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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버스 1782

LNCK 2009. 3. 9. 13:47
 

◈전동 버스            창22:15~24            설교 스크랩 -출처-


 

하나님은 이삭을 주실 때, 리브가도 미리 예비하고 계셨으며, (우리 삶을 다 예정하고 계시며)

그런 구체적인 계획을 감추고 계시다가,

이삭을 바칠 때, 즉 내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내게 리브가를 통한 자손의 번성 계획을 알려주신다...

 

 

▲전동버스를 보면, 신앙생활 원리가 생각납니다.

밴쿠버 땅에서 ‘전동버스’를 보았습니다.

전동버스는 전차와 비슷하게 전기로 가는 것인데,

전차는 쇠바퀴로 레일 위를 달리지만,

전동버스는 일반 버스와 똑같이 고무 타이어로 도로 위를 달립니다.


둘 다 전기 줄이 도로 위에 달려있습니다.

전동버스는 하늘에 전깃줄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그 전기 줄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해요.


어떨 때 보면, 전동버스는 너무 마음이 불안해요.

예를 들어, 길가에 차가 주정차 하고 서있다면 피해가야 되는데

위에 전깃줄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마음 놓고 차선을 변경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 전동버스가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성경 설명


▲이삭을 통해 자손이 번성할 것이 예언되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마음으로는 벌써 바쳐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칼을 들고 아들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너무나 급하셔서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 번을 다급하게 부르시고는, 그 수풀에 걸려있는 수양을 대신

제단에 드리게 하십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 마음이 너무 좋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까지라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치는 것을 보시고

다시 한 번 축복의 약속을 해 주십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창22:17~18


그런데 이 축복의 약속은 너무나 여러번 반복되고 있지 않습니까?

자손의 축복,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티끌처럼

많은 자손이 생길 것이라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연이어 리브가에 대해서도 예언되다.

연이어 좀 분위기가 전혀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내용을 덧붙이시는데

그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이 자식을 낳는 이야기를

아브라함에게 와서 누가 들려 줬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22:19~24 


그러니까 갈대아우르에 남아있던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자손에 관한기록들이

나오게 됩니다. 저는 성경처럼 재미있는 책을 이제까지 못 봤어요.


왜 갑자기 또 아브라함의 동생 이 나홀의 자식 낳은 이야기들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을까요?


보세요. 아브라함에게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복의 근원이 되리라. 별처럼, 모래알처럼.

그게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질 겁니다.


그런데 이삭혼자 애를 낳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장에 이삭의 짝이 될, 그래서 자손이 번성하게 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출생에 대해서 성경이 벌써 언급하고 있어요.


▲하늘에 이미 계획되어져 있었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언제 계획 하셨을까요?

성경이 지금 리브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삭의 출생은 도대체 언제 하나님이 계획>하셨을까요?

라는 질문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을 통해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언제 하나님이 계획을 하셨고,

그 이삭의 짝을 리브가로 정해주셔서 리브가와 이삭이 아이를 낳고

거기서 에서와 야곱이 나오고 야곱의 열두 아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실 계획을 언제 세웠겠느냐 하는 얘깁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하실 때 생긴 계획이었을까요?

더 멀리, 어쩌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런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벌써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후손이 번성할 터인데,

그 이삭의 짝을 내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 중에

브두엘이라는 아들이 나올 것인데

그 브두엘의 딸 리브가와 내가 짝을 지어줄 것이고


그리고 이 짝으로부터 시작된 자손 중에 야곱이 태어나서 12지파로 번성되고,

이제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실 때부터

그와 비슷한 시점에

갈대아 우르에서 ‘리브가를 예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키워갈 즈음에

동시에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을 통해

나홀-브두엘-리브가를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창22:17~24


그러나 이런 계획을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신 시점이,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가 아니라,

그가 <이삭을 바친 후에, 즉 우상/자기 계획을 다 버린 후에> 라는 것이죠.

하늘에 모든 계획이 다 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전동버스가 공중에 달려있는 전기 줄에 메여서

그 전기 줄에 대고서야 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이삭, 야곱, 리브가)에게는 하늘의 계획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갖고 계신 계획이 있다면

나를 위한 계획도 전기 줄처럼 하늘에 닿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동버스의 바퀴를 이 땅에 붙이고 살면서

우리의 마음과, 관심과, 우리의 눈과, 귀를 따라서

이 땅에 붙어있는 전동버스의 바퀴를 마음대로 움직여 가려는 것,

이게 불신앙적인 삶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어버릴 때, 결국 전동버스의 윗줄이 끊어져버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계획이 동강나버리고,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지 않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복을 버릴 때부터, 복이 구체화되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는 장면에서

지금 성경이 리브가에 대한 이야기를 연이어 쓰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하늘에서 이루어진 그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하늘의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 (하늘의 별, 땅의 모레 약속)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리브가 예비) 


아브라함의 가문에는 하늘에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 계획이 뭡니까? 자손의 번성이요,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이루어지는 시점이

복을 완전히 아까워하지 않고 버리는 그 시점이더라는 얘기에요.


자손의 번성의 계획을,

자손 이삭을 죽이는 하나님께 바쳐버리고 아까워하지 않고 버리는 것을 정점으로

이 땅에서 이루어져나가더라는 이야깁니다.



◑적용


제가 목사니까, 하나님은 제 목회에 대한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사역을 하는 그런 저의 사역을 통해 이루시려는, 주님의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어느 시점에 하나님의 그 계획들이 땅에서 이루어질까요?


제가 목사로서 목회를 완전히 마음에서 버릴 때!

‘큰 목회해봐야지, 좋은 목회해봐야지. 성공하는 목회 해봐야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를 하나 세워봐야지.’


이러한 생각을 마음에서 버리고

성공한 목회를 아까워하지 않고 완전히 버릴 때

하나님이 무슨 계획을 갖고 계신다면, 그 계획이 땅에서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져가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내 자식에 대해서 내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식을 아까워하지 않고, 자녀에 대한 나의 통제력을 버릴 때,

내 자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비로소 이 땅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사업에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아까워했던 사업을 마음에서 버리고

‘망하면 망하리라.’는 각오를 마음속에 채웁니다.

내 사업을 이삭을 바치듯이 바쳐버릴 그 때


내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전동 버스가 하늘의 전깃줄에 맞닿은 것처럼

그 하나님의 계획하신 동선을 따라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실현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도 마찬가지고, 여러분 모든 부부가 다 마찬가지고

여러분의 자식이 다 마찬가지고,

그 태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생까지 다 하늘에 줄이 그어져 있어요.

그 줄에 맞닿아서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에 맞닿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힘이 주어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지요.


이 세상에서 받는 힘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받는 욕망, 세상에서 받는 바람과 소망, 이런 것들,

세상이 갖고 있는 가치관들, 이런 것을 따라가도록 하는 세상의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따라가서는 안 되잖아요? (전깃줄을 벗어나, 바퀴가 가고 싶은 데로 굴러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줄에 닿으면, 거기서 전기의 힘이 오듯이

하나님으로부터 힘이 오고,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 안에서 해나가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운명론과는 뭐가 다를까요?

우리의 모든 인생이 공중에서 쭉 줄이 그어져있다면

운명론과 어떻게 다르겠습니까?


여러분, 기독교가 운명론과 다른 것은

주님은 새 한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운명론에서 말하듯이, 정말 운명과 같이

하나님의 선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냥 계획이 운명에 따라 이루어져가는 것일까요?


오늘 아브라함의 얘기를 통해서 기독교의 독특한 입장이 표명됩니다.

아브라함은 자손을 번성시켜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쭉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그 알려진 계획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아무런 마음의 집착을 갖지 않고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그 계획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삶에 들어오셔서

당신이 아브라함에 대해 갖고 계셨던 계획을, 수행해나가시는 것이지요.


운명론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운명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에 구체적인 계획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운명으로 인해, 자포자기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향해 갖고 계신 계획을,

하나님께서 인도해가시고 이루어가시고, 나는 하나님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단, 주체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과제는 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내 마음에 아까워하는 것이 하나님뿐이라서, 늘 하나님을 마음속에 그리워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과제는,

나를 향해 갖고 계신 당신의 계획을 이 땅에서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며, 동행하시는 가운데!


▲이삭을 바치는 단계로 몰아가시는 이유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바퀴가 있어서

이 땅에 붙인 마음이 전동버스의 바퀴처럼 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이 우리 삶속에서 실현되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내 욕망을 따라 움직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바람과 소원을 따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럼 이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고 계시느냐?

하나님이 세운 계획대로 내 삶이 진행되지 않고, 내 욕망을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내 삶에 대해서 관여하고 계시느냐 하면,

그 때도 계속 인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버리는 그 단계로 몰아가십니다.


자식 때문에 끙끙거리고 자식을 아까워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를 향한 계획, 자식을 향한 계획을 하나님이 실현시키지 못하십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시느냐? 자식을 계속 격동시켜서

내 마음이 자식에 대해서 완전히 탈진되도록 만드십니다.

그래서 자식을 완전히 마음에서 버리게 만드십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고, 두 손 들고 옵니다.

자식을 이제는 도저히 내 힘으로 못하겠습니다. 하나님께 다 맡깁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이 드디어 자식에 대한 계획과 나에 대한 계획을

이루어가시기 시작을 하신다는 겁니다.

 

▲마치는 말

자.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님이 이삭을 주신 그 상태에서 이삭을 바치라고 한 뒤에

리브가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이 해주고 있는 것,

이거 아주 기가 막힌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한 계획을 약속하시고, 이삭을 주었어요.

그런데 아직 리브가에 대한 이야기가 보류되고 있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이삭을 바쳐라. 그래서 이삭을 아까워하지 않고 바쳐버렸습니다.

그러자마자 성경이 이삭과 리브가가 짝이 되고

이제 자손 번성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이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을

성경이 천명해주고 있습니다. 리브가의 탄생을 (연이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내 계획을 버립니다.

우리위에는 오늘 하루도 전기 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계획이 쭉 나있습니다.


내 마음이 아까워하는 것들을 떼어내고, 하나님만을 아까워서 받아들여야 됩니다.

그런데 안 떨어질 것입니다. 아까워하는 것들이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 주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이라고

나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기도를 계속하시다보면

아까워하는 것들이 저절로 떨어져나갑니다.


여러분이 (의지적으로) 버리라는 게 아니라, 십자가만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까워하는 것들이 저절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07.01.11. 설교 스크랩.                                                               ▣ 십자가 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