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자 - 그 성경적 의미 마19:12 02.03.28. 여러 자료 편집,
지금은 출처가 다 휘발되고 없음
※이 내용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보다, 독신이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합니다. 결혼과 독신은 절대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독신은 무조건 나쁘고 불쌍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성경에 비추어 보면,
성경은 결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구와 한국에서는 독신자들이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 주택 공급 물량이 계속 늘어나는데도 이사철만 되면 주택이 부족한 이유는,
늘어나는 독신자의 수요가 단단히 한 몫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사회적 통념은.. 독신자에 대해서 그다지 좋지 못하다. (2002년 당시 상황)
결혼만이 완전한 삶이라는 관념이 거의 모든 사회에서 고착되어 있다.
독신자single adults에 대해 성경은 과연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있는가?
◑1. 사별한/이혼한 독신자
▶1. 성경에 나타난 미망인(이하 성경의 용어인 ‘과부’로 씀)
①사르밧 과부-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특별히’ 멀리 시돈 땅의
사르밧의 과부에게 보내셨다(왕상17:8-24).
그것은 과부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나타낸다.
②선지자 생도의 아내로 과부된 자-하나님은 엘리사 선지자를 보내어
기름이 넘쳐 나는 기적을 통해 그 빚을 갚도록 도와 주셨다(왕하4:1-7).
역시 하나님은 과부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하신다.
③룻과 나오미-그들은 모두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도와서 쓰러진 가문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메시야 계보에 올려주셨다.
④홀아비widower 된 에스겔
하나님은 에스겔의 사랑스런 부인을 빼앗으셨다(겔24:16).
또한 그것을 슬퍼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렇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유대인들이 사랑하는 예루살렘을 잃는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부차적으로, 하나님은, 에스겔이 사명을 더욱 잘 감당하라고,
배우자를 잃는 것을 허락하시고, 독신으로 사역하도록 명하셨다.
이런 예외적 경우도 있다.)
⑤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하나님은
결혼도 하지 말고, 자녀도 낳지 말라고 하셨다. 렘16:2 (*예레미야는 미혼 독신에 해당 ◑2)
그렇지만 여선지자(눅2:36)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했다.
⑦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의 예
-두 작은 렙돈을 헌금한 과부,
-나인 성의 과부(그녀의 아들을 살려주심),
-불의한 재판관을 괴롭혔던 과부(끈질긴 기도의 여인).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과부에 대해 대부분 좋게 평가하셨다.
언제나 후한 점수를 주신 셈이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하지만,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는, 대부분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 전통 유대 사회의 과부 박대
전통적 유대 사회에서는 과부들은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
남편이 없이는 법적 권리 행사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는 수數에 치지도 않았으니 여자 혼자서는
‘가정’이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불이익이 따랐을 것이다.
성경에는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적으로 두루 나온다.
(사1:17, 10:1-2, 렘7:6-7, 겔22:7 등 이외에도 여러 곳에 두루 있다)
이것은 그만큼 과부들이 어려움을 겪으며 살았다는 반증이 된다.
신약시대에도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과부들의 재산을 삼켰다. (막12:40, 눅20:47)
이와 같이 과부에 대한 박대는 <모든 시대에> 걸쳐 있었다.
▶3. 구약 성경(율법)에 나타난 과부보호법
①수혼법=계대결혼법(신25:5-10)
과부가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으면,
죽은 남편의 형제가 그 과부를 취하여 자녀를 낳게 된다.
그들 관계의 아들은 죽은 남편의 아들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죽은 남편의 재산이 보호되며, 동시에 과부가 보호되는 셈이다.
수혼법을 거절한 형제는 사회에서 수치를 당했으며,
수혼법인 경우에는 근친상간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②과부들은 재혼할 권리가 있었다.
룻이 재혼했고,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도 남편이 죽은 후에 다윗과 재혼했다.
③(고아와) 과부에 대한 핍박은 하나님께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었다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출22:23-24)
시중에 장애인은 법으로 보호받게 되어 있다.
상해치사 사건이 났는데 그 대상이 장애인이면 엄하게 가중처벌 받는다.
(보통사람이 장애인과 싸우면 법적으로 매우 불리함)
비슷하게,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에 대한 핍박을 매우 엄하게 다루신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에 대해 친히 복수해 주신다(신10:18).
④과부에 대한 경제적 배려
*추수 후에 과부들은 남은 이삭을 주울 수 있었다(신34:19-21).
*매3년마다 그 해 소산물의 십분의 일은 과부, 고아, 나그네, 레위인 위해(신26:12).
*과부들의 의복은 전당잡을 수 없었다(신 24:17).
*과부에 대한 재판은 억울케 하면 저주를 받는다(신 27:19).
*하나님은 과부의 밭 경계선을 지켜 주신다(잠 15:25).
▶신약 초대교회의 과부 보호
①예루살렘 교회는 헬라파 과부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조치를 취했다(행 6장).
이것은 7집사를 선출하는 계기가 된다.
②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는 죽었다가 베드로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역시 과부에 대한 사도와 교회의 지극한 관심을 가리킨다.
③바울도 과부의 재혼을 인정함;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7:39
“주안에서만” - 이 단서는 과부들에게만 적용된 특별 제한 규정이 <아니다>.
미혼 남녀 역시 주안에서만 결혼해야 했다.
그러므로 과부들은 완전한 결혼(재혼)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고전7:40
바울은 과부의 보호를 위한 재혼을 허락했지만 독신으로 살 권리를 또한 권고했다.
④바울은 디모데에게 참 과부를 도와줄 것을 권고했다.
이들을 도와주지 않는 자는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했다(딤전 5:8).
(참 과부의 조건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었음. 성경을 참조 바람. 딤전 5:9-16).
⑤야고보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 경건이라고 강조했다(약 1:27).
겉으로 보기에 경건하게 보여도, 과부를 돌보지 않는 것은 참된 경건이 아니었다.
▶마치는 말
과부를 포함한 독신자는 하나님에 의해 특별 보호(=사랑)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성경의 위대한 일꾼들 중에 독신자 출신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
이 사실은 독신자를 은연중에 무시하는 우리의 사회적 통념에 찬물을 끼얹는다.
◑2. 미혼 독신자
독신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쓰임 받았던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온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저는, 독신자를 쳐다보는 눈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예수님의 인정
사람들은 “차라리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마 19:11)
태어날 때부터 결혼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태어난 소위 ‘독신의 은사’를 인정하셨다.
모태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독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들어서 된 고자도 있고,
또 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19:12
위 구절의 고자(Eunouchos)에 대한 헬라어 사전을 찾아보니,
우리가 원래 아는 ‘궁중 환관’의 뜻을 포함해서, 이런 뜻이 있었다.
one naturally incapacitated : 태생적으로 결혼생활, 자녀생산이 불가능하게 태어난 사람
for marriage, begetting children
one who voluntarily abstains from marriage : 자기 스스로 결혼을 절제하는 사람
그러니까 당시에 고자(Eunouchos)라는 말은, 오늘날의 ‘독신’이라는 말이다.
매우 광범위하게 쓴 말이었다. 결혼 안 한 모든 사람을 Eunouchos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①태어날 때부터 독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고자>도 나는 마른나무라 말하지 말라....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라. 사56:3-5
고자는 자식이 없는데, 하나님은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이름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②사람이 만들어서 된 독신
옛날 임금의 궁궐을 지키는 신하(내시)들은 인위적인 거세를 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인위적 거세를 금하는 분위기다(신 23:1).
③하늘나라 때문에 스스로 독신된 사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자신의 결혼을 포기한 사람.
하늘나라의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데 부양가족이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포기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사람이 주님께 드리는 것 중에 <가장 고귀한 헌신>이 독신celibacy이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시행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독신celibacy은 본래 좋은 목적을 지닌 제도이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사람은 받을 지어다(마 19:12)
어떤 사람은 결혼의 책임과 스트레스를 두려워서 독신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아직 ‘미혼’이지, ‘독신’이 아니다.
독신은 하나님께 받는 은사이다.
그들은 결혼보다는 독신 생활이 더 편하게 느껴지도록 타고난 사람이다.
예를 들어, 혼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계속 결혼하고 싶어지고,
주변에 결혼한 사람이 부러워진다면...
이런 사람은 나이가 50이 지났어도 ‘미혼’이지 ‘독신’은 아니다.
독신자는 대개, 자신의 독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는 강한 확신이 있다고 한다.
▶성경에 나타난 천국을 위해 일한 독신자들
*아벨 - 최초의 독신자로 여겨진다.
*미리암 - 학자들은 대체로 독신으로 추정한다.
*예레미야 - 예언자의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독신으로 살았다.
하나님은 그에게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지 말라고 명하셨다(렘 16:2).
결혼해서 처자식을 엄청 고생시킬 바에, 차라리 결혼하지 않은 것이 더 나았을까?
*에스겔 - 아내를 잃은 후, 다시 결혼했다는 말은 성경에 안 나온다.
*다니엘 - 그의 일생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결혼했다는 말은 안 나온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그가 독신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년 때 잡혀왔으며
후손에 관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안다.
*세례요한 - 역시 결혼하지 않고서 자기 사명에만 충실했다.
신약 성경의 주요한 인물 4명중에 베드로만 빼고
예수님, 바울, 세례요한은 모두 독신이었다.
*예수님 - 당시 시대적 금기를 깨시고 많은 자매들을 동역자로 쓰시고 가까이 하셨지만
결혼하진 않으셨다.
*바울 -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그는 독신으로 사역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고전7:7
- 이 말씀은 종종 육체적 차원으로 이해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범주를 넘어서 사역적 범주로 이해함이 옳다.
무조건 바울처럼 “독신으로 살아라”기 보다는,
바울처럼 독신으로서 “보다 더 열심히 사역하게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바울의 독신관은 다음 두 가지다;
①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대로, ....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고전7:17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7:20
②바울은 결혼도 잘 하는 것이지만 독신은 더욱 잘 하는 것이라고 권면했다. 고전7:38
바울은 여기서 금욕주의적인 독신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독신을 옹호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 섬기는 독신이 소중한 것이지, 무조건 결혼 안 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그는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다. 물론 성도는 모든 시대에 그렇게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강조한 것은 주님을 섬기고 헌신함에 있어서의 독신이다.★
그런 사람은 부르심(독신 소명, 또는 독신 은사)이 있다고 한다.
*열처녀의 비유는 은연중에 처녀(독신)임을 나타낸다.
-2천년 교회역사에 이 비유에 은혜 받고
처녀로서 주님을 기다리기로 결심했던 자매들이 꽤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외 대부분 사람들이 사실은 독신/기혼 사실이 명확히 구분되어져 있지는 않다.
예수님과 바울의 제자들도 수 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동행한 것을 볼 때
그 중 상당수가 독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후에 결혼한 경우도 있을 것임.
▶마치는 말
①결혼과 독신은 그 어느 것도 더 우월한 것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성경에 나온다.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하며, 단지 부르심을 받는 차이에서 각자는 다르다.
결혼이 당연히 인정받는 것처럼, 독신 은사도 당연히 인정함이 옳다.
②오늘날 현대 사회의 현실은 좋건 싫건 독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독신’(은사)은, ‘미혼’과 다른 것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을 위한 독신이다.
자기 자유로운 삶을 위한 미혼과 구분해야 한다.
이런 독신자는 결혼이 도리어 장애가 될 수 있다.
(자기에게도 장애지만, 무엇보다 결혼한 상대자에게 큰 재앙을 준다는 것을 명심하고,
억지로 끌려가서 결혼해선 안 될 것이다.
나중에 지루한 결혼 생활로 파탄 나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파멸시킬 수 있다.)
③어쨌든 독신에게도 삶의 공허함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소명을 발견하고 더욱 헌신하는 일에
자신을 던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공허함을 이기는 길이다.
④사별한 독신자나 이혼한 독신자도 독신 은사를 받을 수 있다. 에스겔처럼.
◑독신, 망각해 버린 성령의 은사
스테펜 밴터슬(Stephen Vantassel)
▶개신교회가 독신 은사에 대해 소홀히 취급하는 이유
①종교 개혁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 - 루터로부터 시작된 성직자의 결혼 유산.
마르틴 루터가 카톨릭 교회의 독신 성직 제도를 공격한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독신 제도는 개신교 국가에서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
종교 개혁의 후예로서 개신교가 종교개혁자들의 패턴을 따른다는 것은
그리 놀랄 바가 아니라고 하겠다.
②독신 목회자들은 가정 문제 상담을 할 수 없다고 보는 분위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목회자가 부부 생활 경험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독신 사제 제도에 대한
중세의 옹호 논증을 반대로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당신이 5백 년 전에 태어났다면 하나님께 자신을 바쳐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마 예수님이나 바울처럼 독신이어야 했을 것이다.
반면 오늘날은 영적 사역을 수행하려면 아마도 결혼을 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알콜 중독자를 돕기 위해서는 알콜 중독의 경험이 있어야 하나요?”
대답은 물론 “아니오!”다. 마찬가지로 가정문제 상담 위해 꼭 결혼할 필요는 없다.
바울과 예수님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가족 문제에 관한 효과적인 가르침을
완벽하게 줄 수 있었다는 사실만 우리가 기억하면 될 것이다.
또한 독신 목회자들도 가정에서 자라났으며,
형제자매 간에 여러 가지 경쟁의식과 아픔,
즐거움이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가정생활을 이해하고 있다.
③ 독신이 불완전하다는 “편견” 때문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인종, 성, 경제적 지위, 교육 수준 등의 차이가
흔히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갈라놓는다.
편견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은사를 지닌 사람들 간에도 분열이 발생한다.
독신 생활을 경시하는 편견 때문인지,
결혼한 그리스도인들은 종종 독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④ 성관계를 너무 우상화하는 사회 풍조의 영향 때문이다.
성적 희열을 최고의 행복과 동등시하는 우리 사회의 경향을 감안하건대,
독신 생활을 향한 하나님의 고요한 부르심에 귀 기울이려고 하는 자가
별로 없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성생활은 필요하지만, 삶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결혼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성생활을 너무 요란하게 논하다보니 우리는 독신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말았다.
우리가 독신을 하나의 은사로서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의 신학적인 마당이 사회의 문화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단적인 증거이다.
⑤ 독신이 성적인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주장 때문
독신은 결혼한 목회자들에 비해 성적인 죄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신/기혼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이지,
마치 독신만 그런 유혹을 많이 받는 것처럼, 차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신 여성선교사에 대한 바른 시각을 찾아서
-독신여성선교사의 간증, 이ㅇㅎ (중동지역 선교사, 펀 글)
▶독신 여성 사역자의 고유한 부름을 인정해야 함
독신 여성 사역자와 부부 사역자는 서로가 받은 부름이 다르고,
서로에게 맡겨진 사명이 다르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서로간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논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며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배우자를 찾는 것이 우선하면 안 됨
독신으로 있을 때 사역자로 소명을 받은 사역자는,
무엇보다 먼저 독신으로서의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기도를 통해 발견하고
그 사명에 몰두해야 한다. 독신으로 있을 때 부름을 받았다면,
일단 현재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독신으로 일하기를 기대하고 계신다고 믿고서 사역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독신 사역자들이 선교지에 와서,
자신이 맡은 사역보다도 결혼 상대자를 찾는데 우선권을 두어
<마치 결혼하지 않으면 맡은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하고,
무엇을 하던지 배우자 찾는 일과 연관지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를 독신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주위 분들, 스트레스 주지 맙시다! ★
사실상 사역지에 있는 어떤 부부 선교사들은 독신 여성사역자들을 보기만 하면
‘먼저 결혼을 해야지...’, ‘시집을 못 가면 애child라는데...’
‘또는 결혼 못할 무슨 말못할 사정이라도 있나?’
등의 비상식적인 발언/또는 상상으로
독신 여성사역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독신 여성사역자들의 소명과 사명에 대한 가치를 땅에 곤두박질치게 하며,
은연중에 독신 사역자들이 부부선교 사들보다
어딘가 열등하다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처사는 독신사역자를 부르신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편견이 앞서는 현실
만약 독신 여성 선교사가 감정적으로 불규칙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면,
그것은 독신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요구되는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못함으로 빚어지는 경우이다.
이런 불규칙한 감정의 균형을 부부선교사는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독신 여성사역자는 하루의 사역을 끝내고 지쳐 돌아왔을 때에도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차려놓고 기다려주는 동역자가 없다.
하루의 긴장을 풀어 줄 수 있는 어린 자녀의 재롱도 없다.
독신 여성사역자는 하루의 피곤한 일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그 때 겨우 밥을 하고, 이삼일 전에 준비해 놓았던 남은 음식을 먹어 치워야 하는 일이 많다.
부부 사역자들은 이러한 독신 사역자들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는
‘독신들은 고집이 세고 문제가 많다, `오죽하면 시집도 못 갔을까...’ 등의
그릇 되고 편협한 판단으로 비판하며, 가능하면 접촉을 멀리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비교 자체가 성립 안 됨
역할 면에서 독신 여성사역자와 남성 사역자를 비교하는 것은
마치 쟁기와 삽을 비교하는 것과 같다.
다르게 지음 받아 다르게 쓰임 받는 서로 비교될 수 없는 도구이다.
따라서 회교도의 사회와 문화의 테두리에서 피할 수 없는
독신 여성선교사의 사역의 한계성과 남성선교사의 사역의 한계성도
또한 서로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쌍방이 다른 면에서 서로 한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결혼한 남성 사역자가 회교도 여성을 대상으로
(설사 부부 동반으로 한다고 해도) 사역할 수 없듯이,
여성사역자가 남성을 대상으로 사역하는데도 마찬가지로 제한을 받는다.
▶독신 여성 사역자의 장점
①자녀가 없으므로 소도시, 오지도 OK
소도시 교회개척이라는 과제를 놓고 볼 때,
부부 사역자들은 자녀교육문제 때문에 섣불리 소도시로 사역지를 옮겨
교회개척 사역을 시도할 수 없는 반면에,
독신 여성사역자들은 주님께서 사명을 주셨다고 확신하는 대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험한 선구자의 길을 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②여성이 더욱 접근하기에 유리한 사역들
매일 사무실에 출근을 하여 종일 밖에서 보내야 하는 사역도 독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 밖에도 캠퍼스 사역이라든가 기독교 상담사역,
기독교 문서번역 사역, 문화원 운영사역, 문맹퇴치사역, 개인전도사역, 교회개척사역 등
독신 여성사역자들이 종사하고 있는 많은 귀한 사역들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
③부드러운 이미지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수양관의 사역을 이끌기 위해서는
지역의 관리들과의 잦은 만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남성사역자의 존재는 위협적인 인물로 대두될 수 있다.
반면에 독신 여성사역자는 그들에게 위협적인 인물로 대두되지는 않는다.
사역자 측에서는 여성이기에 더 부드러운 접근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비교하지 맙시다.
사역에 큰 일, 작은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중요한 사역, 중요치 않은 사역이 있을 수 있는가?
몸의 지체 중 중요치 않은 지체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한 것을 논하는 것부터가 주님을 머리로 한 전체 선교 사역의 큰 그림에 대한
기본 적인 이해부터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독신자 사명을 인정해 줍시다.
하나님이 한 독신 여성사역자를 사역지로 보냈을 때에는
그곳에 독신으로서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 있기 때문임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독신 여성사역자들은 독신으로 할 수 있는 맡겨진 일에 우선권을 두어
최선을 다해 주를 섬기는데 먼저 열심을 다해야 할 것이다.
(http://www.bauri.org/database/p_data_single_2.htm 에서 스크랩, 요약했으나, 지금은 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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