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9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1896

LNCK 2009. 5. 19. 11:07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계22:20                          09.04.24.이재환선교사님 설교중 녹취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1.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나라가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아니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예수께서

어느 날 자기 원하시는 때에,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시면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우리보고 기도하라니...?


이 말씀을 넓게 해석하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라>는 뜻이 된다.

주님의 재림은, 또한 우리의 기도가 차야 임하기 때문이다.


계5장에, 하나님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계시의 책)가 있었고,

그 책에 일곱 인봉이 봉해져 있었는데,

그 봉인을 뗄 자가 없어서 요한이 크게 울었다. 계5:1~4


그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자마자, 7인-7나팔-7대접이 차례로 시작됨을 본다.(계6장~)

그러니까 그 두루마리는 ‘인간의 구속의 전 역사(계시록의 내용)’를 담고 있는데

예수님의 초림~재림의 모든 역사役事를 기록한 책으로 본다.


이 귀중한 책이 봉인되어 있어서, 사도요한이 울었고,

구속의 역사가 진행/계시가 안 되니까 울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봉인을 떼시는데(십자가로 통해서)

거기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반드시 동반되었다계5:8~9


오늘 나는, <나라/재림이 임하도록 기도하고 있는가?>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그것이 빨리 임하도록 기다렸는데,

오늘날 우리는, 날마다 그것이 가급적 늦게 미뤄지도록 바라고 있다.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며,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주의 재림도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자.



▲2.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후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24:14


이방인 선교가 시작/완성될 것이 이 구절에 그대로 예언되어 있다.

이방인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이것이 완성될 때

세상의 종말이 임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프리드먼은 <뜨거움과 편평함과 붐빔의 세계 hot flat & crowded> 를 써서

세계가 지구온난화로 멸망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세상은 <해외선교의 마침>으로 망하지,

지구온난화로 망하지 않는다. 지구온난화는 단지 재림의 ‘징조’일 뿐이다.

성경에는,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예언되어있다. 마24:14


모름지기 우리는 ‘주님의 뜻’과 같이 가야하는 성도들이다.

주님은 세상에 복음을 다 전하고, 속히 재림하시기 간절히 원하시는데,

우리 관심이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거기서 멀어져 있으면... 참 신앙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서 각종 훈련 프로그램을 하고

특별새벽집회라든지, 여러 가지 집회를 모이는데,

그 목적이 주님의 목적과 일치해야 할 것이다.


‘자기 개인적 기복’도 주님의 뜻이라고 우기면 할 수 없지만,

주님의 여러 가지 뜻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만 골라서 취하면.. 잘못이다.


‘주님의 재림’.. 이런 것과 나는 아무 상관없어!

1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신앙생활하시는 교인이 있다면.. 그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다.



▲3. 유대인이 주께로 돌아올 때

유대인의 구원 없이, 이방인의 구원 없고, 주님의 재림도 없다.

롬9~11장에, 이 사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내가 지옥 가는 대신에, 서울 시민 모두가 구원 받았으면 좋겠다’고

소원하시는 분이 있는가? 손들어 보시라. 아마 그런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랬던 사람이다.

자기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 백성은 구원받기를 원했다.


이것은, 바울이 ‘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잘 알아드렸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구속사의 완성과 재림)을 잘 알아드리고 있는가?


‘유대인의 구원’에 관한 또 다른 구절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마24:32

여기서 ‘무화과’는 이스라엘 나라를 가리킨다고, 대부분 그렇게 해석한다.


그런데 1948.05.14. 이스라엘 나라가 2천년 만에 기적적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롬11: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이스라엘의 회복과 이방인의 회심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좀 ‘우둔하게’된 것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방인이 충만하게 차고 나면, 이스라엘의 회심도 눈에 띄게 달라질 것이다. 롬11:23~24


오늘날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의 숫자도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다.

롬11:25절의 예언이, 착착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복음에 열중할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도 속히 오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소원과 그 뜻에

합당한/동참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


10처녀의 비유도 <준비한 신부>와 <준비 없는 신부>로 나뉘어진다.

여러분, 신부가 결혼을 앞두고, 전혀 준비를 하고 있지 않고, 자기 취미생활에 분주하다면

그런 신부를 데려갈 신랑은 없다는 것이다.

왜 신부가 결혼준비를 안 하는가? - 통 그런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그렇게 준비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련한 5처녀들처럼!

 

 

▲4. 순교의 수가 차야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6:10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6:11


순교의 숫자가 차야.. (마지막 4번째로) 주님의 재림이 이 땅에 임하신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순교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저(이재환 선교사)도  순교가 무섭다. 그런데 저도 생각을 좀 바꾸기로 했다.

‘여러분, 암으로 돌아가시렵니까/ 순교로 돌아가시렵니까?’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렵니까/ 순교로 돌아가시렵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기왕이면 순교가 더 나은 것 같다.

(순교를 무조건 기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 물론 원한다고 순교하는 것은 아니다.)


순교로 인해 얻게 될 그 영광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다시는 ‘아프간 사태 같은 순교’를 함부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약 곳곳에 나타나는 <재림/오신다/come>는 말씀

-가장 빈번하게 요한계시록에 오리라/오소서 come라는 말이 29번이나 나온다.

-주기도문에도 ‘나라가 임하옵시며 thy kingdom come’ 가 나온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천사들은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comeback'고 하셨다.


-이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후에 오리라 come고 하셨다. 마24:14

-내가 속히 오리라 I will come soon  계22:20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할 것이라

                                                                            until He comes. 고전11:26


그래서 제가 대표로 섬기는 선교회 이름을  <컴 come 미션>으로 지었다.

선교를 통해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한국말로 <오소서! 선교회>이다.



◑적 용


▲내 인생을 헛 살수도 있다.

제가 호주에서 <선교 수련회>를 사흘 동안 인도했던 적이 있었다.

재미있는 일은, 수련회에 참석한 13살 된 아이가 마치고 집에 가서 한 말이

먼저 한 숨을 탁 쉬면서 ‘엄마, 아빠, 이렇게 사시면 안 됩니다.

제가 13년의 인생을 헛살았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웃음)


여러분,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만약 우리가 나중에

‘제가 50/60/70년 인생을 헛살았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정말 심각한 일이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신앙생활 한다면

정말 나중에 그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몇 해 전에 제가 ‘웨스트 파푸아 뉴우기니’ 지역을 탐방해 본 적이 있다. 

거기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놀란 것은, 그 깊고 깊은 정글에,

도저히 육로로 접근이 어려운 그 원시 마을에

(포스트모던 사회에, 아직도 이런 원시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캐나다 캐빈 마틴 선교사 가족이, 그 곳 7백 명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상점도 없고, 학교도 없고,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곳에서

선교사 가족은 자기 자녀 셋을 데리고,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볼 때

눈물이 났다. 정말 놀라웠다.


우리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서 캐나다, 미국, 호주로 유학이민을 떠나지 않는가!

기러기 아빠가 되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캐나다로 못 떠나서 난리다.

그런데 저들은, 왜 그 좋은 캐나다를 다 버리고,

이 원시 밀림에 들어와서 사는가?


제 정신이 아니든지/제 정신이든지...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말이 된다.

그는 ‘제 정신’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다 보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그 원시 부족으로 들어온 것이고,

한국에서 더 살기 좋다는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②또 놀란 것은, 우리 일행을 정글 위로 수송해 준 헬리콥터였다.

너무 정글이 울창해서, 육로나 수로로는, 접근이 너무 어려웠고, 헬기가 용이했다.

헬기가 정글 위로 날아다니면서, 사람이 사는 집이나 마을을 찾아 다녔다.


워낙 유용한 도구라서, 제가 물어보니 이런 헬기 한 대에 20억 한다고 했다.

‘미국 선교단체에 이런 헬기가 몇 대 있습니까?’ 물어보니 ‘70대’라고 했다.


저는 그 동안, ‘한국이 세계선교 2위’라고 자부하고 다녔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잠시 기가 좀 죽었다. ‘우리가 2등이 아니구나...’

왜냐하면 ‘1등이 100이고, 2등이 10이면, 그것은 2등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 자료로, 미국이 전 세계 선교 인력의 70%, 자원의 90%를 담당했다는 글을 읽은 적 있음)


▲앞서 길을 예비하는 자 forerunner(앞서 달리는 자)의 삶

-세례요한이 그랬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면서.. 초림을 예비하며 앞서 달렸다.

-예수님도, 우리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앞서 달리신 자 forerunner’가 되셨다.

-다시 오실 재림을 예비하는 forerunner들은 누구인가? - 바로 우리들이다. 히6:20   <이상 설교 요약 끝


 


◑원래는 아담과 하나님이 한 쌍                       아래 글 펀글 편집


▶여러분, 절대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을

우리가 절대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쌍을 이룬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게 엄청난 오해라는 것이에요.


성경을 들여다보면,

원래는.. 남자와 여자가 한 쌍을 이루도록 되어있지 않아요.


성경에 보면 물론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지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창2:24


이 구절을 읽고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한 사람씩 만나서 쌍을 이룬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게 성경의 한 면만 본 것이라는 겁니다.


▶원래 하와가 없을 때 에덴에서 아담과 하나님이 한 쌍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걸 자꾸 망각하는지 몰라요.

아담과 하나님이 한 쌍이었고, 

거기에 하와가 보태지는 거지요.


그러니까 아담이 하와를 만날 때는

아담으로서 하와를 만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짝인 아담으로서’ 하와를 만나는 겁니다.


하와도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과 먼저 짝이 된 하와로서’ 아담을 만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죽고 나서 천국에 가면

다시 ‘하나님과 짝으로서 아담’을 다시 회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표현하고,

천국 잔치를 종종 ‘결혼 잔치’에 비유하잖아요!


물론 땅에서 길면 80평생 같이 지냈던 부부도, 천국에 가면 서로 알아볼 것입니다.

‘서로 땅에서 부부였다’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까지 부부로 지낸다고는.. 성경에 안 나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부부로 지낼 대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결혼식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부도 참 귀한 관계로 귀하게 여기고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점을 두고, 더 귀하게 여길 관계가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지낼 '영원'과 배우자와 같이 지낼 80년은.. 당연히 비교가 안 되겠죠?


참고로, 예수님이 누구보고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라고 하셨습니까?

육신의 형제, 자매, 모친 보고... 그러지 않았습니다.

인륜을 배반하신 것이 아니라, 멀리 영생과 천국까지 내다보신 것입니다.

거기서 진짜 영원히 형제, 자매, 모친으로서 한 가족처럼 살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의 뜻과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죠.


이 단락의 주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천국의 신부로서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랑을 맞을 채비를 갖추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이 단락, 펀글 편집               ▣ 종말, 내세, 심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