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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방패막이

LNCK 2009. 6. 10. 08:13

 

◈예배의 방패막이                   시51:16~17                    설교 편집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예배에만 헌신>되어 있다.

 

성도가 ‘예배에만 헌신’되어 있으면, 스스로 속게 된다.

‘예배가 신앙생활의 전부’인 것 같지만, 전부가 아니다.

‘예배 참석하는 것’으로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속는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척점/대안으로, ‘갈릴리 성전’을 세우지 않으셨다.

‘갈릴리 예배 운동’을 일으키지 않으셨다.

사방에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를 세우셨다.

 

예배는

제자의 삶을 살고, 복음을 전하고, 핍박을 달게 받는 삶의 결과로서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가 힘이 없는 것은.. <예배 뿐>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고, 영적전쟁의 삶을 살지 못하고,

오직 <예배뿐인> 성도는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잘못하면 자기 구원을 잃을 수도 있다.

 

내 문제를 놓고 기도해 응답/해결 받는 것... 이것이 승리하는 성도의 삶이 아니다.

그 문제가 해결되건/안 되건 ... 중요한 것 아니다.

죽는 날까지, 자기 문제를 안고 씨름하다가 .. 신앙생활 끝내는 분이 있다. 어리석다.

내가 죽는 날까지, 나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여러분, 내가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가? 그런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한다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일>을 사랑할 수도 있다.

 

내게 눈물이 마르고, 항상 긴장이 팽배해서, 옆에 게으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다면

<주님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은 주님이 아니라 <자기 체면>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 <예배>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예배>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예배 분위기,

-찬양을 즐기고,

-예배에 사람 많이 모인 것 보면 흐뭇하고 /적게 모인 것 보면 몹시 괴롭고

예배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고, <자기>가 되었을 때.. 그렇게 된다.

 

여러분, 고난 받는 자리에는... 음악이 없다.

거기는 조명도 없다.

외롭고, 춥고, 아픈 곳이다.

주님 밖에 없는 곳이다. (그 자리가 진정한 예배의 자리가 될 수 있다.)

 

 

▲예배의 강조가 자칫 잘못하면 ‘예배의 방패막이’가 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예배의 강조, 예배의 회복을 부르짖는다.

정말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예배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다보면

성경을 잘 모르는 초신자들에게 오해가 생겨나게 되는데

‘예배만 꼬박꼬박 참석하면 다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다.

 

주중에 불법적인 갖가지 죄악에 아무리 몸담더라도

‘주일예배 및 기타 예배에 안 빠지고 출석하면

일단 그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 신자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예배의 방패박이>다.

 

예배가 전심을 다해 정성으로 드려져야 하지만

‘예배만 참석하면 된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주일날 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된다.

‘(다음 주일까지) 또 한 주일은 이럭저럭 넘기겠네!

 

워낙 예배를 강조하다보니,

‘예배만 참석하면, 일종의 결승선을 넘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하게 된다.

성도의 신앙생활의 지상목표가 ‘예배참석’이 되어버린다.

 

그러면서 ‘예배참석’이 일종의 면죄부(방패막이)가 되면서

아무리 제멋대로 살면서도..

하나님 뜻과 전혀 무관하게 살면서도..

전혀 마음에 거리낌이나 잘못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예배에 잘 참석하는 신자니까!’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인데, 혹자는 예배를 이렇게 정의한다.

‘예배란, 하나님 앞에 더 귀한 것을 두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존귀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 드리기 앞서 진정한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물질/쾌락/사람/성공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은

아무리 예배에 열심히 참석해도 ... ‘진정한 예배’가 아닌 것이다.

그의 마음속 진짜 예배는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하나님이 제사(예배)를 싫어하신다’

‘너희는 마당만 밟는구나’, ‘너희 예배가 아주 지겹다’는 표현이

세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2~30번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에 대한 과도한 강조는

‘예배의 방패막이’로 변질되어서,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가증스런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서도

‘나는 안전해, 예배에 빠지지 않으니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서 예배를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만 섬기는 진정한 성도’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되는데

‘예배를 통해서 교회 안에서만 인정받는 성도’가 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사실 예배에는 꼬박꼬박 참석하지만

그렇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아무 차이가 없는 성도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면

<신앙생활의 강조점, 목표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분히 개교회주의와 맞물린 ‘예배 참석 강조’는

원래의 순수한 목적이 오도되어 ‘예배의 방패막이’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의 목표가 ‘예배참석’을 훌쩍 뛰어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참석을 통해서, 평소에 사회에서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며,

복음을 전하는 전투적 크리스천으로 사는 목표로 나아가야 하는데,

예배참석에만 그치면 안 된다.

 

▲예수님이 2천년 전에 오셔서, 가장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을 건드리셨다.

그것은 ‘성전 정화’였다. 또한 ‘안식일’이었다.

아마 당시에 ‘너희 실상이 어떠하든지, 성전에 올라와서 예배만 열심히 드려라!’

이런 분위기가 팽배했을 것이다. 모든 율법적 종교가 이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거기서 제사가 폐하여진 날은 없었다. 하루도 연기가 안 올라가는 날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급소를 건드리셨다.

채찍으로 성전을 청소하셨던 것이다. 무슨 의미인가?

‘너희 예배를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 받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율법적 종교의 ‘예배지상주의’에 채찍을 휘두르신 것이다.

 

어떤 분들은 ‘예배 강조’와 더불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매우 신성시한다.

참 순수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쩐지 ‘자기 교회와 자기 교회 예배’만

매우 신성시 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렇게 교회를 사랑하고 신성시하면, 이웃 교회(특히 농어촌)의 예배도 신성시해야 하는데..

실상은 유독 자기교회와, 자기교회 예배를 주로 신성시한다. (개교회주의라 그런다.)

 

그런 잘못된 목적이, 결국 길게 보면 ‘성도들의 신앙 약화’를 가져온다.

예배에 잘 참석하고, 교회를 사랑하는데.. 10년 지나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여전히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는 꼬박 열심히 다닐지 모르나...