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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한 알의 꿈 1661

LNCK 2008. 12. 27. 00:27
 

◈겨자씨 한 알의 꿈             막4:30-32                설교 스크랩



▲꿈을 가진 사람, 비저너리

우리는 이러한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을 가리켜서

'visionary' 즉, 비전을 가진 사람,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이 고통의 시대, 이 어둠의 시대에서

주님이 기대하시는 visionary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이 위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 모든 위대한 일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작다’는 현실을 인정하시라

첫째로, 하나님이 쓰시는 그런 꿈을 펼치는 사람이 되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작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작다는 현실, 또 고통스럽다는 오늘의 현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고요?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 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것은 반드시 시련이라는 과정을 겪도록 되어 있습니다.


▲크게 기대했는데.. 별로였습니다.

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에 예수님 따라가기 시작했을 때

굉장히 큰 기대가 있었을 거예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최고의 슈퍼스타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세례요한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의 슈퍼스타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치고, 이 분의 영향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각처에서, 각 지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이 분의 설교를 듣고,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 들어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세례요한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내 뒤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드디어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한 후에, 역사의 무대 뒤로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래서 요한을 따르던 사람까지 이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자, 그러니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굉장한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다녀봐야, 기대만큼 그렇게 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요...

 

▲패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진 제자들에게 ‘겨자씨 비유’를 주시다

똑같은 ‘겨자씨 한 알’의 비유를 다루고 있는 눅13장의 병행구절을 읽어보시면

이 사건 직후에 제자들이 나와서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전도하려 해도 적은 숫자밖에 따라오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 예수님과 제자들, 일단의 무리들, 그들의 영향력은 아주 왜소했습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대와 핍박 앞에 부딪칩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들까지도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여 졌습니다.


‘과연 승산이 있느냐?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 무슨 큰 사건이 있겠느냐?’

제자들은 패배주의와 비관론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제자들을 모아 놓고 예수께서 하신 이야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꿈’ 이야기예요. 왜 그러셨을까요?


겨자씨는 자라난다. 겨자씨는 작다. 그러나 이 작은 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 작다는 현실을 우리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주님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한국인은 ‘작은’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조그만 나라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유달리 큰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름부터 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 국호가 뭡니까? '대한민국'이죠.

우리나라 최고 수반을 뭐라고 불러요? '대통령',

최고 학부는 '대학교, 대학원'

우리나라에서 외국으로 파송 하는 외교관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대사님'


한국의 모든 길들을 보면 다 대로예요. 양재대로, 강남대로, 소로 이런 거 봤어요?

‘소로小路’도 참 아름다운 길을 꾸미고 이름을 붙일만 한데.. 그런 게 없어요.


그리고 다리를 놓아도 다 대교예요. 한남대교, 성수대교, 반포대교...

술을 먹을 때도 '대포' 하여튼 큰 것을 좋아해요.

이것이 어떤 열등감, 자기가 작다는 열등감을 보상하려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것들도 비하시켜요. 자꾸만 작다는 것을 감추려고 그러고,

작다는 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말과 관련 된 것을 연구해 보면

‘작다’는 것은 다 안 좋은 쪽으로 쓰여 집니다.


그런데 말이죠, 사실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해요?

성수대교 건설할 때 작은 나사 하나, 작은 시멘트 하나가

제대로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미국에 우주왕복선이 발사 후 수초 후에 공중에서 폭발한 것도

동체 외벽에 있던 ‘방열용 타일’이 몇 장 떨어져 나가니까,

동체가 그 뜨거운 열을 견디지 못하고, 한 쪽에 불붙은 것이,

전체로 번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보는 눈을 가집시다.

이 작은 것이 소중한 것인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작은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이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고 작은 것 속에서 미래를 볼 줄 아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놓고,

12명, 한줌의 제자들

비관주의와 절망 속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의 꿈 이야기를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위대한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과정을 거친다.

한꺼번에 어느 날 갑자기 커질 수는 없는 것이다.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자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뭐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들어오기 직전에

예수님이 사실은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막4:26~29


자, 열매를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먼저 이 선행하는 비유 속에서 씨가 자라나는 과정을 설명하시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처음에는 싹이다. 그 다음에 는 이삭이다.

그 다음에는 충실한 곡식이 되고 열매가 된다.

그리고 그 자라는 과정을 우리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자라는 과정이 있다는 말이죠.


▲신세대의 보완할 점

종종 저는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소위 신세대, 젊은 세대를 바라볼 때

부러운 면이 많아요. 오늘 젊은 세대는 아주 information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똑똑합니다. 유능합니다. 유망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젊은 세대들에게 늘 실망스러운 것은 뭐냐 하면,

<너무 쉽게 포기해요. 근성이 없어요. 고난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쓰러져요.

그런데 우리 기성세대들은 좀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6.25를 겪는 가운데 고난을 알았기 때문에..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그러나 오늘 이 IMF시절에 (10년 전, 1998년 경 설교임)

우리 젊은 세대가 잘 견딜 수만 있다면, 소중한 것을 배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돌파할 수 있는 힘,

진정 이 IMF 시대를 잘 능동적으로 우리가 처리하고 이긴다면,

오늘의 이 새로운 세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터프 가이'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고난을 견딜 수 있는 근성과 힘을 갖출 때

우리는 또 한 번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작은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그리고 오늘 일시적으로 지나가고 있는 고난의 과정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다.

‘작고 고난에 찬 현실, 이것은 위대한 일의 시작일 수가 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본문의 첫 번째 교훈이었습니다.



◑2. 작아도 생명력만 있으면 OK


▲작은 것 + 생명력

주님은 겨자씨의 이 비유를 통해서

단순히 ‘작은 것의 중요성’만을 가르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것을 대표하려는 의도만 있었더라면, 주님의 교훈에서

‘겨자씨’ 말고도 도구로 쓰일 수 있는 다른 작은 것이 많이 있어요.


자, ‘모래알’도 작은 거구요, ‘먼지’도 작은 거잖아요.

그러나 굳이 겨자씨의 비유를 선택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겨자씨’가 ‘모래’하고 다른 게 뭐예요?

생명력 입니다.


이 겨자씨가 자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비밀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그래서 자라납니다.

처음에 겨자씨, 아주 작은 것. 겨우 눈에도 띨까 말까 한 작은 것.

무게도 1mg정도밖에 되지 않는데요.

이렇게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 까 한 작은 겨자씨.


그러나 그렇게 작은 겨자씨는 자라납니다.

평균 키가 어느 정도 되냐면 1.5m까지 자라납니다.

그러나 어떤 겨자씨는 3m이상도 자란대요.

나무가 희귀하고 잘 안 자라는 지역에서.. 굉장하죠?


3m이상 된 나무가 가지를 펼치고,

거기에 새들이 날아와 앉는 이 거대한 나무에로의 성장이,

작은 겨자씨. 눈에 띌까 말까한 작은 겨자씨로부터 시작됩니다.


▲복음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도대체 주께서 뭘 얘기 하시려고 합니까?

겨자씨의 생명력. 주님은 그것을 복음의 생명력에 비유하고 싶어 하셨던 것입니다.


복음의 생명력. 복음이란 뭘까요?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가 Good news, 복음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예수가 생명이시고 예수가 능력이십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족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런 불평을 했을지 몰라요.

‘예수 따라 다녀 봤자 예수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뭐 별로 다른 거 생기는 것도 없지 않느냐...’


그런데 여러분 예수를 과소평가하면 안돼요.

기독교의 최대의 자산. 우리의 최대 자산. 우리 인생의 꿈. 우리의 소망.

우리의 반석. 우리의 능력. 우리의 모든 것.

그것은 예수가 모든 것이 되는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 가운데도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이 있을지도 몰라요.

‘이거 뭐 교회 나와 봤자 수지맞는 게 있느냐?

오늘같이 이렇게 비 오는 날, 이 수지地名 산 구석까지 와서, 수지맞는 게 있느냐?’

이런 생각을 하실 분 있을지 몰라요.


밤낮 예수. 예수. 하는데, 그 예수가 누구이십니까?

골로새서를 공부해 보면, 골로새서의 대 주제. 골로새서의 단일 메시지.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모든 것이다"

"예수가 충만이시다. 예수가 모든 것이 되신다"


▲예수가 생명이십니다!

예수를 모신 사람은, 자기 속에 생명을 잉태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새 일을 기대하십시오.

새 일을 계획하십시오. 새 창조를 꿈꾸시고, 한 걸음씩 옮겨 나가십시오.


‘예수가 생명’이므로

예수를 모신 사람은, 항상 생명력으로 넘치며,

날마다 새 일을 시작합니다.



◑3. 겨자씨 한 알의 꿈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 울창한 나무가 될 때,

나의 가지를 펼칠 때 새들이 사방에서 날아오리라.

그들에게 나는 안식처를 제공 하리라.


새들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리라.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노래를 주고, 꿈을 주고,

그리고 축복을 나누는 인생, 나는 그런 인생을 기어이 살고야 말 것이다.’

이런 ‘작은 겨자씨의 기대’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청소년 시절, 이런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날 제가 당연히 해야 할 것 때문에 칭찬받는 자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그 일, 이상의 일을 함으로써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후에 그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링컨이 변호사가 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어떤 것인 줄 아십니까?

그는 자기 마을에 가난한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소송을 하지 못하고 있던 어떤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그를 찾아가 무료 변론을 제의합니다.


그리고 그는 변호사가 된 기념으로 처음으로 무료 변론을 시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일기 가운데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나는 오늘 틴에이저 시절에 내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오늘 처음으로 해 볼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의 그 이상을 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참 마음이 기쁘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사43:19~20


뻔히 될 일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상식이요, 이성입니다.

믿음은, ‘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를 믿고,

‘광야에 물이, 사막에 강들이 생기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새해에 ‘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를 믿고’,

그 일에 대해, 주님과 함께 하는 주님의 동역자가 되시는

‘겨자씨 한 알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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