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과 문빗장 없는 도시에 살기 슥2:1~5 설교 녹취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을 주신 것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곽도 없고, 문빗장도 없는 개방된 도시’에 사는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 스스로 방어하지 말고, 하나님의 ‘불성곽’ 방어를 믿고 살아라는 뜻이었다.
그렇다. 성도를 주님의 양떼로 표현하는데
신기하게 양은, 공격무기가 하나도 없다. 날카로운 이빨도, 발톱도 없고,
목자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절대 스스로 보호가 안 되는 동물이 바로 양이다.
그런데 ‘목자’ 만큼 안전한 보호도 사실 없다. 그래서 양은 자기보호수단이 사실 필요 없다.
◑성城을 쌓은 사람들
▲자기 성벽을 쌓으며 살아가는 인간을 보여주는 크로닌의 소설「성채」
모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빗장도시, 요새를 쌓으며 살아간다.
도대체 왜 인간들은 성을 쌓으려 하는가?
크로닌의 소설「성채」는 그 대답을 이렇게 설명해 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앤드류 맨슨이란 의사이다.
그는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영국 웨일즈 남부의 탄광촌에 들어가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광부들을 위해 폐결핵을 연구하던 인도주의적 의사였는데,
나중에 명성을 쌓으면서 점점 돈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여보, 왜 돈 돈 하세요? 우리가 그토록 가난했던 시절에도 행복했잖아요?
당신이 비난하던 돈의 재물이 되기 싫어요!
당신이 했던 말, 잊지 않으셨죠?
눈에 보이지 않는 성채를 점령하며 살아야 한다고!
당신은 전에는 그런 기백을 가진 분이셨어요’
그러자 남편 앤드류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여보, 다만 나는 성공하고 싶을 뿐이야.
세상이란 신분과 재산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든?
가지지 못한 자는 다른 사람에게 부림을 당해!
나는 뼈에 사무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부림을 당하며 자랐기 때문에
앞으로는 남을 부리며 살고 싶을 뿐이야!’
▲사람들이 성城을 쌓는 이유
그렇다. 세상은 언제나 신분이나 재산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현실이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한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부자의 재물은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고 했다. 잠18:11
따라서 오늘 한국의 현대인들이 빗장도시 안으로 진입하려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성채를 쌓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어느 한 순간에는 성채를 쌓지 않고 살아가다가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성채, 요새를 쌓고
그 속에서 안정감을 한없이 누리려 할 것이다.
▲크리스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세상 불신자들이 하는 일이란, 끊임없이 성벽과 요새를 쌓고
거기에 문을 만들고,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를 채우는 일이다.
그러면 성도 역시, 거기에 뒤질 새라 성벽을 쌓고 살아가고 있다.
‘언제까지 항상 바보처럼 뒤지며 살아야 된다는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조차도 거리낌 없이 성을 쌓는다.
성을 못 쌓은 사람, 성을 안 쌓은 사람들이... 바보, 무능력자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늘날 한국사회, 한국교회는 심각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한국교회는 빗장도시의 성벽을 헐거나, 성벽문의 빗장을 여는데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빗장도시 안으로 들어가서, 빗장을 잠근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도 모르게 엄청난 고독을 느끼고 있다.
▲자기들을 보호하려고 성곽을 높이 쌓았는데, 그 안에 사람들이 도리어 삼켜진다.
뿐만 아니다. 성을 쌓고 빗장을 지르면
그곳은 엄청난 무서운, ‘사람을 삼키는 땅’이 된다.
성읍을 견고하게 만들고, 성벽에 문을 달고 빗장을 지르면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끝내는 소통부재로 인해서
사람을 삼키는, 무서운 일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낼 때, 그들의 보고 속에 보면
그들의 강하고 견고한 성읍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본 것이다.
민13:27~33 (이 말은 10정탐꾼의 부정적 보고이긴 하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가나안 사람들처럼
성을 쌓고, 성벽을 건축하며 견고하게 지키며 살아라고 가르친 적이 없으시다.
왜 그런가?
그러면 안전하고 보호받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재앙 받은 땅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테러와 전쟁을 명목으로 미국이 빗장을 지르고, 성벽을 높이 쌓고 있다.
그 가운데서 누구보다 미국 시민들이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한인들처럼, 외국인 시민권자들이 더욱 고통스럽다.)
◐하나님은 성, 요새 쌓는 것을 싫어하신다.
▲구약을 개관해서 볼 때, 성과 요새를 쌓거나, 그 속에 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바벨탑 요새를 쌓던 그 바벨 요새로부터 아브라함을 불러내셨다.
(지금 고고학적 유물을 봐도 우르에는 큰 ‘지구라트’ 성읍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을 빗장도시 애굽에서 불러내셔서
성읍이 견고해서 거민을 삼킬 정도인 그 가나안의 거민들을 다 몰아내시고,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시고, 가나안 땅에 살게 하셨는데,
그런데 그 가나안에 살게 된 이스라엘 역시 1천년의 역사 가운데
요새를 쌓고, 빗장을 지르고 살았다. (영적인 의미의 요새와 성읍이 90%)
그러자 하나님은 앗수르, 바벨론을 통해서 그 성읍, 빗장(성전 포함)을 깨뜨리시고
바벨론 포로로 보내셨다.
70년 후에 바벨론에서 돌아와 새롭게 예루살렘에 성과 성전을 쌓으려는데,
이웃 민족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이 15년간 중단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
역시, 성곽을 쌓지 말라는 것이다.
①스가랴가 환상 중에 보매, 한 사람이 측량줄을 들고 서 있었다. 2:1~2
스가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환상 중에 그 천사는,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라고 말하고 떠났다.
이것은 15년간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또한 그 후에 있을 <성벽> 건축이
곧 다시 시작된다는 의미다. 건축하기 전에 측량부터 하니까!
②그런데 다른 천사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슥2:4~5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예루살렘은, ‘성곽이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천사가 측량하다가 즉시 사라졌다.
성곽 없는 성읍은 측량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성경 문맥상 그렇다. 슥2:1~5
◐하나님의 불성곽 *불성곽 fire wall, 불이 타는 벽
사람이 자기 힘으로 성과 요새를 쌓지 않으면, 하나님이 불성곽이 되어 주신다.
▲슥2:4, <성곽 없는 성읍>의 히브리어를 영어로 말하면 <플라자 plaza>이다.
‘플라자’는 넓게 사방이 트인 지역이란 뜻이다.
성벽과 빗장이 없는 넓은 광장이란 뜻이다.
그 이유는, 돌로 쌓은 성곽 대신에, 하나님이 친히 성곽이 되어주시는데,
스가랴서는 그것을 ‘불로 둘러싼 성곽’, 즉 '불성곽'이라고 말한다.
여러분, 역사를 읽어보시라.
고대로부터~중세까지 역사는 <성벽 쌓는 역사>였다.
견고한 성벽이 없으면, 적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불로 된 성벽’이 되어주실 터이니
‘너희는 성벽 쌓지 말고 살아라’고 하신다.
▲에스겔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겔38:11절에 나오는 <평원의 고을>역시 ‘플라자’와 같은 히브리 단어이다.
거기서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
즉 ‘평원의 고을’(플라자)에 거주하는 백성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성벽과 빗장 없이 사는 백성’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벽’이 되어주시고, ‘빗장’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출애굽 때 불기둥도 ‘하나님의 불성곽’이었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은 어떤 성곽도 쌓을 수 없었다.
정말 무방비상태로 사면이 노출되어 있었다.
그 때 이스라엘을 보호한 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이었다.
그 때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그들을 보호해주셨고,
성벽과 문과 빗장이 없어도, 그들은 안전했다.
하나님이 사면에서 그들에게 불성곽이 되어주셨기 때문이다.
슥2:8절에,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적인 자기 보호수단, 성벽을 쌓지 말라고 하신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약속은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있으나 마나한 보호의 약속이다.
◑성곽 쌓기에 여념 없는 세상 현실
▲크리스천만이라도 성곽을 쌓으면 안 돼
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차갑게 얼어붙은 동토의 땅’으로 날로 변하고 있는가?
현대인들이 서로 성을 쌓아올리면서 서로 지쳐 있다.
게다가 하나님의 백성들마저, 뒤질 새라 성을 쌓고 있는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두신 이유는
서로 성벽과 담벼락을 높이 쌓아올리는 이 각박한 세상에
하나님 백성들만이라도, 성곽 없이, 성벽 없이 이웃과 마음을 열고 살라는 것이다.
서로 자기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세상에서,
성도들만이라도 따뜻한 사랑의 손을 이웃에게 내 밀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불성곽의 보호>가 우리에게 나타나려면
우리가 인간적인 성곽을 먼저 버려야 한다. 성쌓기를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불성곽이 자기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성곽 쌓지 않는다.
그게 믿어지지 않으니까, 불안 초조하니까,
성도와 교회도, 자기 성곽 쌓기에 여념이 없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이렇게 계속 나가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그 불신앙을 책망하시고, 성령님이 떠나버리신다.
▲하나님의 영광은 <성벽이 없는 곳>에 나타난다.
교회가 하나님의 불성곽을 믿으며, 인간적인 자기 보호수단을 버릴 때,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 슥2:5
오늘날 성도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벽돌 성곽을 쌓고, 견고한 요새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오냐, 너희 힘으로 잘 해 봐라!’ 하시고, 떠나버리신다.
마땅히 있어야 할 주님의 영광이 떠나버리는 것이다. 결국 발에 밟히는 소금 된다.
▲원래 하나님의 목적은, 모여서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하는 것이다. 행1:8 등
그러니까 ‘견고한 성곽’이 애시 당초 필요 없는 것이다.
곧 흩어질 것인데, 뭣하러 높고 견고한 성을 쌓아올리겠는가?
슥2:6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성에도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슥2:6
그들은 포로 70년을 거치면서, 거기서 터를 잡고 안정되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시 <그 성읍에서 나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너희를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다’고 하신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바벨론에 많이 남아있었고, 일부만 귀환했다.)
◑<해리 포터 이야기>의 교훈
하나님의 불성곽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이 이야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악한 마술사는, 자기에게 해가 될지 모르는 해리 포터를 죽이려 하였고,
해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 몸으로 그 공격을 막아낸다.
그래서 해리의 어머니가 목숨을 잃고, 아버지도 결국에는 잃는다.
마술사는 결국 해리를 죽이지 못하고,
그런 공격과 방어의 와중에, 해리의 이마에는 번개 모양의 상처가 생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이 악한 마술사가 해리를 계속 죽이려 하지만,
절대 죽이지 못한다는 이야기의 반복이다.
어느 날 해리는, 마법학교의 교장에게
왜 악한 마술사가 자기를 죽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교장이 이렇게 말한다.
“네 어머니가 너를 구하기 위해 죽으셨단다.
너를 죽이려는 악한 마술사가 이해 못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란다.
너를 향한 어머니의 강한 사랑은,
그 흔적을 남겨놓는다는 것을, 마술사는 모르는 것이지.
너를 향한 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 너를 보호하는 것이란다.
지금 네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의 상처가, 바로 그 흔적이란다!”
이것은 성경의 주제와 비슷하다. 그래서 인용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적 사랑으로 인해서.. 오늘 우리가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5~39
즉, 우리의 쌓아올린 물질, 학벌, 지위.. 이런 것들이
나를 보호하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보호는, 오직 예수님께로서만, 예수님의 사랑으로부터만 온다는 것이다.
환란, 기근, 곤고, 핍박, 적신, 칼 등이 올 수는 있다.
해리 포터도 부모님을 잃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를 이기지는 못 한다. 그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불성곽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어주시기 때문이다.
▲마치는 말
우리 개인적으로도
-물질이라는 성곽
-학벌이라는 성곽
-기득권적 직분이라는 성곽
-정통이라는 성곽,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나랑 친한 사람들과의 인맥의 성곽
이런 것 잔뜩 쌓아놓고, 이웃을 배척하며 살면
그 속에 자기를 안전하게 보호하며 살겠다고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발상인 것이다.
우리는 성곽에서 나아와
성곽 없는 촌락, 플라자에 거주해야 한다. 흩어져야 한다.
그 때 하나님의 불성곽이 우리를 보호하실 것이고,
우리를 건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의 눈을 촉범하는 자가 될 것이다. 슥2:8
인간이 세운 어떤 요새도 우리를 보호할 수 없고
‘주님의 사랑’만이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힘이 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기를 철저히 지키려는 ‘요새와 빗장’이 가득하다.
그런데 미국에 911이 나고, 경제가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여호와께서 지키시지 않으면, 파수꾼의 수고가 헛되다는 시127:1절이 기억난다.
빗장을 풀고 플라자가 되어,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를 방어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전파와 땅끝까지 증인되는 것이
크리스천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09.02.01. 설교 부분 녹취, *원제목 :하나님의 백성은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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