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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질투심이 없는 모세

LNCK 2009. 1. 6. 22:14

◈질투심이 없는 모세              민11:11~35           2008.12.14.설교 녹취

 

▲‘당장 죽여 달라’는 모세의 간구와, 그 청원을 들어주지 않으신 이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11:11~15

 

물론 하나님께서는 ‘죽여 달라’는 모세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그를 죽이지 않으셨다. 왜?

 

그것은 모세의 본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죽고 싶을 정도로 심하게 괴롭습니다..’가 모세의 본심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죽고 싶다’고 투정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창조적 대안을 제시해 주신다.↙

 

 

◑1. 분담과 동역을 지시하신 하나님

 

▲70인의 장로를 세워서, 짐을 분담하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에 네가 알기로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민11:16~17

 

모세에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똑같이 임하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거의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70명이나 더 탄생하는 것이다.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마음 포함)을,

70명 지도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부어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역을 서로 나누어 하도록 조치하셨다.

 

▲하나님은 동역과 분담을 기뻐하신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11:25

 

하나님은 동역과 분담을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렇게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협력해서 일하신다.

영원 전부터, 천지창조 때에도, 주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동역하시고, 협력하셔서 일하신다.

 

모세의 과로,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불평과 투정(죽여주세요)에서

하나님이 제시하신 해결책을 다시 한 번 요약하면

 

①중간지도자 middle leadership 들을 세워라

②그들과 사역을 분담하라 ... 이다.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11:25

그 이유는, 70명이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라는 임직의 표시로,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증거로... 예언을 했다.

그러나 '예언자'가 그들의 사명이 아니므로, 예언을 그쳤다. 더 이상 할 필요 없었다.

 

 

◑2. 질투심이 전혀 없는 모세

 

▲하나님의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모세의 태도가 너무 아름답고 훌륭하다.

자신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부어졌던 것과 동일한 은사가,

70명에게 동일하게 임하여 그들과 함께 동역하는 것,

그 하나님의 해결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겸손한 사람’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이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가 힘들다고 (모세처럼) 하나님께 하소연할 때,

하나님이 주변에 동역자들을 세워서, 그 일을 분담하라고 하시면,

그들을 세워서, 함께 일하기를 거부하고,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서 놀라운 포용성을 발휘한다.

모세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 해결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가 기쁘게 그 해결책을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바로 그 다음 절에 나온다.↙

 

그 70명 장로 명단가운데 있는 자 중 엘닷, 메닷 두 사람이 진영에 머물고

장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영이 임하였으므로 진영에서 예언한지라 11:26

 

두 사람이 ‘겸손해서 지도자 직을 사양’했던 것일까?

아니면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부주의해서’ 회막에 나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두 사람이 모임에 나가지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성령이 임해서, 그들이 자기 진camp에서 예언을 했다.

 

이때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건의했다.

‘저 두 사람이 사사롭게 예언하지 못하도록 멈추라고 명령하십시오!’ 11:27~28

 

여호수아는, 아마도 모세의 권위가 약화될까봐 염려했던 것 같다.

엘닷, 메닷의 권위가 강화되면서, 모세의 지도력이 흔들릴까봐 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 진에서 예언하는 것을 금하라고, 모세에게 건의했던 것이다.

 

이때 모세의 아름답고 감동적인 대답이 다음과 같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9

 

보통 사람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여호수아야, 너 밖에 없다. 과연 너야말로 진짜 내 편이구나!’

 

그러나 모세는 과도하게 충성하는 여호수아를 오히려 책망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9

 

하나님이 모세를 높이 들어 쓴 그의 자질이 만약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모세는 시기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사람이었다.

 

여러분, 영적지도자들에게 무서운 유혹이 있는데, 바로 ‘시기심’이다.

제가 ‘무섭다’ 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나도 모르는 시기심이 숨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다. 지도자에게 다가오는 최후의 유혹이 <시기심>이라고!

많은 영적 훈련과 연단을 거쳐, 성숙한 영적지도자로 세워졌다 할지라도

마지막 관문인 ‘시기심, 질투심’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알려진 바, 리비아 사막에서 훈련받던 유명한 성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사탄의 부하들이 이 성자를 넘어뜨리려고 갖가지 유혹을 다 시도해봤는데,

모두 다 꽝이었다. 이 성숙한 성자는 전혀 넘어가지 않았다.

 

사탄이 답답했던 나머지 직접 나섰다.

‘너희들이 쓴 방법은 너무 유치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 나를 봐라!’

이렇게 말하고는,

사탄이 그 성자를 찾아가 귀에다 대고 이렇게 살짝 속삭였다.

‘네 동생이 최근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단다!’

 

그러자 성자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하면서..,

 

그 성자에게 숨어있는 시기심을 자극했을 때,

이 성자가 영성이 흐트러지면서, 몹시 흔들리더라는 것이다.

 

▲지도자의 생명력은.. 다른 사람을 세울 수 있느냐/없느냐에 달려 있다.

또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동일하게 충만하게 되어

지도자로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 지도자의 생명력이 여기에 달려있다.

 

모세는 아름답게도 <넘기기 힘든 유혹을 쉽게 넘었다.>

하나님의 영이 70명에게 동일하게 임해서

자기와 동일하게 쓰임 받도록... 기뻐하며 동의했다.

 

그런 하나님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많이 방황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72명의 지도자들 때문이었다. (70+모세+아론)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약3:16

For where you have envy and selfish ambition,

there you find disorder and every evil practice. NIV

 

공동체가 혼란스러운 이유가 무엇인가?

표면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 꺼풀을 들추어보면

그 이면에는 시기심envy과 자기 야심selfish ambition이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게crab를 담은 양동이에는 뚜껑이 필요 없다고 한다.

게가 한 마리 바깥으로 나가려고 하면, 다른 게가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속 역사가 바로 이 게의 성질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 공동체/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성경에 나타난 시기심의 치명적 결과

-시기심으로 동생 아벨을 쳐 죽인 가인

-레아와 라헬의 아기 낳는 경쟁, 형제간의 시기심

-요셉의 형들의, 요셉에 대한 시기심으로 동생을 팔아넘겼다.

 

-사울왕의 비극은 시기심에서 비롯되었다.

시기심만 아니었으면 이스라엘 역사에 매우 좋은 왕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유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기한 때문이었다. 마27:18

 

▲성경에 나타난 시기심 극복의 아름다운 예

-오늘 본문 민11:29, 모세의 예

-여호수아를 떠받든 갈렙의 예

-다윗을 선대한 요나단의 예

-예수님이 흥하여야 하겠다고 말한 세례요한의 예

-바울을 세우고 뒤로 빠져 준 바나바의 예

 

▲적용

-때로는 나를 통해 은혜 받던 성도들이, 다른 사람을 통해 은혜를 받게 될 때

시기하지 말고, 축복해 드리자. 세례 요한이 그랬다.

 

-내가 저평가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그를 통해 복음이 전파할 때... 기뻐하는 마음을 갖자.

 

사도바울은, 자기가 갇힘을 통해, 잘 되었다며 다툼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감옥 안에서 바라보고 오히려 기뻐했다. 빌1:17

 

-우리는, <나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역은 관심이 많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역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다.

이것은 나의 시기심 때문일 수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언젠가 교회에서 집회가 은혜스럽게 잘 끝났다.

많은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고, 충만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까지 충만하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 날 설교자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약간의 질투심)

 

영적지도자들도, 자기를 통해 사역이 일어나면.. ‘크게’ 기뻐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사역이 일어나면.. ‘조금’만 기뻐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글 : F. B. 마어이 목사의 넓은 마음   주1)

 

-그러므로 집에서 나와서 교회 오는 길에

주변에 다른 교회가 보이거든, 진심으로 축복기도 하면서 오시기 바란다.

‘하나님, 이 교회도 부흥하게 해 주시고, 그 목사님도 더 잘 쓰임 받게 해 주소서!’

 

<08.12.14. 설교 녹취                       

 

.....................................................

 

▲그냥 생각

* 1973년, 여의도 빌리그래함 집회, 또한 엑스플로(복음 폭발) 대회를 거치면서

CC* 선교회가 한국 전체를 먹여 살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선교회의 방향이 '전도해서 남 주자' 였습니다.

전도해서... 결신자들을 각 지역 교회에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CC* 선교회도 차츰 자기 세력/자기 성도들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역교회들이, 성도/헌금 뺏긴다고 생각했는지.. 막 핍박했습니다.

'너네가 무슨 교회냐?'며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이나 대세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CC* 선교회가 자기 세력이 강해 질수록

신기하게도 전국에 영향력을 파급하던 그 파워는.. 점점 더 줄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영향력이 점점 줄어져 갈 즈음에, 바통을 이은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새벽을 깨우리로다'로 전국에 바람을 일으키며, 다니셨습니다.  

 

영적 힘을 점점 잃어가던 지역교회/성도들이

그 목사님의 단비의 공급을 받아 점점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은 자기 교회를 다녔지만, 설교는 카세트 테이프를 신청해서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그랬습니다. (아마 1985~1995사이)

 

그렇게 전국에 성령의 바람을 일으키시며 다니실 때

그 목사님의 자기 교회 규모는 형편 없었습니다.(남양만 시절)

 

그런 것이 힘드셨는지, 수도권에 나오셔서 남들처럼 지역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그렇게 자기 교회가 점점 커져 갈 때, 전국의 교회가 동반 성장할 수도 있고,

또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교사 모금을 할 때,

자기 모금은 힘들지만, 남의 모금은 10배로 쉽다고 합니다.

'날 도와주세요'는 힘들지만, '저 분 도와줍시다'는 말은 10배로 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금실적도 훨씬 더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상황이 어렵다면, 이런 대안을 생각해 봅니다.

위에 언급한 두 분의 사례처럼,

<자기 교회> 제쳐놓고, <남의 교회> 살리는 데 앞장서는 것입니다.

그게 부흥되는 데는 10배로 쉽다는 것입니다...

 

전도가 어려운 이유가, 너무 <우리 교회> 강조하니까, 진저리 내는 것 아닙니까!

 

 

*안타까운 것은,

요즘은 위의 두 분 같은 분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이런 것 신경 쓰지 않고, 뛰어다니시는 분 말입니다.

자기를 따르는 부대가 없으면, 아무래도 억울해서 그럴까요?

남들에게 생색을 낼 수 없어서 그럴까요?

 

또한 자기 교회 목회를 하면, 자기 교회 목회도 버거운데,

어떻게 전국을 휘저을 수 있겠습니까?

 

한 10년 동안 그 바턴을 놓쳐 버렸는데, (침체 시기와 일치)

이제 그 잃어버린 바턴을 찾아서 달릴, 주의 종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자기 교회> 신경 쓰지 않고, 전국과 세계를 휘젓고 달릴 사람 말입니다.

열심히 전도/양육해서 남 주는 분 말입니다.

그게 10배로 쉽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휫필드가 그랬고(순회 사역자)

휫필드와 웨슬리가 동시대 인물로 활동했는데,

휫필드는 무조직으로, 웨슬리는 조직으로 부흥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적 흐름은 휫필드가 계승했고,

할레 대학, 진센돌프 등 경건주의 성령운동 흐름은 웨슬리가 계승했습니다.)

 

챨스 피니, 빌리 그래함도 자기 교회가 없었습니다.(자세히 모르지만, 초~중기에)  <편집자

 

.........................................................

 

주1) F. B. 마이어 목사의 넓은 마음

 

F. B. 마이어 목사님이 영국 런던에서 목회하실 때, 런던에는

기독교 역사상 제일 설교를 잘 하시는 스펄전 목사님과

웨스트민스터 교회 캠벨몰간 목사님이 함께 활동하셨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잠시 미국에 가서 사역을 하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몰간 목사님과 친구 사이였던 마이어 목사님은

그 분이 미국에 있는 동안 그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몰간 목사님이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을 때,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몰간 목사님이 미국이 있을 때에는 기도하기가 좋았는데,

서로 같은 도시에서 일하게 되니까,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게 되더군요.”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에 다른 목사님에 대한 시기심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스펄전 목사님처럼 설교에 인기를 얻지 못하고,

몰간 목사님처럼 권위 있는 목회를 하지도 못하는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마음에서 이 시기와 질투를 없애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시기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이 기도하는 마이어 목사님 마음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네 기도를 바꾸어라. 질투를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서 축복의 기도를 해라.’

 

그런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부터 마이어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하나님, 스펄전 목사님과 타버너클 교회에 큰 복을 주옵소서.

또한 캠벨몰간 목사님과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큰 복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부터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가 가득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마이어 목사님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몰간이 목회하는 교회에 큰 복을 주셔서 사람들이 가득 메워지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남거든 우리 교회에 보내 주시옵소서."

 

그 후부터 이 세 사람은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세 교회 모두 크게 성장했다고 합니다.

해외 선교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강원도나 제주도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 주변에 있는 교회, 속회, 선교회, 성가대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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