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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1780

LNCK 2009. 3. 6. 22:49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6-20      설교 스크랩

 

 

◑본문 설명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시고.., 보조를 맞춰서 행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 오히려 큰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이유는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논쟁에 휘말려 들어가서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느냐? 왜 짐을 싸서 가라고 하였느냐?’

시비를 걸어왔을 때,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의 뜻을 요5:19~20절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자기 눈으로) 보시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요5:19~20

  

아버지는, 아들이신 예수님께 당신이 행하시는 일을 다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항상 하나님을 주목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행하시는지 보시면서 그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일도, 그렇게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주위에서 행하시는 일을.. 내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 일에 참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야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실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겠느냐?’ 고 질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셨으면, 자기 영혼이 살아 있고,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게 해주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3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성령님으로.. 오늘도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매우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18~20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실 때,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오늘날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적 용

 

▲행려자 homeless 를 돌보는 것은,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 교회가 (기차)역 근처에 있어서

그곳에서 노숙하는 많은 행려자들이 교회에 구걸하러 찾아 왔습니다.

사실 교회에 여러 가지 할 일도 많은데,

행려자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 귀찮고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마25:45절이 생각났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제야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아침 밥을 대접하고, 옷을 모아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많은 행려자들이 왔습니다. 아침에 2백 명씩 왔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은 것은, 그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재정적으로도 오히려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봉사 및 헌금에 적극 참여했던 것입니다. 


▲일의 주체를 분명히 하십시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일에.. 하나님을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자는 초신자)


하나님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서 우리들이 어떻게 사는지 내려다보시다가

우리가 도와달라고 하면, 조금 도와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기 원하시는 일을 계속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보게 하시고

그 일에 참여하게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아무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집니다.

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거기 서 있지만 말고 뭐라도 좀 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덮어놓고 아무 일이나 하지 말고 거기 좀 서 있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먼저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예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가르쳐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질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합니다.

“나를 이곳에 보내신 뜻이 무엇입니까?”

“내게 이 직장을 주신 뜻이 무엇입니까?”

“나를 왜 이 교회에 나오게 하셨습니까?”

전부 “나” “나” “나”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참고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누가 내 이웃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겠느냐?’고 되물으십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문제에 있어서도, 바리새인들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대방 중심적>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체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강도 만난 사람)’인 것입니다.  눅10:29, 36)


▲불만족한 상황에서, 내 중심이 아니라, 아버지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군목 시절, 제일 힘든 것이 인격지도시간(정신 교육)이었습니다.

예배 설교와는 달리, 종교와 상관없이 강제로 모아놓은 병사들에게

한 시간 무엇인가 그들에게 유익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군종병들에게 물었더니, 야한 농담이나 해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지간해서는 도무지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인격지도시간이 저를 힘들게만 하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니까, 목사인 제게는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문제를 놓고 기도를 드리는 중에

‘사회라면 저들이 다 어디 갈 것인가? 군대니까, 목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인생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시작해서 복음으로 연결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조는 사람,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훈련은 나중에 제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정리해서,

성도가 아닌 일반인에게 말하는 훈련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지, 하나님께 물은 마더 테레사 

인도의 캘커타 시를 방문한 사람들이면 꼭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

마더 테레사가 세운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Home for Dying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에 처음으로 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무슨 일로 영광 받기 원하십니까?’ 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충분한 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도와줄 사람도 별로 없으며,

특별하게 내세울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것은, 오직 인도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은

간절한 열망뿐이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 시내를 걷는 중에

길가에서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 없이, 홀로 죽어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돌보아 주지 않는 그 사람을 보면서

테레사 수녀는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가 어떻게 살았든지

적어도 죽어가는 순간만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테레사 수녀는 즉시 하나님이 하시기를 원하는 그 일에, 참여하기로 작정합니다.

그리고는 폐허가 된 사원을 청소하여, 길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옮겨 놓았습니다.


죽어가는 순간만이라도, 청결한 분위기 속에서 죽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것이 그 분이 하신 사역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노벨 평화상을 받고 인도의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불행 중에도,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미국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한국에 와서 특별 집회를 하고 있는 동안에

미국에서 그의 13살된 딸이,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급히 미국으로 돌아가는 동안에, 어린 딸의 절망하는 모습을 그리며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하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슐러 목사님 내외가 병원 문에 들어설 때,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로버트 슐러 박사는 ‘지금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마음에서는 진정으로 찬미하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할렐루야,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소서.' 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딸은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안녕, 아빠! 안녕, 엄마!"

하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빠, 엄마, 내가 왜 사고를 당해 다리를 자르게 되었는지 이제 깨달았어요.

하나님께서는 나와 같이 불구가 된 장애자들을 위해 일하게 하시려는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셨던 거예요."


그녀는 나중에 장애인들을 위한 귀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큰 불행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불행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의 일들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가를 알고 싶어 하고, 묻고 바라보기만 하면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보다 먼저 일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곳으로 따라 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가 하고 살펴 본 다음.., 그 일에 동참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사역하는 것과

막연히 사역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 눈을 열어서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옵소서.

제 가정에서, 제 직장에서, 그리고 섬기는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제가 보기 원합니다.

저는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겠습니다. 주님 저를 인도해 주옵소서.”


<07.03.11. 설교 스크랩   *원제목 :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