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곳에, 권능과 은혜가 나타나다 행4:32~37 설교 스크랩
▲본문 배경 : 놀라운 예루살렘 교회의 복음의 역사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복음의 역사는 정말 놀랍습니다.
오순절 날에는 3천 명, 그 다음 날에는 5천 명이 회심하였습니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서 또 집에서
모여서 예배하고, 즐겁게 교제한 일도 놀라운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부럽습니까?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말하면 죽인다고 하는데도
오히려 더 크게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의 복음은 계속 전해지고
예수 이름으로 표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더니
땅이 진동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그 기도하는 모습, 그것이 얼마나 충격적입니까?
이것이 전부 복음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구나!’ 싶은 진짜 엄청난 충격이 있습니다.
우리가 깜짝 놀라는 것은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예가 언급되었는데, 바나바라는 사람이 자기 소유의 밭이 있었는데
그것을 팔아 가난한 교인들의 먹을 것을 공급하려고 교회에 바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능력이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적도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1. 가난한 사람이 없게 하려고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행4:34
▲진짜 복음은.. 주위 사람들을 돌아봅니다.
웨슬리는 지갑이 거듭나야 진짜 거듭난 것이라 했는데,
초대교회가 진정 성령의 충만한 교회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이 은혜 받았다는 고백, 하나 되었다는 것,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진정한 것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고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적도 없거니와 벌어질 리도 없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끼리 모였는데
그 중에 누구도 가난한 사람이 없고 굶는 사람이 없었다... 진짜 교회였습니다.
▲복음화가 안 되면, 공산화 될 수도 있습니다.
역사상 이런 공동체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도 그 하나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빈부 격차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많은 의식있는 지식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그 결과 전 지구의 거의 절반이 공산주의화 되었습니다.
결과는 완전한 사기극이 되어버렸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이 다 속았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가난한 자들의 편이다!” 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진짜 해결의 길이 교회 안에 있는데도
당시 교회는 스스로가 그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이 앞장서서 ‘자발적인 나눔’을 실천하지 않자,
사회와 빈자들이 앞장서서 ‘강제적인 나눔’을 실현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실패했습니다.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의 문제는 혁명, 강제적으로, 비밀경찰을 동원하고
비판자들을 수도 없이 제거하면서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폭력으로,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했던
그 시도가 얼마나 허구였는지
공산주의 나라로 들어가 살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자발적 나눔과 강제적 나눔
오늘 이 본문을 잘못 해석하면, ‘내 재산 다 바쳐야 되는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가진 분들, 겁낼 것 없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교인들이 재산을 내어 놓은 것이 완전히 자발적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비밀경찰이 없었습니다. 강제적으로 뺏는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강제적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공산주의는 성경에서 나왔다’고 오해를 합니다만,
세상에 그런 오해도 없습니다.
◑2. 필요에 따라 나누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행4:35
▲초대교회 때, 재산을 가진 부자만 변화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재산을 내놓는 <부자들>도 놀라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자기 쓸 것만 받아가는 <가난한 사람들>도 놀라운 변화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재물에 한이 맺혔겠습니까?
만일 부자가 자기 재산을 내 놓았다고 해도,
너도 나도 서로 가지려고 달려들었다면 아비규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들의 결단을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십자가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에 우리 교회 사무국에 돈을 갖다 놓고 어려운 분들에게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만원만 있으면 돼.” 그래서 그 돈다발 중에 만원만 가져가고,
“나는 3만2천원만 있으면 돼...”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그 일이 가능할까요?
만약에 부자가 재산을 팔아서 서도들 앞에 놓았는데
너도 나도 더 가져가겠다고 달려들었다면
재산을 헌금한 부자 마음은 어떠했겠어요? 지옥과 같지 않겠어요?
▲내 필요를 채울 때, 다른 사람도 생각해 봅시다.
미국 어느 공원에서 한국 사람들이 떨어진 호두를 부대 자루에 주워 담으니
미국인들이 한참을 보다가 다가와서 "그러면 다람쥐들은 무엇을 먹고 삽니까?"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 포틀랜드의 바닷가에는
조개는 15개 이상은 잡을 수 없게 규정이 되어 있더랍니다.
조개를 먹기 좋아하는 동양인들이, 씨를 말릴 정도로 조개를 잡아 가는 걸
보다 못해 만든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재산을 가진 자나 갖지 못한 자나 같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욕심은 다 있습니다.
▲내 배만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교회를 핍박할 당시
지하 교회였던 예수 가정 교회 공동체가 운영하던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공산당 관리가 교회를 폐쇄시키려고 왔다가 과수원을 와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과일들이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도 없는데...
공산당 인민 농장에는 과일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로 몰래 다 따서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3. 나누는 곳에... 권능 있는 전도, 은혜 받는 성도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행4:33
▲사도들의 전도에 큰 권능이 당연히 뒤따랐습니다.
복음이 삶으로 증거 되었기 때문 입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사는 기적 같은 삶! 사람들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진짜 복음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진짜 성령충만한 것이 맞구나!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재산을 내놓고 서로 필요에 따라 가져갔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담대했겠어요?
말을 잘했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이 있었겠습니까?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무리가 큰 은혜 받을만 했습니다. 설교를 정말 잘해서 은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삶이 뒷받침 되는 메시지니까.. 은혜가 된 것입니다.
현재 ‘전도가 안 된다, 힘들다’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한 것 보다
성도들의 삶 속에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사는 삶이 뒷받침이 안 되고 복음만 전하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초대교회 복음의 역사는 그렇게 증거된 것입니다.
◑4. 기독교는 ‘무소유’가 아니라, ‘나눠주는 삶’이 목표
▲예수 믿는데 드는 비용
어떤 남자가 부인의 전도와 기도로 주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 남자 분이 묻는 말이
“목사님, 예수 믿는데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라고 했습니다.
친구와 친척들이 예수 믿으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자꾸 천주교로 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비용이 얼마나 들면 예수 믿으시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담배 값 정도면 믿겠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분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담배 값 1년 치를 계산해서
주일 헌금, 감사 헌금을 떼어서 정확하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라니까 죽어도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에게 물어 봤더니,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들었느냐고 했더니, 세례 받으면 십일조를 바쳐야 된다고 하니까
세례를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 세례 받으셔야죠.”라고 하니까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묻는 말이 “목사님,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까?
아니면 비용을 다 빼고 순 이익의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까?”
그래서 제가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도 십일조요,
비용을 다 빼고 나머지의 십일조를 바쳐도 십일조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비용 빼면 얼마 안 되는데요..."
이 분이 그 해 가을에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에 쌀을 열 가마니 바쳤습니다.
알고 보니까 수확의 십일조를 바친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예수를 비싸게 믿기로 했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비싼 예수를 믿기로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 너무 이것 따지고 저것 따지고 믿으니까
제 존재가 천해지는 것 같아서, 고귀한 예수님을 비싸게 믿기로 했습니다.”
그 얼굴이 훤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일 아닙니까?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우리는 소유하는 것보다, 나누어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탐심의 반대는 무소유가 아니라, 나눠주는 삶
탐심의 유혹을 벗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세 때는 수도원에 들어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닙니다.
수도자들은 영적으로 처참한 과오를 범했습니다.
수도원에서는 무소유로 사니, 탐심이 발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는 돈 주고 살 것도 없지만, 남에게 베풀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탐심의 반대는 무소유가 아닙니다.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나누어주는 삶이 탐심을 이기는 삶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아무 것도 없어서 욕심도 없지만
나누어줄 것도 없는 사람(무소유)을 만드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어떤 분에게는 기업의 복도 주시고 어떤 분에게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이유는
그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초대교회가 누렸던 복입니다.
▲나눔의 기쁨도 큽니다.
바나바가 땅을 팔아서 바쳤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하라고 강요했습니까? 안 바치면 안 되는 분위기로 몰아갔습니까?
그런데 왜 땅을 팔아서 바쳤을까요?
땅을 소유하고 있을 때보다 그것을 팔아서 어려운 교우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훨씬 더 기쁘니까 그런 것입니다.
왜 기쁜 것입니까? 그것이 십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진정 복된 삶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우리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나바가 누린 복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자가 받는 복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이고, 초대교회에 나타난 영광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됩니다. 행20:35
여러분은 주기 위해서 믿습니까? 받기 위해서 믿습니까?
직장에 출근해서 당신은 당신을 쳐다봐줄 사람들을 찾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돌보아줄 사람들을 찾습니까?
퇴근할 때 당신 가족들이 당신을 시중들어주기를 기대하십니까? 아니면
‘주님, 저에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까?
만약 여러분의 목표가 받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거의 매번 실망할 것입니다.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온통 자신에게 몰두해 있어서, 남에게 주목할 여유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목표가 주는 것이라면,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즐거움을 얻는다면
절대로 만족이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베풀 것이 늘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비논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을 완전히 이웃에게 내어드리십시오.
저들이 그 어리석어 보이는 ‘나눔의 삶’을 계속하는 것은
그 속에서 진정한 평화와 행복과 기쁨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09.02.01. 설교 스크랩, 정리 *원제목 : 예수님이 돈 보다 더 좋아졌습니까? ▣ 기독교인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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