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이유 창47:7~12 설교 스크랩, 정리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자기 나이가 130세라고 하면서
130세면 굉장히 장수 한 것 같은데, ‘자기 나이가 얼마 안 된다’고 표현한 것은,
자기 조상들과 비교해 보니 짧다는 것이지만,
사람은 지나간 세월은 항상 짧게만 느껴지는 것이 맞는 모양입니다.
200세를 살아도, 비슷한 고백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주목할 부분은
야곱이 130세를 살면서, 자기가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표현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산 다음에 한 마디로 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
야곱은 ‘내 일생은 험악했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창47:9
사실 야곱이 애굽 왕 바로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기란 참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체면 때문에
자기를 나그네라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의 생애가 얼마나 힘들게 느껴졌으면 그렇게 말을 했겠습니까?
▶“나의 일생이 험악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고생스러운 일이 많았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하셔야 됩니다.
그 말은 그 사람의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생스런 일이 많았다고 누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생에 어려운 일이 많았던 사람도
“내 인생은 은혜였습니다. 내 삶은 복 받은 삶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가 오히려 쉽습니다.
야곱은 자기 고난이 어쩌면 ‘상처’로 감추고 싶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포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기 상처를 다 극복했다는 뜻도 됩니다.
‘험악했던’ 야곱의 삶을 볼 때,
두 가지 측면의 ‘고난의 이유’를 보게 되는데요..
◑1. 섭리적 고난
▶고난의 순간이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한번 다시 돌아보세요.
신약 성경의 절반이나 쓴 사도 바울은 여러 가지 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학자들은 그가 눈병과 간질병 환자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의외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렇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기 고난의 해석과 이해를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고후12:9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아이를 낳을 때 할 수 있는 한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을 하라고 충고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의 진통을 겪고 낳은 아이가 그만큼 성숙하고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괜히 어머니의 진통을 겪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찰스 코우만 여사는 1년 동안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하다가
작은 구멍으로 큰 몸집이 빠져나오려고 오래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서
그만 가위로 구멍을 좀 크게 넓혀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나방이 쉽게 고치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자기가 엄청나게 잘못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큰 구멍으로 쉽게 빠져나온 나방은 날개를 질질 끌고 방구석을 기어 다니면서
날지를 못하는 것이에요.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그 고통이 사실은
나방에게는 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릴 때 부모를 잃었습니까?
부모 없이 고아로 산 것이 당신의 험악한 세월의 이유입니까?
원망할 것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받은 것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것을 ‘은혜’로 여기고, 오히려 자랑합니다.
일찍 시댁에서 쫓겨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서부터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배고팠던 적이 많았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했습니까?
사람들이 은혜 받는 방법도 참 다양한데,
일찍 시댁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예수 믿고 큰 전도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하 동문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찍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의 눈을 떴다면 그것이 꼭 불행하다고만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우리 교회 제자훈련 교재를 보고
“목사님도 알고 보니까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 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교재 속에 제 이야기가 간증으로 몇 군데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그 분은, 제가 고생이라고는 하나도 안하고 살았던 사람인 줄로
짐작을 했던 모양이에요.
제가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이 되었습니다. ‘교재를 다시 써야 하는가?’
저는 제가 고생한 이야기를 그 교재에 한 군데도 쓴 적이 없는데,
저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가.
제 삶 속에 너무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웠던 것을 말하려고 했는데,
제가 고생한 것을 읽으셨다니...
그러나 순간 불현듯 제 마음 속에 크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세상적으로 말하자면 고생을 많이 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가 제 삶 속에 놀랍게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제 생애 중에 겪었던 어려웠던 순간들을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고난의 순간은 하나님의 은혜의 순간이고,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사실을 불현듯이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으면
이제 고난도 끝나고 고생도 끝난다고 착각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서 기도할 때 무조건 고생하지 않게,
어려움도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이 필요 없고,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여기셨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실례지만 금년에 나이가 얼마입니까?
“제 나이 50입니다.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대답하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 나이가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제 나이 50입니다.”하는 말은,
‘5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살았던 세월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그것을 보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겪었던 고난, 하나님께서 다시 보는 눈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베를 짤 때 보면 씨줄과 날줄이 교차되어 있습니다. (세로줄과 가로줄)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모두 ‘섭리적 고난’이라고 말할 수 없고
반대로 모두 ‘자초한 고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묘하게 뒤엉켜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뒤엉킨 가운데,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 역사’를 향하여
일생의 항해를 계속해 나가는데요...
◑2. 자기가 자초한 고난
▶야곱이 자기 생애를 ‘험악했다’고 표현을 한 것은
실제로 야곱의 삶이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파란만장했습니다.
그의 조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도 야곱처럼 혹독하게 고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형 에서와 누가 먼저 태어나느냐로 싸웠습니다.
그는 아버지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사랑을 에서에게 빼앗겼어요.
그래서인지 아버지를 속이고 형 에서가 받을 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하니까
그만 집을 떠나서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게 됐습니다.
집을 떠나 고생스런 타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예쁜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14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해야 했고,
간교한 장인으로 인해 품삯을 10번이나 속임 당했습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도 형 에서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아서
4백명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얍복강가에 남아서
밤새도록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세겜 땅에 정착을 했는데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끔찍한 일도 생기고,
그 아들들이 복수를 한다고 나섰다가 세겜 부족에게 몰살 당할 위기도 겪었습니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둘째 아이를 해산하다가 죽는 것도 보았으며,
끔찍이 사랑하던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 땅에 살다가 기근이 들어
온 가족이 다 굶어죽을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생애였습니다.
야곱은 이런 자신의 생애를 돌아볼 때 정말 “험악했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야곱 생애가 험악했던 이유는 사실 야곱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사서 고생을 했다는 말입니다. 스스로가 자기를 그렇게 힘들게 만든 것입니다.
어려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삼촌 집으로 가야만 했던 일도,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형 에서의 축복기도를 가로챘던 것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장자의 축복 기도를 빼앗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그렇게 고생한 것도,
얼굴 예쁘다는 것 하나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라헬과 결혼하려 했기 때문이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에서 때문에 얍복 강에서 밤새도록 씨름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근본적으로 야곱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세겜 땅에서 고생을 한 것도 하나님께 벧엘에서
“내가 다시 돌아오면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겠다”고 자기가 약속을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세겜 땅이 좋다고 거기에 머물렀기 때문에
딸에게 불상사가 있었고, 그 일로 일어난 보복 살육으로 인해
세겜 족속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위협을 스스로 자초한 것입니다.
요셉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마음 고생을 한 것도 요셉을 편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 시기를 아버지가 스스로 조장을 한 것입니다.
야곱 생애 험악했던 모든 일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야곱 본인이 그런 문제를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살았던 이유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살았던 생애를 돌아보면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상할 정도로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항상 보는 눈에 의해서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셨고 복을 주셨다고 어머니 리브가를 통해서 분명히 응답을
해 주셨는데도, 그에게 형 에서는 견딜 수 없는 좌절감을 주는 존재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형 에서를 편애했습니다. 비록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버지 사랑의 결핍은 야곱을 견딜 수 없이 조급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어려서 마음에 애정 결핍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형 에서를 유난히 편애했기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조금이라도 받아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습니다.
애정결핍증이 생기면 사람이 어떤 것에 집착을 하게 됩니다.
‘라헬과 꼭 결혼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도 사실은 거기에서부터 나온 것입니다.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한 것도,
사실은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물질에 대해서 유난히 집착을 많이 했습니다. 그것도 역시 애정결핍증의 하나지요.
▶그런데 사실 야곱은 애정결핍증에 걸릴만한 이유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야곱이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인생의 고비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이렇게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조급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잃어버릴까봐 걱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지 못할까봐 안달했습니다.
그는 항상 부족했고, 억울했고, 두려웠고,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무엇인가 애를 써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방법을 사용해야 된다고 항상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야곱의 생애는 믿음이 없어서
스스로 괴롭히는 삶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야곱은 평생 몸부림치며 살았습니다. 자아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일생은 결국은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험악할 이유가 없었는데, 험악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가 확신하지 못하고 살았을 뿐입니다.
▶어머니 태중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입니다.
문제는 야곱이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벧엘에서 돌베개 베고 자다가, 그는 놀라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20년 후 얍복강가에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하나님의 복주심이 야곱과 언제나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야곱이 그것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그는 일평생 분투 노력하는 삶을 살았는데.. 그 결과 '험악한 세월'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를 주의 깊게 읽어보세요.
130년을 살았던 야곱의 일생을 “험악한 삶”이라고 고백을 했지만,
하나님이 한 번도 야곱을 놓진 적이 없었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손길로 지키시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야곱은 조급했습니다.
그리고 그만 집을 떠나서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을 가야 했습니다.
▶벧엘 들판에서 돌베개를 배고 쓸쓸하게 잠을 자는 그 때의 야곱의 심정은
절대로 복을 받은 사람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안타까우셨어요.
야곱이 저렇게 조급하게 복을 어떻든지 받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들판에서 두려움 속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지키시는 중에 있는데,
왜 그렇게 쓸쓸해하고 두려워하느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를 지켜주리라” (창28:15)
그 때 야곱은 깜짝 놀랐습니다. 황홀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하며, 안달하고 조급한 삶을 살았습니다.
▶처가식구들이 야곱을 시기해서, 도저히 그 곳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이제 이 곳을 떠나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고 지시해 주셨습니다. (창31:13)
형 에서가 400인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야곱은 진짜 그 날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밤새 안절부절 못하던 야곱을, 얍복강에서 만나주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일생동안 언제나 모든 일에 간섭하시고,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거나, 순종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한 번도 하나님의 은혜가 야곱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야곱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불안했던 적이 많았고, 조급했던 적이 많았고,
낙심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 인생이 험악했던 것입니다.
험악할 이유가 없는데.. 험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 고향은 천국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살 수도 있고, 저렇게 살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는 행복하게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고생스럽고 어려워도. 여러분이 이 사실을 진짜 믿는다면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험악한 세월이 없습니다.
(궁극적인) 불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생애 속에 보이지 않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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