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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한그릇 -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1605

LNCK 2008. 11. 22. 08:55
 

◈너희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12:1~8     설교스크랩



◑1. 하나님은 조율사입니다.


미국 리버풀 대학교 의과대학 3학년 재학 중인 세라라는 여학생이

박테리아 뇌막염에 걸렸는데 신장, 간, 폐가 손상을 입었습니다.

생명을 건지려면 무릎에서 13cm 아래로 양쪽 다리를 모두 절단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불구자가 되었구나!’하고 절망 가운데 휠체어 타고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하고 말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느 경매장에 물건이 다 경매되고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이 하나 남았습니다.

구석에 있는 낡고 망가진 바이올린을 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때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바이올린을 이리저리 고치고 조율하더니

멋진 음악을 연주해냈습니다.

모두 그 선율에 탄복하여 그 바이올린을 사려고 해서 거액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부서진 바이올린처럼, 고장 나고 볼품없는 초라한 우리들을

고치고 조율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조율하여 연주한다면 우리는 멋진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세라는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비록 내 다리는 잘렸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고치고 조율하신다면

얼마든지 값지게 살 수 있겠구나.

하나님, 저를 고치고 조율하셔서 하나님의 음악을 연주하여 주십시오.’


세라는 지금 의사가 되어, 망가진 바이올린이라도 고치고 조율하여

멋진 음악을 연주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도를 믿는 신앙'과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기도에는 두 가지 신앙이 있습니다.

<기도를 믿는 신앙>과 <믿음으로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영어로는 faith in prayer 와 prayer in faith입니다.


<기도를 믿는 신앙 faith in prayer>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도' 자체가 큰 효험이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가, 또는 어려운 일을 만났다가,

또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문제를 만났다가

열심히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고 신앙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분명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이런 말씀의 약속을 확신하며 열심히 기도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인본주의의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을 때에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가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기도에 응답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했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신은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가?”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을, 마치 자기가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에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행한 행함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위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복음이 아닙니다.


(기도에 자기 노력도 얼마간 필요하겠지만 이것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면)

이것은 나의 공로를 강조하고 모든 것을 나의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

인본주의 신앙, 곧 기복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기도 자체를 너무 신비하게 믿는 신앙'은 이런 위험에 쉽게 빠집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prayer in faith>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채우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응답하시든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우리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아멘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이 어깨와 목에 심한 통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통증으로 인해서 먹는 것도 어렵고 잠을 자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통증이 없어지기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통증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목사님은 그 기도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4주간을 계속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그 통증은 계속되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문득 기도하다가, 자기가 이제까지와는

다른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통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이 통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그리고 이 통증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십시오.”


이 기도를 드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받았습니다.

“이 통증이 계속되는 동안 기도하여라.”


그는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서, 문득 사람들과 약속한 기도의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3주 후에 있는 수양회를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도의 약속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통증의 제거를 위해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통증 가운데서도 주님과 약속한 기도를 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통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먼저 '기도를 믿는 신앙'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통증을 제거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는

‘이런 통증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하소서’ 하는

'믿음의 기도prayer in faith'를 드렸습니다.

그는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동안에..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위에 언급한 세라는 박테리아 뇌막염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께 그 병을 고쳐달라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자르게 되는 불행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불행 가운데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고장 난 바이올린을 조율하듯이 우리의 병든 몸과 장애의 몸도 조율하여

하나님의 노래를 연주하시는 조율사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를 받으시고, 고치시고, 사용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조율사입니다. 불구의 몸이라도 주님께 바치면 주님께서 고치시고

새롭게 하여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나의 장애의 몸을 드리오니 하나님의 영광의 몸이 되게 하여주소서.”


그녀는 자기의 불구가 된 몸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바치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불구가 된 몸을 하나님께서 고치시고 사용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라는 <믿음의 기도prayer in faith>를 드린 것입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들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의 몸을 만드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을 믿지 말고 여러분을 받으시고 고치시고

사용하여 하늘의 뜻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를 보면서 장래성이 있다든지, 또는 가능성이 있다든지,

똑똑하다든지, 특별한 장점들을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고치시고 사용하여

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자랑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은 참으로 훌륭합니다.

모든 분들에게 존중을 받을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집사님들과 권사님들과 성도들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러움을 믿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이처럼 사랑하시고 여러분들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하여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고

하늘의 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2.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

  

▲오늘의 말씀은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 주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먼저 1절과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바울 사도는 '우리들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시지요?

우리들의 경건한 모습을 드리고 우리들의 자랑거리들을 드리고

우리들의 장점을 드리고자 하시지요?


그런데 바울 사도는 우리들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릴만큼 아름답고 깨끗합니까?

바울 사도는 우리들의 몸이 더럽고 죄악의 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약하고 병들과 죄악의 몸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들의 몸이 죄악의 몸이요, 사망의 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7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몸을 죄 아래 팔린 몸이라고 말합니다.

롬7: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도다.”


바울 사도의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원하지만

그의 몸은 그 선을 행하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의 몸은 우리들의 몸과 별로 다르지 않는 몸입니다.

  

롬7: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몸속에 악이 거하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롬7:24절에서 절망의 부르짖음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오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는 자기의 몸을 사망의 몸, 사망의 몸, 사망의 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권면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그 몸을 고치시고, 씻으시고, 새롭게 하여, 영광의 몸으로 바꾸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서를 보세요.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 들린 몸을 예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경건하고 성결한 여인 되게 하셨습니다.


바디메오는 장애의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장애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에

예수님은 그를 고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은 그 몸을 예수님께 드릴 때에

정결함을 얻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을 그 병든 몸을 예수님께 드릴 때에 깨끗함을 입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위에 언급한 세라는 두 다리가 잘린 장애인이었으나

그 몸을 하나님께 드릴 때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의사가 되어

사람들의 존중을 받게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들의 몸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야기

휘트 브레드 문학상은 영국 최고의 문학상입니다.

1989년도에 이 상을 받은 작가는 크리스토퍼 놀란 씨입니다.

그의 소설 “시계의 눈 밑에서”(Under the Eye of the Clock)가 수상작입니다.


놀란 씨는 3세에 뇌성마비가 되어 오직 눈으로만 의사 표시가 가능했습니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손을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이마에 작은 막대기를 붙이고 키를 누르는 방법으로 타자를 쳤습니다.

타자지 한 장을 채우는 데는 무려 12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쓸모없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시와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잘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쓸모없어 보이는 몸을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사랑의 사람들을 보내어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나의 현재 죄 된 모습, 나의 부족과 약함까지 하나님께 그대로 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몸을 하나님의 영광의 몸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 몸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를 믿는 신앙>은 내가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가에

하나님의 응답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복(요술)방망이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믿음에서 시작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몸이 죄악으로 찌든 몸이든, 병든 몸이든, 장애의 몸이든,

그의 가능성이 전무하게 보이는 크리스토퍼 놀란과 같은 몸이라도

그 몸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지금 여러분의 몸은 어떤 몸입니까? 있는 그대로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을 고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존중받는 몸이 되게 만드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는 몸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3. 하나님께 받은 은혜대로 사람들을 섬기는 몸이 되라.

   

▲그러면 하나님께 산제사로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교회와 사람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 8절까지를 함께 읽겠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지니라.

  

우리가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명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각 지체에게 서로 다른 일과 사명을 주셨기 때문에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손은 손의 일을, 발은 발의 일을,

귀는 귀의 일을, 눈은 눈의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명이나 일이나 은사나 은혜들을

부러워할 것도 아니요, 무시할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높이는 것은

그들도 하나님께 하나님의 일과 사명과 은혜와 은사들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받은 것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그들이 받은 것을 부러워하며 질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와 은사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몸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한 이 몸을 통하여

무엇을 하고 싶어 하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의 몸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발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연약한 몸을 통하여 하시고 싶은

하나님 자신의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알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힘을 다해 수행할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여야 할 것인가?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저서인 ‘돌아온 탕자’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성장과정 중

이 비유에 등장하는 세 중요인물들의 역할을 한 번씩은 해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땐 회개와 용서가 필요한, 말을 안 듣는 동생처럼 행동합니다.

또 어떤 때는 분개한 마음과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품은 형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성숙해지면서 우리는 자녀들이 화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처럼 됩니다.

  

나우웬은 다음과 같은 글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나이든 내 손을 바라보니, 하나님께서 이 손을 고통 받는 모든 이에게

내밀고 다가오는 모든 이의 어깨 위에 얹으며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축복을 하라고 주셨음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시는 사명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고전5:18-19)입니다.

지금 바로 그 일을 시작해 봅시다.

  

“주님, 제가 상처 준 이들에게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와

저에게 상처 준 이들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소서.

주님을 대신해서 제가 우리 가족을 축복하는 화목의 사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우리의 몸은 약하고 병들고 상처 입은 몸일 수 있으나

그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고자 작정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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