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8

언약을 믿는 신앙

LNCK 2009. 1. 28. 12:08

◈언약을 믿는 신앙                       살전4:16                설교 녹취

  

▲약속과 언약

성경에는 약속이란 말도 나오고, 언약이란 말도 나오는데...

  약속 promise’은 쌍방이 동일한 조건에서 서로 계약하는 것으로서,

세상의 모든 협정이나 계약은 ‘약속’이다.

쌍방이 서로 조건을 가늠해보고 자기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약속한다.

  

언약 covenant’은 일방적으로 한 쪽이 약속하고,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하는 약속은.. 대개 ‘언약’이다.

‘아빠가 서울 갔다 올 때, (아이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세발자전거 사 올께’

하며 아빠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선언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지킨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구원에 관한 약속도, ‘언약’이다.

인간의 구원에 대해, 인간이 뭣 하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구원해 주시기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이행하셨다.

 

(註, 구약 당시 문화에, 인간 상호간에도 언약-베리트-을 맺은 경우도 나타나지만,

여기서 설명하는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을 뜻함)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의 책이다.

 

▲창세기, 태초부터 언약이 시작된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구세주를 약속하셨을 때, 그것은 ‘언약’, 즉 일방적인 약속 베푸심이었다.

‘네 후손이 뱀의 정수리를 밟으리라’ 창3:15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註, 구약과 신약에서 쓰는 Old/New Testament에서 testament 역시

약속promise 보다는 언약 covenant이라는 뜻이다.

covenant가 의 언약이라면testament는, 로마의 유언법에서 나온 말로, ‘언약된 문서’의 뜻을 내포함.) 

 

▲아브라함과 언약, 그 실행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필요도 잘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일방적으로 불러내셨다.

일방적으로 ‘열방에 복(의 근원)이 되라’고 명하셨다.

그 후손까지 대대로 복의 후손이 되는 언약을 일방적으로 해 주셨다.

 

그런데 그런 언약이 어떻게 순조롭게 이행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언약을 받은 지 25년이 다 되도록,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라는 ‘웃기까지’ 했다. 거의 비웃음 수준이었다.

그 상황에서 안 비웃을 사람 없을 것이다. 우리도 다 허탈하게 웃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공수표’라는 것이다. 사라가 그래서 웃은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자, 약속의 자녀는 반드시 태어났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들 같고,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오늘날에 육적,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무수히 많다.

그 후대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4천년에 걸쳐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출애굽 언약과 그 이행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4백 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 할 것을

언약하셨다. 창15:13

그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도 죽고, 이삭도 죽고, 야곱의 시대가 되었다.

그 약속이 가물가물하게 거의 잊혀 질 무렵,

뜬금없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고, 가나안에도 흉년이 들면서

하나님은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지시하신다. 창46:3

 

요셉이 총리로 지내던 시절이 지나고, 왕조가 바뀌어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던 왕이 세워졌다. 그 때부터 노예살이가 시작되었다.

4백년이 되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셨는데,

인류 역사상, 노예 민족이 스스로 그 사슬을 푼 역사는

<오직 출애굽> 사건 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행하시기 위해, 홍해 바다를 가르셨다.

광야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메추라기 떼를 불러오시는가 하면, 만나라는 신비한 양식으로 40년간이나 기르셨다.

모든 게 일방적인 약속(언약), 일방적인 은혜, 일방적인 구원이셨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나라 건설

이제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 베푸심으로써,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일방적인 은혜로 자기 백성/자기 나라를 삼아주셨다.

 

그러나 교만하고 강퍅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다.

그래서 나라가 남북으로 쪼개지는가 하면,

계속 범죄하고 우상숭배 하여, 북쪽 이스라엘을 먼저 망하게 하셨다.

 

남쪽 유다도 망하게 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되기를’ 한 동안 원하셨다. 삼하21:17, 대하21:7

그리고 다윗을 생각하사, 그 나라를 좋게 말로 계속 권고하셨다.

 

그러나 계속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은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처럼 망하고 말았다.

그제야 비로소 저들은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슬픈 탄식과 회개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정확히 이행하셨다.

그들은 (1차)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다시 귀환했으며

성전이 무너진 지 정확히 70년 만에.. 다시 재건에 성공했다.

 

▲구약은 언약과 이행의 반복되는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약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하나님은 제일 먼저 아담에게 구속주를 약속하신 다음 창3:15

이후 계속되는 모든 언약(그림자, 모형)의 흐름의 실체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냥 보면 안 된다.

룻기를 그냥 보면, 그저 ‘보리밭의 로맨스’ 정도로만 보게 된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에 이방 여인이 끼어들었나?’

하는 것이다.

 

에스더서도 얼른 보면, ‘죽으면 죽으리다’하는 한 여인의 용감한 이야기 같지만,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사탄은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멸절시켜버리려 했던 것이다.

(아합의 딸 그달랴가 다윗의 집안을 멸절시켜버리려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하만은, 자기가 만든 장대에 매달렸고,

예수 그리스도 오시는 역사를 방해한 사람의 비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언약대로 탄생

드디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대로 오셨다.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 왔으나, 그러나 자기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이방에서 온 박사들, 양을 치던 목자들만 겨우 영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주는, 약속대로 오셨다.

 

구세주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십자가부터 선포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註1)

 

▲언약대로 십자가

마태, 마가, 누가 등 공관복음서에서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인자가 해를 받고, 백성과 관원들에게 고난을 받은 후 죽을 것을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것도 믿기 어려운 언약이다.

 

문둥병자도 고치시고, 물결 위를 걸으시는 능력의 주님,

그가 명하신 즉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되며, 귀신들이 쫓겨나갔는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능력의 주님이

자기 스스로 무능하게 죽으시겠다는 말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예수님만큼은 끝까지 안 죽고 살아계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대속(대신 지불)의 죽음의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7백 년 전 이사야 통해)

그 일방적인 언약의 실행이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언약대로 부활

구세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말했다.

‘혹시 그 예수가 예언한대로 다시 살아난다고 소동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치를 취해 주시오’ (군인들이 무덤을 지킨 것으로 봐서 이랬을 것으로 추정)

 

그래서 무덤을 인봉했다. 혹시 부활하더라도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혹은 시신을 도적질해 가지 못하도록, 어쨌든 밖에서 무덤 문을 봉해 버렸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명하여 무덤을 지키게 했다.

 

‘내가 다시 살아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할 제자들은.. 안 믿고, 도망가고, 숨었지만,

소문으로 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혹시 그럴지 몰라서 만반의 대비를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의 염려처럼, 그리스도는 무덤 문을 깨뜨리시고 일어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언약은 다 이루어졌다.

승천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제 재림의 언약을 말씀하셨다.

 

▲언약대로 재림

이제 우리에게 그 성취가 남은 언약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만 남았다.

성경에 318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4:16

 

이 약속은 우리의 복된 소망이다.

돈을 아무리 모으고 부자가 되어봐야, 그것이 우리에게 참 행복은 아니다.

요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게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참 소망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의 참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 때 이루어질 우리 몸의 부활이다.

   

◑적 용

 

▲1. 재림이 복된 소망인 이유 한 가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의 목마름과 갈증이 다 채워질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에 목마른 것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인생의 허전함을

그것으로 채워질 것 같아서,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욕에 목마른 것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내 공허함을

혹시 그것으로 만족하고 채워질 것 같아서 발버둥 쳐 보지만.. 헛될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권력에 목마른 것은.. 뭔가 욕구불만인 내 인생의 갈증을

혹시 그것으로 채우면 채워질 것 같아서.. 그러나 권불십년, 교불삼년이다.

(권력은 십년 안 가고, 교만은 3년 못 가서 다 망한다. 주변을 보니 정말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때

나의 모든 욕망은 사라지고, 아니 주님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사랑과 그 은혜가 너무 충만하고 완전해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욕망도 탐나지 않게 될 것이다. 갈증이 채워졌으니까..

 

여러분 그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사시는가?

 

▲2. 재림 때 가족을 모두 만나실 수 있는가?

연로하신 권사님, 집사님 중에, 간혹 아직 믿지 않는 자녀가 있다.

아직 자녀 전도를 하지 못해서, 자신이 먼저 천당에 가도

거기서 자기 자녀와 상봉이 불투명한(현재로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소천하기 전에, 더욱 기도하고 분투하며

자녀들을 전도해서.. 그들과 모두 천국에서 상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다.

‘사람의 약속’이면.. 잘 깨진다.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약속 주체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재림과 천국 영생’은 언약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다.

위에서 살펴본, 구약의 탄생 준비, 신약의 탄생, 수난, 십자가, 부활이 그랬듯이

그 모든 약속들이 다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약속한 주체/당사자가 절대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절대로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시 불신 자녀가 있다면, 금식하며 기도하고 전도해야 한다.

모두 천국에서 상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3. 철학자가 예수 믿게 된 일화, -클릭-

    ..................................................................................

 

 

 

註1)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이유

민21:8~9 

‘뱀’ 하면 사탄을 상징한다.

계12:9, 20:2, ‘옛 , 곧 마귀, 사탄’이라고 했다.

뱀은 에덴에서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즉 (상징적 의미로)뱀=사탄이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주님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을 위해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놓고 쳐다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십자가를 상징하려면, 어린양을 만들어 달아놓아야 하는데,

그것 말고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을 만들려면,

비둘기, 희생제물이 되는 암송아지.. 이런 것들이 적당할 터인데,

왜 하필이면 사탄을 상징하는 ‘뱀’인가?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우리의 죄가 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물어 죽이는 불뱀과 같이

죄가 되셨고, 그로 인한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놋’으로 만들게 하신 것은

심판의 제물은 언제나 놋제단(놋으로 된 번제단) 위에 놓여졌다.

주님은 놋뱀으로 장대위에 달리심으로써

십자가의 장대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희생제사가 된다는 뜻이다.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반드시 인자도 높이 들려야 하리니

 

요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08.12.28. 인터넷 설교 녹취                                  [주제별 분류] 종말과 내세

▲약속과 언약

성경에는 약속이란 말도 나오고, 언약이란 말도 나오는데...

  약속 promise’은 쌍방이 동일한 조건에서 서로 계약하는 것으로서,

세상의 모든 협정이나 계약은 ‘약속’이다.

쌍방이 서로 조건을 가늠해보고 자기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약속한다.

  언약 covenant’은 일방적으로 한 쪽이 약속하고,

일방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을 뜻한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하는 약속은.. 대개 ‘언약’이다.

‘아빠가 서울 갔다 올 때, (아이가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세발자전거 사 올께’

하며 아빠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선언해 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일방적으로 지킨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구원에 관한 약속도, ‘언약’이다.

인간의 구원에 대해, 인간이 뭣 하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구원해 주시기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이행하셨다.

 

(註, 구약 당시 문화에, 인간 상호간에도 언약-베리트-을 맺은 경우도 나타나지만,

여기서 설명하는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을 뜻함)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의 책이다.

 

▲창세기, 태초부터 언약이 시작된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구세주를 약속하셨을 때, 그것은 ‘언약’, 즉 일방적인 약속 베푸심이었다.

‘네 후손이 뱀의 정수리를 밟으리라’ 창3:15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 힘으로 도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대적이고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註, 구약과 신약에서 쓰는 Old/New Testament에서 testament 역시

약속promise 보다는 언약 covenant이라는 뜻이다. covenant가 의 언약이라면testament는, 로마의 유언법에서 나온 말로, ‘언약된 문서’의 뜻을 내포함.) 

▲아브라함과 언약, 그 실행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필요도 잘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하셔서, 일방적으로 불러내셨다.

일방적으로 ‘열방에 복(의 근원)이 되라’고 명하셨다.

그 후손까지 대대로 복의 후손이 되는 언약을 일방적으로 해 주셨다.

 

그런데 그런 언약이 어떻게 순조롭게 이행되는 것 같지 않았다.

언약을 받은 지 25년이 다 되도록,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자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라는 ‘웃기까지’ 했다. 거의 비웃음 수준이었다.

그 상황에서 안 비웃을 사람 없을 것이다. 우리도 다 허탈하게 웃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약속)은 ‘공수표’라는 것이다. 사라가 그래서 웃은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자, 약속의 자녀는 반드시 태어났다.

‘네 자손이 하늘의 별들 같고,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오늘날에 육적, 영적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무수히 많다.

그 후대가 끊어지지 아니하고, 오늘까지 4천년에 걸쳐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출애굽 언약과 그 이행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4백 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 할 것을

언약하셨다. 창15:13

그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도 죽고, 이삭도 죽고, 야곱의 시대가 되었다.

그 약속이 가물가물하게 거의 잊혀 질 무렵,

뜬금없이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고, 가나안에도 흉년이 들면서

하나님은 야곱의 온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갈 것을 지시하신다. 창46:3

 

요셉이 총리로 지내던 시절이 지나고, 왕조가 바뀌어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던 왕이 세워졌다. 그 때부터 노예살이가 시작되었다.

4백년이 되어,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셨는데,

인류 역사상, 노예 민족이 스스로 그 사슬을 푼 역사는

<오직 출애굽> 사건 밖에 없다고 한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행하시기 위해, 홍해 바다를 가르셨다.

광야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셨다.

메추라기 떼를 불러오시는가 하면, 만나라는 신비한 양식으로 40년간이나 기르셨다.

모든 게 일방적인 약속(언약), 일방적인 은혜, 일방적인 구원이셨다.

 

 

▲일방적인 하나님의 나라 건설

이제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 베푸심으로써,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일방적인 은혜로 자기 백성/자기 나라를 삼아주셨다.

 

그러나 교만하고 강퍅한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다.

그래서 나라가 남북으로 쪼개지는가 하면,

계속 범죄하고 우상숭배 하여, 북쪽 이스라엘을 먼저 망하게 하셨다.

 

남쪽 유다도 망하게 하고 싶으셨지만,

하나님은 ‘다윗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되기를’ 한 동안 원하셨다. 삼하21:17, 대하21:7

그리고 다윗을 생각하사, 그 나라를 좋게 말로 계속 권고하셨다.

 

그러나 계속 회개치 않고, 돌이키지 않은 남 유다는

북이스라엘처럼 망하고 말았다.

그제야 비로소 저들은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슬픈 탄식과 회개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정확히 이행하셨다.

그들은 (1차)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만에.. 다시 귀환했으며

성전이 무너진 지 정확히 70년 만에.. 다시 재건에 성공했다.

 

 

▲구약은 언약과 이행의 반복되는 역사를 보여준다.

그런데 그 약속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하나님은 제일 먼저 아담에게 구속주를 약속하신 다음 창3:15

이후 계속되는 모든 언약(그림자, 모형)의 흐름의 실체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러므로 성경을 그냥 보면 안 된다.

룻기를 그냥 보면, 그저 ‘보리밭의 로맨스’ 정도로만 보게 된다.

그게 아니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역사에 이방 여인이 끼어들었나?’

하는 것이다.

 

에스더서도 얼른 보면, ‘죽으면 죽으리다’하는 한 여인의 용감한 이야기 같지만,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다.

사탄은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멸절시켜버리려 했던 것이다.

(아합의 딸 그달랴가 다윗의 집안을 멸절시켜버리려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하만은, 자기가 만든 장대에 매달렸고,

예수 그리스도 오시는 역사를 방해한 사람의 비참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언약대로 탄생

드디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대로 오셨다.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 왔으나, 그러나 자기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이방에서 온 박사들, 양을 치던 목자들만 겨우 영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세주는, 약속대로 오셨다.

 

구세주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십자가부터 선포하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註1)

 

▲언약대로 십자가

마태, 마가, 누가 등 공관복음서에서 예수께서 계속 말씀하신다.

인자가 해를 받고, 백성과 관원들에게 고난을 받은 후 죽을 것을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것도 믿기 어려운 언약이다.

 

문둥병자도 고치시고, 물결 위를 걸으시는 능력의 주님,

그가 명하신 즉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되며, 귀신들이 쫓겨나갔는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능력의 주님이

자기 스스로 무능하게 죽으시겠다는 말을..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예수님만큼은 끝까지 안 죽고 살아계실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대로, 대속(대신 지불)의 죽음의 길을 가셨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7백 년 전 이사야 통해)

그 일방적인 언약의 실행이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언약대로 부활

구세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말했다.

‘혹시 그 예수가 예언한대로 다시 살아난다고 소동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치를 취해 주시오’ (군인들이 무덤을 지킨 것으로 봐서 이랬을 것으로 추정)

 

그래서 무덤을 인봉했다. 혹시 부활하더라도 안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혹은 시신을 도적질해 가지 못하도록, 어쨌든 밖에서 무덤 문을 봉해 버렸다.

그리고 군인들에게 명하여 무덤을 지키게 했다.

 

‘내가 다시 살아나겠다’는 말을 믿어야 할 제자들은.. 안 믿고, 도망가고, 숨었지만,

소문으로 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혹시 그럴지 몰라서 만반의 대비를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의 염려처럼, 그리스도는 무덤 문을 깨뜨리시고 일어나셨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언약은 다 이루어졌다.

승천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제 재림의 언약을 말씀하셨다.

 

▲언약대로 재림

이제 우리에게 그 성취가 남은 언약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약속만 남았다.

성경에 318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1:11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4:16

 

이 약속은 우리의 복된 소망이다.

돈을 아무리 모으고 부자가 되어봐야, 그것이 우리에게 참 행복은 아니다.

요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그러나 오래 산다고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이 약해지게 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참 소망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의 참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 때 이루어질 우리 몸의 부활이다.

   

◑적 용

 

▲1. 재림이 복된 소망인 이유 한 가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무엇보다 우리의 사랑의 목마름과 갈증이 다 채워질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에 목마른 것은.. 뭔가 채워지지 않은 인생의 허전함을

그것으로 채워질 것 같아서,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욕에 목마른 것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내 공허함을

혹시 그것으로 만족하고 채워질 것 같아서 발버둥 쳐 보지만.. 헛될 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권력에 목마른 것은.. 뭔가 욕구불만인 내 인생의 갈증을

혹시 그것으로 채우면 채워질 것 같아서.. 그러나 권불십년, 교불삼년이다.

(권력은 십년 안 가고, 교만은 3년 못 가서 다 망한다. 주변을 보니 정말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재림하신 주님을 만나게 될 때

나의 모든 욕망은 사라지고, 아니 주님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사랑과 그 은혜가 너무 충만하고 완전해서

나는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욕망도 탐나지 않게 될 것이다. 갈증이 채워졌으니까..

 

여러분 그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사시는가?

 

▲2. 재림 때 가족을 모두 만나실 수 있는가?

연로하신 권사님, 집사님 중에, 간혹 아직 믿지 않는 자녀가 있다.

아직 자녀 전도를 하지 못해서, 자신이 먼저 천당에 가도

거기서 자기 자녀와 상봉이 불투명한(현재로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소천하기 전에, 더욱 기도하고 분투하며

자녀들을 전도해서.. 그들과 모두 천국에서 상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언약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다.

‘사람의 약속’이면.. 잘 깨진다. 신빙성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약속 주체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재림과 천국 영생’은 언약이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다.

위에서 살펴본, 구약의 탄생 준비, 신약의 탄생, 수난, 십자가, 부활이 그랬듯이

그 모든 약속들이 다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약속한 주체/당사자가 절대 변함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절대로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혹시 불신 자녀가 있다면, 금식하며 기도하고 전도해야 한다.

모두 천국에서 상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3. 철학자가 예수 믿게 된 일화, -클릭-

    ..................................................................................

 

 

 

註1)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이유

민21:8~9 

‘뱀’ 하면 사탄을 상징한다.

계12:9, 20:2, ‘옛 , 곧 마귀, 사탄’이라고 했다.

뱀은 에덴에서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즉 (상징적 의미로)뱀=사탄이다.

 

그런데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주님은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이스라엘을 위해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아놓고 쳐다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십자가를 상징하려면, 어린양을 만들어 달아놓아야 하는데,

그것 말고도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을 만들려면,

비둘기, 희생제물이 되는 암송아지.. 이런 것들이 적당할 터인데,

왜 하필이면 사탄을 상징하는 ‘뱀’인가? 비상식적이지 않은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께서 우리의 죄가 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5:2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물어 죽이는 불뱀과 같이

죄가 되셨고, 그로 인한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놋’으로 만들게 하신 것은

심판의 제물은 언제나 놋제단(놋으로 된 번제단) 위에 놓여졌다.

주님은 놋뱀으로 장대위에 달리심으로써

십자가의 장대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희생제사가 된다는 뜻이다.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반드시 인자도 높이 들려야 하리니

 

요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08.12.28. 인터넷 설교 녹취                                  [주제별 분류] 종말과 내세

'분류 없음 >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은 모양의 다른 두 길  (0) 2009.02.17
가스 중독의 두 가지 모습  (0) 2009.02.15
나도 예언할 수 있다 1713  (0) 2009.01.26
차별대우가 아니라 특별대우  (0) 2009.01.24
팔복 간략 해석 1708  (0) 200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