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낚는 어부 마4:18~22 -09.02.27.설교 스크랩, 출처-
인류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공생애가 구체적으로 실현이 된 것이, 12제자를 기르시는 일입니다.
12제자를 기르시는 가장 핵심되는 내용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부를 택하신 이유는? - 특별한 구분 없이, 아무나 택했다는 뜻입니다.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인류구원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제자들을 양육하는데
왜 하필 어부들을 택하셨을까요?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제자를 만들어 가시기 위하여
진짜 직업이 어부인 사람을 선택하셨다는 것은,
사람을 낚는 일, 구원과 관련된 사역은, 어부건 사회 지도층 인사건,
특별히 이 일을 위해서 더 유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부를 택하든, 공부를 많이 한 바리새인을 택하든
사람 낚는 어부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나 바리새인이 조금도 더 낳을 게 없다는 얘깁니다.
어부나, 바리새인이나, 목수나.., 사람을 낚는 일에 대해서는 다 똑같다는 얘기에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구원의 역사는
인류 역사를 통해서 생길 수 있는 경험, 지식들이 아무 도움이 안 되기는
박사나 초등학교도 못나온 아이나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성도가 더 사람을 더 많이 낚아요, 목회자가 더 많이 낚아요?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목회를 하다보면 새 교우를 제일 많이 모시고 오는 교우들이 누군지 아세요?
새 교우에요. 오래된 권사님 치고 난 전도 하시는 것 못 봤어요.
장로님이 새 교우를 데려오는 일이 없어요. 새 교우들이 새 교우를 데려옵니다.
어째든, 박사나 어부나 마찬가지라고 하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일을 좀 더 잘 하는데 유리한 조건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예 없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 사람들이 물에 빠져 있다는 것
구원의 역사를 잘 수행할 만하다고 여겨질 만한 아무런 가능성이 없어요.
그런 사람들을 데려다가 구원의 역사를 주님께서 만들어 가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굳이 하셨어요.
‘사람을 낚는 어부’
예수님의 독특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후에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였습니다.
그러니 이 말이 아주 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 깊은 은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낚는다’는 말 자체가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듯이, 사람이 물속에서 빠져있는 상태를
주님은 연상하시는 거예요.
물에 빠진 자와, 빠져 있지 않고 건지는 자로
사람을 두 가지 모습으로 크게 구분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유대인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이 스며있다고 봅니다.
유대인들의 우주관은 3개의 층으로 되어있다고 여겼습니다.
-맨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이 있습니다.
-두 번째 <공중>이 있습니다. 엡2:2절에 ‘공중 권세 잡은 자’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그 아래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렇게 3가지 세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다음에
그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냈다는 보고를 들으시고는
내가 <공중>에서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봤다 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냈는데,
왜 그 일이 ‘공중에서 사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말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세계관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고
그 밑에 <공중>은 마귀가 권세를 잡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몸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물어볼게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 있습니까?
불교경전에 보면,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너희의 마음이 어디 있느뇨. 부처가 된다는 것은 마음을 깨치는 것인데,
너희의 마음이 어디 있느뇨?’
사람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 아는 분이 많지 않을 겁니다.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성경을 풀어나가는 것은 거의 기적이에요.
그러니까 늘 내 필요에 따라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지요.
성경은 계속 3층으로 이루어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깔고 말하거든요.
우리 마음은 <공중>에 있어요. 내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탄이 공중에서 떨어진다고 하신 것을 볼 때,
원래 사람의 마음에서 사탄이 떠나는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때
공중에 마음이 있다는 설이 성립됩니다.
답답하다고 가슴을 치지만, 내 몸 안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공중>에 있어서
<공중> 권세 잡은 마귀는, 결국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내 몸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귀신이 떨어져 나가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계십니다.
내가 <공중>에서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봤다
(※이런 내용은 처음 듣는 내용이라서, 당황스럽습니다만, 앞으로 계속 연구해 보겠습니다.
단, 물리적인 장소 개념으로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면 공중, 즉 사탄의 지배 영역에 있는 내 마음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배boat와 같은 것입니다. 배는 물을 떠날 수 없습니다.
물을 떠날 수는 없지만, 물을 담아서도 안 됩니다.
(여기서 배를 공중의 구름/수증기 사이를 떠다니는 배로 이해하면, 이해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이 공중에 있다는 얘기는,
그 공중이 공중권세 잡은 사탄이 지배하는 영역이지만,
마치 배가 바다 위 수면에 떠 있으면서도, 물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이 공중 영역 가운데서 우리가 살지만, 우리가 그 통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라는 겁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람 낚는 어부>란 뜻은?
그런데 우리가 5감각 기관으로 이 세상을 접하며 살면서
마치 배 밑창에 구멍을 통해 물이 뚫고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 마음 안으로 세상/사탄의 영향력/그 통치가 스며들어 와서
결국 물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 상태가 바로 주님이 보실 때
이제부터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상태입니다.
예를 들어 자식걱정, 사업 걱정이라는 것이
이 세상눈으로 보이고/귀로 들리는 일들 때문에, 내 마음이 침몰되었다는 얘깁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할 마음에, 세상일들이 가득 차서 가라앉고 있다니까요.
이 상태에서 <사람 낚는 어부를 통해 세상(마귀)의 물결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른 성경의 내증內證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 또 사도바울이 한 말
①‘너희가 그때는 공중권세 잡은 자들을 따라 세상 풍속을 좇아 행하더니...’ 와 같아요.
②‘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힌바 되었다고’ 하는 말은 또 웬 말입니까.
제가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공중(2층천, 마귀영역)에 있던 마음이, 세상풍조에 휘말려 가라앉았다가
예수님 믿게 되면서, 하나님 품(3층천)에 앉힌바 되었답니다.
이런 내용을 모르면, 성경을 해석하기가 참 힘들어지죠.
▲십자가 이후에 변화된 제자들
‘사람 낚는 어부’를 단순히 교회 데려오는 것만으로 생각하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 말씀의 깊이의 입체감이 없잖아요.
이런 세계관 속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을 양육해 나가시는데,
양육과정은 3년 이었지만, 3년이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 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다 십자가 사건으로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그 속에 빠져서 허덕이던 세상에서, 두둥실 뜨는 사람이 됩니다.
마음의 배가 이렇게 있다고 합시다. 구멍이 막 나있어요.
제자들의 마음속에 그 구멍을 통해 세상이 들어왔어요.
‘예수 잘 만났다. 예수 쫓아다니다가 이 나라가 독립하면 내가 영의정 좌의정 하겠다.’
그런 마음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어요.
물속에서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쫓아다닌 거예요.
그러다가 십자가 사건이 나면서 뿔뿔이 다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인간들의 모순이 드러납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는, 어쩌면 공중권세/세상의 파도에,
빠져서 거의 다 죽어있는 상태에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뭐냐면,
‘마음의 배’에 들어온 좋아하던 것들이 다 없어졌다는 얘기거든요.
십자가에서는, 세상에서 좋아하던 것들이 어느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 아이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라는 말을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는 못합니다.
십자가는 인간 세상에서 좋은 일들, 마음으로 빨아들인 일들을 차단시킵니다.
십자가에서 세상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배 밑창의 구멍이 다 막혀버린다고요.
그러니 깜빡 놀라 다 도망갔지요.
부활하신 뒤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그 십자가의 의미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나자마자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냐면,
영의정 하겠다고 하던 베드로의 밑창이 십자가를 받아들이자마자 확 막혀버립니다.
가라앉았던 배가 붕 뜨기 시작합니다.
뜨게 되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은.. 비로소 물에 빠진 사람들이 보이는 거죠.
▲지금 전도가 안 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예를 들어, 내 아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옆집 아이는 못 들어갔다.
내가 우리 아이 좋은 대학 들어 간 것이 너무 좋아서
그 마음으로 옆집에 가서 전도를 하면서,
좋은 대학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꼬신다면, 전도가 될까요/안 될 까요?
저는 안 된다고 봐요. 같이 이 세상에 잠겨있는 입장에서는.. 죽어도 전도가 안 돼요.
이웃집 사람이 나를 볼 때,
과거에는 자기와 똑같이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세상에 안 빠지고, 둥둥 떠 있는 사람으로 보일 때라야.. 전도가 됩니다.
자기와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느껴져야 전도가 일어나죠.
그런데 전부 똑같이 빠져있어요. 교인만 빠진 것이 아니라, 일부 교회가 빠져있어요.
‘교회는 세상의 방주’라고 얘기하죠. 방주인데, 구멍 난 방주에요.
세상의 자본주의 원리가 그대로 들어와 있는 것 아닙니까?
결국은 세상에 있는 골프클럽, 테니스 클럽, 등산 클럽 등등을 다 끌어들여요.
그래야 사람이 온다고 생각하니까.
오기야 오겠지만 한 사람도 전도가 안 돼요. 그래가지고는...
▲분명히 말합니다. 뜬 사람만 낚아 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뜨게 됩니까.
우리 마음은 세상 바다 위에 떠있는 상태라서
이 세상의 물을 빨아들이는 상태에서는 절대 뜰 수가 없고,
주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면서,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이 다 없어진 자리,
거기서 진정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 마음이 둥실 뜹니다...
◑적용
▲남편 사업의 예
그 전에는 무조건 ‘하나님, 우리 사업 잘 되게 해 주세요’ 하면서 기도하다가,
사업의 위기가 오면, 남편을 껴안고 같이 가라앉죠.
사업이 안 된다고 남편이 와서 죽겠다고 하면,
물에 빠져 헤매는 이처럼, 남편이 막 허우적거리는 거죠.
그러면 부인이 ‘여보, 우리 같이 기도해요’ 하면서 손을 죽 내밉니다.
그럼 남편이 잡아끌어서 둘 다 같이 가라앉는 거죠, 꼬르륵.
그래가지고 교회에 오면, 풀이 다 죽어 있습니다. 여전히 사업이 힘드니까..
세상 물을 빨아들였더니, 무거워서 배가 가라앉는 거죠.
이럴 때 남편을 구하고 싶으면 십자가를 갖다 대는 겁니다.
그 구멍을 탁 막으면, 내가 붕 뜹니다. 뜨자마자 남편이 빠져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전까지는 남편이 사업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사업이 잘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같이 빠져있었어요.
그런데 배 위로 타고 물 위에 올라서자마자, 사업이 안 되는 것이 위기가 아니라,
사업에 마음이 전적으로 빠져있는 것이 - 위기라고 보입니다.
▲자녀 교육의 예
우리 아이가 대학에 못 들어갔다고 울고 있는 것이 일이 아니라,
세상 풍조를 따라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은 사람은.. 문제가 달라 보여요.
그런데 보통 성도들에게 계속 문제가 어떻게 다가오느냐 하면
대학에 못 들어간 것이 문제고, 사업이 안 되는 것이 문제고,
아직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의 인공호흡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을 받으라 하시며
후~ 입으로 바람을 내 부셨잖아요. 이게 인공호흡이에요.
세상의 물에 빠진 제자들을 겨우 끄집어냈잖아요.
그래서 하늘의 공기를 가지고 인공호흡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한 일이 오순절 성령의 역사 아닙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지니고 있으면
세상을 향하여 좋아하던 것들을 빨아들이는 (배 밑바닥에 뚫린) 구멍이 막혀요.
하여간 십자가보다 먼저 마음에 끌어들이는 것은
내 마음의 배 밑창에 구멍이 나서 가라앉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보이면 자식보다 주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내가 죽었는데, 하면 자식으로 구멍이 나서 들어오던 것들이
딱 막혀버릴 수 있다는 겁니다.
▲내 아들이 학교 갔다가, 멍들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엊그제도 아이가 학교에서 운동회 날 ‘꼭두각시 춤’을 춘대요.
요즘 교실마다 여자애가 모자라니까, 일부 남학생들은 남자끼리 짝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과 짝이 된 남자아이가, 강짜가 심해서
자기가 키도 더 작으면서, 꼭두각시 커플의 ‘남자’를 하겠다고 우겨서,
그 춤을 추려면, 여자 역(우리 아이)을 업어야 하는데,
그 아이의 작은 덩치로는, 우리 아이를 업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도 아무튼 자기가 남자를 하겠다고 하면서
우리 아이를 여기저기 새빨갛게 꼬집어 놨어요.
팔 둑도 꼬집히고, 엉덩이도 시뻘겋게 꼬집혀 가지고 집에 왔어요.
아빠인 제가 보니까, 성질이 팍 나잖아요.
그 때, 제가 ‘꼬르륵’ 하고, 제 신앙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어요.
얼른 목욕하고 나온 아이 꼬집힌 자리를 보기 전에
먼저 주님의 십자가 바라보면서 ‘하나님...’ 하니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나요.
저는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에 용빈이라는 애가 있었어요.
1학년 7반의 깡패놈 이었어요.
제가 겨울에 곤색 잠바를 입고 갔었는데, 옷 앞이 다 피로 물들었었어요.
제 코를 때려가지고.
그런데 그 때 생각을 해 보면, 그래도 우리 엄마가 전화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다 우리끼리 해결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학교에서 한 번 꼬집히면, 선생님한테 전화를 하고,
우리도 무진이(우리 아들)가 뭐 어쨌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어요.
참, 요즘 엄마들은 밥도 잘 안 하지, 시켜서 먹으니까.
부엌 시설은 임금님 부엌보다 더 좋게 만들어 놓고...
밥은 하나도 안하고, 그 남는 시간에 자식만 쳐다보고 있어요.
옛날에는 자식 쳐다볼 시간이 없었어요, 엄마들이.
그런데 지금은 계속 자식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자기 신앙의 배에 (자식 우상으로 인한) 구멍이 이만해 져서
거기를 통해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겁니다.
요만큼만 꼬집혀도 아빠 엄마 마음이 확 뒤집혀지는 겁니다.
‘누가 꼬집었어? 우리 자식을!’ 하면서 학교 쫓아가고 난리가 나는 거예요.
여러분 미쳤다고 생각 안 해요? 자식한테 다 미쳤다니까. 온 나라가 다 미쳤어요.
▲이런 상태로는 한 사람도 낚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아직 진정한 믿음의 상태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떠 있는 상태가 되려면 인공호흡을 받아야 해요.
이 세상을 담아서는 안 되고, 성령의 바람을 담아야 해요.
성령을 받은 사람의 특징은, 이 땅에서 기적을 행하기 앞서,
이 세상에 잠기거나 가라앉지 않는 겁니다.
남편이 돈을 못 벌고, 자식이 공부를 못하고,
내 몸도 건강치 못합니다.
분명히 그런 상황이면, 세파에 휩쓸려 꾸르륵 꼬르륵 가라앉아야 하는데
이 사람이 가라앉지를 않는 거예요.
자식 앞에서, 남편 앞에서, 십자가를 통해 그들을 바라볼 때
성령의 바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이 땅을 떠다니게 되요.
그러니까,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의 기적이
실제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여교사
제가 교육 전도사 시절에, 해방촌 교회에 있을 때에요.
소년부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에 수련회를 갔는데
저랑 동갑짜리 58년 개띠 28세, 처녀 선생님이 계셨어요.
월급 받으면 십일조 내고, 자기 용돈 말고는 다 교회에 퍼붓는 아가씨였어요.
그 아기씨가 냇가 건너 아이들의 장난을 제지시키기 위해서 걸어가다가,
바위에 이끼가 껴서 미끄러웠던지 실족해서 물살에 떠내려갔는데,
장마철 바로 뒤라서 물이 많았습니다.
꽤 폭이 넓은 냇가에서 떠내려가는데, 수영을 못 하는 사람이었어요.
난리가 났죠. 막 허우적거리면서 물살에 휩쓸려 빨려나가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어요. 저하고 남자 선생님들이 땅으로 뛰어서 가는데,
꼴깍거리고 허우적거리다가, 갑자기 죽 몸을 펴고 물속에 가라앉아 버려요.
죽었구나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이 여자가 떠오르면서 몸에 힘을 다 빼고
떠내려 오다가 가끔씩 머리를 들어 숨 한 번씩 쉬고 떠내려가더라고요.
수영도 못 하는 여자가. 58년 개띠들 무섭다고 했어요.
이러고 한참 내려가다가, 냇가의 목이 좁아져서 인간 댐을 만들어 건져 냈어요.
건져 낸 다음에 제가 물어봤어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었냐고.
그 아가씨말이 빨리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겠더래요.
힘을 쭉 빼고 물속에 그냥 있다가 숨이 막히면 한 번 쉬고, 물속에서 뱉고,
그러면서 가는대로 가보자고 따라 갔답니다. 보통 아가씨가 아니에요. 키도 조그만데.
이런 원리가 십자가에 그대로 적용 되요.
이 아가씨가 한 말 중에, 기가 막힌 말이 있어요.
빨리 죽겠다고 생각하니까, 믿을 수 있는 게 물 밖에 없더래요. 역설적이죠.
물!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절대로 물에서 못 빠져 나옵니다.
이 원리를 우리 삶으로 가지고 오면,
사업이 위태로운 남편의 상황,
여기서 내가 몸을 기댈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어진 현실의 물살 말고는 없는데, 물살이 다가올 때 주먹지고 싸웁니다.
아이가 공부안하는 현실을 보면, 아이와 주먹지고 싸웁니다.
너 공부 할래 안 할래, 하며 싸우죠.
십자가에 죽는 사람은... 힘을 빼는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거기에 맞서 싸우려고 하면 절대 삶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우리 애가 꼬집혀가지고 왔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싸우려고 합니다.
‘야, 너 전화 걸어봐!’ 소리를 지르려다 참습니다.
내 문제 아닙니다. 하나님 문제입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를 꼬집혀 집에 보낸 다음에 내가 어떻게 하나 보시려고.
네가 자식 사랑할래, 나 사랑할래? 확인하시려고.
어쨌든 모든 상황에서, 힘을 빼고, 내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삽니다.
힘을 써서 싸우면, 둘 다 같이 죽습니다. 남편과 아내, 자식과 부모, 둘 다!
▲지난 10년 사이에 천주교도 늘고, 불교도 늘었는데, 개신교만 팍 줄었잖아요.
개신교가 왜 그래요? 너무 열심히 세상 사람들을 위로하다가
세상 사람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빨대로 꽂아놓고
목사님 스스로가 다 빨아들였어요.
그래서 돈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목사님들도 빨아먹고,
교인들 위로한다고 하다가, 자식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을 빨대로 빨아
목사님 스스로가 다 (세상에)가라앉고 말았어요.
무슨 전도가 되겠어요? 교회가 통째로 (세상의) 물속에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떠야 됩니다. 주어지는 현실의 물살에서 힘을 빼세요.
힘을 뺄 수가 없어요? 주님의 십자가가 빼게 해 줍니다.
▲어떤 남편에게 들은 거예요. 자기 아내의 믿음이 참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업 전체가 뿌리째 흔들렸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얘기하면 ‘여보, 괜찮아!’ 그러더래요.
맨 처음에는 ‘여편네가 관심이 없어서 어떻게 그렇게 말하고 마냐?’ 그러다가도,
다음에 또 ‘괜찮아, 이 집이 살기에 너무 커, 이번 기회에 집 줄이자.’
아내가 이렇게 나오니까, 남편인 자기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업 망하는 거 별거 아닙니다’ 아내가 저렇게 나오는 것 보니까.., 되더래요.
이런 마음이라야 위기에 처한 사업을 냉정하게 대처를 하지.
같이 ‘큰 일 났다 여보, 내가 새벽기도하고 철야기도 할 동안,
당신은 은행 돌아다니면서 돈 구해.’ 이래갖고는 사업을 구할 수가 없다는 얘깁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공부 안 하고, 이상한 길로 들어서는 아이를 놓고,
아빠가 ‘너 이리와. 너 이제 내 손에 죽었다’ 하며 난리를 쳤어요.
그런데 엄마는 뒤에서 ‘괜찮아, 엄마가 너 때는 더 했어.
너 그렇다고 타락한 아이도 아니고 이상한 길로 가는 아이도 아니야. 괜찮아.’
엄마가 세상의 파도 위에 붕 떠있는 거예요.
가라앉은 엄마는 어떻게 해요? 아빠가 때린데 또 때려요.
떠 있는 엄마는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
하나님 앞에서 엄마가 잘 못한 것 생각하면,
네가 내 앞에서 잘 못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야 그 아이가 건져질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사람 낚는 어부들이 되어간다는 얘기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3층으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우리 마음이 2층인 ‘공중’에 있는데,
언제까지 우리 마음 2층 공중의 권세 잡은 세상 마귀의 유혹을 따라서
세상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풍조들대로 마음에 받아들이며 울고불고 살아가겠습니까.
이제는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내가 죽고, 힘 빼고 물 위로 떠서
하늘의 바람을 받고 둥둥 떠다니면서
빠져있는 내 남편, 내 자식, 내 이웃 건져내는
사람 낚는 주님의 딸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전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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