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자각, 회개케 하시는 성령님 고전12:7 설교 녹취
▲성령의 가장 강력한 역사 중 하나는, <자기 죄에 대한 자각>이다.
저(설교자)는 평소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착하고, 모범생이며, 성실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듣고 자랐다.
사람의 보는 눈이란 것이 그렇다. 그렇게 피상적으로만 본다.
제가 회심하기 전에는, 제 자신 스스로도,
저를 그렇게 (착한 모범생으로) 생각하며 살았었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한 번 제게 손을 대시기 시작하시니까
‘제가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자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성령충만을 받는다, 성령세례를 받는다 하는 역사가 일어날 때에는
그런 ‘자기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즉 죄인 중에 괴수임을 스스로 자각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게 된다.
◑평양대부흥의 도화선이 되었던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
1907년 평양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지금 우리가 부르기를 ‘평양대부흥’이고,
당시에는 그냥 ‘평안남도 도사경회’로 모였다. (1월2일~15일까지 14일간)
그런데 사실 블레어 선교사가 설교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특이할만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집회 폐막을 사흘 앞두고,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는, 청중들의 마음에 심각한 죄책을 심어주었다.
▲1월 12일 토, 부흥의 물꼬를 튼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
그 때 1월 12일(토) 블레어 선교사가 설교했는데,
그는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 지체의 각부분이라는
고전12:27절을 읽고는 이런 설교를 했다.
“교회 안에 성도들끼리 불화하는 것은, 우리 몸에 병이 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병이 든 것과 같습니다.
그 때, 한국교회 성도들은, 같은 교인이면서도 성도들끼리
서로 불화하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을.. 죄로 여기지도 않았다.
‘내가 뭐 도적질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뭐 간음을, 살인을 했느냐?’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죄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왜 그렇게 못 마땅한 사람들이 많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도무지 화해하지 못하고,
만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면 얼굴이 굳어지고..
그런 것들을 죄로 여기지 않고 다들 신앙생활 잘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블레어 선교사가 그런 주제로 설교하는 시간에 성령이 강하게 임재하셨다.
“우리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인데,
우리들이 서로 불화하는 것은, 예수님의 몸이 병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교 중에 이런 예를 하나 들었는데,
선교사님이 한국에 와서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손가락을 하나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손가락이 다 낫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그 손가락 하나 때문에 그렇게 몸살을 하고, 밤에 잠을 못 자고
끙끙 앓으면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다고 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한 사람이 만약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한다면
우리가 진짜 예수님의 몸이라면
모든 교인들이 그것 때문에 몸살을 앓고, 아프고,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상인데
저 사람이 아픈지, 괴로운지, 허물이 있는지
내가 전혀 남처럼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진정한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근본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를 들면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이 설교를 들으면서 교인들이 가슴에 큰 찔림이 있었다.
성령님이 역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설교에 큰 찔림이 있었던 것이다.
‘같은 교인이면서도, 교인들끼리 서로 사랑하지 못한 것.. 이것이 진짜 죄구나..
그러고보니 나는 말할 수 없는 죄인이구나!’
이런 성령이 주시는 정죄감이 막 그 자리에 모인 성도들 가운데 일어났다.
▲1월 13일 (일)
이 날 집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냉랭한 집회였다.
▲1월 14일 (월)
①이날 저녁집회가 끝나고, 1천5백 명 성인 남자 중에 많이 돌아가고
6백 명이 남아서 새벽 2시까지 간증하고 기도하는 일을 계속했는데,
그 유명한 ‘길선주 장로의 회개’가 이날 이루어진다.
(그런데 미국 선교사가 본국에 보낸 보고서 -맨 아래 있음-에 의하면,
길선주 장로의 회개 보다, 아래 회개 사건을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②설교가 끝나고, 기도시간이 되었는데,
어느 한 성도가 사실은 자기 마음속으로 어느 장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자, 그 성도는 견딜 수 없어서
기도하다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장로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장로님, 용서해 주세요, 저 그 동안 장로님을 미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장로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퍼뜨린 적도 있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
(블레어 선교사가 이틀 전 토요일 밤에 강력하게 설교한 것이
이제 월요일 밤에, 열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던 모든 사람들이 다 그 고백을 들었다.
그런데 그 용서해 달라는 말을 들은 그 장로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고, 그냥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냥 ‘용서할게요’ 하면서
서로 끌어안아 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을..
그래서 분위기가 더 답답해져 가고 있었다.
▲1월 15일 (화)
그날은 집회 마지막 날이었다.
벌써 어제 저녁 월요일 밤부터, 평양 시내는 술렁거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강력한 회개와 죄의 자백이 일어났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이 장로께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회중들 앞에 나가 섰다. 그리고 회중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때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교회의 장로로서, 나의 형제인 장로를 미워했을 뿐만 아니라,
블레어 목사님을 미워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는, 등을 돌려 뒤에 강대상에 앉아 계시던 블레어 목사님을 향해
“저를 용서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렇게 말했다. 많은 교인들이 지금 다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뚜벅뚜벅 자기 자리에 들어가서 울면서 기도했다.
“아버지, 아버지”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하면서 기도했다.
그 때 일을 (아마 블레어 선교사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 때 예배당 지붕이 확 걷히면서
성령이 모든 회중 위에 임하는 것 같았다.
마치 무슨 산사태가 몰려오는 것처럼
성령이 모든 사람 위에 임하는 것 같았다”
이 블레어 목사님이 강단에게 내려가서
그 장로님 옆에 가서, 그 장로님을 붙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블레어 목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일찍이 나로서는 해 본 적이 없는 간곡한 기도였다.
모든 사람이 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자기의 사정을 호소하는 그런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때에 그 숱한 사람들이
오직 두려워하는 그 마음 하나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애원하는 음성을 들었다.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의 뜻)
교만한 마음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의 체면은 다 잊어버리고, 오직 이때까지 자기들이 배반하던 예수를
하늘을 바라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주여, 주여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라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렸다.
또한 그것들을 문제 삼을 것도 못 되었다.
사람에게 책망을 듣는 다거나, 국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는다거나
또 비록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는 것만이 소원이었다.
혹 사람에 따라, 여러 사람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것이
좋으냐/좋지 않으냐의 생각이 다를 것이다.
나 역시 이에 대한 의견이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는,
범죄한 심령 위에 성령이 내릴 때
그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을 막을 도리도 없다는 것이다.”
<06.11.07. 인터넷설교 녹취,
................... 더 읽으실 분 .....................
위 설교문의 고증을 위해 아래 글을 참조했습니다.
평양대부흥은 1907년 1월2일~15일까지 14일간(2주간) 연속 집회를 가졌는데,
원래는 <평안남도 도사경회>였다.
5시 새벽기도, 9~12시 오전 성경공부, 오후 2~3시 성경공부, 후에 전도
그리고 저녁집회는 6일부터 평양시내 4개교회 연합으로 시작되었다.
이른바 평양대부흥운동은 사경회 마지막 전날인 14일에 불씨가 지펴졌는데...
▲1월 12일 토 저녁
토요일인 12일 저녁 블레어(W. N. Blair) 선교사는 고전12:27절의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는 말씀으로 설교했다.
블레어 선교사는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하면서 “교인은 다 지체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가 남의 짐을 같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처를 싸맨 자기 손가락을 쳐들어 보이며
“교인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이 온 교회에 상처를 입힐 뿐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전했고,
말씀을 전할 때 은혜가 임했다.
▲1월 13일 주일 저녁
반면 13일 주일 저녁집회는 냉랭했다.
중국선교사로서 우연히 조선을 방문해 1907년 대부흥을 목격한
캐나다 선교사 고포드(J. Goforth)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마치 놋쇠로 된 지붕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막는 것처럼 답답했고,
마치 사탄이 온 회중을 압도한 것처럼 그날의 영적분위기는 너무도 차가웠다’고 했다.
▲1월 14일 월 저녁, (폐막 -1일)
기대했던 13일 주일 저녁집회가 무의미하게 끝나자
선교사들과 길선주 장로를 비롯한 교우들은 14일 정오기도회에 모여
하나님 앞에 은혜를 간구하며 기도했다.
이날의 저녁집회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헌트(W. B. Hunt) 선교사의 설교 후,
이길함 선교사(당시 장대현 교회 담임)가 나와 통성기도를 요청하자
시작된 회중들의 기도는 전날과 달랐다.
통성기도가 끝난 후에도 600명이 남아 새벽 2시가 넘도록 기도했다.
이날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은 길선주 장로(이 때는 목사 안수받기 전으로,
이 해 9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음)였다.
길 장로는 “저는 아간 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1년 전 내 친구가 임종하면서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그 미망인의 돈 100불을 가로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라며 많은 회중 앞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그의 회개는 그곳에 모인 온 회중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수십 명이 울면서 그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했다.
▲1월 15일 화
이날 선교사들은 정오에 모여 전날의 은혜에 감사하며,
마지막 남은 15일 저녁에도 성령의 역사가 중단되지 않기를 기도했다.
15일 저녁집회는 시작되기 전부터 영적 분위기가 달랐다.
기록에 의하면 ‘말씀을 전하는 길선주의 얼굴은 거룩함으로 불타고 있었고,
그의 얼굴은 길선주가 아니라 예수였다’고 한다.
이날도 집회에 참석한 청중들은 자신들의 온갖 죄악들을 다 회개했다.
장대현교회는 사경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16일 수요일 기도회와 20일 주일예배 때 성령의 역사가 계속됐으며,
평양시내 또한 전역에 성령의 불길이 타올랐고, 이 불길은 전국을 휩쓸었다.
◑아래는 당시 장대현 교회 담임하던 이길함 선교사가 본국에 보낸 보고서
▲1월 13일 주일
(전날 1월 12일 토, 블레어 선교사의 설교에 큰 은혜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 다음날 주일 저녁집회에도 대단한 축복을 기대했었으나
놀라운 축복을 받는 대신 우리는 아주 독특한 경험을 하였다.
집회는 냉랭했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떠난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의 설교와 유익이라고는 전혀 없었던 몇 사람의 열의 없는 간증이 있은 후
우리는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며
무거운 심령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전 (어제 토요일) 저녁 집회에서는 생명력을 가진 간증들과
실제적이고 진지한 죄의 고백이 있었으나, 주일 저녁에 모든 것이 막힌 듯했다.
그 집회는 하나의 죽어 버린 형식적 집회처럼 보였다.
한국인 형제들도 우리 선교사들이 느끼는 것과 똑 같이 느꼈다.
주일저녁은 음울한 밤이었다.
다음날 1월 14일, 월요일 정오에 우리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울면서 간절히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월요일 저녁집회에 바로 그 축복이 임했던 것이다.
▲1월 14일 월,
우리는 무엇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채 월요일 저녁집회에 참석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해달라고 내내 간절히 기도했다.
나는 우리가 장대현교회 건물 안에 도달했을 때
우리 모두가 무언가 임하고 있음을 느꼈음을 감지했다.
간단한 설교가 있은 후 우리는 함께 통성기도를 드렸으며
모든 청중들이 함께 여기에 합류했고
이 통성기도는 이들 집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기도 후 몇 명의 간증이 있은 후, 사회자가 청중들에게 일어나라고 하고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모두 돌려보내고,
새벽까지 계속 기도회를 가질 계획을 가지고
혹 오래 남아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남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고 5백에서 6백명 가량이 남았다.
우리는 이들을 장대현교회 건물의 한 L자 형 예배실에 모으고 집회를 시작했는데
그 집회는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목도하지 못했던 그런 집회였다.
기도 후에 죄를 고백했으며 즉시 하나님의 영이 그곳의 회중들 가운데 임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흐느껴 울며 마룻바닥에 고꾸라졌고
혼신을 다해 통회하는 가운데 손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때때로 죄의 고백이 있은 후 전 회중이 통성으로 통회의 기도를 드렸고,
수백 명의 남자 성도들이 통성으로 함께 드리는 기도의 효과는
무언가 형언할 수 없었다.
다시 또 다른 사람이 죄를 고백한 후 회중들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통회의 기도가 시작되어 우리 모두 울었고,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그 집회는 죄를 고백하고 울며 기도하면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중 몇몇은 교회의 높은 제직 가운데 몇 사람,
특별히 강씨와 김씨 사이에 마음에 증오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
우리는 이 저녁 집회가 열리는 동안에 모두 와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기를 희망했다.
(1월 14일) 월요일 저녁에 강씨가 용기를 가지고
그가 얼마나 김씨를 미워했는지를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자존심이 강하고 강한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고 다시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그런 후 다시 자신이 얼마나 강씨를 미워했는가를 말하면서
통회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새벽 2시가 되었으나 아직도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이 점차 추워가고 우리가 아직 또 다른 저녁집회를 남겨두고 있어
우리는 여기서 월요일 저녁집회를 마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1월 15일 화,
그 다음날 화요일 정오기도회에 우리 선교사들은
전날의 놀라운 저녁집회에 대한 감사로 가득한 심령을 가지고 모여,
또 다시 화요일 저녁집회 때에 더 큰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했다.
화요일 저녁집회 때 우리의 가장 은사를 충만히 받은 설교자, 길선주가
간단히 설교한 뒤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약 6백 명이 남았다.
그 집회는 월요일 저녁집회와 상당히 유사했지만 성령의 현시는 더 강력했다.
우리 중 몇은 두 사람, 특별히 김씨와 주씨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렸는데,
그것은 우리가 볼 때 이 두 사람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고백할 무엇인가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김씨가 용기를 내자 상황은 절정에 달했다.
강대 앞 쪽에 앉았던 그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앞으로 나와서는
즉시 자신의 죄를 고백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다른 형제들, 특별히 블레어 선교사를 미워했음을 고백하고
온 몸을 전율하며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것은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언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고통이었다.
그는 마루바닥에 고꾸라졌는데 모습이 꼭 발작하는 사람 같았다.
그가 통회하자 온 회중은 마치 하나의 강력한 통회의 폭풍처럼 통회하기 시작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우리 선교사들은 나머지 무리들과 함께 울었으며
회중들이 통회하는 것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이 흐느껴 우는 동안 강씨가 일어나 기도했다.
심령이 가난한 그 남자는 절규하며 기도하고는 완전히 녹아내려
자신의 죄를 완전히 통회 자백하였는데 마치 심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형제들이 그 사람 주변에 모여 그들의 팔로 그를 감싸자 그가 곧 냉정을 되찾았다.
그런 후 그가 김씨에게 가서 사랑스럽게 자신의 팔을 벌려 그를 포옹하고
그와 함께 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런 후 김씨가 통회하며 블레어 선교사에게 돌아가
“블레어 목사님, 나를 용서해주실 수 있습니까, 나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다.
블레어 선교사는 일어서는 “아바지, 아바지”를 두 번 말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잃고 더 기도를 하지 못했다.
청중들은 통회를 계속했고 그것은 어떻게 그들이 중단시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우리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찬송 한 곡을 불러야 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몇몇 사람이 자신들을 통제할 수 없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그들이 냉정을 찾았으며
그런 후 다시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그 집회는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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