스런 죽음을 당했다는 뜻입니다.
요압도 공적이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사촌 형제인 솔로몬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의 심복이었던 그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왜 이런 사실들을 우리에게 기록으로 남겨 놓았는지
우리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꾼 같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성공해서 힘이 있고, 돈이 있고, 권력이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서두에서 이야기를 꺼냈듯이
우리 자녀는 물론이요,
우리 주변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실족하고 넘어질 때,
내가 취해야 하는 태도는 무엇이며,
어떤 반응을 하나님이 원하시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08.10.19, 인터넷 설교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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