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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보는 눈, 들을 귀를 주소서 1691

LNCK 2009. 1. 13. 21:27
 

◈보는 눈, 들을 귀를 주소서            막4:1~12           설교 녹취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막4:9



◑‘들을 귀’를 가졌던 다윗


다윗에게는 ‘들을 귀’가 있었다.

①그는 양떼를 치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대자연 속에서도, 자연(일반은총)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8:9


②다윗은 자기를 대적하는 자의 입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듣는 귀>를 가졌다.


그가 압살롬에게 쫓겨서 예루살렘을 떠날 때,

시므이가 나타나서 ‘비루한 자여’ 하며 저주했다.

그러자 모든 신복들이, 저 개 같은 자를 처치하자고 간언했지만

다윗은 그 대적의 입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분변하려고 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삼하16:11


우리 역시, 다윗처럼, 듣기 싫은 소리, 나를 비방하는 소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듣는 귀’를 갖게 되자.


③그가 엄청난 죄를 짓고 은폐했을 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그에게 보냈다.

나단 선지자가 처음에는 비유로 말했다. 그 때는 즉시로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자,

다윗은 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겸허하게 들었다.

 

그리고 즉시 엎드려 회개로 돌입했다. 참으로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단 선지자까지 해하고, 입을 막았을 것이다.)


▲들을 귀가 있어서, 말씀이 내 귀에 들리면... 살아난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여러분, 혹시 지금, ‘나는 도저히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포자기 하시는가?

살 길이 반드시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나사로도 벌떡 살아 일어났다.



◑말씀은 감추어져 있다.


▲일을 감추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  잠25;2

하나님은 종종 진리를 살짝 감추어 두신다. ‘공개된 비밀’이랄까?

그래서 들을 귀 있는 사람만 듣고, 보는 눈이 있는 사람만 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를 모두 다 준비해 놓으셨다.

그러나 종종 감추어져 있다. 때가 될 때까지 그렇게 하신다.

때가 되면 우리 눈과 귀를 여셔서, 깨닫고 발견하게 하신다.

우리가 준비되었을 때, 또는 하나님의 때에.. 그 감춰진 것을 열어 주신다.


성경을 읽어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 닫힌 말씀(못 깨닫는 말씀)이 있다.

어제까지 닫혀 있던 말씀이, 오늘 내게 열릴 수도 있다.

작년까지 닫혀 있던 말씀이, 금년에 내 눈에 환하게 들어올 수 있다.

아무리 들어도 못 깨달아지던 말씀이, 어느 날 내 귀에 확성기처럼 들릴 수 있다.


때가 되고, 상황이 되고, 우리가 받을 준비가 되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에게 말씀을 열어주신다.


일을 감추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감추신다고도 볼 수 있다.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광이다... 감춰진 말씀을 찾아내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이렇게도 이 구절을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본문은 ‘말씀’을 포함한, 하나님의 전체 섭리를 설명하는 듯...)



◑내 눈과 귀가 열려야 한다. 


말씀은 감춰져 있으면서도, 열려져야 한다.

위에서 <말씀은 감춰져 있다>고 했는데,

더 정확히 말하면, 말씀이 감춰진 것이기 보다는, <사람들의 눈과 귀가 감겨 있다.>

그래서 말씀이 감춰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씨뿌리는 비유를 가르치시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비유로 하십니까?  막4:10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막4:11~12


위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예수님이 사람을 차별해서, 바리새인들 같은 일부 ‘안티’들에게는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도록 무슨 비밀번호를 설정해 두신 것처럼

감출 목적으로 ‘비유’로 설명하셨다... 라고 오해될 수 있다.

그래서 예정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처럼...


이 말씀의 배경인 이사야 6장을 보면,

성전 문지방 터가 흔들리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이 ‘누가 나를 위해서 갈꼬?’ 하시고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한다.


바로 이때, 하나님이 이사야를 파송하시면서, 주신 말씀이다.

‘내가 너를 보내는데, 너는 각오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네가 아무리 외치고 전하여도 백성들이 안 듣는다.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은 깨닫지 않는 백성임을 미리 알고 가거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사6:9


이것은 <그런 거부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필연적 예언> 이라기보다는

그 정도로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기 자녀 얘기를 하면서

“얘가 도통 말을 안 들어요...” 하면,

진짜 말을 안 듣기를 바란다는 뜻도 아니요, 무슨 예언도 아니다.

‘말을 안 듣는 안타까운 심정’을 표현한 말이며,

더 나아가 ‘말을 잘 듣기를 부모가 바란다’는 심정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위 난해한 구절의 원래 목적은

‘결국은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달아라’는 뜻이다.


마음이 완악한 종교지도자들, 또한 그들처럼 마음이 닫혀 있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보고, 듣고 깨달아라’고 비유로 설명해 주시는 것이다.


▲내 눈과 귀가 열려져야 한다.

그런데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무리 쉽고 단순한 말씀이라도

때가 되고, 내 눈이 열리고, 내 귀가 열려야..

그 말씀을 내가 깨닫게 된다.

어느 순간, 비유가 자기 가슴에 확 뜨겁게 깨달아진다.


과거에 이사야를 보내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예수님까지 보내셨다.

그러나 상황은 똑같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완악해서, 보기는 보아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다.


아무리 쉽게 전한다고, 영적 진리가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며,

아무리 어렵게 전한다고, 영적 진리가 안 깨달아지는 것도 아니다.

눈과 귀가 열린 사람은.. 그것이 다 깨달아지고

눈과 귀가 닫힌 사람은.. 아무리 쉽게/어렵게 해도.. 여전히 안 깨달아진다.


<예수님의 비유가 쉽냐/어렵냐>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 아니고,

<눈과 귀가 열렸느냐/닫혔느냐>에 포인트가 있다고 본다.

열린 사람은.. 아무리 오묘해도 깨닫지만

닫힌 사람은.. 아무리 쉬워도 못 깨닫는다.


▲종교지도자들은 비유로 하건/안 하건.. 예수님의 말씀을 못 깨닫는다.

눈과 귀가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눈과 귀가 열려서

그 말씀/비유를 깨닫기를 원하신다.

때로는 직접 말씀하시고, 때로는 비유로 말씀하시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그들이 눈과 귀가 열려, 말씀을 깨닫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직접 말씀하시고, 안 되면 비유로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시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말씀/믿음의 세계로 초청하신다.


요약하면,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막4:11~12


이 말씀은 말씀을 들어도/비유를 들어도 못 깨닫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고 있다. 그들을 저주하신 말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눈과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직접 말씀하시든지/비유로 하시든지.. 우리가 말씀을 깨닫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우리 눈과 귀가 열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면.. 영혼들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데,

그 말씀이 귀에 <들리는 사람>이 있고, <안 들리는 사람>도 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위기’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

회복되고, 살아나고, 치유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백배로 열매 맺는다.


그래서 금년 2009년을 시작하는 우리의 기도제목은

<말씀을 깨닫는 눈과 귀를 갖자>는 것이다. 주님께 그것을 구하자.

보기만 보아도 알고, 듣기만 들어도 깨달아, 돌이켜 죄사함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영혼이 다 살아난다.

다윗이 그랬었다. 보기만 보아도 알았고, 듣기만 들어도 깨달았다...

 

 <09.01.13. 인터넷 설교 녹취/정리                                                     [주제별 분류] 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