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마귀를 대적하라 1953

LNCK 2008. 12. 22. 17:33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벧전5:6~14    설교 스크랩



◑1. (사랑, 믿음보다) 마귀의 궤계가 더 심각한 문제


▲‘마귀’ 설교를 하지 말아달라는 사람

고등교육을 받은 한 청년이, 하루는 목사님께 찾아와서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다른 말씀은 다하셔도 마귀가 있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오늘과 같은 과학시대에 마귀가 어디 있습니까?

설령 있다고 해도, 마귀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자 목사님은 곧장 그 청년을 자기 서재로 데리고 가서

‘독약’이라고 써 놓은 조그마한 병을 꺼내어 그 병의 상표를 지워버리고

‘사탕’이라고 기록한 후 그 청년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목사님을 바라보며

“목사님, 독약이라는 말을 지워버리고 사탕이라고 기록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여보게 청년, 성경은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는 마귀가 있다고 말했고,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강단에서 분명하게 마귀를 마귀라고 말해야 되는 것이 옳지 않겠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

여러분, 우리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 우리 믿음의 중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예수님은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아십니까?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대답이 있었습니다만, 스웨덴의 신학자 구스타프 아울렌은

이 모든 대답들을 종합하고 정리한 후에 3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①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은 우리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희생적 사랑을

본받아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은

우리들을 사랑하사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동반하는 사랑이어야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런 하나님의 참사랑을 보여준 모델이므로

우리들은 그 모델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은 이 '사랑의 모델'을 강조합니다.


②두 번째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어떤 사람이 빚을 졌고, 그 빚을 갚을 수 없어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이 이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을 대속이라고 합니다. ‘대신(대) 갚아 주는 것(속)’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 '대속의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③<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마귀의 궤계를 깨뜨리시고 마귀를 멸하셨다>입니다.

-고대교회의 교부들과 특히 어거스틴, 마틴 루터는

이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당시 로마 등 거대한 세력이 마귀적으로 보였나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를 완전히 깨뜨리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신앙은, 위의 세 유형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내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을 깊이 들여다보십시오.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몰라서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①


또는 과거에 지은 죄가 우리를 가로막아서

‘대속의 십자가’를 몰라서, 의롭고 선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습니까? ②


우리들은 주님 뜻을 따라 살고 싶으나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내 속에 악이 함께 있어서

우리의 몸을 죄악 가운데로 끌고 가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③

그 악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죄악 가운데로 끌고 가고자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것이 마귀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귀를 깨뜨리고

우리를 시험에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이 있습니다. 함께 불러 볼까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


   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

   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


   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 되어,

   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

   남을 위하여 당신들의 온몸을 온전히 버리셨던 것처럼,


   주의 사랑은 베푸는 사랑, 값없이 거저 주는 사랑,

   그러나 나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 더욱 좋아하니,


   나의 입술은 주님 닮은 듯하나, 내 맘은 아직도 추하여,

   받을 사랑만 계수하고 있으니, 예수님 나를 도와주소서.


이 복음 송가는 인간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랑의 모델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습니까? ①

과거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②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고 싶은데, 그리고 십자가의 사랑의 삶을 살고 싶은데

나의 욕심과 나의 못난 자아가 나를 가로막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③


바로 이것이 마귀의 계략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지 못하게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들의 욕망과 정욕과 탐욕을 부채질하여

미련하고 추한 인생, 마귀의 인생을 살게 유혹합니다.

 


◑2.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5:7~8


베드로 사도는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자기 몸으로 경험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돕지 않았다면 그는 멸망의 자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1. 마귀에 빠져서 십자가를 지지 말라는 베드로

마16:21~23에는 베드로가 어떻게 사단의 자식이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곧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예고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즉시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간(諫)하였다고 했는데,

원어성경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었다rebuke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책망했습니다.

베드로는 잠시 마귀 편에 섰던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고 돌이키지 않았다면

그는 영영 저주의 사람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미혹하는 마귀

그렇습니다. 마귀는 십자가를 싫어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람들의 지혜와 지식을 따르게 하고, 세상의 인기를 구하게 만들고,

세상의 명예와 자기의 자존심을 바라보며 살게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믿어도... 십자가는 거절하게 만듭니다.


▲2. 또다시 마귀의 시험에 빠진 베드로.. 예수님을 부인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한 것은 마귀가 그를 시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벌써, 마귀가 그를 시험할 것을 미리 예고해 주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눅22:31


밀 까부르듯 한다는 말은 ‘체로 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낱알을 맷돌에 갈아서 체로 그것을 쳤습니다.

그러면 고운 가루는 밑으로 떨어지고 껍데기는 체 속에 남습니다.


사단은 믿음의 사람을 흔들어서

믿음, 소망, 사랑의 고운 가루는 밑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껍데기들만 남게 하려고, 체로 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정말 베드로는 아무 쓸데없는 껍데기만 남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사단은 우리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배신하게 만듭니다.

내가 마귀에 시험에 굴복하면, 절망, 좌절, 미움의 껍데기들만 남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반면교사적 교훈을 심각하게 들읍시다.

오늘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십자가를 거절하도록 시험합니다.

마귀는 희생하는 섬김과 사랑을 미친 짓이라고 비웃습니다.

자기의 명예를 지키라고 속살거립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위해서 분노하고 싸우라고 속삭입니다.

마귀는 우리들을 시험하여 껍데기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파멸시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2번이나 실패했던 베드로 사도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전5:7~9



◑3. 마귀의 작전을 아십니까?


▲1.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혼자 있는> 하와를 찾았습니다.

여러분, 혼자 있으면 시험을 받기 쉽습니다.

마귀는 혼자서 심심하게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마귀는 외로워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마귀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 함께 섬기고 사랑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여러분, 혼자 있습니까? 틀림없이 마귀가 찾아올 것입니다.


▲2. <자세히 바라보게> 합니다.

마귀는 혼자 있는 하와를 찾아와서 어떻게 시험합니까?

마귀는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죄악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쾌락을 줄만 한 것들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자기에게 명예와 자랑과 자존심을 세워줄 수 있는 것들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3. 정욕을 <불일 듯>하게 합니다.

마귀의 세 번째 작전은 우리 가슴 속에 숨어 있는 욕망과 정욕과 탐욕을

부채질하여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욕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 불을 끄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맞불을 놓는 것입니다.

영으로써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내가 매일 성령충만 하지 못하면, 성령으로 불 붙지 못하면,

마귀의 유혹인 정욕으로 불붙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불로, 마귀의 유혹의 불을 꺼야 하는 것입니다.


하와에게 그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듯이, 똑같이 마찬가지로

주님은 오늘 나에게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롬8:13 경고하십니다.

하와처럼 마귀에게 지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듯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4. <집착하게> 만드는 마귀의 작전

어떤 자매가 위장병 때문에 제대로 먹지를 못하여 몹시 허약했었는데

교회에 나와 은혜 받고 병 고침을 받은 후에, 식사를 잘하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남에게 꾸어주었다가 못 받게 되자

마음에 근심이 생겨, 위장병이 재발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식사도 못하게 되니 몸이 다시 허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매의 병이 재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빌려주었던 돈을 못 받게 되자, 예수님이 그 마음에서 떠나가고

오직 받지 못한 돈이 그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자, 마귀가 틈을 타, 그 마음을 억눌렀기 때문에 병이 온 것입니다.


의사들은 우리 질병의 70% 이상이 (영적인)/정신적인 압박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압박은 누가 가져오는 것일까요?

바로 우리를 노리는 마귀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도 틈이 없으면 우리를 시험할 수 없습니다.

틈은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한순간이라도 예수님을 떠나 세상의 어떤 것들에 집착하고

그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마귀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서 틈을 발견하고

우리를 공격하여 병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암벽등반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손톱 끝만한 작은 틈만 있어도, 그것을 붙잡고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리 같은 맨벽은, 아무리 세계최고 전문가라도 못 오른다고 합니다.

틈이 없으니까요!


마귀는 암벽등반 전문가 저리가라 합니다.

우리가 손톱 끝만한 틈만 내어주어도, 반드시 그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절대 마귀에게 틈을 내어주면 안 됩니다.   엡4:27 


그 자매는 다시 예수님을 중심에 모셨습니다.

돈보다도 재산보다도 예수님이 더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돈을 잊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중심에 들어오자

마귀는 더 이상 그 자매를 붙잡아 억압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매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동안에

마귀는 더 이상 그녀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 속담에 “마귀는 언제나 빈둥거리는 자들을 찾아다닌다.” 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한 일 없이, 혼자 빈둥거리기를 좋아하지 맙시다.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마귀에게 밥이 되기 쉽습니다.


▲십자가에서 승리를 믿고 선포합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의 세력을 깨뜨리고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셨습니다. 요일3:8등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면

언제든지 우리들은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떤 시험이 오든지 바로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시험을 물리치시기를 바랍니다.

<2006년, 인터넷설교 스크랩

 

☆관련 글 : 워치만 니  사탄을 저지하는 기도(1)            사탄을 저지하는 기도(2) 


[주제별 분류] 영적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