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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 먼저 있어야 인도함 받는다

LNCK 2008. 12. 8. 21:42

◈임재 먼저 있어야 인도함 받는다.   민9:15-23     설교 녹취, 정리

 

 

◑1. <임재하심>이 있을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다.

 

 

▲먼저 <임재>하시고, 그 후에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먼저가 아니다.

‘임재’가 먼저다.

 

민수기의 성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임재>하신 하나님은

그 다음에 광야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임재가 인도보다 앞선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임재가 없으면, 인도함을 받지 못한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다.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광야 이스라엘처럼, 인도하시기 때문에

구름이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가만히 있지만,

구름이 발행하면.. 반드시 따라 나서게 되어 있다.

 

여러분, 큐티 시간에 임재를 체험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그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뜻을 몰라 답답한 우리들

‘하나님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우리가 이렇게 기도로 질문하면

‘내게로 좀 더 가까이 와 주었으면 좋겠다!’ ... 하나님은 보통 이렇게 답변하신다.

 

‘하나님, 제게 이 문제에 대답 좀 해 주세요!’ 하고 하소연하면

‘먼저 너의 마음을 나에게 좀 주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종종 그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내가 대답을 받기 이전에,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 지시하시기 이전에,

먼저 ‘네가 나와 함께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내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인생에 풀리지 않는 많은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힐 때

‘하나님,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A입니까, B입니까, C입니까?’ 질문할 때

종종 하나님의 뜻이 새카맣게 깨달아 지지 않는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먼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먼저 가까이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재가 없으면, 말씀해 주셔도 못 깨닫는다.

<하나님과 먼저 친밀해 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못 듣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길로.. 우리가 분변도 못 하고, 그 길로 가지 못 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기 전에

먼저 충만하게 임재하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내 길을 인도하시기 전에, 먼저 충만하게 내게 임재하신다.

그런 임재를 만약 오늘 내가 못 느끼고 살아간다면,

나는 오늘날 (열심히 달리고 있을지라도) 사실은 헤매고 있는 것이다.

 

 

◑2.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으로 인도하시는가?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진행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민9:17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유진하고 진행치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진행하였으니   민9:22

 

 

▲우리의 의문

그냥 모세에게, 방향 정해주시고, 지도 그려 주시고,

거리 가르쳐 주시고, 전체 그림을 보여 주셨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어떤 곳은 살기에 좋은 곳 같은데, 하루 만에 떠나라고 하시는가 하면,

어떤 곳은 살기가 나쁜 곳 같은데, 1년을 머물라고 하신다.

왜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가?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을 채택하셨는가?

 

물론 그것은 백성들의 <훈련>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훈련인가? 

 

▲1. 하나님의 임재 훈련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미래 일들을 쫙 한꺼번에 다 알려 주시지 않고,

순간순간, 매일 매일 우리에게 step by step(한 걸음씩) 알려주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 설교 주제가 <임재>라서 그런지,

그 이유가 <임재> 때문이라고 본다.

‘매일 임재 가운데 거하라!’는 것이다.

 

혹시 한꺼번에 다 알아버리면... 교만해지고, 임재를 떠날 수도 있으니까

임재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 걸음씩 가르쳐 주시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왜 미래를 충분히 알려주시지 않는가? - 어거스틴의 대답

“하나님은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 주시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성공을 미리 안다면.., 교만하고 나태해 질 것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미래 실패를 미리 안다면... 실망하고 미리 좌절할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성공도/실패도 미리 알려주시지 않는다.”

 

예수님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성도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마치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마치 오늘 설교가 내 생애 마지막 설교인 것처럼,

하루하루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걸음만큼만 가면 된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시고,

오늘 하루, 하나님의 사명에 충실하시기 바란다.

내일은 또 그렇게 오늘처럼 ‘하루를 마지막 날로’ 살면 된다.

 

▲천국 자동응답기

천국 전화번호 66국에 3927로 전화 걸면

 

‘내년에 일어날 일을 알고 싶은 분은 1번,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은 분은 2번,

앞서 천국 가신 분과 통화를 원하시는 분은 3번,

기타 문의사항 또는 상담천사와 통화를 원하시면 0번을 누르세요.

자기 주민등록번호와 별표를 눌러주세요...’

 

우스개 소리지만 ‘이렇게 내 질문을 좀 속 시원히 알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볼 때가 있다.

 

2. 하나님은 한 번에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그러나 계속 인도하신다.

우리는.. 우리 미래의 일을 한 번에 다 깨닫고 다 알기 원한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일을, 점치듯이 알아맞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고, 한 걸음씩 따라 오라고 하신다.

 

 

성령님은 계속 움직이신다. 계속 따라가야  

LA 모자익 교회 어윈 맥머너스 목사님이 쓰신

「멈출 수 없는 하나님의 운동력 unstoppable force」에서

저는 감동적인 한 구절을 발견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람과 같이 움직이신다.

그가 한 때 불었던 곳을 침묵 속에 남겨두고

성령은 또 새롭게 움직이는 곳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뒤쳐지지 않으려면, 돛을 올려서, 성령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성령님과 함께 우리가 늘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사람은, 절대 한 곳에 안주하지 않는다.

 

 

◑3. 임재가 없음을 고통 느껴야!

 

 

‘하나님의 임재’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가장 귀한 것을 선물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고, 은혜를 주시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선물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특별한 임재하심>이다.

 

▲임재가 없음을 <고통>하십니까?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다.

“영적 생활의 시작은,

바로 내 안에 하나남의 임재가 없다는 것을 <고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영적 생활이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 가운데 임재가 없다면.. 몹시 고통스러워해야 한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시42:1

마치 광야에서 물이 없이 곤핍한 자가 된 것 같이 하나님을 갈망했다고 했다.  시63:1

 

위 시편 기자는, 그렇게 <고통>하고 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주님의 임재를 간절히 갈망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로렌스 형제,「하나님의 임재 연습」

그는 위대한 신학자도 아니요, 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무식한) 한 수도사가 쓴 책이,

그것도 15년 동안 부엌에서 일한 수도사가 쓴 책이,

17세기 때부터 수 세기에 걸쳐 지금까지 수많은 세계 성도들이 애독하고 있다.

 

그는 부엌일을 하다가, 무릎이 아파서,

그 후에는 다른 수도사들의 구두를 수선하는 직임을 감당했다.

그런데 그 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깊이 체험한 사람이었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꼭 큰 일만 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프라이팬의 작은 오믈렛 하나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뒤집습니다.

그 일도 다 끝나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면, 나는 그 부엌 바닥에 엎드려

오믈렛을 만들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그러고나서 일어날 때는, 나는 어느 왕보다 더한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는 데는, 무슨 특별한 비결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똑같은 마음으로, 단순하게, 그것을 연습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로렌스 형제를 통해 얻는 통찰력이 바로 이것이다.

주부들이여, 부엌에서 일하는 순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체험하는 순간이 되시기 바란다.

 

공부하는 학생들이여,

여러분의 책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체험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매일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는 직장인들이여,

여러분의 직장에서, 엎드려 경배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강력히 체험하시라!

 

.............................. 더 읽으실 분 .............................

 

▲성막 위에 임재한 <구름>은 비를 만드는 구름과는 좀 달랐다.

왜냐면 보통 구름은 땅 위에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름이 성막 위에 낮게 머무른 것을 보면,

모양은 구름이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구름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기(임재하기) 원하신다.

①구약의 하나님은

시내산 꼭대기에 구름 속에 머물러 계시다가,

땅으로 내려와 평지의 회막 위에 머물렀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거주(임재)하시기 원하셨다.

 

②신약의 예수님의 성육신도 똑같은 맥락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4

 

여기서 ‘거한다’는 뜻은 ‘텐트를 친다’는 뜻이다.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 텐트를 치셨다. 그것이 바로 성육신이다.

 

③예수님 대신 보내진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로 보건데,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하기 원하시는,

임재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신론자Deist들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이 만물에 전혀 개입하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자연의 이치대로 굴러가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

만물 가운데 임재하고 계시고, 그렇게 하기 원하신다.

 

▲하나님의 임재에는 3가지 차원이 있다.

 

①하나님의 편재하심 omnipresence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다 계신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주님이 거기에 계시며,

내가 바다 끝으로 날개 치며 갈지라도.. 그곳에도 주님이 계신다. 시139

 

②하나님의 내주하심 indwelling presence

우리 속에 개별적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임재하신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우리 속에 지금도 거하고 계신다.

 

여러분의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며

여러분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성전temple인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고전6:19

 

그러므로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친근하게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③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나타나심 manifest of God/Holy Spirit

특별한 경우에, 분명하게, 능력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이때 질병이 낫는 역사도 일어나며, 예언, 환상 등 이적과 능력이 나타난다.

특별히 죄인들이 강한 죄책에 못 이겨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난다.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체험을 했다.

거기서 그는 자기의 죄인 됨을 깨닫고, ‘나를 보내소서’하며 자기를 헌신했다.

 

우리가 성령충만 받기를 사모하는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나타나심’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에게도, 강력한 빛과 함께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가 나타났다.

이때 바울은 회개하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변화되었다.

 

영적 대각성이 일어난 곳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가 나타났었다.

 

오늘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어느 곳에나 계시는 <편재하시는 하나님>이

또한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순간순간마다 <특별히 임재/나타>하셔서

기적, 회개, 회복, 사명 임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기를 소망하자.

 

▲‘나는 도무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없는데요...’

지금 이 예배실 안에는, 우리 귀에 들리지 않지만 수많은 전파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 안테나를 세우면, 그 소리가 잡힌다. 들린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편재하시는 하나님, 내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 그 임재를 나타내기 원하신다.

 

그것을 못 느끼고, 못 듣고, 못 보는 원인은... 주로 나에게 있다.

내가 아직 영적으로 둔감하거나, 회개하지 못한 죄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면 할수록, 그 임재에 더 자주/깊이 들어간다.

 

<08.11.16. 인터넷설교 녹취, 정리    *원제목 : 구름기둥과 불기둥  [주제별 분류] 임재, 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