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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7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잔치’

LNCK 2008. 11. 12. 15:17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잔치’         눅15:17~24         인터넷설교 스크랩



십자가를 지는 일은 <고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탕자의 아버지는 그것, 아들을 맞아들이는 십자가를 <잔치>로 소화하고 있다.

탕자의 형은 그것을, <고난>만으로 이해했다...



▲효도는 십자가 사랑에 참여하는 기회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함마슐드는 생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대중을 구원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문제가 있는 한 사람에게 전념하는 것이 보다 고귀한 일이다.”    


부모 문제나 자녀문제가 우리에게 닥쳤을 때

우리는 “또 골치 아픈 문제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럴 때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용기 있게 대처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아!, 우리 아이들을 돕고,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구나!”


“아! 나를 위해서 자신을 아낌없이 주신 우리 부모님께 진정한 효도를 하고,

우리 부모님께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구나!”

 

"예수님(병약한 부모님)을 우리 집에 보내주셨구나!" 


효도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길이요,

예수님을 따라서 사람들을 섬기는 십자가의 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24번 거절을 당하면서도 25번째 교도소로 아들을 면회 온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아들 생각, 아들이 마음을 열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서로 얼싸안고

아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 갈망일 것입니다.


이런 아들 사랑이 24번 거절을 당해도

25번째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마침내 아들은, 25번째 만에, 아버지를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맞아들였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가득 품으면 어떠한 수고나 고생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 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1:3


사랑은 오늘의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사람은 어떤 수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랑’

 

▲십자가는 고난 이전에, 사랑

우리는 십자가를 고난으로 이해합니다.

몇 년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상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제로 한 영화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엄청난 고통과 저주로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는 장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시는 장면,

예수님께서 저주의 고난을 받으시는 장면들을 클로즈업 시켰습니다.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이요, 저주요,

고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예수님을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수고요,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중심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고난과 수고와 희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가슴 속에는 고난과 수고와 아픔과 희생보다

더 큰 것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진정한 십자가는 뜨거운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모든 수고를 기쁨과 감격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29:20


라반을 섬겼다는 말은 라반의 머슴이 되어서 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을 자기의 아내로 얻기 위하여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것은 라헬을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 가슴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머슴살이의 고난과 고통을 달게 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수고와 고난을 즐겁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24번 거절을 당해도 25번째 다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슴 속에는 우리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처참한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주와 고난이기 이전에

우리를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초인적 사랑이 어디서 나옵니까?

어머니가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고 힘들게 일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서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한 겨울 냇가에서 맨손 빨래 방망이질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있는 동안에는

식구들을 다 먹이고 자기는 굶을 수도 있으며

손톱을 깎을 수조차 없도록 문드러지게 일할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자녀들이 속을 썩여도,

돌아가신 친정 할머니 보고 싶어서, 친정어머니 보고 싶어서

한 밤 중에 깨어 일어나 울면서도...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어떤 십자가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 다 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십자가를 지는 고난 vs 십자가를 지는 잔치

‘탕자의 비유’로 알려진 오늘 본문은

탕자인 아들을 받아들이는 아버지는

그것을 <십자가를 지는 고난>으로 이해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는 잔치>임을 우리에게 계시해 줍니다.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며 다 허비하고 돼지를 치는 자가 되었고

하도 배가 고파서 아버지 집의 품군이 되고자 돌아온 아들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야 마땅한 탕자입니다.


그의 형님은 그를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형님은 동생을 위한 잔치 자리에, 분노하며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쁜 놈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형님에게 있어서 도저히 봐 줄 수 없는 창피스러운 놈입니다.

형님은, 탕자를 받아들이는 일을, 십자가를 지는 <고난>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탕자를 받아들이는 일을 <잔치>로 이해합니다.

아버지는 이런 놈이 돌아올 때에 상거가 먼데도 달려가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하고 있습니다.

돌팔매질을 받아 마땅한 놈, 더러운 냄새가 나는 자를 껴안고

입 맞추고, 그런 놈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들과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가슴 속에 가득한 아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럽고 냄새나는 아들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고 가장 좋은 것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영광=잔치

바로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십자가 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요12:23

영광 = 잔치 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주와 고난의 십자가를 앞에 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그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저주의 십자가를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는 사랑이 그분의 가슴에 가득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영광으로 받은 것입니다. 잔치로 여기는 것입니다.

  

▲너무 자식 사랑만 생각하지 말고, 위로 부모 쪽을 생각해 봅시다.

부모 효도는, 더러운 것들과 냄새나는 것들을 껴안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들과 제일 좋은 것들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고난의 십자가 일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면

부모효도는 잔치가 되고, 영광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고난의 십자가를 잔치의 십자가로 바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모 효도를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부모 효도가 '잔치'가 되고 '영광'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면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생수의 강 같이 흐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부모 효도의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의 잔치로 만드십니다.

예수님은 수고와 고난을 영광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효도)후에는, 반드시 부활(잘 되고 장수)이 뒤따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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