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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역사의 중심

LNCK 2009. 1. 5. 23:05

https://www.youtube.com/watch?v=sfk2qFW3amI 

◈역사의 중심                 렘46:27~28         2008.12.14. 설교 녹취

 

▲자기가 <역사의 중심>임을  깨달은 이스라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하셨고, 거룩한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그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는 계획을 세워두셨다.

 

그러나 겉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전혀 특별한 민족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강대국들 틈 속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는 고난의 민족으로 보인다.

너무 기구한 민족적 운명을 가진 것 같다.

 

이스라엘 주변에는 항상 강대국들이 일어났다.

애굽이 일어나고, 아람이 일어나고, 앗수르와 바벨론이 일어났다.

마치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의 엑스트라’처럼 보이고,

주변의 강대국들이 다 ‘역사의 중심’인 것처럼 보였다.

 

앗수르가 일어났을 때는, 앗수르가 가장 중요한 나라인 것처럼 보였다.

애굽이 일어났을 때는, 애굽이 가장 중요한 나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강력하게 일어나 근동 세계를 통일했을 때는,

바벨론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인 것처럼 보였다.

 

도무지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들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는줄 알지 못했다.

애굽, 바벨론, 앗수르가 역사의 주역처럼 보였지만,

사실 역사의 주역은 따로 있었다.

한없이 약해 보여도, 이스라엘이 그 주역이었다.

 

역사의 중심 흐름 mainstream은 하나님의 구원계획(구속사)이고,

그 구속사의 중심에는, 연약한 이스라엘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구속사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수 천 년 동안 계속 진행시키셨다.

 

결국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시고,

메시야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이루셨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세계역사의 중심흐름이었다.

 

아기가 첫돌을 맞이하면, 성대한 잔치를 벌이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돌잡이’다.

(돌잡이 : 첫돌에 돌상을 차리고, 아이로 하여금 마음대로 골라잡게 하는 일)

 

돌잔치, 돌잡이에 있어서 주인공은 단연코 어린 아기다.

그런데 사실 아기는, 너무 어리기 때문에, 그것을 전혀 파악 못 한다.

자기가 돈을 잡는지, 연필을 쥐는지, 아무 것도 사실 기억 못한다.

 

너무 어리면, 자기가 주인공인줄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 주변에 모인 많은 어른 하객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고,

자기는 ‘엑스트라’인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자기 신앙이 너무 어리면 ‘돌잔치 주인공’처럼 될 수 있다.

자기가 구속사의 주인공이지만, 전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돌잔치에 초대되어온 어른 하객들이 주인공인줄 알고, 잔뜩 주눅 들어 살아간다.

 

 

▲역사의 주인공

여러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란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게 변하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성도들을 괴롭히고,

우리 성도가 아무리 어려운 궁지에 몰린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담으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도록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주역들, 역사의 중심들이다.

 

세상은 힘 가진 자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돈 가진 자가 시대의 주역처럼 보인다.

정치적으로 우세한 나라가 역사의 주역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도가 중심부에 있지 않고,

역사의 변두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렘46:27~28절 본문이 그것을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포로로 잡혀가도 구출(구원) 받는다.↙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히, 걱정 없이 거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렘46:27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 웃음거리, 약소국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통해 메시야, 예수님이 탄생하게 하시고,

결국 세계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다.

 

▲창세기 때부터 계획된 God's design

이 사실을,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을 불러낼 때부터 분명히 밝히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12 :2~3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되는 아브라함을 복의 통로로 부르셨다.

그들을 통해 모든 열방을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12:3

 

이 예언은 유대인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극대화 되어졌으며,

오늘날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이다.

 

▲세상에 유명한 것 별 것 아니다. 다 지나간다.

쿠바에 가면, 그 유명한 노벨상 작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기념관이 있다.

그가 <노인과 바다>를 집필한 해변을 가보니, 정말 지금도 당장 산티아고 노인이

황새치를 잡으려고 배타고 떠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가 한적할 때, 자주 들렀다는 술집도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헤밍웨이는 그 술집에 들러, 하루에 약 10잔 정도의 독주를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는 맨발로 하바나 시내를 어슬렁거렸고,

그러다가 환락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60세까지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엽총 자살로 자기 생을 마감했다.

 

그 술집 벽에는, 한 쪽 벽 전체에 새카맣게 방문자들의 싸인이 그려져 있었다.

‘칠레 대통령 다녀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왔다가다’를 위시해서

세상의 많은 유명인사들이, 헤밍웨이를 기리며, 그 집에 왔다갔다는 친필이 있었다.

 

제가 거기서 많은 싸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수많은 유명인사들이 와서 벽에 싸인을 남기고 갔지만,

사실 그들은 아무도 역사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들은 다 지나갔고 pass away 죽었고, 헤밍웨이도 다 지나갔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 떠나가지만, 역사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께서

이 역사에 남기신 싸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역사를 통털어 가장 중심사건, 십자가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저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라는 놀라운 싸인을 남기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역사가운데 남기신 놀라운 표식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가장 중심 인물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역사의 가장 중심 사건이다.

 

세상에 정치 일번지(워싱턴)가 중심이 아니라, 경제 일번지(뉴욕)가 중심이 아니라,

(그 일번지는 항상 변했다.)

역사의 중심지는 바로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였다.

‘여기가 온 역사의 중심지다’는 싸인을, 하나님께서 남기셨다.

또한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하며 내려온 ‘교회’가.. 바로 역사의 중심지다.

 

 

내가 하나님 역사의 중심지인 교회 속에 있고,

그 중심 사역인 구원을 누리고 있고,

구원을 증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역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우리 하나님의 특별한 보장을 받게 된다.

‘너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공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것은,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계속 이어 나가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나라의 역사는, 시대가 지나면 사라지거나 바뀌고 했지만

교회의 역사는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특별한 보장'이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하나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공도로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렘46:28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나라들은 다 사라졌다.

앗수르도 사라졌고, 바벨론도 사라졌다.

애굽은 아직 남아있지만, 아주 형편없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한 때 세계를 지배하며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나라들은

시간이 지나자, 다 사라지거나, 중심권에서 벗어나고 말았다.

 

그러나 역사의 중심에 있던 하나님의 사람들은 절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다.

하나님은, 역사의 중심에 있던 하나님의 교회와 그 백성들을 붙드시고,

보호하시며,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부담이기도 하다.

세상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하나님이 내버려두신다.

그런데 역사의 주인공들은, 그 역사의 중심무대에서 조금만 벗어나기만 하면

절대 그냥두시지 않으셨다.

 

앗수르를 통해서, 역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셨다.

조금만 벗어나면, 이번에는 애굽을 들어서, 자기 백성들을 치셨다.

그래서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많이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하나님은 더 강력한 세력들을 동원하셔서 치셨다.

징계하셨다.

그래서 다시 역사의 중심 가운데로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섭리하고 계신다.

내가 너를 공도로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렘46:28  

 

애굽, 앗수르, 바벨론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역사의 주역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을 연단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하셨다.

 

그래서 교부 오리겐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악을 만들어내지 않으시고, 악에게 지배당하지도 않으신다.

다만 자신의 선한 뜻을 위하여, 악을 이용하실 뿐이다.”

 

이 땅에 악이 존재한다. 그 악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악을 보고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절대 악에게 지배를 당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한국의 앗수르와 바벨론

우리나라도 일제의 압박, 이어서 북한의 등장으로 계속 어려움을 당해왔다.

최근에 북한은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하나님이 만드신 악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악들을 사용하셔서

그 백성들이 하나님 역사의 중심권으로 이동하도록

그들의 징계/연단/훈련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것이 우리 민족이, 이스라엘처럼, 특별히 고난이 많았던 이유이다.

 

 

▲사업이 어려워서 원망하던 사람

어떤 청년 성도가 많은 돈을 주고 복숭아 밭을 샀다.

여러분, 농사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청년은 열심히 기도하며 복숭아 농사를 일구었다.

 

그래서 열중하다보니, 주일도 차츰 빼먹게 되었다.

열심히 땀 흘린 결과, 복숭아가 잘 익어서 이제 곧 수확을 내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찬 서리가 예년보다 일찍 내렸다.

그래서 복숭아 열매가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청년은 울상이 되어서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저는 그런 잔인한 하나님을 믿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서리를 내려서, 제가 애지중지 키운 복숭아가 다 떨어지게 만드셨거든요!”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자네 복숭아보다, 자네를 더 사랑하시네!

하나님은 물론 서리가 없어야.. '복숭아'가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

그러나 서리가 없이는.. '인간'이 잘 자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계셔.

하나님은, 복숭아 키우는 것보다, 자네를 키우는 데 더 관심이 있으셔!”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바로 그 청년이다.

내 사업이 어렵다고 하나님 원망하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관심은, 내 사업 성장보다, 나 자신의 성장에 있는 것이다.

나를 역사의 중심에 바로 세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시련을 주시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역사의 중심에 바로 세우기 위하여, 시련을 주신 것이다.

세상적 시각으로 보면, 미국경제 때문에 한국경제가 어려운 것 같지만, *2008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구속사적 시각으로 보면, 한국교회를 훈련시키기 위해, 미국까지 들어서 사용하신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모든 연단과 징계를 기꺼이 잘 받는다.

‘주님, 그렇군요. 그래서 앗수르, 바벨론을 사용하셨군요.’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의 중심으로 속히 되돌아온다.

 

그런데 만약, 아직까지도 애굽, 앗수르, 바벨론을 탓하며 원망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깨닫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계속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면

앗수르, 바벨론이 절대 물러가지 않는다. 

주님께서 정하신 목적(연단)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은,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그 길로 나아간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은,

가급적 십자가를 피해간다. 쉬운 길로만 가려 한다.

 

예수님은, 일평생 십자가를 목표로 계속 전진하셨다.

그러나 역사의식이 없었던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겠다는 예수님을 한때 ‘꾸짖었다’.

 

사도바울도, 일평생 십자가를 목표로 계속 전진하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로마를 향해, 죄수의 신분까지 불사하고, 나아갔다.

이 하나님 나라를 보는 역사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 이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에스더도,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오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던 것이다. (후략)

 

<08.12.14. 허원구 목사 설교 녹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