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죄를 더 깊이 깨닫는 다윗 시38:1-22 -09.04.20. 설교 스크랩, 정리-
*원제목 : 깊이 깊이, 높이 높이
◑도입
▲2010년까지 세상의 경제계에서 <마천루 경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 더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고,
또 더 높은 빌딩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경쟁입니다.
그래서 2010년까지 50조에 달하는 마천루시장이 지금 진행 중에 있다는 거예요.
그중에서 놀랍게도 20%에 해당되는 10조원 상당의 마천루시장이
우리나라 안에 보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천루, 문지를 마摩/ 하늘 天/ 누각할 때 루樓,
skyscraper 하늘을sky 긁는/문지르는 것scraper이란 영어를 한자어로 번역한 듯)
그래서 세계10대 건물 중에 최고층빌딩 중에 5개가 우리나라에 있을 전망이고
또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트윈빌딩을 지을 때
한 쪽을 일본이 맡고 한 쪽을 우리 삼성건설이 맡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트윈빌딩의 스카이통로, 그것을 또 삼성이 건축을 따내서
또 한바탕 유명해졌던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로 인정되는 ‘버즈두바이’가 700m가 넘지요?
700m가량 되는 버즈두바이를 위시로 이 아시아권에,
엄청나게 높은 최고층 빌딩들이 지금 많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전에는 마천루하면 미국에만 있었는데
지금은 아시아권에 엄청나게 높은 빌딩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마천루 경쟁’은 인간의 본성 같아요.
바벨탑사건에서도 우리가 높이 높이 하늘에 닿을 수 있는 탑을 쌓아서
하나님께 한번 도전해보자하는 그런 죄악된 본성을 드러낸 건데,
사람이 높이 쌓고 싶은 것은,
인간에게 가장 뚜렷한 본성 중에 하나가 아닌가하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높이 쌓는 것과 반대로, 깊이 아래로 파 내려 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성경은 ‘높이높이 쌓는 경쟁’을 하지 않았고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선배들은 ‘깊이깊이 파내려가는 경쟁’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론 : 밧세바 사건으로, 더 깊은 신앙 경지에 오른 다윗
▲배경 : 밧세바 사건을 회상하며 지은 시
본문 시38편은 150개 시편 중에 ‘7개의 참회시’ 중에 하나입니다.
(*7개 참회시 : 6편, 32편, 38편, 51편, 102편, 130편, 143편)
다른 참회시들도 그렇습니다마는 본문 시38편은 밧세바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다윗이 이렇게 참회의 시를 쓰게 된 이 배경이
바로 압살롬모반사건이 발흥할 때에 압살롬의 모반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서
다윗이 ‘밧세바 사건을 회상하며’ 부른 노래가 아니었겠는가.. 추측합니다.
12절, 또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며
종일토록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13절,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19절,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라고 말하는 것을 볼 때
압살롬의 모반사건에 관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있으면서
자기의 죄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참회한 시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자기 죄악을 깊이 들여다보는 다윗
여러분, 참으로 이 다윗의 자기 죄악상을 드러내는 비탄의 심정이 너무 절절해요.
이 표현들을 보면 주의 화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8:2
화살이 나를 찌르고 손이 심히 누를 정도로
그러니까 빡빡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가슴이 찌름을 받고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겁니다. 자기 죄악 때문에.
그리고 그 다음절에 보면 주의 진노로 말미암아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38:3
다윗자신은 지금 자기의 죄악을 생각할 때
온 몸에 살이 다 썩어 들어가고 뼈가 녹아내리는 것 같은 그런 아픔을
자기 마음이 느끼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죄를 그렇게 깊이 보는 거예요.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내가 우매한 까닭이로소이다. 38:5
우매하면 우매한 것으로 끝나지
왜 영적으로 우매한 것이, 자기 살에 썩어 들어가는 상처가 난 것 같은 느낌을
갖느냐 이거에요. 그러니까 그만큼 깊이 죄를 보는 거지요.
사실은 밧세바사건을 돌이켜보면 뭐 제정신으로 한 것 같지는 않아요.
어떻게 다윗이, 성군 다윗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밧세바를 범한 것까지, 사람이 유혹을 받아서 그럴 수 있다고 이해를 하더라도
그 밧세바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고 나서 우리아를 죽인 이 사건은
참 천인공로할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하나님?
그런데 이 밧세바 사건이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됐을 일이지만
이왕에 일어난 일로서는 다윗에게/ 또한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까지
참 유익한 영적 그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제 말을 잘 오해하지 마세요.
밧세바 사건 같은 것이 일어나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니라.. 이왕에 일어났습니다.
절대로 이 천인공노할 패륜아적 행동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되요.
그러나 이왕에 일어난 다음에는, 다윗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느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그런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롬5:20
이 세상에 그 누구보다도 자기의 죄를 깊이깊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는데
밧세바 사건이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윗이 특별히 보통 사람들보다 더 죄악이 많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마 그 일만 없었더라면, 일반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성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많은 다른 죄인들을 판단하고 손가락질 하며 살았을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런 시편을 대할 때 마다,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보시고 주님이 보시는 관점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밧세바 사건을 저지르고 우리아를 죽인 다윗과 마찬가지로
깊은 죄악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마음’으로는 다 갖고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뛰어난 이유, 그 모순
그런데 다윗이 다른 것은.. 그러한 죄를 범하고 나서,
자기 뼈가 썩고, 자기의 멀쩡한 살이 상처가 나서 악취가 나는 것 같이 느낄 정도로
자기의 죄를 깊이 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이 우리보다 영적으로 앞설 수 있는 이유라는 거예요.
참, 말이 모순 되지요.
다윗이 어떻게 밧세바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범한 죄악된 사건으로 인해서
다윗이 영적경쟁에서 치고 나가고, 영적 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를 지어야 되느냐?’ 이런 말도 나올 수 있지 않습니까?
물론 죄를 지으면 안돼요.
죄를 지으면 안 되는데 다윗은 죄를 지었다는 이유 때문에
유리한 지점을 점하게 됐습니다. 역설적이지요. 모순 되지요.
용납이 안 되지요. 그러나 사실입니다.
▲사도바울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성경에서 사도바울이 자기를 ‘죄인 중에 괴수’라 그래요.
그는 실제로 교인들을 잡아다 죽였습니다. 살인을 했어요. 살인자에요.
아마 한두 명 죽인 게 아닐 겁니다. 직접 죽이진 않더라도, 거기에 가담한거죠.
일례로 스데반이 죽을 때도,
청년 사울이 지켜보며 돌로 치는 자들의 옷을 맡아주었습니다.
그것은 ‘깊은 관여’를 뜻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한경직 목사님 생각도 떠오르지요.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등장하시는 분이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그 존경하실만한 성품과 목회적 일생, 그게 기반을 어디다 두고 있습니까?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에 동조하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템플턴상을 수상하실 때 수상소감의 첫마디가
‘나는 죄인입니다. 신사참배를 동조하고 참여했던 죄인입니다.’
라는 말씀을 첫마디로 하십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영예로워야 될 시간에
가장 추악한 당신의 모습을 들춰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에 동조했다는 그 죄책감으로
평생에 당신자신을 죄인으로 보시며 일관되게 살아가십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한경직 목사님의 위상을 만들어낸 것이에요.
역설적이지요. 역설적이에요.
◑적용
▲그러니까 신앙의 원리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사람 모두는 마천루를 향해 경쟁을 합니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차원에다가 얼마나 높이 쌓느냐를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높이높이 더 높이’ 쌓으려고 경쟁합니다.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에요.
그러나 신앙인의 삶의 원리는 뭡니까?
어떡하든지 깊이 봐야 됩니다. 뭐를요?
내 죄를. 내 죄를. 하여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깊이깊이
자기 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 영적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에요.
여러분, 꼭 명심하세요.
사도바울, 베드로, 다윗, 한경직 목사님..
이런 분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선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도 ‘천추의 한이 되는 죄’를 범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은 공통적으로, 더 추악한 죄악을 저지를 수 있는 뿌리 깊은 죄성을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에요.
▲성도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경쟁을 해서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쟁은 뭐냐?
범죄적 행동을 하지 않고 누가 자기 죄를 더 깊이 보느냐?
- 이게 우리의 경쟁이 되어야 합니다.
사업을 할 때도, 자식을 기를 때도,
신앙인의 경쟁은 누가 어떻게 더 높이높이 올라갈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깊이 자기 죄성을 들여다보느냐.. 이것이 경쟁이 되어야 하고,
그렇게 깊이 자기 죄성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결국 다윗/바울/한경직 목사님처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것입니다.
▲목회자도, 세상 ‘마천루’ 세우기로 경쟁하려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내가 목회 현장이라는 이 삶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현장 속에서
내 죄악을 깊이깊이 들여다보느냐, 하는 것이
목사님들의 경쟁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가 더 큰 교회를 누가 더 큰 예배당을 만들어내느냐?
누가 짧은 기간 동안에 많이많이 사람을 모아내느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경쟁이 돼서는 안돼요.
돈에서, 자동차에서, 뭐 오래 사는 거에서,
자식이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에서 1등하는 게 아니라
‘내 죄를 들여다보는 깊이에 있어서’ 1등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것을 가장 깊이 보는데서 1등 하는 그분이 바로
영적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가장 깊이 봐야 되요. 가장 깊이.
▲십자가를 더 깊이 아는 사람
십자가에서 주님의 살이 갈기갈기 찢겨버립니다.
채찍에 맞고 못 박히고 창에 찔리고 가시면류관 쓰시고
등짝과 배가 채찍에 맞아서 다 살점이 떨어져나가잖아요.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 죄악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예수님이 그 정도로 처참하게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는 것을 ‘깊이’ 볼 수 있어야
십자가를 더 깊이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얘기가 바로 그 얘기지요.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얘기는
‘내가 가장 지독한 죄인이라고 하는 죄인됨을 자각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경쟁에서 1등하는 사람이, 참으로 영적지도자 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여러분?
▲높이 쌓기 위해서는, 높이 쌓는 만큼 아래로 깊이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라든지 다윗이라든지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들,
너무너무 자기의 죄를 깊이깊이 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이 사람들 눈에 보일 수 있을 만큼
높이높이 쌓아올릴 수 있었던 것이에요.
고층빌딩일수록 지하의 기초가 깊지 않습니까? 당연하지요.
▲설교자의 직접 경험 간증
미국에서 보험사기를 치다가 이민국에 붙잡혀서 추방됐다. 태승철 목사가.
라는 이야기를 꾸며서 밴쿠버교민들이 보는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3개 일간지에 냈습니다. 없는 일이에요.
보험사기를 쳐본 적도 없고
제가 제 차 몰고 대륙을 횡단해서 캐나다로 여행을 하면서 넘어갔지
이민국 사람들이 나를 쫓아낸 게 아닙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 나와서 어느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마음이 생겼느냐 하면
그 사람이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나를 비난하고 있는데
내가 기도하면서 내 죄악의 깊이를 들여다보고 내가 깜짝 놀란 것은
그 사람이 중앙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에다가 만들어낸
모든 나를 비난하는 이야기들은,
내 원래 죄악의 깊이를 적중하지 못하고, 잘 봐준 것이더라고요.
그 사람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난하는 그것이
내 진짜 죄악을 들여다보고 나니까, 너무너무 좋게 얘기해주는 거더라는 거예요.
그 비방자가 한 가지 제게 도움을 준 것은
평소에 미처 깊이 쳐다보지 못했던 내 죄악의 깊이를
그런 일을 계기로, 깊이 쳐다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13절, 나는 못 듣는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말 못하는 자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내 입에는 반박할 말이 없나이다. 38:13
19절, 원수가 활발하여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있는데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이게 다 무슨 말일까요,
다윗의 대적들이, 부당하게 다윗을 미워하고 있는데,
다윗은 잠잠하고 있습니다. 반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비방을 통해서, 자신의 죄악을 더 깊이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더 큰 죄악이 자기 속에 있으므로, 그래서 잠잠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기 죄를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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