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9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1796

LNCK 2009. 3. 17. 13:23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갈1:6-10             설교 스크랩



◑우리의 자화상


며칠 전 세상을 떠나신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자화상을 보셨는지요?

유성 파스텔로 단정하지만 간략하게 그린 동그란 얼굴, 참 고요해 보였습니다.

그림 밑에 그는 ‘바보야’라고 써놓았습니다.

여기서 ‘야’가 종결형 서술격 조사인지, 독립격 조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왜 바보라고 썼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


꽤 오래 전 가수 김도향 씨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이들은, 이런 느낌을 가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 만일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으니까 말로나 그려볼까요?


지금 우리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있는 것은 불안일 겁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있고,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은 나날이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경제침체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고,

동유럽 국가들의 국가부도(default, 채무불이행)가 예견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위기 소식도 시시각각으로 들려옵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에 대한 강박증적 불안이 있고,

실패 혹은 실직에 대한 두려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삶이 무의미하다는 생각 등이 시시때때로 우리를 괴롭힙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공동체는 사라지고,

우정도 물질주의에 종속된 것처럼 보입니다.


자동차 광고는 우리 시대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화면은 자기 차에 시동을 거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우정보다는 사회적 체신이 더 중요한 시대임을

이 광고는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KY'라는 단어가 유행이라는데,

그 말은 쿠키가 요메나이空氣が讀めなぃ라는 말의 앞뒤 글자를 영어 알파벳으로

표현한 것으로 ‘공기를 읽는다’, ‘분위기를 읽는다’는 뜻이라 합니다.


이 말은, 소신보다는 조직의 논리에 맞춰 자기를 길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왜소해진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게 인생인가 싶어 슬퍼집니다.



◑크리스천의 자화상 - ‘지기라’ 정신


한국인 아내를 둔 외국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지기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한국인 친구에게 묻더랍니다.

부부싸움 끝에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내뱉은 말인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기라!’(죽여라)가 뭔지 아시지요?


십자가를 붙들고 사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세상은 ‘지기라’ 하고 대드는 사람을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기라’ 정신으로 나갔던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 선교사가 말년에 잠비아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1871년 헨리 스탠리라는 탐험가가

리빙스턴을 찾아내기 위해 아프리카로 들어갔습니다.


1년 만에 겨우 밀림 속에서 병들어 앓고 있는 리빙스턴을 만났습니다.

식료품과 의약품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스탠리는 그에게 간절히 권면했습니다.


"선교사님, 아프리카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30년간 헌신해 오셨으니까

이제 그만 하시고, 저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던 리빙스턴은 아주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제게 있어서 아프리카 선교 사역은 헌신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특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영광스러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873년 5월 1일,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고난을 하나님께서 주신 특권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날 죽여라!’고 달려 나아갈 때,

어떤 마귀도 그를 막거나, 넘어뜨릴 수 없었습니다. 


‘지기라’의 태도로 이 악한 시대정신에 대항하지 않는 한

기독교는 살아날 수 없을 겁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십자가(지기라 정신)가 사라진 데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숭배의 대상으로 박제화되고,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왜곡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복음의 왜곡


갈라디아서를 읽는 이들은 바울사도가 매우 격앙되어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서신마다 등장하는 부드러운 인사말 대신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 듭니다.

도입하는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합니다.

그들에 대한 자신의 실망감을 직정적으로 드러냅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불러 주신 분에게서, 여러분이 그렇게도 빨리 떠나

다른 복음으로 넘어가는 데는,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


문제는 ‘다른 복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복음이 여럿 있는 것이 아니니까

다른 복음이란 가짜 복음, 혹은 사이비 복음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할례 받은 신자들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세례 받고 교회 잘 다니는 성도들을 겨냥한 것입니다.


당시 십자가 복음의 왜곡이 ‘율법주의’란 모양으로 나타났다면

오늘날 십자가 복음의 왜곡은 ‘물질 우상, 성공주의’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당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울처럼 ‘왜곡된 복음’을 전하고 받는 사람들에 대해

신랄하게 공격하는 사람이.. 자주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저주를 선포하는 바울

화가 난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10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참된 복음을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충격요법입니다.


‘저주를 받을 거’라는 말은 너무 가혹한 말로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순간 요즘 말로 바울의 ‘안티’가 많이 늘어날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자기 소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1:10


이 말씀처럼 강력한 말씀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인기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진리는 뒷걸음질 치며 우리에게서 멀어집니다.


예언자들은 하나 같이 인기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자신의 마음을 잇댄 채 살아갑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참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는 누구도 위협하지 않고, 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환희, 슬픔, 공포에서 자유롭고, 순수합니다.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지만, 그것에 영향 받지 않습니다.


그는 좋든 나쁘든 결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친구나 원수를 한마음으로 대하고, 존경이나 경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칭찬에 우쭐대지 않고, 사람들의 비난에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는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외부의 반응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러했고, 바울이 그러했으며, 수많은 성인과 간디가 그러했습니다.


존 디어 신부는 간디의 삶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간디는 하나님이 자신의 가슴을 무장 해제하도록 허락했으며,

그러는 동안 자신은 세계를 무장 해제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다.”

                                  <존 디어 엮음,「내 삶이 내 메시지다」, 39쪽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만이 당당하게 세파를 뚫고

순례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삶이 힘겨울 때마다 이 질문 앞에 서십시오.

“지금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러분은 지금 다른 복음이 부는 나팔 소리에 이끌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둠이 짙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봄을 선구(先驅)하는 하늘의 사람들입니다.


이 우수 절기에 사람들의 졸아붙고 얼어붙은 마음에

생명의 물줄기를 끌어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바울이 꽃피운 십자가 복음의 꽃 한 송이가 (시작해서)

전 아시아와 세계에 참 십자가 복음의 계절이 오게 했습니다.

 

<09.02.22. 인터넷설교 스크랩, 편집.  *원제목 : 다른 복음은 없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