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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손에 있나이다

LNCK 2009. 5. 20. 10:50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29:10~14.              09.04.19.설교녹취

 

 

◑1. 권세는.. 주님의 손에 들려있다.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다윗

지금 다윗의 손에는 권세가 들려있다.

그러나 다윗은 철저히 깨달았다.

그 권세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을!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29:11~12

 

▲권세가 자기 손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그러나 안타깝게도 히틀러는 권세가 자기 손에 들려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무섭게 그것을 휘둘러서 약 2천만 사람들을 전쟁으로 죽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죽음이 조기에 알려지면 전황이 불리해질 것을 염려한 그의 측근들은

그의 시체를 불태워 없애 버렸다.

 

사울왕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권세가 자기 손에 다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휘둘르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주전323년 6월 13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은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까지 진출하는 대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찬란한 헬레니즘 문화를 제국 각지에 퍼뜨리는 역할도 했다.

 

그러나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장수의 칼이 아닌,

조그만 모기 한 마리가 옮긴 말라리아에 걸려서 죽게 되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자기 양손을 관 밖으로 끄집어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백성들이 ‘자기가 빈손으로 가는 것’을 보게 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무엇을 넙죽 받게 된다.

 

남 얘기를 할 필요 없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무슨 단체장을 맡으면,

마치 권세가 자기 손에 있는 것처럼.. 마음대로 휘두르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위대한 점은, 자기 권세가 <주의 손>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29:12

 

 

◑2. 부귀도.. 주님의 손에 들려있다.

 

▲우리 눈에는, 모든 부는 재벌의 손에 들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주님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29:12

 

여러분, 자기 손에 재산이 많이 들려 있어도,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다.

원래는 다 하나님의 것인데, 잠시 자기 손에 들려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말년에 죽기 직전에 알렉산더는, 어릴 적에 헬라철학자로부터 받은 교육 때문인지

자기 빈손을, 관 밖으로 꺼내게 했던 것이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자기 이름으로 짓는 것도 아닌데, 아들이 지음)

그는 자기가 가진 어마어마한 황금을 다 내어드렸다.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대상29:4~5

      (1달란트는 34kg, 3천 달란트는 10,2000kg, 약100톤, 10톤 트럭 10대분) 

 

‘내 손에 있으니 내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손에 있는 것을 곧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원소유주이신 하나님이 다 빼앗아 가실 것이다. ‘놔 뒀다가는 안 되겠다!’ 하시며

 

 

◑3. 지금 내 손에 없어도.. 괜찮다.

 

자기 손에 있는 것이.. 모두 자기 것이라고 거들먹거리는 사람도.. 문제지만

반대로 지금 자기 손에 쥔 것이 없다고.. 실망한 사람도.. 똑같이 문제다.

내 손에 없지만, 하나님의 손에는 있기 때문이다.

 

▲정육점 앞을 지나가다보면

<고기는 냉장고 안에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부귀과 권세가 지금 내 손에 없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으면서.. 편안하게 사시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많이 가졌다고.. 교만할 이유 없고,

아무 것도 못 가졌다고.. 낙심할 이유도 없다.

많이 가졌다고, 그게 다 내 것이 아니요,

아무 것도 못 가져도, 아버지의 손에 다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고, 당당하게 사시는 ‘자녀들’ 되시기 바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가르뎅이 세계의 유행을 창조하는데,

패션 디자인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동전을 던진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번에 치마 길이를 짧게 할 것인가/길게 할 것인가?

스커트를 할 것인가/바지를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는 동전을 던져서... 결정한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결정이 세계의 유행을 결정한다고 하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긴가?

 

여러분, 동전을 던져서, 되는대로 결정하는 그 결정 (즉 유행)을

너무 따라가지 마시기 바란다.

 

어디 피에르 가르뎅만 그런가? 세상의 어떤 중요한 결정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결정이란, 동전을 던지기도 하고, 점쟁이에게 가서 묻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신뢰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결정은 다르다.

전능하신 지혜로 완벽하게 계획하셔서, 언제나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완벽하신 그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면 된다.

내가 더 가지든지/덜 가지든지.. 아버지가 알아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더 가지든지/덜 가지든지.. 그게 궁극적 목적이 아니다,

그 궁핍/ 또는 풍부의 모든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풍부할 때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궁핍할 때도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주실 것이니..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믿고 순종하며 살면 된다.

 

허드슨 테일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런 글을 남겼다.

그가 기도 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내적음성이었다.

 

너는 단 하나의 근심도 품지 말라. 하나도 네게는 너무 크다.

그 일은 오직 나에게만 속한 일이다. 네 일은 오직 내 안에서 안식하는 일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지금 내 손에 권세와 부귀가 없어도... 괜찮다.

‘부귀와 권세가 내 아버지의 손에 있습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살면 된다.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은, 권세와 능력과 부귀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깨닫고 사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키워주시는데... 

 

 

◑4. 하나님의 손은.. 사람을 키우신다.

 

▲하나님의 손은 언제나 일정한 방향/목적으로 움직인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씩 키우고 계신다.

 

사람을 크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키워 나가고 계신다.

 

그래서 가난한 목동인 다윗이..

하나님이 그를 키워 주시며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이 다윗을 키워주시는데,

사람이 아무리 그것을 막으려고 해도.. 별 소용없었다.

 

▲영화 <슬럼 독 밀려내어>를 보고 느낀 점

‘슬럼 독’은 인도 빈민촌 슬럼에서 개 dog처럼 자란 빈민을 가리킨다.

‘밀려내어’는 백만장자인데, 그가 TV 퀴즈쑈에 출연해서,

모든 문제를 다 맞추어서, 상금을 타서 백만장자가 된다는 이야기를 영화로 그렸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모든 문제를 다 맞추지 못했는데,

학교도 다니지 않은 ‘슬럼 독’이 어떻게 모든 문제를 다 맞추었을까?

그래서 무슨 비리가 있다고 보고, 경찰이 그를 조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주인공이 모든 문제를 다 맞출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다.

그가 살아온 엄청난 고생의 인생 현장 속에서 배운 여러 경험과 지식들 가운데,

공교롭게도 퀴즈 문제가 그 경험들과 일치되게 출제되었던 것이었다.

 

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키우시는 구나.

우리 인생의 모든 고난 속에는..

우리 인생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놀라운 해답이 들어있구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더 중요한 인생의 해답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구나!’

 

내 인생의 미래에 여러 가지 어려운 난관들을 맞이할 것인데,

거기에 대한 해답을 주시려고

하나님은 미리 나에게 이런 저런 고난을 겪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각자는, 산 living지식을 체험적으로 터득할 수 있었다.

 

큰 고통일수록, 더 귀한 해답이 그 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꼭 기억하게 되시기 바란다.

 

▲필립 걸리,「의자」에 나오는 이야기,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담

필립이 어릴 적에, 자기 동네에 깁스 라는 의사가 살고 있었는데,

깁스 의사가 환자를 보지 않는 시간에는, 넓은 공터에다 나무를 심는 일을 했다.

 

그런데 깁스 아저씨가 나무 심는 방법은 남들과 달리 독특했다.

나무를 심고나면, 물을 주지 않았다.

 

그의 지론은, 물을 계속 주면, 이 나무가 사람이 주는 물만 의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을 안 주면, 나무가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 

생존하려고 스스로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가 더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틈만 나면 신문지를 둘둘 말아서, 나무를 탁탁 치고 다녔다.

그 이유는, 나무가 주의력을 환기하면서, 더 생존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과학적으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깁스 씨가 떠난 후에 25년이 지나도, 그가 심은 나무들은 여전히 

그 땅에는 푸르르게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 그 책에 씌어있다.

 

하나님도 종종 이와 같이 역사하신다.

내 인생에 물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인데,

하나님은 물은 고사하고, 도리어 나를 신문지 같은 것으로 두들겨 패신다.

그런 야속한 경험을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내가 지금 ‘거름’을 받아야 할 때인데,

하나님은 오히려 고통을 주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를 키우신다.

때로는 야속할 정도로 우리를 시련 가운데 빠뜨려 놓으신다.

그러나 그 모든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를 키우시는 것이다.

 

어리석게 ‘나를 키워준다는 <사람>’을 믿고 따라가서는 안 된다.

<돈>이 나를 키우지 않는다.

<좋은 환경>이 나를 키우지 않는다.

큰 나무는.. <하나님의 손>이 키우신다.

 

강원도에서 감자 농사를 할 때에도

감자알을 심을 때, 일부러 호미로 씨감자에 흠을 조금 낸다고 한다.

그렇게 호미로 얻어맞아 상처 난 감자가..

나중에 훨씬 더 큰 알을 키운다고 한다.

 

 

◑5. 즐거운 마음으로 돌려드리다.

 

모든 것이 주의 손에 있다고 믿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님께 다시 돌려드린다.

 

▲즐거운 마음으로 돌려드린 다윗

다윗은 금을 1백 톤이나 바치면서, ‘내 것을 주께 드립니다’ 말하지 않았다.

다윗에게는 ‘내 것’이 아예 없었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을, 제가 돌려드립니다’며 겸손히 고백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뿐이니이다.  대상29:14

 

▲감동적인 돌려드림

전북 익산에 내로라는 굉장한 한 부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 부자는, 모든 재산을 정리하더니, 익산 시내에 땅을 수천 평 매입했다.

그리고 그 땅에다가 자기 남은 돈을 다 투자해서 큰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다 지은 후에, 약 2년 동안, 그 교회의 한쪽 구석 조그만 방에서 살았다.

그리고는 홀연히 그 교회를 떠나, 강원도로 이사를 갔다.

 

아들(지금 목사가 되어 책을 1백 권이나 쓰셨다고 한다)이 그 아버지께 물었다.

‘왜 이사 갑니까?’

 

‘이 교회를 내가 지었기 때문에, 내가 있으면 내가 주인 행세를 하기 쉬워.

내가 큰소리치기 쉬워.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 발전에 방해가 될 게지.

그래서 멀리 갈수록 좋은 거야!’

 

그래서 그 부자는, 강원도로 가서, 이름 없이 어느 교회를 섬기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 교회는 지금도 익산에서 부흥하고 있고,

호남의 대표적 교회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되돌려 드려서 세운 교회는

지금도 남아서 왕성하게 자라가고 있다.

 

만약에 그가 하나님께 드림 없이 세상을 떠났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은 헛되이 마감되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 그는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가 남긴 교회를 통해서, 생명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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