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도 '행한대로 갚으신다' 시62:12 2009.03.27.(샘물교회 사경회)
권연경 교수 로마서 1강 32~36분 녹취
◑주의 인자하심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것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을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시62:12
(그 외에도 구약에 레24:19, 겔18:30이 같은 말씀을 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노래한다.
이 인자함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데
보통 영어로 loving-kindness로 번역하기도 한다.
위 구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어떻게 노래하고 있는가?
무엇으로 설명하고 있는가? ...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 설명하고 있다.
주께서 각 사람을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즉,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두고,
시인은 주님의 <인자하심/헤세드>를 찬양하는 것이다.
시편62편의 전체문맥을 보면 이런 의미다.
‘너희들이 둘러싸고 나를 공격하는 등 야단법석이지만,
나는 하나님의 인자를 의지한다.
지금은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나는 주의 인자를 믿는데,
주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큰 소리를 치고 있는 이유는,
‘나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다.
▲구약 성도의 희망... <행한 대로 갚으신다>
이것은 구약 성도들의 ‘신앙적 희망’이다.
구약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성도들은, 이 말씀에 희망을 걸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리라!’
아무리 현실이 각박하고 어려워도, 고난을 당해도
그들은 속으로 꿋꿋이 이 말씀을 외며 그 고난을 견디어 나갔다.
‘주여, 주의 인자를 믿사오니, 주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구약 성도의 희망이 ,,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적 절망>으로 바뀌어졌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성도들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주의 인자를 찬양합니다!’ 하면,
신약성도들도 똑같은 고백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의 성도들은
‘주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하면.. 거의 절망적으로 들린다.
‘그러면 나 큰 일 나는데.../ 그러면 나는 끝장인데...’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주위 사람에게
‘주님은 당신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하면.. 거의 욕설/저주로 들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너무 은혜/믿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구약을 강조하는 이런 중요한 사상을 → ‘주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십니다!’
거의 망각하고 사는데, 그것은 올바른 성경 이해가 아니다.
◑신약에 나타나는 ‘행한 대로 갚으심’
여러분,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는 ‘행위대로 갚으시다가’
신약시대에는 방침을 바꾸셔서 ‘은혜로 잘 봐 주신다’는 생각은 ..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기본 생각과 의도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시62:12절은, 신약에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구약성경구절(중 하나)이다.
‘하나님이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구절은, 신약에는 안 나올 것 같고,
(복음 시대인 신약에서는) 나와서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신약에 자주 인용되어진다.
①마16:27절에 <예수님>도 인용하셨고,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②롬2:6절에도 <바울>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롬2:6~8
딤후4: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③계22:12절에, <사도요한>이 그대로 인용한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④벧전1:17절에, <사도베드로>도 그대로 인용한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행위대로’ 라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심판’은 신약 전반에 걸쳐서 다 퍼져서 나온다.
예를 들면, 약2: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그 외 구절은 각자 찾아봅시다.)
신약에서, ‘은혜로/믿음으로’ 신학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신약의 복음에는 <행함으로는.. 아예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인 것이다.
특별히 히브리서에서는, 신약의 복음적 심판이 더욱 무서운 것임을 강조하는데...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히10:30~31
신약은 한 번도 <하나님이 행위로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생각을 포기한 적이 없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주장을 폈던 바울도
똑같은 생각임을 롬2:6절에서 살펴보았다.(↑)
여러분, 예수님, 사도바울, 사도베드로, 사도요한은.. 신약성경의 주요 저자/원저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행한대로 심판하신다'는 사상은, 신약성경을 총망라해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면.. 그러면 은혜/믿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런 질문이 생기실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간략하게 설명하면
바울은 복음을 설명하면서, 복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했다. 롬1:16
복음의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도록, 우리 내면을 변화시켜 준다.
절대 율법 없이(율법 폐기론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오해다.
순종의 발걸음이 있어야 구원 받으며, 그 순종의 발걸음을 옮길 수 있도록
복음과 성령이 내 속에서 역사하신다. 도와주신다. 순종하도록
▲복음이란 것은,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면서
“믿습니다, 아멘”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에는 ‘순종의 발걸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능력이다.
여러분, (해당되는 연예인들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연예인 자살이 너무 많고, 한결 같이 기독교인들이다.
그래서 어느 기자가 ‘종교도 그녀를 구원하지 못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발걸음이 없이
그저 “믿습니다. 아멘!”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알고 살다가는
삶의 크나큰 어려움이 닥칠 때, 속절없이 무너진다.
심하면 자살까지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에는, 율법이란 기준이 있었다.
그런데 신약에서 하나님이 방침을 바꾸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더욱 완전케 하려고 오신 분이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
‘신약시대에 우리는 율법을 순종 안 해도 된다, 어차피 다 순종 못할 거니까...’
이런 생각은 오해다.
구약시대의 기준이, 신약시대에 와서 하향평준화 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기준이 더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외적/형식적 준수’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내적/본질적 순종’을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구약보다 더 어렵게 되었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로 과거/현재/미래의 내 죄를 모두 사해 주셨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그 은혜가 자기 속에 들어온 사람은
‘자연적으로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
▲어느 미국의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실험을 했다. (펀 글)
학생들이 너무 컨닝cheating을 많이 하니까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는,
한 그룹은.. 그냥 예전처럼 시험을 보게 하고,
또 한 그룹은.. 시험보기 전에 십계명을 먼저 받아 적게 한 후에, 시험을 보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는, 십계명을 받아 적은 후에 시험을 본 그룹의 학생들은
거의 컨닝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련글 : 바울이 전한 복음, 의/절제/심판
'분류 없음 > 2009'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울이 말한 믿음과 행위의 관계 1873 (0) | 2009.05.04 |
---|---|
공허한 자아 (0) | 2009.05.04 |
영생에 이르는 길, 양면 다 보기 1869 (0) | 2009.05.01 |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됨 1868 (0) | 2009.04.30 |
‘크리스천’이란 말의 의미 1867 (0) | 2009.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