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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전도는 사랑으로 한다 1685

LNCK 2009. 1. 9. 10:21
 

◈전도는 사랑으로 한다        요13:34~35           인터넷설교 녹취



▲「나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이 2008년에 출간되었다.

미국의 기독교 전문 리서치 기관인 바나 연구소에서

지난 3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미국에 있는 비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이 본 기독교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한 결과를 책으로 만들었다.


비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에 대해 비호감을 가지는 이유 6가지가 나타났다.

(비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의견을 참고할 필요 있다.)


①가장 첫 번째 비호감은 기독교인들은 위선적이라는 것이다.

늘 말씀을 인용하고, 가르치고 하지만, 실제 삶은 자기들과 별차이 없더라는 것이다.


②기독교인들은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

자기들이 마치 어떤 목표가 된 느낌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과 교제를 하면, 자기를 (무슨 실적의/자기 성취의)

목표 대상으로 삼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기를 정상적인 친교대상으로 맺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교세 성장의 목적으로 자기에게 친절히 접근하는 것이... 비호감이라는 것이다.


③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

비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하나의 성향으로 생각하는 반면,

기독교인들은 동성애 문제만 나오면 열을 올리는데..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④기독교인들은 너무 안일하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기독교인들은 항상 옛날이야기만 하고

사고방식이 (극)보수/근본주의적이다.


⑤기독교인들은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권력지향적이다.

권력을 잡은 인사들과 친하려고 하고, 항상 그쪽 편에 선다.
또한 성공에 관심이 많고, 언제나 성공한 사람 편에 선다.
(이건 역사적 전통)


⑥기독교인들은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비판적이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②기독교인들은 전도에만 열을 올린다는 것에 대해서이다.


즉, 사랑은 없이 전도만 하는 경우,

영혼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뒷전이고, 교세성장을 위해 경쟁적으로 전도하는 경우

비기독교인들이 매우 비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자기를 진정 사랑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데,

그들 입에서 ‘교회만 가자, 예수만 믿으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교회에서는 거의 핍박 수준으로 전도하라고 다그친다.

‘전도 대상자 작성해서 제출하라’ (물론 우리교회도 그렇게 한다.)

이런 시스템이 잘못 시행되면,

바깥에서 보기에 ‘무슨 실적을 올리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다.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부족한 가운데,

무조건 사람들만 데려와서 교인 숫자만 늘리면 된다는 식의 전도는

장기적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말을 꺼내서도 안 되고, 옳은 말도 절대 아니지만

‘내가 목회자/교회/구역장의 개인적 성취를 위한 도구/희생이 되는 구나’

이런 턱도 없는 오해를 사게 되는 것이다.


교회, 교회마다, 교세성장을 위한 전도를 경쟁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은 약화되면서

전도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호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기독교인들이 보는 기독교인들은

자기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고 전도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로 

그렇게 잘못 비춰지게 된 것이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진정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내 속에서 정말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솟구치지 않으면,

전도하러 뛰어나가기 전에

그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사랑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세상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고 말씀하셨다. 요13:35


여기서 말씀하신 ‘사랑’의 첫 번째 의미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사랑’이라 본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해서 기도하고 전도할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줄 인정하게 된다.


더 이상 ‘교세 성장, 교회 부흥’을 위한 전도는... 안 된다.

비기독교인들에게 이상하게 비춰질 뿐이다.

오직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순수한 마음으로만 전도해야 한다.

‘나를 자기 교회 교인 만들려고 저러는 구나’ 하는 마음은 안 된다는 것이다.


▲전도집회는 나를 점검하는 시간

이런 의미에서 매년 시행하는 전도집회를 통해

‘내게 영혼에 대한 사랑이 과연 뜨거운가?’를 점검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평소에 뜨거워서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싸늘하게 식어져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분들은, 매년 다가오는 전도집회 기간을 통해서

그런 싸늘하게 식은 자기 영혼을 재점검하고, 돌이키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전도하기 이전에, 그것부터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자기가 행복한 사람이 전도한다’(#1683)고 말씀을 나누었다.

자기가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전도 못 한다고 뒤로 나동그라지지 말고,

이번 기간을 통해 자기를 점검해야 한다.


모든 기기의 점검이 완벽하게 끝난 다음에, 비로소 비행기가 창공으로 이륙하듯이

전도하려면 먼저 자기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어느 부분에 고장 나 있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고쳐야 한다.

전도는 영혼이 최상의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심령부흥회를 통해서.. 자기 신앙을 정비했듯이

오늘 우리도 전도집회를 통해서.. 자기 신앙을 재점검해야 한다.

‘전도 안 된다, 힘들다’고 말하지 말고,

그런 상태에 처한 나 자신을 점검/재정비한다는 의미로서도

이렇게 ‘전도집회주간’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요약하면, <전도집회주간>을 가지는 의미는

-잃어버린 영혼을 전도하고, 초대하는 의미도 있지만

-전도를 못하는 내 영혼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재정비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눅15:25~에 소위 ‘탕자의 비유’가 나오는데, 그 핵심교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큰 아들에게는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형이 말했다. 자기는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다고...

일면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다.

그 형의 결정적 문제가 무엇인가?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잘 다니는 신자들의 모습과 같다.

그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특별히 교회 생활에 하자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그런 교인들에게 결정적인 하자가 있는데,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형’과 똑같은 문제이다. 


더욱이 형은, 탕자가 돌아와 아버지가 잔치를 베푼 것에 대해 너무너무 화를 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온 것 자체가 싫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교회에 ‘탕자 같은 비천한 영혼들이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끼리끼리 모이기 좋아하는 기성교회의 단면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형은 ‘내가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거늘’ 말했지만

사실 아버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농사 잘 짓는 것일까, 아니면 집안을 잘 관리하는 것일까?

- 그것은 나가서 잃어버린 동생 찾아오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는 ‘내가 아버지의 명을 어긴 적이 없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런 ‘형’의 모습은 눅18장에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새인의 모습과 일치된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고...’

그래서 자기가 아버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으로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하나이다’하는 하자가 자기에게 있음을

스스로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이 없을뿐더러 ‘잃어버린 영혼’들을 경멸하는..

엄청난 영적교만의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교회 바깥이 아니라, 교회 다니는 교인들 중에

그런 ‘형 or, 바리새인’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십일조 드리고, 교회 행사/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겠지만, 결정적인 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무관심하고, 심지어는 경멸할 때... 그렇다.


오늘 우리도, 아버지의 진짜 소원을 모르고 신앙생활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진짜 소원은 ‘잃어버린 네 동생 찾아와!’이다.


지금 오늘 내게는 ‘잃어버린 동생’이 혹시 있지 않은가?

찾아서 데려 와야할 그가 누구인가?


▲지금 한국에, ‘교인 수’보다 ‘교회 다녔던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지금 교인 수가 10이라면,

과거에 한 번 교회 다녔던 사람인데, 지금은 안 다니는 사람이 11+라는 것이다.


바깥에 나가 전도를 해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다녔다’고 말한다.

새가족으로 등록하고 간증을 할 때도, 대부분 ‘과거에 교회를 다녔었는데...’ 한다.

수많은 탕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전도의 기회가 늘려 있다.


▲전도를 해서 교회에 데리고 와도.. 문제다.

교회에 ‘탕자의 형,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면,

전도해서 새신자가 교회에 들어와도, 정착하고 배겨내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도주간에 우리 교회가 ‘사랑의 공동체’인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지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다지만, 적어도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점검해 나가도록 하자.


<08.08.21. 인터넷 설교 녹취, 축약                                      [주제별 분류] 전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