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돌이키라 눅15:11-24 설교 스크랩
◑사실 과 반응
▲사실10%, 반응90%
심리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사실>은 단 10%만 영향을 미치고,
그 사실에 대한 나의 <반응>이 90%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키가 작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는 90%는, 그 사실에 대한 자기 <반응>입니다.
키가 작아도 떳떳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키가 작아서 죽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반응>을 잘 못하면 자살합니다.
외국과 한국의 연예인, 명사들이 유독 자살률이 높은 것은,
한 때 높았던 인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항상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기 때문이죠.
인기가 없는 사람은 인기가 없어서 고민,
인기가 너무 좋은 사람은 인기가 떨어질까봐 고민.., 사실 이것도 심각한 고민입니다.
정말 인생은 자기 마음먹기(반응)에 달려 있는데,
자기 마음 다잡기, 그게 쉽지 않거든요.
▲우리나라 성인 4명 가운데 1명이 1년 동안 한차례 이상
자살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10월의 건강길라잡이>에 따르면 (이 설교는 2003년도)
성인 여자의 경우 28.9%가, 남자는 18.7%가 자살을 생각해 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고생의 14.6%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살해야 할 사람은 성경에 나오는 ‘탕자’입니다.
이 둘째 아들은 지극히 불효막심했습니다.
아버지의 생전에 자기 몫의 유산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고,
결국 그 돈을 가지고 외국으로 멀리 떠났습니다.
거기서 재산을 낭비하며, 방탕하게 지내다 결국 거지가 되어 쥐엄열매를 먹었는데,
소, 말, 돼지처럼 비참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쥐엄열매는 현재 이스라엘서 카롭 나무에 열리는 꼬투리입니다.
주로 돼지, 소, 말의 사료로 쓰이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라비아인들은 이것을 먹으며, 소금물을 달게 하는 성질이 있다고 합니다.
탕자는 인생의 밑바닥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작 영향은 10%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반응>입니다. 그것이 자기 미래 삶의 90%를 좌우합니다.
만약 이대로 좌절하고 자신을 저주한다면,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택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상을 저주하고, 다른 사람을 해하며,
악인으로 변질될 소지도 많습니다.
◑탕자는 <반응>이 탁월했습니다. <돌이켰습니다>
▲탕자는 스스로 돌이켰습니다(17절). 그 결과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반전됩니다.
자신의 신분을 회복하고, 다시 사랑받는 아들이 되었습니다(22-23절).
아버지와 그 집안의 종들이 즐거워하며 잔치하게 되었습니다(23-24절).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최고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변화될 수 있었습니까?
스스로 돌이킨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도대체 어떤 것이 스스로 돌이키는 것일까요?
구약에서는 이것을 ‘슈브’라고 합니다.
이것은 ‘돌이킨다’는 뜻으로 진정한 <회개>를 의미합니다.
‘돌아온다’의 뜻도 됩니다.
▲1. 자아 인식의 변화 눅15:18-19
스스로 돌이키는 것은 ‘자아인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비로소 자신을 죄인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8
그는 하늘 아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임을 비로소 깨달은 것입니다.
사실 그는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12절을 보면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버지의 재산을 당당하게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먼 나라로 떠나갔습니다. 자신만만한 태도입니다.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다스림을 떠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성공하겠다는 것입니다.
두려울 것도 겁날 것도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사람이 자아인식에 있어서 스스로 돌이켰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지극히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아들이면서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
아들 됨을 감당치 못할 황송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자기 비움과 자기 낮춤입니까?
이런 경지에 이르기까지 도를 닦는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스펄전의 한 제자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관해 스펄전 앞에서 설교했습니다.
그는 설교를 극화시켜서, 갑옷을 입고서 성령의 검을 휘두르며 외쳤습니다.
"이제 마귀는 어디 있습니까? 다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에 스펄전은 "마귀는 그 갑옷 안에 있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인의 자리를 저버림으로써
사탄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진실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어떤 변장이라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럴 듯한 영적인 언어와 교회에서 받고 있는
높은 평판의 껍질 밑에 감추어진 우리의 참 모습은 오직 죄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피로써 정결함을 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예화 출처: 개인 부흥 / 스탠리 보크>
▶이 탕자는 성공해서 돌아온 것입니까 아니면 실패해서 돌아온 것입니까?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 탕자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집을 나갈 때의 그 아들 그 모습 그대로 온 것이 아닙니다.
비록 겉은 거지가 되었고,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가져왔지만,
인간이 되어서 왔지 않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속사람이 달라져서 온 것입니다.
▲2. 아버지에 대한 믿음의 변화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15:20
스스로 돌이킨다는 것은 삶의 영역을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옮긴다는 것입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아버지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하기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맞아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적어도 그분은 아들로는 아니어도 품꾼의 하나로는 써 주실 줄을 믿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못을 박은 불효자인데도,
아버지께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용기 이상의 대단히 중요한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믿음이 그를 일으켰습니다. 그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그의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만약 자기를 여전히 맞아줄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아니 아버지가 계산하고 용납지 않을 분으로 알고 있었다면,
아니 적어도 자기가 행한 대로 갚는 분인 줄 알았다면
결코 이 아들은 발길을 아버지께 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 갚아드릴 어떤 소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도 자기를 받아주지 않고 아버지도 자기를 용납지 않는다면
반사회적 암적 존재가 되거나 자실할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믿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버지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감격하고 고마워하고 기뻐한 이유입니다.
그래도 자기를 끝자락에서 붙잡고 돌아온 아들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부자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것입니다.
▶그랬더니 아버지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0
아버지는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거리가 먼데도 알아보셨습니다.
몰골이 형편없이 변했을 것인데, 귀공자가 거지가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측은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달려갔습니다.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자기를 아버지로 믿어준 그 아들의 귀향이 고마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안길 하나님 아버지의 품입니다. 스스로 돌이키기만 하십시오.
절망의 그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십시오.
거기에 눈물로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가 출판사의 <작지만 소중한 이야기>에서 인용했습니다.↙
스페인의 시민전쟁이 전국에 걸쳐 맹렬하게 번지고 있었습니다.
정부군이 한 마을을 탈환했습니다.
그 때 어느 건물의 한 모퉁이에서 가슴에 심하게 총상을 입은
적군 병사 한명이 죽어 가면서 안타깝게 소리쳤습니다.
"제발 죽기 전의 제 마지막 소원이니 내게 신부님을 모셔다 주세요. 제발."
이 소리를 들은 군인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지옥에나 떨어져라. 나쁜 놈!"
그러나 그의 동료 중의 어떤 군인이, 적군 병사의 애절한 호소에
안타까운 마음을 이기지 못해, 그의 부탁대로 급히 신부를 찾아 모셔 왔습니다.
신부는 죽어 가는 적군 병사에게 몸을 기울여 물었습니다. "고해할 것이 있소?"
그러자 그 적군 병사는 겨우 입을 열어 간신히 말했습니다.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곳 성당의 주임신부님이십니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적군 병사는 신부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습니다.
고해성사를 마친 신부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신부의 온 몸에서는 식은 땀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고해를 털어놓았기에, 신부가 비지땀을 흘린 것일까요?
그러나 고해를 마친 신부는, 침착하게 군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형제들이여, 이 부상병을 집안으로 운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오."
죽어 가던 적군 병사는 신부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 신부님이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나를..."
그러자 가까이 있던 군인 한 명이 말했다. "당연하지 않아? 신부이니까!"
그러자 병사가 숨을 들이쉬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내손으로 32명의 신부를 살해했습니다.
마을을 침략할 때마다 사제관을 뒤져서 총, 칼, 몽둥이로 다 죽였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사제관을 뒤졌으나 신부를 찾지 못해
신부의 부모와 형제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분이 이 죄 많은 나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저주하는 자들을 위해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는 새로워집니다. 전심으로 스스로 돌이킵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로 거듭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3.08.03. 조ㄷㅊ 목사님 설교 스크랩, 축약
................................. 관련 글 ................................
▲인생의 10%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로 이루어지지만,
인생의 나머지 90%는,
<그 일에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고 선택하는 가>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신다고 믿지만,
우리 인생의 90%는,
<내가 어떻게 선택하는가, 또는 반응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고 믿지만,
나의 선택에 따라, 내 미래가 (더 많이, 90%) 좌우되는 면이 있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어도
인간이 배의 돛을 어느 방향으로 조정하는가에 따라서
돛이 동쪽을 향하면, 배는 동쪽으로 가고
돛이 서쪽을 향하면, 배는 서쪽으로 간다...
▲믿음은 번지 점프와 같다.
번지 점프를 하면, 그냥 떨어져 죽는 것처럼 하염없이 떨어진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에, 자신을 매고 있는 생명줄이 딱 붙잡아 준다.
그 스릴이란!
하나님의 약속에 (번지 점프처럼) 우리 자신을 무모하게 던지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영원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는 저축된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15:16
이 말씀은, 죄가 저축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사랑과 인자가 크셔서, 죄인을 단 번에 심판하지 않으시지만
만약 단번에 심판하신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는 차곡차곡 저축된다.
그래서 그것이 어느 지점에 다 찼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다.
다행히 탕자는, 어쩌면 더 막장에 가기 전에 돌이켰던 것이다.
정말 자기 죄가 더 저축되고 쌓였더라면
더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주제별 분류] 죄, 복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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