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의 아름다움 마6:29 편집자 묵상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6:29
▲백합화가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 입은 것보다 더 아름답다는데...
백합화는, 주석 책을 찾아보니, 팔레스틴에 피는 야생 꽃(의 통칭)이라고 합니다.
마6:30의 병행구절에서는 ‘들풀’이라 했으므로, ‘들에 피는 꽃’입니다. (이하 들꽃)
예수님은 ‘들꽃’을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 입은 것’에 비교하시는데,
혹자는 ‘솔로몬의 왕복에 새겨진 꽃 문향’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문자 그대로 ‘솔로몬의 입은 화려한 옷’과 비교한다 해도 별 차이는 없습니다.
퍼뜩 생각하면, ‘솔로몬의 모든 영화로 입은 옷’이, ‘들꽃’보다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내 인간적/세속적 가치관으로는,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단번에 ‘솔로몬의 왕복’을 취할 것 같습니다.
봄~가을에 논둑에 피는 ‘들꽃’ 하나쯤이야 뭐가 그리 소중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들꽃’이 ‘솔로몬의 모든 영화’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셨을까요?
하는 수 없이 그 이유를 몇 가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1. 들꽃의 생명력
들꽃은 값싸고, 별로 가치가 없는 듯 보이지만.., 생명력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옷에 새겨진 영화롭고 화려한 꽃은, 화려하긴 하나.. 생명력이 없습니다.
▲오늘 워낙 이름을 많이 들은 유명한 미국 목사님의 책을 한 권 샀는데,
이리 저리 뒤적거리다 ‘이거 산 지 10분밖에 안 되었으니 딴 것으로 바꾸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 어떤 생명력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자기 방법론(노하우)만, ‘리더십’이란 주제 아래, 잔뜩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마침 아침에 묵상한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6:29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차라리 어느 시골교회 성도의 진솔한 자기 삶 속의 간증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솔로몬의 값비싼 옷은... 고작 10~20년 지나면, 좀이 먹어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들꽃은, 생명이 있으므로, 별 탈 없으면 내년에 그 자리에 또 꽃을 피웁니다.
혹시 그 자리가 홍수나 산불에 의해 소실되더라도
그 씨가 홍수에 떠내려가든지, 산불 열기에 날아가든지, 다른 데 가서도 꽃 피웁니다.
어떤 씨는 거북이에게 먹혔다가, 지구 반대쪽에 가서 배설되어, 거기서 꽃 피웁니다.
자기 세대는 죽어도, 다음 세대가 그 생명력을 계승합니다.
그래서 그 생명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입은 옷은.. 지금 우리가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지만
솔로몬 당시에 피었던 들꽃들은.. 3천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땅에 피어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꽃의 생명력’을 눈 여겨보셨는데,
나는 ‘들꽃의 생명력’은 안중에도 없고
자꾸 ‘솔로몬의 입은 영화’에만 눈이 돌아갑니다...
▲생명은 생명을 낳습니다.
오늘 내가 동경하는 ‘솔로몬의 화려한 옷’은.. 다음 세대가 되면 소멸되지만
오늘 내가 무시하는 ‘들꽃의 생명력’은.. 아마 영원히 천국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천국에도 꽃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 ‘들꽃’은 은유적으로,
‘무명 성도’ 또는 ‘그의 이름 없는 헌신’을 뜻한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대단히 화려하긴 하나... 생명력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다음 세대'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골에서 한 두 명 붙들고 있으나... 그래서 무시당하기 딱 알맞으나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사라진 그 자리에서... 반드시 꽃은 또다시 피어납니다.
생명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꽃을 보십시오!
부모의 최대 성공은, 자기 신앙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이며
부모의 최대 실패는, 자기 신앙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겉은 솔로몬의 옷처럼 화려한데, 사실은 물려줄 생명력이 없는 부모가 있고,
겉은 들꽃처럼 볼 품 없는데, 사실은 뜨거운 생명력을 물려주는 부모가 있습니다.
‘들꽃’은 기회균등이며, 누구나 들꽃이 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왕복이 되기는 얼마나 어렵습니까...
◑2. 들꽃의 광범위한 산재散在의 아름다움
(이 단락은 예수님의 원래 의도를 토대로, 약간 비약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들꽃 한 송이는 크게 볼품이 없지만,
넓은 광야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들꽃 군집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곧 개나리, 벚꽃이 피어서, 전국이 꽃동산이 되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솔로몬의 화려한 옷이 미치는 범위는 고작 왕궁 안이지만,
들꽃의 무리들은, 팔레스타인 전체를 아름답게 꾸밉니다.
무명의 작은 꽃 한 송이이지만,
전국에 흩어진 들꽃은, 전국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20세기 최대의 파란을 일으킨 들꽃 무리들
역사가들은, 20세기 최대의 사건을 ‘소련연방 공산주의의 소멸’이라고 여깁니다.
서구의 방대한 정보기관들이 전혀 그 낌새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소련과 동독,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등지에서
공산주의가 힘없이 무너지리라곤 아무도 예상도 못했고,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런 철옹성 공산주의를 무너져 내리게 한 힘은
동구라파 각 나라에 들꽃처럼 퍼져 있던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이들 개개인들이, 핍박 속에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무신론에 대항해서 하나님 신앙을 퍼뜨리고,
탄압하고 핍박하는 자들에 대해 평화적으로 대응하고...
그런 것들이 한 두 번에 거쳤으면, 아무 힘이 없었겠지만
동구라파의 모든 나라들에, 모든 지역 지역에서
이름 없는, 셀 수 없는 <들꽃들>이.. 제각각 자기 자리에서 자기 꽃을 피운 것입니다.
그것이 거대한 <들꽃의 물결을, 파도>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서구가 무슨 전쟁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쿠데타를 사주한 것도 아니고,
자금력을 살포해서 반체제 운동을 도운 것도 아니고, 내전이 발생했던 것도 아니고,
기독교의 힘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으며,
사실 베를린 장벽 붕괴의 도화선이 된 동독의 촛불집회도.. 기독교 신앙운동이었습니다.
※위 내용, 동독, 루마니아, 체코, 폴란드 등지에서 일어난 자세한 실제 사례는,
찰스 콜슨,「이것이 교회다」에 십 여건 이상 매우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남북통일도 이런 식으로 되어지겠군요...
작은 '들꽃'들이 계속 번져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아름다움
자꾸 들꽃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기독교의 힘은 <들꽃의 아름다움>에 있다는 것입니다.
몇 명의 스타들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무명의 들꽃부대’가 뒷받침 될 때에만 제 힘을 발취합니다.
전국에 흩어진 들꽃들이, 자기 색깔을 내며,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
그들이 ‘솔로몬의 영화로 입은 것’만 탐내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매일을 아무렇게나 산다면
그것은 <이방인불신자들이나 범하는 죄>입니다. 이런 걱정은 이방인들이나 하는 것이다. 마6:32
▲개미들의 힘
동물, 곤충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유전학적으로는 침팬지가 사람과 가장 유사하지만
사회학적으로는 개미가 사람과 가장 유사하다고 합니다.
침팬지는.. 전쟁, 왕, 저축, 나라건설.. 이런 것 안 하지만
개미는.. 사람들처럼 전쟁, 왕, 저축, 나라건설.. 다 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어느 곤충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지구상에 있는 모든 개미의 무게를 합하면 (개미 1마리는 0.5밀리그램이지만)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 수의 무게와 거의 같다고 합니다.
(자기 몸이 70킬로 이면, 1백4십만 마리의 개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몸무게만큼의 개미 숫자가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개미 숫자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운 나라에서는 흰개미를 정말 무서워합니다.
목조건물의 내부를 다 갉아먹어치우기 때문에
겉은 멀쩡한 건물이, 결국에는 속이 텅 비어서 와르르 무너지게 됩니다.
그래서 약도 치고, 페인트도 칠하면서, 개미를 퇴치하느라 애쓰는데,
개미 한 마리는 힘이 없지만, 떼거리로 몰려다니기 때문에, 집을 차례로 무너뜨립니다.
흰개미가 무서운 것은, 미리 방제하지 않으면,
일단 흰개미가 나무를 갉아먹은 증거가 나타나면.. 손 쓸 길이 없습니다.
개미가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으려면
집을 다 뜯고 허물어 새 나무기둥, 서까래를 박아야 하니까.. 그냥 보면서 당합니다.
요지는, 개미가 작은 곤충이지만, 모여서 큰 힘을 형성하듯이
들꽃도, 작은 것이지만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전국을 뒤덮듯이
그런 광범위한 산재(散在, 흩어져 있음)의 힘은
‘솔로몬의 영광으로 입은 것’과 비교가 될 수 없이... 큽니다.
▲풀벌레 울음소리의 힘 (며칠 전에 올린 내용, 다시 올립니다.)
여러분, 아프리카 밀림에서,
쩌렁쩌렁하는 사자 울음소리와 삐릭삐릭 하는 풀벌레 울음소리..
이 둘 중에, 풀벌레 울음소리가 더 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풀벌레들의 특징은, 한 벌레가 울면, 다른 벌레가 따라서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풀벌레만 울면, 여기저기서 풀벌레들이 따라 웁니다.
밤새도록, 그래서 풀벌레 울음소리는, 전체 밀림을 가득 뒤덮습니다.
한 마리 풀벌레 울음소리가.. 전체 밀림의 풀벌레 울음소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풀벌레가 이제 그만 울고 쉬려고 해도,
그 때는 다른 풀벌레가 우니까, 또 따라서 울게 됩니다.
이렇게 풀벌레는, 매우 작은 곤충이지만, 전체 밀림을 밤새 일깨운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 들꽃인 내 한 몸 보태기
들꽃이, 자기는 솔로몬의 왕복이 아니라서, 들꽃이기를 포기해 버린다면
그렇게 하나 둘씩 포기해 버린다면,
‘여호와의 동산’은 점점 ‘가시와 엉겅퀴의 땅’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들꽃이, 자기에게 있는 ‘생명력의 위대함’을 유지하면서
계속 어느 둔덕 한쪽 자리를 지킬 때,
‘가시와 엉겅퀴의 땅’도 점점 ‘여호와의 동산’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했던 것도, 들꽃 부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콘스탄틴이 본 십자가 환상 때문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당시 로마제국 전역에 무수히 피었던 ‘들꽃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습니다.
'들꽃'들이 전 제국에 산재해 있어서 아름다움을 발휘하고 있었으므로,
기독교를 공인 안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 629선언을 통해 민주화가 실제로 되어진 것도
표면적으로는 610항쟁 등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들꽃들’ 때문이었습니다.
유명한 민주투사는 아니어도, ‘시민들이 내 한 몸 보태자’며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방 천지에 흩어진 들꽃들이 ‘내 한 몸 보태자’며 일어났을 때.. 소련이 붕괴되었습니다.
그 군집의 아름다움이, 압제의 추함을 삼켰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당시에 민주화 안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방 천지에 흩어진 들꽃들이 ‘내 한 몸 보태자’며 일어날 때..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게 큰 지진이 일어날 것입니다.
부흥이 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편집자 큐티 ▣ 삶의 통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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