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의 신앙성숙 빌2:12-18 설교 스크랩, 정리
▲빌립보서를 쓴 목적 - 신앙성숙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 설립자인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빌립보 교인들이
-에바브로 디도 집사 편으로 보내어 준 선교헌금에 대한 감사와
-빌립보 교회 안에 교인들 간의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말해주면서
신앙생활의 갈등을 해소하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덕동마을의 미소천사 성아자매 처럼
이 세상에 희망을 보여 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그럼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성숙에 걸림돌이 있습니다. 2:12
그것이 무엇입니까?
▲1. <환경>은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데 있어서 늘 방해거리가 있습니다.
그 방해거리를 사람들은 <환경>이라고 합니다.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 여의치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자기 신앙이 자라지 않은 것으로 핑계를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경이 절대로 우리의 신앙의 성숙에 방해거리가 될 수 없고
도리어 1:12절에는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지만
도리어 자신의 매임이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환경이 우리의 신앙의 성숙을 방해하는 장벽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 <내 주위 사람들>이 내 신앙이 성숙하는데 방해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도 우리의 신앙의 성숙의 방해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빌립보 교회라면 누가 보아도 기쁨이 넘치는 교회입니다만
그러나 빌립보 교회 안에도 자세히 보니 교인 간에 갈등이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4:2
이 말은 빌립보 교회 안에, 직분자 간에도 갈등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2:1 이라 했는데,
‘권면’이 뭡니까? .. 누가 잘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위로’가 뭡니까? .. 누가 상처 주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 간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됩니다.
대부분 하나님의 뜻은 <나의 신앙 성숙>입니다.
교만하고 완고한 나를 꺾으시기 위해, 하나님이 <강적>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를 피하면, 이상하게 <점점 더 강한 적>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강적이 변하여, 내 형제 자매가 될 때까지, 그 일은 수 년~수 십 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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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이 성숙하는 데는 <환경>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며,
그리고 <사람>이 방해거리가 될 수 없으며,
문제는 <나 자신>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3. 신앙은 반드시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지금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 안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든지, 없든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건데, 또 무슨 구원을 이루라고 하는가요?’
구원이란 무엇인가요? 일반 교인들은 ‘구원’이라고 하면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 의미축소해서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원’이란 말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회복의 전 과정’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지만
많은 경우에 제자답게 처신하지 못했습니다.
저들은 두려워 비굴했고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세상을 향해 도전적인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제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고 해서
그 즉시로 다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만이
구원받은 자로서의 복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적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 때까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수준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그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는가요? 2:13
▲내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이러한 거룩한 성품이나
또한 그렇게 살려고 하는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도로서 온전한 삶을 살도록
우리 영적성장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갈 수 있는 힘
즉 에너지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게 하시나니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구원받은 자로서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우리 마음을 감동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선한 목적에
부합한 선한 일을 하려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것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과 기도를 드릴 때
신학자 <위어즈비>의 빌립보 강해에 보면
이 구절을 강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방편이 있다
그 방편이 무엇인가?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만이
우리의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영적성장은
내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에 전념할 때 우리의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3. 구원을 이루는데 꼭 주의해야 할 것 - 원망과 시비 2:14
빌2:14,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원망하기 시작하면.. 계속 원망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 <원망>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시비도 걸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원망>은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을 약자 및 피해자로 인식시킴으로써
상대방에게 죄의식을 유발시킵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이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 노력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원망>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 해결보다는 <원망>을 통해, 병적인 의존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더 큰 무의식적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서길 원하는 자가 되어야
예수님은 병을 고치기 전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늘 물으셨습니다.
진정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먼저 무력감과 의존성의 고리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력감과 의존성을 끊어버리려면
원망과 시비를 멈추어야 합니다.
스스로 서길 원하는 자에게만 치유가 임하는 것이다.
바울이 지금 강조하는 말은 <모든 일>입니다.
어떤 일, 어떤 경우든 간에 원망과 시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하여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은 반드시 기쁨과 감사입니다. 빌4:6
그러니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적성장을 방해하는 마귀적인 세력은
항상 원망과 시비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40년 광야생활입니다.
저들은 불평 원망하다가 망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다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먹읍시다.
원망 시비 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시비는, 우리의 영적성장에 큰 걸림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4.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까? 2:15-16
→ 어두운 세상에 빛들로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2:15~16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빛 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 세상에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 주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영적성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영적성장이라고 하면
자기중심적인 행위 즉 나를 기분 좋게 하고, 나의 문제가 해결되고
불행한 일로부터 단절시켜 주며
나아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맡아 교회 봉사하는 일군 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영적성장이 그런 것입니까? 영적성장이라는 것은
내가 기분이 나빠도, 내 문제가 해결 안 되어도, 내가 불행한 일을 당해도
그 가운데서도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여 줄 수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빛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속에서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그들 가운데 빛을 발하는 자가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것이고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이 대낮처럼 밝다면 다른 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깜깜하기 때문에 빛이 필요합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더욱 빛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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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후4:8-9절 말씀을 제가 개척교회를 시작한 이후부터 붙들었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을 역설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삶을 통해, 역설적인 진리, 즉 생명의 말씀임을 보여 줘야 합니다.
왜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합니까?
바로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의 빛 즉 희망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내 만사형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5. 사도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생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간절한 바람이 무엇입니까? 2:17-18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교역자로서
몸은 멀리 떠나 있지만, 같이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여 세상에서 빛들로 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삶을 살아가기만 한다면
자신의 어떤 희생이라도 치루겠다는 것입니다.
빌2:17,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4:1절에도,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서 서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나의 기쁨 나의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심정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될 때, 목사가 목회의 보람을 느낍니다.
교회가 천 명이 모이고 만 명이 모인다고
그기에 목회의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보람이 무엇이겠습니까?
영적으로 성숙하여, 교회뿐만이 아니라 세상에서 빛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작은 예수가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환경이나 사람 때문에 영적 성숙에 방해 받지 말고,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지만,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세상에 빛을 발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가르칩니다.
그 일에, 자신이 생명을 바쳐도 하나도 아까운 것이 없고
도리어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처럼
세상에 희망을 보여 주는 상징적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09.01.18. 설교 스크랩, 정리 *원제목 : 밤하늘에 비취는 별들처럼 ▣ 교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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